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십자가를 흠모한 윤동주 시인

열려라 에바다 2022. 7. 29. 13:11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크리스천 윤동주를 말한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워했던 윤동주 시인의 60주년 추모 예배가 오는 16일 호주 한인회관에서 열린다. 수요예배와 맞춰 드려지는 이번 예배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윤동주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크리스천이 전체 인구의 1%도 안돼는 일본에서 이미 몇 해전 '크리스천 윤동주'라는 제목으로 시집이 나온 것에 반해 국내에서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윤동주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미비한 편이다. 본지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윤동주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그의 친동생 윤혜원 권사 가정을 방문했다


겸손과 섬김으로 한 생애를 마감한 사나이

1945년 2월 16일. 예수 그리스도의 핏빛 삶을 흠모했던 청년 윤동주는 평생을 기다린 조국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가 소낙비 그친 뒤같이 그친 것이다('삶과 죽음' 中).

그가 숨을 거두고도 3년 여가 지나도록 세상은 '윤동주'라는 시인을 알지 못했다. 그의 동생 윤혜원 권사는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어 "오빠 방에 들어가면 서랍장에 노트 두어 권이 항상 꽂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며 "그것이 후대에 길이 남을 시가 기록된 노트 였다는 것은 그가 세상을 뜬 후에서야 알게 됐다"고 한다.

조용한 성격의 윤동주는 당시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동경 유학생이었음에도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나서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시에서 강조되는 '참회'와 '겸손'의 태도는 그의 삶 자체였던 것이다.

"겸손한 성품은 뭐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짧은 생애를 통해 써내려간 그의 시들은 자신의 고백처럼 쉽게 쓰여진 것이든 그렇지 않든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아픔을 잘 나타낸다. 윤동주는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치부를 포장이나 가감없이 정직하게 드러냈기에 반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대에 앓고 있는 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어떤 이들은 아픈 시대를 꾸역 꾸역 살아가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고백하는 그를 '유약한 지식인', '여성스러운 취향의 시인'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도를 아는 이들은 자신의 약함을 가감없이 고백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강함임을 알고 있다.


무명(無名)한 선교사 윤동주

오형범 장로(82, 윤동주의 매제)는 약함을 고백하는 시인 윤동주야 말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참 선교사라고 말한다. 그의 시가 한국인이 가장 애송하는 시에 지목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윤동주는 다양한 계층의 독자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오 장로는 이렇듯 윤동주의 시가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하나님, 예수님 등의 시어를 노골적으로 쓰지 않고 그의 삶으로 실천한 그리스도의 섬김과 겸손, 하나님의 사랑이 시어 하나 하나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을 꼽는다.

"시를 읽으면 아시겠지만 윤동주의 시에서 예술가로서의 자고한 태도를 찾아 보기 힘듭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겸손한 체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에 묻어나는 거죠"

우리는 종종 윤동주가 그의 시에서 아픈 시대를 거슬러 살지 못하는 자신을 뒤돌아 보며 한탄하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윤동주는 자신에 대한 평가의 잣대를 주관적인 것에 두지 않았다. '하늘'로 상징되는 창조주의 뜻,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 놓은 '그리스도'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본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작이 서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그가 의도한 '하늘'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창조주의 관점'인지 '단순한 하늘'인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이는 없다.

다만 오 장로는 몇 해 전 일본에서 발간된 시집 '크리스천 윤동주'를 통해 보다 더 시인의 삶에 근접한 해석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는 "보통의 일본인들이 하늘을 'SKY'에 해당하는 '소라(空)'라고 번역하는데 반해 놀랍게도 이 시집에서는 HEAVEN에 해당하는 하늘 '천(天)'으로 해석했다. 시인이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인 '하늘을 우러러'를 그대로 차용했다고 가정할 때 이와 같은 해석은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하늘을 경외하는 삶의 자취

실제로 윤동주의 시에서 보이는 시적 상상력은 다른 시인들의 작품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색채를 갖는다. 문학 평론가들은 '하늘을 우러러', '꽃처럼 피어나는 피'와 같은 시인의 시상에 찬사를 보낸다.

