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의 삶

열려라 에바다 2020. 1. 20. 11:31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의 삶

고린도전서1:1-9

 

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가 있습니다. ‘꽃자리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이 시에서 시인은 내가 지금 앉아있는 그 자리가 꽃자리라고 말합니다.

설령 가시방석처럼 여겨지는 자리라고 할지라도 그 자리가 꽃자리라고 말합니다.

내가 앉아있는 그 자리가 사명의 자리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자리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지금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불편하고 힘들고 어렵다고 그 자리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시인의 표현대로 그 자리가 꽃자리인 줄 압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들려 점을 잘 치는 여종을 고쳐준 관계로 매를 심하게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착고에 채워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그 상황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원망스럽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그 자리를 꽃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의 자리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리지만 이 자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자리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꽃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놀라운 것은 정말 그 자리가 꽃자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는 자리가 되었고, 간수가정이 구원받는 자리가 되었고,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저마다 주어진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가 때로는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워서 하루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어질 때도 있습니다.

더 편하고 더 안락하고 더 좋은 자리로 옮기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앉아있는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자리인 줄 압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은 때때로 부끄러움이 될 수 있고 사명을 망각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연못 속에서 헤엄칠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물고기가 연못 속을 떠나 침대위에 누워있다면 그것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고 더럽게까지 느껴집니다.

논밭에서는 꼭 필요한 흙이 방바닥에서는 닦아내야 할 더러운 것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리를 버리고 떠날 수 없습니다.

그 자리가 꽃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주어진 자리를 주님께서 주신 자리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첫 번째 편지인데요, 서두에서 사도 바울은 아주 중요한 인사말을 건넵니다.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편지를 쓰는 자신과 형제 소스데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 말처럼 귀하고 축복받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청와대에서 혹은 행정부에서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영광스럽다고 하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면 목회자로 부름을 받는 것만을 생각하기가 쉬운데요, 물론 목회자로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만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닌 줄 압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형편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곳을 부름의 장소로 믿고 그 곳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 성도들의 합당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그 자리를 꽃자리로 알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드리는 것이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인줄 압니다.

오늘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여전도회 회원들이나 성도 여러분들이 부르심의 자리를 잘 깨닫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도들의 부르심은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가, 구원의 부르심입니다.

 

2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바로 구원의 부르심입니다.

로마서 830절 말씀을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첫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예정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예정되어 있는 사람을 때가 되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불러주십니다.

그렇게 부름 받은 자들을 의롭다고 인 쳐 주시고 성령으로 인 쳐 주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택함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그것을 믿게 하시고 성령으로 인 쳐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을 얻게 된 것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구원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성령을 받았고 죄 사함을 받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원에로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성령을 받지도 못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구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11:29)

구원의 부르심이 취소되거나 하나님의 은혜가 취소되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불러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감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가, 선교의 부르심입니다.

 

에베소서 38절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절에서는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런 은혜를 주셨다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 구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이 구원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받은 처음부터 선교의 부르심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그 즉시로 다메섹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깊은 감옥에 갇혀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당시 땅 끝으로 알려진 서바나,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자리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더불어 선교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평생 선교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교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만이 감당하는 특별한 사명이라고 생각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을 등한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선교는 분명히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선교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복음을 잘 전하기도 하고 구원의 역사를 크게 이루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위험한 곳에 가서 목숨을 바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은사를 받은 자는 받은 은사대로 선교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교는 은사이기 이전에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지상명령입니다.

은사가 없다고 선교하는 일에 등한히 하고 아예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은사가 없으면 멀리 가지 말고 우리가 처해있는 곳에서 잘 아는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전도의 장소와 대상은 다를 수 있지만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은 전혀 다를 수 없습니다.

성도들 모두가 선교에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가, 자기 위치로의 부르심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도들은 각자의 위치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의 위치가 있을 것이고 교회에서는 장로 권사 집사 교사 성가대와 같은 직분의 위치가 있을 것입니다.

직장에서는 직장에서의 위치가 있을 것이고 특별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위치도 갖고 있습니다.

그 위치에서 각자에게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위치에로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의 위치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위치에 있는 자들을 향해서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자녀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고, 부모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종들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고 했고 상전들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종들에게 위협을 그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여러분의 위치에 맞는 삶은 특별히 중요하고 평생토록 변함없이 이루어져야 할 사명입니다.

사회적인 위치가 바꾸어질 때 사명도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위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바꾸어질 수 없고 끝까지 그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내 사랑하는 일, 남편에게 순종하는 일, 자식들을 잘 양육하는 일,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꾸어질 수 없고 바꾸어지면 안 되는 일입니다.

가정에서 여러분의 위치를 잘 생각하고 그 위치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의 위치에 맞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위치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의 위치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위치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치에 맞는 삶에는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고 천한 것도 귀한 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똑 같이 중요하고 그 위치에 맞는 삶을 살아가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가, 섬김의 부르심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나오는데요, 그들은 고린도에서 천막을 만드는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들과 함께 거하면서 바울 자신도 천막을 만들면서 고린도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그들을 향해 나의 동역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에 헌신적으로 동참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직업을 가지고 직장에서 일터에서 사도 바울을 섬기며 복음 선교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냥 직장에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도록 부름을 받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선교사나 목회자와 같은 부름에 비해 자신의 직업이 덜 중요하고 특별하지도 않는 부름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마는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직업은 목회자나 선교사 못지않은 가장 중요한 부름이며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워싱턴이 대통령이 된 후에 한번은 각료들과 함께 고향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머니는 각료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각료들은 죄송한 마음에 접대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좀 쉬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어머니는 나는 대통령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서 일하라 하셨으므로 나에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 나는 일할 것이오.

또한 나는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 앞에 서야 할 주님의 여종이오.

그러니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섬기는 일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워싱턴의 어머니는 위대한 소명 의식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나 가정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부르심의 의식을 갖고 일을 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구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이 선교에로 불러주셨고 자기 위치로 불러주셨고 직업에서의 섬김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자의 위치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