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배 잘 드리십니까
이 자리에서 '온라인예배'와 '예배당예배'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 각 교회는 질병에 따른 지침에 의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가정이나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 이사야 1장에 나온 교회 마당만 밟은 예배자를 책망한 것과 말라기에서 가증한 일을 행한 이들의 봉헌물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 그처럼 주님은 형식적인 예배보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삶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다.
우리처럼 작은 교회는 여전히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만, 많은 교회들은 두 달 째 온라인예배로 드리고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며 되돌아가기를 소망하고 있으나,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기다림의 인내를 배우고 있다. 그런데 정부기관에서 예배당예배에 대한 주의가 지나쳐 간섭이 되고 감시체제처럼 변해가니, 일부 교회들이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죄송함과 자책감이 드는 동시에, 지침을 엄수해야하는 부담감 사이에서 영적으로 눌려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지인 사모님을 집으로 초대해 그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새벽기도 시간에 사모님을 향한 말씀 주시기를 주님께 구했다. 보통 때는 말씀을 구하면 잠잠히 기다리다 감동을 받는 편인데, 이번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분명하게 에베소서 4장 14절을 주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빨리 주셨기에 주님의 뜻이 있을 줄 알고 찾아봤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에베소서 4:14).
말씀을 보는 순간 사모님뿐만 아니라 지금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구절임을 알 수 있었다. 전 세계에 퍼진 암울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전에 겪지 못한 신앙생활의 낙심들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어린 아이의 신앙에서 성숙하기를 바라시는 주님.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 사람의 속임수, 간사한 유혹,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환경에 매달리다 보면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놓칠 경우가 있다. 뉴스를 지나치게 보거나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자 유튜브 방송에 매달리는 것을 자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보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씀과 기도로써 내 안을 채우기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정보에 자꾸 의존하다보면 경건의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과는 주님보다 세상의 현실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고 염려와 두려움이 자란다. 그것이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열 명의 정탐꾼은 너무나 현실적인 보고를 했다는 이유로 믿음이 없어 죽임을 당했다. 현실을 직시하되 하나님의 시각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 모든 배경에는 절대적인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의 허락 하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분을 믿는다면 요동하지 않고 이 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그분의 뜻을 구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주님과 더욱 밀접하게 지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일상이 예배가 되고, 그분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하는 하루를 보내리라.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이사야 26:3-4).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시편 112:7).
선한 말 꿀송이 |
'간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은 ‘드림’… 사익보다 공의를 세우는 크리스천 되고 싶다” (0) | 2020.08.06 |
---|---|
성령불 기도로 원망과 두려움 내려놓으니 기쁨의 문 열렸다 (0) | 2020.05.01 |
“하나님이 피워주신 부흥의 꽃… 가르쳐 지키게 하리라” (0) | 2020.04.15 |
[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0) | 2020.04.13 |
겁이 많아 불안·공포 속에 살다 최고 안전지대인 주님 품으로 (0) | 2020.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