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믿는 자가 누리는 즐거움과 복

열려라 에바다 2018. 10. 5. 08:18

믿는 자가 누리는 즐거움과 복 5:8-11

 

주신 말씀 롬5:8-11을 중심으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라는 제목으로 주님 주시는 은혜 받는 귀한 시간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인간의 행위나 외적인 어떤 조건들에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앞장 4장에서 강조하였고 5장에서는 이신득의의 결과 성도들이 누리는 복에 대하여 말합니다. 특히 1-11에서 이신득의의 결과로써 성도들이 누리는 하나님과의 화평과 소망과 희락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바 오늘 본문에서 믿는 자가 누리는 즐거움과 복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과 제가 되기 원합니다.

전에도 말씀 드린바와 같이 로마서 1-11장은 이론이며 12-16장은 실천 즉 생활편인데 이론과 실천이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이론이 너무 강조되고 있어 만민 중앙교회같은 사태가 발생합니다.

자녀에게 교회를 편법적으로 상속하려는 교회, 수백억의 토직금을 챙기는 대형교회 사건의 언론보도들이 수많은 개미들이 선교와 전도를 하는 열심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에서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참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소망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또 다시 십자가를 지고 애통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왜 성도는 주님 주신 복을 누리며 즐거움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하나요?

첫째로 참 자유 주시려고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심.(8)

둘째로 성도는 구원에 있어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음으로.(9-10)

셋째로 용서 받은 자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며 살라 하심으로 . (11)

 

첫째로 참 자유 주시려고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심으로.(8)

죄인을 위한 예수님의 대속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내려 오셨고 인간의 삶을 직접 경험 요즘 말로 체험하셨고 체험해보시니 인간으로써 도저히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자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해 소돔성에 의인 50명에서 흥정을 계속하여 마지막 10명까지 왔는데 의인 10명이 없어 결국 소돔성은 멸망하게 되지요? 왜 열명입니까? 기왕에 한 것 53명 한명까지 내려가지 못한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유대인들의 공동체의 최소 조건이 10명이기 때문입니다.

왜 구약의 제사가 신약에서는 더 이상 없어진 줄 아시나요?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내 죄를 대신해서 소나 양이나 염소 그리고 비들기로 자신의 값을 대신하게 하고 그 짐승이 죽어 내 죄를 사함 받았는데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기에 즉 전세에 불과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그리고 일년일차 대속죄일(7,10)에 죄 사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짐승은 사람값하고 비교할 수 없기에 완전한 죄 값이 청산되지 않았기에 또 다시 제사하고 또 제사하고 다시하고 ....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만 만드신게 아니라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값으로 인간의 죄를 완전히 값고도 천대 만대까지 오고 오는 세대에 모든 사람의 죄 값을 다 더해도 예수님 값하고 비교가 되지 않기에 우리는 더 이상 짐승으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한 방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온전하고 완전한 제사를 드려 우리 죄를 완전히 사해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드리는 제단이나 성전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전으로써 성전으로 지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세전에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확증된 사람들입니다.

7절에서 의인이나 선인을 위하여 대신 죽는 것도 쉽지 않은데 8절을 시작하면서 확증하셨다(συνίστησιν 쉬니스데신) 그런데 죄인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직접 화목제물이 되시어 죽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사랑을 확중하셨다는 것입니다.

확증하셨다는 말씀은 드러내고 계신다. 입증하고 계신다. 번역할 수 있는데 쉬신스데신의 원형 쉬니스데미(συνίστημι)는 함께(συν)+놓다 두다(ίστημι)의 합성어로써 본문에서 드러내어 입증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시제면에서 과거에 한번 확증하신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입증하셨고 현재도 입증하고 계시고 장래에도 계속해서 입증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인 되었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기만 하면, 예수님을 믿기전 즉 보혈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기 전까지 계속적으로 죄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 하나님과 불화의 상태, 하나님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죄인이고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여 불러주시고 믿음을 고백한 그 순간부터 죄의 상태에서 깨끗함을 받고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이 된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사랑은 이기심이 전혀 없는 자기 희생적이며 무조건적인 신적인 사랑 하나님이신 예수님만 가지신 온전하고 절대적인 사랑인줄 믿습니다.

 

둘째로 성도는 구원에 있어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음으로.(9-10)

6-8절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확증된 그리스도의 성도에 대한 사랑을 말한 후 본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살으심을 믿는 부활신앙으로 구원의 참 복을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9-10절에서 구원에 대해 구원을 얻을 것이니,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하며 미래형으로 사용하여 마치 구원을 받았다(8:24)는 완료형으로 말하던 바울이 미래형으로 말하니 번복하는 것 같고 횡성 수설하는 것 같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성도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도 하고 동시에 아직구원을 받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을 고백하게 되면 그 순간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고 죄의 종 노릇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노릇하며 멸망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옮겨짐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예수의 피를 믿는 믿는 이들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된 신분으로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으므로 (2:3)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의 피 공로 의지하지 않고는 구원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 공로를 의지하는 자들에게만 특별 사면령을 내리셔서 진노 즉 영원한 멸망 대신 축복의 자리 영생의 자리에 앉게 될줄 믿습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은 너무너무 두려운 일 아닙니까?

