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6:33 |
| 김기성 목사 |
| 말씀의 숲 교회 네이버- 말씀의 숲 교회(서울) |
‘더하여 주시는 은혜’
(마6:33)
오늘 성전이전 감사예배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힘든 상황 속에서 저희들은 조심스럽게 감사하며 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정말 고생하셨고요. 저희들은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기도해서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어요. 그 지혜로운 사람은 특별히 ‘구별’을 잘한대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을 잘 구별할 줄 안데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먼저 할 일이라면, 중요한 일이구요. 귀한한 일이구요. 또 나중에 할 일은 먼저 할 일 보다, 중요성은 떨어지겠지만 그렇다고 안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하는 거겠지요.
예를 들어 오늘 할 일이 있잖아요.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구분을 잘 해서, 무엇을 먼저 할 것이고, 무엇을 나중 할 것인지를 알고, 순서를 정하겠지요. 그리고 중요하고 꼭 해야 할 것은 먼저하고, 그리고 점점 중요하지 않는 것들을 해 나가지요.
우리는 잘 알잖아요. 중고등학교때 시험공부하면 먼저 할 과목이 있고, 나중에 할 과목이 있지요. 그래서 공부 잘 하는 학생은 배점이 높은 국어. 영어. 수학이 중요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그 과목을 먼저 하지요. 그런데 어떤 아이는 배점이 그렇게 높지 않는, 국사나 사회 과학을 집중해서 해요. 쉽고 재밌다고 해요 그러면 아무리 국사나, 사회, 과학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도 국영수에서 점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지요.
여러분 우리 사람이 이 땅을 살 때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인생에서 먼저해야 할 일이 있구요. 나중 할 일이 있을거지요. 중요하고도 중한 문제이기에 분명 먼저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지혜로운 사람은 먼저 할 것을 먼저하고, 나중할 것은 나중에 하는 지혜가 있겠지요.
그러면 무엇을 먼저할까가 중요하지요? 그런데 믿는 사람은 무엇을 먼저 할까를 이미 알 고 있어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알아요. 교회만 다녀도 알아요. 문제는 머리로는 잘 아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 문제이지요.
그 이유는 왜 먼저 해야 할까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왜 먼저해야 할까가 정확하면 달라질 수 있어요. 여러분, 왜 먼저 해야 할까요? 그것은 ‘가치’예요. 가치를 다른 말로 하면 ‘보람’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무엇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하고, 보람되게 하는가? 그 ‘가치’를 알게 되면 달라져요. 그 가치를 알면 자연히 순서가 정해지지요.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일인지를 알게 되요.
그것은 어렵지 않아요.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 일을 할 때 그것인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생각해요. 그것이 바른 일인가 그것이 그른 일인가 옳고 그름을 판단해요.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그것이 옳은 일인가? 그것이 바른 일인가를 판단하고 옳음을 찾고, 의를 목표로 하고 거기에서 보람을 찾아요.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마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나에게 손해가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요?
옳은 일인가? 옳지 못한 일인가를 판단해서, 힘들어도 그것이 옳은 일이면 그 일을 해요. 그래서 손해를 봐요. 그런데도 그 손해 보는 데서도 보람을 찾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옳은 일을 했기 때문에 실패해도 그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 손해를 보더라도 그 손해의 대가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일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도, 그것이 옳지 아니하면 안 해요. 큰 이익이 되어도,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기에 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를 보는가를 먼저 따지다 보면, 이익이 되면 좋아하고, 손해를 보면 울화통이 터지는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울화통이 터지는 거지요. 더 나아가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이 불의해도, 옳지 않아도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하지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것이지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기준은 하나님이 되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이고, 의로운 일이라면 힘들어도 하고, 어려워도 해요, 그리고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옳은 일, 바른 일을 하나님 때문에 했기 때문에 귀중한 가치를 알게 되고 그 가운데에서 보람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나를 보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나를 보면서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요. 설사 그 일이 지금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이라면 그것을 하는 거지요. 왜냐하면 그의 판단 기준은 이익과 손해가 아니라, 옳고 그름에 있기 때문이지요. 옳고 그름에서 가치를 찾고, 보람을 찾는 거지요.
