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영교하기 위하여 허락하신 특별한 최대의 선물이요, 은혜의 성물이다. 그래서 성막을 향하여 나아가 엎드리는 것을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간다고 했다. 죄인이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영교하는 유일한 길이요,중매적 사명자이다. 출애굽기 33장 7-11절에 성막의 고귀한 임무가 나타나 있다. 또 성막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는 증표였다. 실지로 하나님께서 성막을 매개로 하여 이스라엘과 같이 계셨다.이와같이 중임을 가진 성막은 한 장소나 구조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물질적이고, 인위적이고 그리고 세상적인 것에 제한되시는 분이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영적인 뜻과 영교의 오묘한 진리가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래를 위한 것이니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영교하시고,또 그의 백성을 멸망의 자리에서 구속하시는 구속의 예표로 예언적이고 계시적인 상징이다. 메시아의 간접적 예언임에 틀림이 없다.32)
제1절 성막의 기구들
성막의 재료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그것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성막을 짓기 위하여 드려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방법으로 된 것이다"33) 하나님의 명령과 능력과 역사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적인 순종과 헌신에 의하여 드린 것이다. 즉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아들의 도성인신으로 참 이스라엘로써 신앙적인 순종과 헌신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됨을 말해준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과 참 잇라엘의 결연자에게 말씀하심과 같이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34) 고 했다. 그 여자가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내가 그로라"(요 4:25-26)고 했다. 그러므로 [이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30) [일반적으로 성막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느니 상징이었다(출 25:8,왕상 8:27참조)...말씀의 도성인신,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매"이다. 헬라어의 성막은 육신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요1:14,고후5:1)36). 그러므로 성막은 도성인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게 되고 영적으로 교제하게 되며 그 안에서, 즉 그를 중계로하여 하나님께 그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만나거나, 참 예배가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참 성막이다. 우리는 이하에서 성막의 기구들을 생각하기 전에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에 법궤로부터 시작하여 속죄소, 그룹, 떡상, 향단, 촛대,놋단, 세수대야와 안마당, 바깥마당의 순으로 논한 것이다. 위의 순서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을 의미하며, 죄인을 위한 희생을 나타낸다. 그 희생은 십자가의 희생이다. 죄인의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요, 그 역사이다. 또 성막에 들어가는 과정을 생각하여 보면 깊은 진리가 있다. 이방인의 죄인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의 문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여 잡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생명과 거룩함과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된다. 즉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하향적 사랑과 인간의 상향적 신앙을 보여 준다.
2.법궤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으로 법궤를 만들 것을 명령하셨다(출25:10). 그 조각목은 광야에서 자라는 무척 굳은 나무이다.]그 궤는 조각목,즉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다.]38)그 [아카시아 나무는 선택되었다. 그 나무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성장하는 나무이다. 그 나무를 선택하여 재료로 사용하였다.]39)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설명하여 준다. 우리는 각각 성품이 다르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대하여 그 개성도 완고하면서도 마귀에게는 유순하여 패하는 자가 많다. 즉 보잘것 없는 고난, 시험과 시련 속에서 그 성품이 움직여 신앙을 잃어 버리는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품은 외유내강 하셨다. 예수님은 세번이나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뿐 아니라 공생애에 수없는 고난과 위험을 당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육신을 쓰신 인간이었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셨다. ..... 조각목이 견고하여 벌레가 먹을 수 없을 같이 주님의 의지는 움직여지지 않으셨다.]40) 그 나무는 결이 아름답고 귀한 나무이다. 그와같이 우리 주님의 성품은 아름답고 고귀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조각목은 순금으로 입혔다. 이에 대하여 엉거(Unger)박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나타낸 것이라]41) 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 순금은 순수한 참 신앙을 의미하는 때가 많다.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시고, 또 신성이 신앙의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카일(keil)씨도 "내외에 금으로 포장한 것은 그의 백성 가운데 있는 여호와의 성성(聖性)이라"42)고 했다. 그러므로 조각목은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며 정금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한다. 주님은 신성을 가지셨을 뿐 아니라 인성도 가지고 계신다(사7:14). 고로 조각목을 정금으로 싼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神人양성의 소유를 나타낸다43). 그 안에는 만나 항아리와 십계명 두 돌비와 아론의 싹난지팡이를 넣어 두었다(히9:4). 그와같이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심판과 의에 근거한 은헤의 왕국, 하나님 자신의 증거로써 언약 돌비들이 있었다44). 이는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와 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입에서는 그것이 늘 차고 넘쳐 흘렀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놀랄 뿐 아니라 충만함을 받았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부활을 하신 생명의 주님을(민17:10)의미하는데 그가 죄인들을 원수에게서 구원하고, 천국길로 인도하심을 의히만다. 만나 항아리는 생명의 소유자로써(요6:) 택한 양들에게 영생의 양식과 생명을 주심을 의미한다. 이상으로 보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세가지의 유대를 가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요14:6).여기에 대해 차남진 박사는 "십계명은 성부의 대표요, 만나는 희생 제물된 성자의 대표요, 아론의 싹난지팡이는 성신의 대표라"했다. 또 그리스도의 삼중직도 의미한다고 했다(기독신보,1966년 8월호).