성도의 구원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은혜를 주셔서 영생의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로써 합당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입니다. 권한을 행사하려면 반드시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형통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좌절 실망 시련과 원망 자조 후회 낙담 등 부정적인 말들이나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절망상태에서 낙당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떠나거나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됩니다.

점쟁이들이 믿는 사람들이 안오면 우리가 살 수 있나요 하며 공공연하게 기독교인들이 점집 사주관상 택일 등을 한다합니다.

초파일에 기독교 신자 수백만면이 절을 찾아 시주한다 합니다.

참으로 한국교회가 대 회개운동을 하지 않으며 안될 시점입니다.

구원은 선물로 받은 것이지 은혜로 받은 것이지 어떤 우리의 행위 때문에 공로로 받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자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로 오염된 육체를 입고 있어 일시적으로 죄 가운데 빠질 수 있지만 즉시 회개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의의 종노릇해야 합니다.

회개는 후회가 아닙니다. 반성이 아닙니다. 완전히 돌아서서 똑 같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행위가 동반될 때 회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 받은 자로써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며, 순간 순간 지은 죄가 있을지라도 즉시 회개하고 돌아서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 되시길 축원 합니다.

셋째로 용서 받은 자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며 살라 하심으로 . (11)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줄거움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왜 성도가 즐거움을 누려야 하나요?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가 전가되고 유전되어 정죄받아 원죄를 갖고 태어난 죄인들입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자나 다 같은 이치입니다.

원죄를 갖고 태어나 타락한 본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하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요.

103일이 개천절 즉 한반도에 나라가 처음 세워진 날이라고 음력으로 기록된 것을 그냥 양력으로 103일을 개천절 즉 하늘이 열린 날이라단군이 백두에서 나라를 세운 날이라고 국경일로 정해 지킵니다.

그런데 참으로 한심한 것은 개천절을 개가 천지에 가득한 날이라고 개들과 함께 하며 개 천마리가 마음껏 뛰노는 퍼포먼스를 하는 우스꽝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개를 안고 가면서 내 새끼 내 새끼 합니다.

그러면 그 여자 남자는 분명 이 분명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10절 화목하게 되었은즉 (κατηλμάγημεν)‘~을 향하여 , ~안으άλλάσσω란 의미를 지닌 κατα와 변경하다는 의미를 지닌καταλλάσσω(카탈랏쏘) 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바꾸다 교환하다가 확대되어 화해시키다는 뜻으로 사용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과학이나 이성이나 학문이나 물질이나 제사나 기타 사상을 다 동원해도 하나님 편으로 스스로 나갈 수 없게 된 형편에 처해 절망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십자가란 십자가로 다리를 놓아 주셔서 하나과 인간이 화목하게(re + con함께 +cilation 걸어오다 ) Reconcilation(화목, 화해)합니다.

나와 나의 교회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손을 놓고 내가 이렇게 했다는 공로주의에 빠져 깊은 죄의 늪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화목이라는 말의 뜻처럼 다시 하나님의 손을 잡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함께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화해의 신학이 독일을 통일 시키는데 큰 몫을 담당하게 되었죠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거친 광풍이 몰아칩니다.

태풍이 가을 황금들녁을 덮쳐 많은 피해를 입혔지만 우리에겐 인도네시아처럼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서 빗겨나 있어지진의 위험이나 화살폭발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아무리 대비를 해도 천재지변 앞에서 인간의 능력은 무기력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셔야 안전합니다.

내가 하겠다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도록 하나님께서 힘주옵소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손을 꽉 잡고 절대 놓치지 말고 최선을 대햐야 합니다.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즐거워하다 즉 καυχώμενοι는 항상 즐거워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칭의( Justfication) 받은 사람은 이미 영원한 구원 받을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 받았고 보장 받았기에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현실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고 즐거움을 유지하며 구원을 보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동시에 나의 마음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영원한 즐거움으로 고난도 이기고 환난도 극복하고 절망 가운데 소망을 가지고 사단의 시험마저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주신 영원한 즐거움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귀 사탄의 궤계를 쳐부스고 내가 받은 축복을 이웃에게 자랑하고 나눠주몀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과 제가 되기 원합니다.

슬픔 속에서 하나님 주신 은총과 구원의 감격을 안고 즐거워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성질내고 화난 얼굴로 대하면 수명이 삼년이 짧아지고 기쁘고 즐거운 표정으로 부드럽게 대하면 3년 수명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밷지 못한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영원한 죄 사함과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하나님의 의롭다 함을 받은 거룩한 백성됨을 참으로 즐거워하며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