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장 33~37절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빌라도의 대화가 서로 어긋나는 것을 봅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어긋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라도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및 예수님이 서로 속해 있는 세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두 세계는 어떻게 다릅니까?
첫째는 힘의 문제입니다. 로마가 대변하는 세계는 힘이 진리를 결정합니다. 로마의 정의는 힘입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의 세계는 진리가 힘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진리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초라하거나 유약해 보여도 진리를 가진 사람이 존경받고 그 권위를 인정받는 사회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진리가 지배하는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힘입니까, 진리입니까? 힘과 진리, 이 양자 사이에서 우리는 늘 갈등하고 있고 더 많은 경우에 힘을 숭상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곤 합니다. 힘이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하고 있고 또 힘이 진리를 결정한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면서 쉽게 진리를 포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 있게 로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렇게 자신 있게 고백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진실되게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오늘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가 로마임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가는 삶을 살겠다고 갈등하며 결단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는 목표의 문제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로마의 세계는 목적을 정복에 두고 있습니다. 소유에 둡니다. 따라서 확장에 그 삶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획득하면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세계는 목적을 평화에 두고 있습니다. 평화는 소유나 정복을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소유나 확장과 상관없이 자연과 인간과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예수님에게 속해 있다면 당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우리의 삶을 소유 혹은 정복과 획득에 두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 번째는 방법의 문제입니다. 무엇에 기준을 두고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로마의 세계는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가능하다고 믿는 세계입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의 세계는 목적과 방법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믿는 곳입니다. 목적이 방법으로부터 구분되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면 목적 이룸을 유보하거나 포기하기도 합니다.
로마 세계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경쟁을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사랑에 기초를 둡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에 속해 있다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사랑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속해 있습니까? 로마에 속한 삶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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