3. 속죄소 (시은소)
출애굽기 25장 17절에 정금으로 속죄소로 만들라고 하였다. 또 히브리 4장 16절의 [은혜의 보좌 앞에]라고 말씀이 있다. 이것은 신약과 구약의 외면적인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속죄소, 즉 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 앞에는 누구나 마음대로 들어 갈수가 없었다. 즉 지성소에 들어 갈 수가있었다. 그것은 그의 백성에게 율법과 계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는 것만 아니라 또 죄르리 볼때에 진노도 하시고, 자비도 베푸시는 하나님을 계시한다(출 20:5634:6-7).또 후에 큰 속죄의 날에 피를 흘려 속죄하여 그들의 모든 죄에서 속죄하고 그의 백성과 화목하기를 원하심을(레16:14)보여 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발등상인 은혜의 보좌(히4:169:5)앞에 45) 자유로이 나아갈 뿐만 아니라 긍휼을 받게 되었다.46) 그 이유는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려서 속죄함으로 심판의 보좌에서 은혜의 보좌로 옮겨 주ㅅ기 때문이다(히9:11-157:2710;10,.9:24). 두 그룹을 만들어 속죄소 위에 두었다. 그 그룹들은 각가 두날개를 가졌다.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형상을 가졌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준 그룹의 형상은 사람, 사자,송아지 그리고 독수리의 형상들이었다(겔1:10).이것은 하나님의 절대권의 증거와 구원의 영광과 하나님의 왕되심으로 왕으로 모심이다47). 욥기 1장 6절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천사들이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보좌의 거룩함을 수호하는 직분을 감당키 위함이다. 이러한 그룹들이 속죄소 위에 계신 것은 죄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죄를 스스로 속죄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세우시고 원하시는 대제사장,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속죄할 수 있으며, 그의 피가 속죄 제몰이요, 또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으로 되어 짐을 보여 준다. (히9:11-15,행4:11-12). 또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같이 계심을 뜻한다. 즉 정한 장소에서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고,그들과 같이 만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약속을 성취하심을 의미한다.(출29:4240:35,레1:1,민1:117:19).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백성 중에 계신다(대상 28:2,애2:1)48).끝으로 천사들은 하나님이 부리는 사자들이다.그들이 속죄소 위에 있음은 속죄사역을 하나님이 행하심과 속죄함을 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일하고 보호함을 의미하고 세계를 순행함을 의미한다(히1:14).
그림 : 성막 안의 성물들을 복원해 놓은 모습 : 좌로부터 분향단, 일곱 가지로 된 금등대, 그리고 떡상이 다.
