간증

[역경의 열매] 김정하 <13> 불치병에도… 의지할 하나님 계시니 감사

열려라 에바다 2017. 11. 1. 08:18

[역경의 열매] 김정하 <13> 불치병에도… 의지할 하나님 계시니 감사

근육이 마비돼 대화조차 힘들어져… 주님이 일하시기를 잠잠히 바랄 뿐

 

[역경의 열매] 김정하 <13> 불치병에도… 의지할 하나님 계시니 감사 기사의 사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하나님이 아닌 어떤 대상도 의지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이때가 감사할 때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과 함께한 생일축하 파티.

2010년 병원 MRI 검사 결과를 확인하던 날, 사람들은 추석 명절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내 병명은 루게릭병이었다. 추석을 코앞에 둔 그날 우리는 암담한 진단 결과를 받아들고 그래도 추석이니 감사기도의 제목을 찾고자 했다. 그날은 감사하는 날이니까 말이다.

“여보, 우린 참 가진 게 없네요. 당신 병은 세계적인 희귀병이고 불치병인데…. 우린 돈도 없고 이럴 때 편의라도 봐줄 의사 하나 없네요. 그냥 캄캄하네요.”

아내의 말에 나는 “다행이지 뭐”라고 했다. 아내는 귀를 의심했다. 다행이라니,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포기할 수 있어서? 더 이상 희망 같은 걸 붙잡지 않아도 돼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에게 나는 이런 말을 이어 나갔다.

“돈 싸들고 치료하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잖아. 고치지도 못할 의사에게 살려달라고 떼쓰지 않아도 되잖아. 남은 건 하나님밖에 없으니 차라리 감사하잖아.”

하나님 아닌 어떤 대상도 의지할 수 없게 됐을 때, 그때가 감사할 때란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이제 갈 길은 명확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대하고 잠잠히 바라볼 뿐 우리의 길은 하나님 뜻에 따라 좌우될 것이었다.

그저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이제 나의 연약한 몸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가실까. 앞으로 펼쳐질 크고도 은밀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아내와 함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주님, 우리 같이 비천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주님의 특별한 일에 동참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언젠가 우리 입술을 통해 주님의 위대하신 일을 증언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충성스러운 종으로 그저 순종하게 해 주십시오.”

루게릭병은 근육이 말라가는 병이다. 음식물을 잘 씹지 못해 몸은 야위어 간다. 움직이기 힘들고 급기야 말도 어눌해지다가 나중에는 절망에 이른다. 그렇게 모든 근육이 마비되는데도 정신은 멀쩡해 몸의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가야 한다. 잔인하고 지독한 병이라고들 한다. 무엇보다 루게릭병에 대한 가장 절망적인 것은 아직까지 완치된 사례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게도 증상이 하나둘 나타났다. 말이 어눌해졌다. 손놀림도 다리근육도 뻣뻣해졌다. 옷의 단추를 끼우는 일부터 밥상에서 밥 먹는 일까지, 심지어 이젠 대화하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내 힘으로 할 수가 없다. 아내와 가족, 나아가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이제 하나씩 내려놓아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여보, 우리 봉고… 이제 보낼까.”

개척 후 지금까지 우리 교회의 발이 되어준 정든 차를 필요한 곳에 보낼 생각이었다. 내 제안에 아내도 “그게 좋겠죠”라고 했다. 몸이 더 불편해지기 전에, 그래서 차를 더 이상 운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차를 가져다주기도 어려울 테니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나는 미리 떠나보내고 싶었다.

어느 날 아내는 미용실에 들러 긴 머리를 짧게 다듬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머리 만지는 시간도 줄이고자 했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아줌마 같다”고 말했다. 아뿔싸, 아줌마 같더라도 병든 남편의 아내로 남고자 하는 여자에게 할 말은 결코 아니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