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기도로 승리하는 신앙생활(마6:5-10)

열려라 에바다 2021. 7. 17. 08:16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태복음6:5-10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대한 새로운 교훈입니다.
예전이나 오늘이나 기도는 경건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교제하는 구체적인 신앙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생각합니까?
평소에도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 기도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침에 기도할 때 지나간 밤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고 저녁에 기도할 때 하루 동안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식사기도 할 때 귀한 양식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좋은 음식을 준비해주는 사랑하는 아내를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은 기도를 통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할 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면서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게 됩니다.
앞길을 인도해달라고 하면서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할 때 그 교제도 기도를 통하여 가장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부탁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교제가 기도할 때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기도는 경건생활의 핵심 중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호흡입니다. 숨을 쉬는 것입니다.
호흡을 안 하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호흡이 힘들면 몸이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호흡이 이렇게 중요한 것처럼 기도도 그렇게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쉬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혼의 호흡인 기도하는 일이 힘들고 부담이 됩니까?
둘째 애 결혼을 하기 전에 사돈집과 상견례를 하는데 식사기도를 저에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목사님과 만날 때는 기도하는 부담을 벗어나게 됐다고 이야기합니다.
안수집사인 사돈은 기도하는 일이 많이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 있을 때마다 본인이 기도하면서 많은 부담이 되었는데 저하고 있을 때는 기도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이 분의 예가 아니더라도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주일날 대표기도 할 때 부담을 갖지 않는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기도하라고 하면 서로 미루면서 네가 하라고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기도가 영혼의 호흡같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성도들은 왜 기도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할까요?
물론 때에 맞게 적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겠습니다만
제일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 앞에서 기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도를 잘못하고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기도의 부담을 벗어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위해서는 사람들 앞에서 기도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책망 받았던 사람들의 문제도 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하지 않고 사람 앞에서 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주님은 외식하는 자와 같다고 하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절)
기도를 하는 것은 사실 어디서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전재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장소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다 아시고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이 되면 그 있던 장소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기도를 잘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11시 50분 정도에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큰길가로 가서 12시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그곳에서 기도하고 그래서 자신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기도를 하나님께 하지 않고 사람에게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잘못을 범했다고 하면 이방인들은 중언부언하는 잘못된 기도를 했습니다.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우리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 다 기도의 요소가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다 기도를 했는데 그들의 문제는 기도를 오래 해야 들으신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유대인들이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시면서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올바른 기도는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께 하는 기도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기도야 당연히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그럼 누구에게 합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기도를 하나님께 하지 않고 사람에게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유대인들은 아침저녁의 기도와 함께 하루에 세 번 오전9시 12시 오후 3시에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기도시간에 맞추어 사람이 많이 모이는 회당이나 큰 거리로 나가서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집에서 기도할 수 있는데 굳이 그 시간에 나간 이유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기도를 열심히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이런 기도를 외식하는 기도라고 하셨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라고 하셨고 이런 기도에는 상급이 없다 즉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오늘 우리들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를 할 때가 많습니다.
목회자들이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도할 내용도 없는데 성도들이 다 갈 때까지 앉아서 조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형식을 빌어서 사람들을 훈계하고 설교하는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했는데 내용을 보면 사람들 들으라고 하는 설교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기도의 형식을 빌어 설교식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본다고 기도하지 않는 것도 사실은 사람 앞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 앞에 하는 기도는 절대 올바른 기도가 아니고 응답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대표기도하실 때 미리 써서 준비해서 기도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준비하실 때 꼭 내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인지 사람 들으라고 기도하는 것인지를 잘 생각하시고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지도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도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생각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중보하며 기도합니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고 사람 앞에 하게 될 때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둘째는, 은밀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6절 말씀에서 주님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골방기도라고도 하는데 골방기도는 정말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고 은밀하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가운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것이 골방기도이고 은밀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밤늦게 까지 환자들을 고치시고 늦게 잠자리에 드셨을 때에도, 정말 피곤하셨을 때도 새벽 아직도 날이 밝기 전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골방은 한적한 곳이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겟세마네 동산의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동안 한적한 곳을 찾아서 골방기도를 하셨고 은밀히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예수님의 공생애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한 것이 바로 이 골방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기도의 골방이 있습니까?

세 친구 수도승이 각자가 좋아 하는 일들을 한 가지씩 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한 친구는 갈등하고 반목하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기로 하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또 다른 친구는 병자들을 고치고 돌보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 역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둘이 고민에 싸여 광야에 가서 조용히 살겠다고 했던 친구를 찾았을 때 그는 평안한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두 친구는 자신들이 겪은 일과 현재의 고민을 말하면서 해결책을 부탁했을 때,
그는 “사람들 가운데 머무는 이는 불안과 혼란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네.
그러나 기도의 골방을 지키며 사막에 거한다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될 것일세.”합니다.
이 두 친구가 이렇게 탈진이 된 까닭은 홀로 있는 시간, 하나님과 은밀하게 교제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홀로 있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꼭 필요합니다.
이 시간이 없으면 우리도 신앙적으로 탈진이 되고 영혼이 고갈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컴퓨터를 하는 방은 있고 운동하는 방은 있고 공부하는 방은 있어도 기도하는 골방이 없습니다.
핸드폰을 만지고 뉴스를 검색하고 게임을 즐기는 손은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손은 없습니다.
세상일에 시간과 관심을 다 빼앗겨버리고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고 기도에 관심을 갖는 일이 점점 없어져갑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세상사는 지혜는 늘어갈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우리의 심령은 점점 피폐해져가고 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골방을 준비하여 은밀한 기도를 주님께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새벽기도가 되었던 자신이 정한 기도시간이 되었던 은밀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여러분의 영혼은 더욱 건강하고 축복받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는, 주님의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입니다.

7절에서 주님은 이방인들과 같은 기도를 경계하시면서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중언부언은 말을 많이 하는 기도인데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응답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해서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설득해야 응답한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에게는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하고 간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무엇을 구할 때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첨을 하여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필요하다고 사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사줍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사주고 적게 한다고 안 사주는 그런 아버지는 없습니다.
주님은 앞 못 보는 사람을 향하여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간결하게 ‘보기를 원합니다.’ 대답합니다.
이 핵심적인 말 한마디로 그는 눈을 뜨게 되었고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데 왜 의심을 합니까? 의심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구하기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라고 한다면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할까요?
그냥 알아서 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구할 때 주신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고
구약 예레미야서에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알아서 주시겠거니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기도 없이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오해를 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학과 기술문명의 발달은 이런 착각을 낳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 된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위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자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은밀하게 기도하시고 응답의 확신을 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2021.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