이번에 교회이전을 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그렇지만 사람이 무서웠어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만나는 분들의 속내가 너무 뻔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가만히 보면 크게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워져요. 옳고 그름, 의와 불의를 따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내가 손해 보는가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를 따지는 사람보다, 나에게 이익이냐, 손해이냐를 따지는 사람을 이번에 너무 많이 만났어요. 본인에게 손해이며 알짤 없어요. 조금이라도 본인에게 손해 면 참지 못하지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사실 우리에게 오는 이익과 손해를 가만히 따지고 보면, 먹는거구요. 마시는 거구요. 입는 거예요. 내가 손해 보는 일은, 결국은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는 거예요. 먹어야 하는데 먹지 못하고 손해 보기 때문이구요. 뭔가 더 잘 입어야 하는데 입지 못해서 오는 손해가 있기 때문에 분통이 터지구요. 사실 우리들의 이익과 손해는 더 가지고 싶고 더 누리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하세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세요. 그것이 너의 삶의 가치이고 보람이 아니다, 그것이 삶의 가치이고 보람이라면 참 서글프지 않니?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아요.
그러시면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알려 주세요. 너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이것이 나에게 이익인가 손해인가를 따지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가? 그른가? 를 따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지금 내가 당장 손해를 봐도, 옳고 그름에서 옳은 일을 먼저 하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들의 삶의 목표가 정해지면 거기에서 우리는 가치를 찾을 수 있고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냐 손해가 되냐를 따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가 옳고 그름을 찾는삶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삶의 기준이 되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이 ‘더하여 주시는 은혜’ 잖아요. 왜 더하여 주시는 은혜일까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치있고, 보람된 일을 하면 그 다음 것은 덤으로 따라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쉬운성경을 보면 아주 리얼하게 말하고 있어요.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내가 인생을 살아갈 때 이익과 손해를 찾아가면 주시는 은혜가 아니라, 먼저 내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해 살면, 우리가 죽어 천국의 삶을 살겠지만, 이 땅에서도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위를 구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에도 은혜를 주시고,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에도 하나님이 은혜를 더하여 주신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더하여 주시는 은혜를 다 받았으면 좋겠어요. 더하여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사시는 성도님들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예요. 이 약속을 너에게 줄테니 경험해 보라는 것이지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여러분, 우리가 새 성전으로 이사를 하고 공식적으로 오늘 우리는 첫 예배를 드립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와 그리고 그 전의 교회 건물이 재건축으로 헐리게 되어 이사하였지만, 우리가 새 성전으로 이사하는 모든 것은 나의 손해와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된 것이지요. 나에게 이익이과 손해인가를 먼저 따지고 나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과 그분의 계획을 먼저라 생각하고 그 삶을 먼저 하면, 그 다음것들은 더하여 주신다는 것이예요.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요. 그리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그렇게 살면 그 은혜를 주셔요.
저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정말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아니하고 옳고 그름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먼저 할 때, 누릴 수 있는 이 복을 다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분명 내가 얼마나 가졌냐를 가지고 이 땅을 떠나지 않아요.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는, 내가 어떤 가치를 사모하고, 어떤 존재로 살았는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 성전으로 이사 왔어요. 여기 주위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분들의 우선순위는 자기에게 이익이냐 손해냐를 따지고요.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고 그르냐를 따져요. 그러면 당연히 충돌이 일어나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분들에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이라면, 바른 일이라면 손해를 봐서라도 그들을 섬겨야 해요.
손해와 이익을 따지려고 하는 분들에게 손해와 이익으로 따지면 힘들어져요.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분들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보다 가치 있고 보다 보람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분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그분들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를 보여 주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정신이지요.
예를 들까요? 이번에 이사하면서 당근마켓에서 이 전자드럼을 샀어요. 원래 새거를 사면 100만원정도 되는데, 50만원에 구입을 했어요. 그런데 페달이 고장이 났어요. 가만히 보니 고장난 것을 판거지요. 저의 아들이 계속 연락을 해도 전화 수신거부를 하고 모든 sns를 차단 했어요. 새거를 구입하려면 20만원 정도 되지요. 50만원에 페달이 20만원 정도이면 비중이 크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이것을 알고 50만원에 판 분에게 면죄부를 줘야 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정중하게 제 전화번호로 문자를 넣었어요. 요지는 그거에요. 인생 사시다가 혹시 나쁜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혹시 내가 교회에 망가진 것 팔아서 이렇게 안 좋은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실 것 아니냐구. 그러지 말고 얼마의 수리비롤 보내셔서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라고, 그리고 맨 밑에 저희 교회 통장 번호를 알려 주었어요. 바로 수리비를 보내더라구요. 부담스러운 짐 내려놓았잖아요.
여러분, 나에게 손해와 이익이 되는냐를 따지는 믿지 않는 분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이 새로운 성전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가는 가치이고, 우리가 이 땅을 사는 존재 목적이 된다는 것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욕심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손해가 나도 좁은길이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고 바른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이루며 사시는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그렇게 살면 이 땅에서도 더하여 주시는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따라올 줄 믿습니다. 더하여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 때, 더하여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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