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비밀 / 히브리서 11:1
믿음이 먼저냐, 행위가 먼저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행위가 나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무엇이 먼저냐?”고 물어봤기 때문에 그 질문에 맞게 대답한 것일 뿐입니다. 사실 믿음과 행위는 하나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지만 동전에도 앞면이 있고 뒷면이 있듯이 믿음은 앞면이고 행위는 뒷면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위는 항상 함께 움직입니다. 하지만 이중에 부각시켜야 할 것은 단연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믿음이 먼저냐, 행위가 먼저냐 따위의 질문을 합니다.
믿음을 잘 아는 사람들은 “너는 나를 믿니?”라고 질문할 때 “응, 믿어!”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믿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응, 대체적으로 믿는 편이야!”
믿음은 퍼센트로 나타내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믿는다면 한 90% 정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미안하게도 믿음에는 50% 믿음, 90% 믿음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0%의 믿음이나 100%의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대체적으로 믿는 믿음이란 없습니다. 믿음은 믿고 안 믿고의 문제입니다.
내가 대체적으로 믿는다고 답변하면 이런 염려에서입니다. “가끔 네가 나에게 실망을 주기 때문이지.” 우리는 항상 실망할 것을 염려하며 삽니다. 여러분도 혹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망을 염려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고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염려하지 않습니까? 기도를 할 때 항상 그것이 걱정되기에 “대체적으로” 주님을 믿고 계시지 않습니까?
실망이란 다분히 나의 기준에서 생각하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려면 나의 기준에서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믿는 그분을 기준으로 생각하십시오.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쁘게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습니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잘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상대방의 기준에서 세상을 보기에 그 사람의 말투를 쓰고, 그 사람의 행동을 닮아갑니다. 오래된 연인들은 그들의 외모까지 닮아가 버립니다. 내가 믿는 그분을 기준으로 생각하기에 내가 그를 닮아가는 것, 내가 소망하고 바라던 그것을 바로 실상으로,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비밀입니다.
여러분이 아기였을 때 여러분은 부모님을 통해 모든 것을 배워나갑니다. 아기들이 부모님의 말투를 따라하고 부모님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학습의 발걸음을 뗀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모를 전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통해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하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증거를 얻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던 미지의 세계를 증거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길거리에서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아장 아장 걸어가는 아기들의 모습 속에서 “저것이 믿음이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아 떼를 쓰고 보채 보고 징징거려 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아기들의 기준에서 얼마나 갖고 싶은 것이 많겠습니까? 하지만 아직 세상살이에 익숙하지 않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봤을 때 그다지 매력도 없고 쓸 만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유희왕 카드를 가지고 놀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이 쓸모없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한 것들을 사달라고 징징댈 때마다 어머니는 아이를 달래고 호통을 치고 때로는 손찌검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대부분은 어머니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도망가거나 어머니를 피해 다른 길로 가지 않습니다. 그냥 울면서 어머니의 치마를 붙잡고 쫓아 다닙니다.
어린이들은 “내 어머니가 날 때리고 쥐어박아도 나를 사랑한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섭섭하고 야속해 보일지라도 그들은 어머니가 어머니임을 알고, 나의 어머니를 믿는 이런 믿음이 있기에 끝까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여러분의 운명은 누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누구를 닮아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여러분은 믿으십시오. 주님을 믿음으로 믿음의 비밀을 소유하고 믿음의 지평을 넓혀가는 아름다운 지체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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