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살았던 중동 지역의 전통문화로 성경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이슬람 색채가 강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아랍 문화가 기독교인의 성경 이해를 더욱 풍성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혹자는 중동 문화로 성경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기독교 외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여기는 종교다원주의라고 치부할지 모른다. 고대 세계의 공용어는 로마 제국의 헬라어이고 최초의 신약성경 역시 헬라어로 작성됐기에 성경은 아랍 전통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는 2000년 전 아랍 문화권인 팔레스타인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이었다. 예수는 아랍어와 문장 구조, 어원, 세계관을 공유하는 동족 언어인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 이는 예수가 살던 당대의 문화와 종교 행위 등을 이해하는 데 아랍 전통 세계관이 꽤 효과적인 수단임을 뜻한다. 아랍 문화는 성경을 관통하는 ‘문화 프리즘’이 될 수 있다.
영국성공회 신부인 저자는 20년 이상을 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에서 살았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세인트앤드루스성공회교회 담당 사제다. ‘UAE의 기독교’ ‘쿠웨이트의 기독교 문화’ 등 아랍 공동체의 기독교를 연구한 책을 여럿 펴냈다. 종교 간 대화와 인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에게서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저자는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실제 뭐라고 말씀했는가’에 초점을 맞춰 이 책을 풀어간다. 특히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과 비유, 사건을 중동 문화의 맥락 속에서 새로이 살펴볼 것을 권한다. 누가복음 19장에 등장하는 세리 삭개오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서구 기독교인은 이 본문에서 자신을 낮춰 부패한 세리를 구원한 예수의 헌신을 중요시한다.
반면 오만 무슬림은 다른 방식으로 교훈을 찾아낸다. 자신을 집에 초청해 달라고 요구하는 예수의 행동은 아랍 문화에서 매우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술탄(군주)이라도 이렇게 요구할 수 없으므로, 이런 특권을 누리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말한다. 아랍 문화로 복음서를 해석함으로써 무슬림도 예수의 본체를 증언할 수밖에 없게 된다.
복음서의 비유와 사건도 아랍 전통을 덧대보면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는 누가복음 14장의 혼인 잔치 비유에서 “높은 자리가 아닌 끝자리로 가라”며 ‘자신을 낮추는 자가 높아진다’는 교훈을 전한다. 저자는 아랍인 가정의 사랑방인 ‘마즐리스’에서 이 관습이 아직도 통용되는 것을 목격한다. 마즐리스에서 자리를 잡을 때 문간 말석에 앉으면 손님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집주인이 상석을 권하면 그만큼 가치 있는 손님이라는 의미다.
같은 장에 혼인 잔치를 연 주인이 사회적 약자를 초대해 조건 없는 선행을 베푸는 사건이 나오는데 이 역시 아랍 전통 관습이 반영된 것이다. 저자는 부유한 무슬림이 라마단 기간 무료로 운영하는 ‘이프타르(금식이 끝나는 일몰 이후의 만찬) 텐트’를 보며 조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다. 발을 드러내는 일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긴 중동 문화에서 돌아온 탕자를 향해 긴 옷을 걷고 달려간 아버지의 비유에선 사랑 때문에 명예를 내던진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복음서로 대화할 수 있는 지점을 여럿 제시하지만 두 종교가 확연히 다른 부분도 분명히 짚는다. 무슬림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속죄로 여기지 않는다. 신이 인간에게 죽임당한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다신론으로 이해하며 우상숭배라 여긴다. 그러나 십자가 구속과 삼위일체는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精髓)다.
저자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복음서에 드러난 예수의 가르침을 보며 해석법을 교류할 것을 당부한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랍의 시각을 존중할 때, 무슬림도 자신의 경전을 새 관점으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책은 기독교 변증서가 아니며, 자신의 견해로 사람들을 설득하겠다는 목표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지만 종교 간 대화를 넘어 복음을 전할 때도 참고할 만한 정보가 가득하다. 선교적 관점으로 무슬림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