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제사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장 1-11절)

열려라 에바다 2021. 9. 1. 08:02

 

주일설교. 제사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장 1-11절)김민호 목사


9월의 암송 말씀은 본문 6절 말씀입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기억하시면서한 달 동안 잘 암송하시기를 바랍니다. 1절의 말씀도 한 번 지난 번에 한 번 암송한 구절이라 익숙하실 겁니다. 8백여년 전에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변함없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세계의 모든 인류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국가, 사회, 종교, 개인들은,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2억명이나 감염이 되었고, 4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치료 중에, 백신 접종 부작용으로 인해, 계속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건강했던 분들이 하루 아침에 사망했다는 사례가 기사화 될 때마다, 언제라도 나쁜 상황이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오래 전 호세아 선지자가 남긴 성경의 말씀은, 우리의 현재 상황을 올바르게 직시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아주 적합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여호와)께서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리시는 징계(징벌)이 있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운동과 신앙갱신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내용이, 민족의 큰 위기나 극심한 고난이 있을 때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성회로 모여서 함께 부르던 노래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당시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대로, 경제적으로는 최대의 부유함을 누리던 국가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비해서, 종교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되돌릴 수 없을만큼 심각한 부패와 타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얼마 안가서 나라가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때에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는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 할 지라도 개인의 구원을 도모하는 신앙행위를 절대 포기 하지 말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호세아가 제시하는 신앙 각성운동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과 시련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가 반드시 전제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원칙이자 신앙의 기초요, 회복의 첫 걸음 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 질병의 고통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너무나도 뚜렸합니다. 내 마음과, 시선과, 몸과, 정신과, 생각과 행동과 말과 자세와 태도의 일체를 하나님께 맞추는데 집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를 부르며, 내 불신과, 불의와, 거짓과, 위선과, 가증과, 게으름과 교만함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지금 이 고통의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가장 크게 부르짖는 기도의 제목은 코로나의 조기 종식일 겁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코로나의 고통에서 속히 벗어나게 해 주옵소서, 코로나가 속히 물러가서 대면예배가 속히 회복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가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 제목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맞다고만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어려운 시국을 전체적인 총론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이 기도가 제목이 맞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는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코로나가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예배와 일상이 회복 되기를 원한다면, 이 땅의 모든 인류 중에, 먼저 믿음과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은 열방의 모든 교회들이, 한국교회가, 그리고 내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철저하게 무뤂꿇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았을 뿐, 몸과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짓되고 가증스러운 마음을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성도가 성도로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지탄 받고, 걱정꺼리가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런 무릎꿇는 철저한 회개를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는 것조차 너무나 죄송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준비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목사라는 신분의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하나님께 혼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하는 대상이라는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시대의 목사들의 모습은,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권위와 방종에 사로잡혀, 높은 자리에 앉아 대접받기를 즐겨하며,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는 것에 너무나도 게으름을 피우고, 도무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누구에게 가르치기 이전에, 가장먼저 이 땅의 목회자들이 정말 피 눈물 나도록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지목받은 첫 번째 회개의 대상임을 절감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여호와께로 돌아가십시오, 회개 하십시오 라고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먼저 그렇게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제가 먼저 할테니, 여러분들도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는 언젠가 백신과 치료제가 잘 갖추어지면, 진정되는 날이 오겠지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끝나지 않으면, 그것이 끝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코로나의 고통이 장기화되고 삶이 많이 힘들어 진다고 하여도,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 빨리 이루어진다면, 코로나와 상관 없이 우리는 자유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코로나의 회복이 아니라, 신앙의 회복이 시급한 시대입니다. 그 각성의 시간속에 살고 있음을 믿는 자들이 앞장서서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코로나가 빨리 끝나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가 왜 우선 순위가 아닌지 이제는 이해가 되십니까? 수술 받아야 하는 긴급 환자보고 그냥 진찰만 받고 퇴원하라고 하면, 순순히 퇴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수술하고, 입원하고, 잘 치료 받아서 병이 다 낫게 되어야 퇴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호세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께로 돌아가지 않는 중증의 병에 걸려서 상태가 심각한 지경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신앙의 질병들이 가득합니다.
  ①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불순종과 무관심의 질병,
  ② 양심에 화인 맞은 것 같은 무책임하고 오만한 언행들의 질병,
  ③ 가식과 위선으로 포장되어 자존심과 체면을 내세우는 보여 주기식 거짓 신앙의 질병,
  ④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고 세상의 즐길거리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시간을 허비하는 질병,

