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즐거움을 누리는 신앙생활

열려라 에바다 2020. 4. 14. 08:19

즐거움을 누리는 신앙생활

로마서5:1-1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요즘 생활하기가 매우 어렵고 힘드시지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고 집안에만 있다 보니까 많이 답답하고 짜증도 나고 걱정도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사업도 잘 안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렵고 그래서 사람이 와도 걱정이고 안 와도 걱정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티비 방송에서 진행하는 내일은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엄청난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목요일 결승전이 펼쳐졌는데 원래 생방송 도중에 투표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773만에 육박하는 실시간 국민 문자투표를 집계할 수 없어서 결과를 다음 주로 연기하였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트롯이 대세라고 해도 트로트 경연대회에 770만 명이 참가하였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문자준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시청한 사람은 800만이 넘지 않았을까요?

제 판단이기는 하지만 요즘 생활에 별 즐거움이 없으니까 여기에 사람들이 더 몰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라기는 빠른 시일 내에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어 다시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시절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신앙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 편지중의 일부입니다.

이 본문에 보면 즐거워한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2절 하 반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고 했고

3절에서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했고

11절에서는,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했습니다.

이 모든 즐거움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성도들이 누리게 될 즐거움을 말합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이처럼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 편지의 수신자인 로마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환난이 언급되어 있지만 로마서 곳곳에서 환난과 고난이 언급된 것만 보아도 그들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즐거움을 외치면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기독교 신앙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상황을 뛰어넘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신앙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을 높이며 소리쳐 노래하고 온갖 악기를 동원하여 즐겁게 송축할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기뻐할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범사에,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였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심한 매를 맞고 차고에 채워 깊은 토굴에 갇혀 있는 것이 무슨 즐거운 일이라고 찬송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 어려운 상황을 뛰어넘어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도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를 섬기는 우리가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는 너무나 침체되고 어두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보통 이런 말씀을 듣게 되면 성경에 나오는 그런 사람들은 신앙이 좋으니까, 믿음이 좋으니까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내용이고 현실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단정하여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의 삶을 주시기 원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손해고 빈약한 삶을 살아가겠습니까?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엘케고르의 글 가운데 마차에 탄 부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마차를 타고 가는데 꽤 쌀쌀한 밤바람을 피하기 위해 불이 켜진 마차 안에 앉아서 길을 갑니다.

반면 마차를 모는 마부는 쌀쌀한 바깥바람을 쐬며 말을 몰고 있습니다.

마부는 비록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길을 가고 있지만 그 덕분에 밤하늘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부자는 차가운 바람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불이 켜진 마차 안에 있었기 때문에 하늘에 펼쳐진 아름다운 별들의 향연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철학자가 여기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부자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세상 영광의 불빛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눈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길을 가면서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잊어버리고 세상 불빛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손해 보는 인생이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고달픈 인생길을 살아갈 때 세상의 어떤 것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희미한 불빛 때문에 그 축복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 펼쳐져있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즐거움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으로 주어지는 구원의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지난주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구원은 믿음으로 값없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 자체가 놀라운 축복이고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애쓰고 노력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구원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니 저와 여러분이 과연 그 과정을 통과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할 때 먼저, 죄 사함의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함 받았습니다.

다윗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32: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 죄가, 드러나지 않은 내 죄가, 언젠가 드러난다고 할 때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것이 다 무너지고 깨트려진다고 할 때 얼마나 두렵고 창피하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죄의 삯을 내가 다 치러야 한다고 할 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모든 죄가 사해졌고 기억되지도 않고 죄 값을 치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의로운 자가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화평을 누리게 될 그 분이 다른 분이 아니라 만유의 주가 되시는, 만유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주관하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할 때 그 분과 화평하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고 은혜입니까?

그 하나님과 불화해서 누가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그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평을 누리고 그 하나님께 마음대로 나아가서 기도하고 은혜를 간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사랑으로 주어지는 삶의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에이브러험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하루는 우연히 한 젊은 흑인 여인이 경매에 붙여지는 노예시장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증오의 시선을 가지고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나를 얼마나 짓밟았느냐? 너희가 나를 짐승처럼 얼마나 학대했느냐?

그것도 부족해서 나를 이와 같이 굴욕적으로 대하고 있단 말이냐?"

그것을 바라보는 링컨의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경매에 입찰을 하고 최고의 액수로 그 여인을 낙찰 받게 되었습니다.

가시지 않은 분노로 그 여인이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나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나는 당신에게 자유를 주려고 합니다."

"내게 자유를 주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것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제야 그 여인이 경계의 눈을 좀 누그러뜨리면서 말했습니다.

"내게 정말로 자유를 주시겠다구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구요?"

링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의 눈에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링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당신이 가는 곳마다 당신을 따라다니겠습니다."

링컨이 그 여인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었을 때, 그녀는 링컨의 사랑에 탄복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노예로 마지못해서 억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사랑으로 기쁘고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가겠다고 선언을 할 것입니다.

그 여인의 인생은 링컨의 사랑으로 완전히 바꾸어졌고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되 여러분들이 아직 연약할 때에,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 여러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자신의 피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죄를 사하셨고 자유인이 되게 하셨고 의인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계시는데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으시다면 여러분이 즐겁지 않으시다면 그것은 분명 예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분이 계심을 확신하면서 마음껏 행복하시고 마음껏 즐거워하시고 마음껏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소망으로 주어지는 하늘의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2절 하 반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비결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는 것은 천국을 바라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것은 성도들의 놀라운 특권이며 소망이며 이 소망 때문에 우리는 즐거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즐거운 삶의 비결은 결코 무엇을 많이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바라보느냐 바라보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될 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한 것이 예수 믿은 것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 천국의 영광을 경험하고 누리면서 이 고백을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늘의 영광과 축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축복인 줄 믿습니다.

 

느헤미야는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8:10)

오늘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침울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이 시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의 구원과 여호와의 사랑과 여호와께서 주시는 소망으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힘을 얻으셔서 여러분의 인생길을 승리로 이끄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202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