이에 대해 오 장로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에서 나고 자라 주일 학교 교사, 여름 성경 학교 교사로 신앙생활을 한 윤동주에게 이러한 시상들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우선 가장 많이 알려진 표현인 '하늘을 우러러'는 예수께서 '에바다'라고 외치며 귀먹고 어눌한 자를 치유하시는 장면(마가복음 7:34),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막 6:41),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장면(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요한복음 17:1), 사도행전(또한 스데반 사도가 돌에 맞아 죽기 전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7:55) 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그의 바람처럼 어두워가는 역사의 뒤안길에 십자가와 함께 스러져간 시인의 추모 행사가 다음 주 시드니 땅에서 열린다. 그의 생명을 앗아간 일본에서는 동경, 교토, 후쿠오카 총 세 지역에서 윤동주 추모식을 갖는다고 벌써부터 떠들썩하다.

그리고 그의 짧은 생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로 남은 '십자가'의 의미를 기독교의 불모지라 불리는 일본 땅에서 앞서 연구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제국의 침략으로 빼앗겼던 역사의 한 귀퉁이를 망각이라는 함정에 걸려 다시 한 번 잃어버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신교와 구교의 담을 허무는 도구로 쓰임받길

오 장로를 포함한 윤동주의 유가족들은 넘쳐나는 윤동주 관련 연구 중에 정작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없어 아쉽다고 한다. 이들 가족의 기다림에 대한 응답이었는지 작년 서울 동성고등학교에서 재직 중인 홍정학 선생님으로부터 10여 년간 윤동주의 작품세계와 신앙세계를 연구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에 재직하는 분이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었던 윤동주를 연구한다고 하는 것이 더욱 기쁘다"고 한다.

이들 가정의 소원이 통일을 앞당기는데 윤동주의 시가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라는 통일은 정치적인 통일 뿐만 아니라 종교 간의 통일도 포함한다.

"아무리 경계를 긋고 서로 담을 쌓아도 결국은 다 하나님의 자녀들 아니겠어요? 근본이 한 몸인데 인위적으로 갈라나 봐야 결국 자기 몸에 생채기만 내는 짓이죠"
윤동주와 그의 일가족이 떠나온 '북간도' 땅. 지금은 연변자치구로 불리며 자유로운 왕래도 가능하지만 불과 20년 전 만해도 대한민국 국민이 접근할 수 없던 땅이었다. 오 장로는 이러한 경계와 구분이 다 무의미 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통일

그는 일본 동지사 대학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 관련한 일화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윤동주가 다녔던 일본 동지사 대학 얘기에서 나는 통일의 희망을 봤다. 조총련계와 민단계가 나뉘어 서로 얼굴도 마주보길 꺼려했는데 교정에 윤동주 '시비'를 세우는 일을 계기로 화해를 하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북간도 땅에서 났으니 '북조선이 낳은 세계적 시인'이라고 써야 한다, 아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시인'이라고 써야 한다 하면서 옥신각신 했는데 오우무라 마스오 교수(당시 와세대 대학)의 제안으로 'KOREA가 낳은 세계적 시인'이라고 새기는 것으로 일단락이 됐다고 한다.

그 후 우리 부부가 동지사 대학에 방문 했을 때 조총련계와 민단계가 함께 모여 우리에게 하는 얘기가 우리가 예전에 서로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었는데 윤동주 시인으로 인해 우리 안에 이미 통일이 한 걸음 다가왔다고 하는 것이다

오 장로는 "윤동주의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만으로도 원수 같았던 이들이 화해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이들 안에 대화가 단절되고 담이 쌓여 있다면 이것은 분명 어딘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얻고자하면 대화해야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윤동주의 자취를 알기 위해 윤권사와 오장로 부부를 수소문 끝에 방문했다고 한다. 지금은 윤권사와 오장로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외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편이다. 이 날 인터뷰는 윤권사가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이후 오장로의 승낙으로 성사됐다.

오 장로는 심사숙고 끝에 인터뷰에 응하게 된데 대해 "윤동주의 시와 신앙이 신교와 구교간의 대화를 여는 접촉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추모예배 때 '윤동주와 기독교'에 관한 강연을 하기 위해 15일 경 도착할 홍정학 선생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며 "하나님께서 윤동주를 통해 또 귀한 친구를 허락하시는 것 같다"고 기뻐했다.

그는 "되도록이면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이날 추모예배에 참석, 같은 가톨릭인인 홍씨의 강연을 통해 윤동주의 시와 신앙 세계를 접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본인 역시 장로교 소속 교단의 장로이면서 홍씨와 그 외 이름모를 가톨릭 신자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오 장로의 모습은 이 시대 크리스천들이 망각하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윤동주 시인 60주년 추모 예배는 오는 16일 호주 한인회관에서 수요예배 시간에 드려진다.


신유정 (크리스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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