이러한 질병들이 몸과 마음에 가득차 있는데도 보지도 못하고, 치료 받기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려분 각자가 한 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영의 눈이 열려서 질병들이 보이게 해 달라고 기도 해 보십시오. 보여 주실 겁니다. 보셨다면,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서 이러한 신앙의 질병들은 절대 고쳐지지 않고, 내 영혼을 점점 죽어가게 만든다는 심각성을 깊이 깨닫게 되실 겁니다..

우리에게 코로나와 같은 질병의 고통의 시간을 주신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 속에서, 내 자신과 하님과의 관계가 어떠 한지,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의 거리가 얼마나 떨여져 있는지, 내가 정말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돌이키고, 다시 방향을 잡으라는 기회의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고통의 시간속에 있지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다시 회개 할 수 있는 기회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회개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잊지 말아냐 합니다. 회개는 단순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행해지는 일시적인 고백의 행위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는 2절의 말씀과 같이, 회개를 한 사람은 반드시 후속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또 다시 반복하여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주님 앞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늘 보이는 거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주님과 항상 동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또한 회개는 일시적인 눈물을 흘림과 통곡하는 고백이 있었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3절의 말씀처럼, 매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하고, 사랑해 가는 과정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무슨 상황에서든지 새벽 빛과 같이, 늦은 비와 같이 어김없이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회개를 통한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고자는 마음으로, 진실로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열심을 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받는 될 은혜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은혜와 복을 가장 많이 받고, 누리시면서, 평안과 건강속에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 위에 성경책에 달아 놓은 제목을 보면, “백성들의 불성실한 회개”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호화게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여호와를 힘써 아는 것도 거부하고, 회개하는 것도 다 거부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가장 함축적인 한 마디의 권면을 선포 했습니다.

이달의 암송 말씀이기도 한 6절 말씀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아멘. 표준새번역으로읽어 드립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아멘. 표준새번역이 더 느낌이 강합니다.

이 한구절에,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가고,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은혜의 말씀이 아니고, 정신 바짝 차리도록 혼내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엄마에게 매서운 회초리를 맞는 느낌처럼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반응이 있어야 있어야 합니다. 그저 무감각하게,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 다면, 그 만큼 우리의 신앙의 상태가 얼마나 최 저점을 찍고 있는지 나태내는 징표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5절에서, 너희 유다(남 이스라엘)와 에브라임(북 이스라엘)이 나(하나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안개와 이슬 같이 작고 연약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메마른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 채, 그저, “하나님 사랑합니다. 정말로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라는 말만 앵무새 같이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탄식하며 말씀 하십니다. “유다(남 이스라엘)야, 에브라임(북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어찌하면 좋겠니?, 어찌하면 좋겠니?” 이런 하나님의 탄식의 소리가 바로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이 땅의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마음과 양심 위에 탄식의 말씀으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한 줌도 안 되는 메마른 사랑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7절에서, 아담처럼 하나님을 배반 했다고 했습니다. 8절에서, 길르앗 이라는 동네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폭력배들)이 집단 살인을 저지르고, 9절에서는, 제사장들 조차 떼지어 다니며 사람을 죽였고, 10절에서는 전국(유다, 에브라임) 각지에서 가증한 일, 곧 우상숭배와 음행이 극에 달했고, 11절은 사로잠힘(멸망)을 돌이킬 때(회개한다고 하여도), 추수할 때(심판과 징계)는 이미 정해 졌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이런 온갖 범죄 행위들을 일삼았으니,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눈뜨고 보기 어려운 이런 행위들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징계는 피할 수 없겠지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을 힘써 알아갈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부여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서의 신분까지는 박탈하지 않으시겠다는 자비와 은혜를 선포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9월의 암송 말씀을 외우실 때마다, 여러분들이 혹시라도 숨기고 있는 부끄럽고 가증한 신앙 행위들이 하나님 앞에 낱낱이 드러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인해 제대로 정신 바짝 차리고, 진실로 회개하는 가운데,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용서함과 기회를 받으시고,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더욱 힘써 알아가는데 다시 방향과 초점을 맞추시는 계기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순종하면 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와 화가 있다는 것은 그냥 써 놓은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정말 끝까지 말 안 듣고 고집 부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러합니다. 가장 심각한 순서대로 말씀 드립니다. 들으시면서 내 자신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①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이가 멀어져 있는지 전혀 깨닫지(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수 많은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죄와 진노가 무수히 쌓여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불신앙을 초과한 신앙 불능 상태)