진설병(떡을 차려 놓는)상은 법궤와 같은 재료로 신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상 위에 놓는 떡은 좋은 밀가루로 만들었고,전혀 누룩을 쓰지 않는다. 반면 기름과 소금을 넣고 향도 넣었는데 그 떡은 불에 굽든지 삶게 되어 있다(렘24:7,민7:14).이스라엘의 지파를 따라서 12개의 떡을 그 상 위에 놓되 매 안식일에 새 것으로 놓았고, 제사장 만이 먹을 수 있었다. 이 떡은 예수 그리스도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이 택한 양들에게 주어지는 새롭고 신령한 생명의 떡이다. 제사장된 성도들의 영혼의 양육자로서 매 성한 생명의 떡이다. 제사장된 성도들의 영혼의 양육자로서 매 성일마다 새 영의 양식으로 공급하여 주신다(벧전 2:9,계1:6,요6:33-58)49).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다른 이들이 다 물러가고 자기만 남았을 때 예수님께서 "너도 가려느냐?"할때 "영생의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영생의 말씀의 떡이 있다. 그 떡은 독소가 없는 신령하고, 순수한 생명의 참 떡이요,기름은 성령의 충만이다(슥 4:3).꿀같이 꿀송이 보다 더 맛있는 신령한 말씀의 떡이다. 소금은 맛을 내고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치않는 진리요 영의 만나이다.
이것은 순금으로 만들었고 일곱가지가 있다. 이 촛대는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업이다(요1:4-593:19-21,12:35-36,엡5:814).기름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주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함과 같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의 빛을 죄악 세상과 인간의 영혼에 비취일 뿐 아니라 진리와 천국의 영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시여 빛을 빛임과 같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멸망의 자리로 향하는 인간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취일 뿐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축복받는 길을 비취이는 안내자이다(마5:14,요8:129:55:16). 스가랴서 4장 2절에 의하면 순금 등대 좌우에 두 감람나무가 서서 그 등대에 기름을 공급하여 주어 불이 힘있게 타게 했다 이것은 곧 주의 몸된 교회가 성도들에게 은혜의 기름을 공급하여 주어서 성도로 하여금 세상에서 빛이 되게 하심이다(계1:11-20).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
6. 향단
향단에는 아침 저녁으로 불을 정리하고 켤때에 향을 사르게 되어 있다. 그런고로 이 향단은 등대(촛대)의 관계가 있다. 그 향단에 사르는 향의 재료는 고귀하고 순수하였다(출30:22-25).관유도 바치게 되어 있다. 향단은 기도와 제단이다. 기도와 제단은 두가지 면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여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와 제사이다. 로마서 8장 34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히7:25,요1서 2:1). 둘째는 성도들이 지상에 있는 성전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와 기도이다. 계시록 8장 3-5절에 "또 다른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료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고 보좌 앞 금단에 드려진다"고 했고 5장 8절에도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대접을 가졌으니,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했다. 시편 141편 2절에 '나의 기도가 주안에 분향함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제사가 된다." 고 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진실과 성심으로 제단에서 ㄱ드리는 기돈느 향단에서 분향함과 같다. 그 향단은 채로 꿰여 메는 것은 귀중하게 여기고 또 언제나 향단과 행동하는 것인데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삼상 12:23).
놋단은 조각목에 놋을 씌웠다. 놋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의미할 때가 있다(민21:9,요3:14).계시록 1장에 주님은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것"이였다. 이것은 주님의 공의의 심판이 행차를 의미한다. 또 그 놋단이 성소와 지성소 밖에 있었고,짐승을 희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골고다 형장에서 회생될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 그 단은 네 뿔이 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희생하신 대속을 의미한다(히9:11-14). 성소나 지성소에는 놋단에서 희생된 제물이나 그 피를 가지지 않고는 들어가지 못한다 즉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레17:11,히9:22).이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히9:14).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위지사경에서 장대 끝의 구리뱀을 바라본 것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히9;12).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귀중하고 우리의 자랑거리이다(갈9:14).
세수대야는 놋단과 성소 사이에 놓여 있었다. 대야는 역시 놋으로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담아 두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단과 성막 출입시에 반드시 손과 발을 씻고 출입하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뿐만 아니라 성도가 자신의 하물과 죄를 살피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은 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의 성민도 거룩하여야 한다."부정에서 떠나 정결하게 되어야"(사52:11)하고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또한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씻어야 한다"(행22:16).
이 거울은 물두멍이라고도 했다.그것은 (1)양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것이다(고전13:12). (2)진리의 말씀 거울에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약1:23). (3)성령의 감화와 그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이다.(요16: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