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 상리장로교회에는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내가 할 일이 확실하게 보였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야학을 열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뒤라 사람들의 마음속엔 배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흐르고 있었다.
야학을 열자 뜻을 같이하는 선생들이 참여했다. 천막을 쳐서 교실을 만들었다. 금방 틀이 갖춰져 고등공민학교 과정으로 커졌다. 이곳에서 나는 성경과 영어, 생물을 가르쳤다. 이 천막학교는 훗날 상리중학교로 발전했다.
주일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그 당시 신앙만큼은 남한보다 북한이 더 선진적이었다. 6·25전쟁 때문에 북한에 있던 영적 지도자들이 내려오면서 남한의 기독교 신앙 운동이 활발해졌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고향을 잃은 이북 출신 신앙인들이 부르짖는 기도와 회개 운동은 남쪽 교회에 부흥의 불을 지폈다. 한경직 방지일 목사님 같은 분도 신의주와 선천, 만주에서 목회하던 분들이다.
남쪽은 북한에 비해 교육문화도 많이 낙후돼 있었다. 나는 고향에서 배운 성경 이야기를 해주고 연극도 보여줬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 힘이 센 삼손,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 삭개오가 구원받은 이야기 등을 드라마틱하게 각색해주자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며 감동했다. 울고 웃고 데굴데굴 굴렀다. 자연스럽게 주일학교가 성장했다. 아이들의 부모까지 찾아오면서 교회가 부흥했다.
내가 의학도이자 군의관 출신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욱 바빠졌다. 환자도 많이 찾아왔다. 약을 구해 치료해줬다. 주사를 놔주고 기도도 해줬다. 마을에선 유명인이 됐다. 처녀들은 카드나 목도리를 선물하면서 환심을 사려 했다. 그러나 내겐 가족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늘 부모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쳤다.
끝없는 그리움 앞에 삶과 생명력 모든 것이 다 속수무책이었다. 그리움은 그 외의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이기적 측면이 있었다. 내 생각은 온통 가족을 향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동생들은 모두 무사할 거야. 그렇지요, 하나님. 수없는 죽음에서 저를 건져 주셨듯이 가족 모두가 살아 있는 것 맞지요.’ 어디서든 가족이 살아 있다는 실마리를 간절히 찾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하고, 누구에게 수소문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보고 싶은 마음이 깊어지면 별이 된다고 했던가. 정말 별을 붙잡는 심정으로 기도했다. 저녁이건 새벽이건 교회를 찾아가 마룻바닥에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여, 주여, 가족을 만나게 해 주세요. 제발 찾게 해 주세요.”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었다. 2년을 그렇게 울며불며 기도했다.
2년의 시간이 고성에서 흘러갔다. 나는 바로 목회자가 돼야 할지, 의사가 돼야 할지 현실적으로 고민했다.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했지만 마음속으론 의사 자격증을 따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동네에는 선천이 고향인 동창생이 중령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친구가 내게 중요한 두 가지 정보를 줬다. “선도야. 부산에 가면 피난민 임시 수용소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부산 의무사령부에서 의사 자격시험을 진행한다고 한다. 부산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
‘그렇다. 부산으로 가자. 가족도 찾고 의사 자격시험도 보자.’ 2년간 절규 같은 기도의 응답은 부산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내 발걸음을 부산으로 이끌고 계셨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선도 <9> 교회 활동으로 유명인 됐지만 가족 그리움 사무쳐
‘부모·형제 찾고 의사 자격시험 보자’ 2년 간 기도에 부산으로 이끄셔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모님을 비롯해 6명의 형제와 생이별을 했다. 6·25전쟁 당시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피난민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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