   ② “하루 빨리 하나님과의 온전한 화목을 이루어 가라”, “즉시 회개하고 용서함을 구하고 나쁜 길에서 돌이켜라” 라는 권면의 말씀이 끊임없이 귀에 들리고, 양심을 두드리고 있지만, 못 들은 척 하고, 애써 무시하고, 나는 해당이 없는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람. (불순종이 고착화된 신앙 역행 상태)

   ③ 표면적으로는 신앙적인 행위들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불의한 행동과 불손한 언행을 일삼으며, 자기 자랑, 자기 신분, 자기 체면,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사람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바리새인적인 신앙 상태)

   ④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여리고 나약한 신앙인데, 자기 자신은 다 큰 성인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더 이상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가는 것을 중단한 채, 모든 면(예배, 기도, 말씀, 찬양, 감사)에서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참 평안과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가지 못하는 미성숙 신앙 상태)

이 네가지의 신앙의 모습속에는 우리 각자의 신앙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할 뿐이지, 양심이 화인 맞지 않은 이상, 내 자신의 신앙이 점점 심각해 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제 자신부터, 제가 얼마나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에 무뎌진채 살아가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 당하는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창피한 것은 괜찮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얼굴 붉히고 망신 당하는굴욕적인 모습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너무나도 좋은 일입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있는, 우리의 신앙 불능, 신앙 역행, 비래새인적인 위선과 가식, 미성숙한 신앙들이, 하나님 앞에 낱낱이 다 드러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됩니다.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사람은 더 고통 받고, 더 망하는 시간을 허비 한 후에 슬피울며 통곡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애야 네가 너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000 목사야, 네가 너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너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자녀이다. 어서 속히 네게로 돌아오거라!”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음성으로 이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평안의 품속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조금 오래된 70년대에 나온 가요 중에, ‘전영’ 이라는 가수가 부른 “어디쯤 가고 있을까” 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 노래의 가사 일부분이 이렇습니다.
『떠나간 그 사람은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 그렇게 쉽사리 떠날 줄은 떠날 줄 몰랐는데 / 한마디 말없이 말도 없이 보내긴 싫었는데 /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비록 대중가요의 가사이기는 하지만, 글귀만을 음미해 본다면, 오늘 본문에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나에게로 돌아오라, 나를 힘써 알아가라, 제사와 번제보다 나를 아는 것을 원하노라” 말씀 하시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애뜻함이 느껴집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마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신실한 마음이라는 것에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곁을 점점 떠나가는 자녀들을 제일 안타까워 하시고 하루 빨리 하나님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코로나 질병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이 질병이 속히 끝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마음이 떠나고, 회개하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알아가기를 거부하고 세상에 휘둘려 지내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고 계심을 똑똑하게 알았습니다. 우리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마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의 바로 옆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곧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더 기도하고, 더 돌이키고, 더 알아가고, 더 사랑하는데 온 힘을 다하여 참 평안과 참 소망속에 살아가시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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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입술로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최선의 열심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