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느니라 (고전 13장 1-13절)

열려라 에바다 2022. 8. 1. 11:37

주일설교.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느니라 (고전 13장 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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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총 66권, 1,189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189장 중에서 집중적으로 어떤 하나의 주제를 다루면서 쓰여진 장들이 있는데, 이런 장들에 대해서는 별칭을 붙여서 기억하시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창세기 1장은 ‘창조장’, 3장은 ‘타락장’ 7장은 ‘홍수장’, 출애굽기 20장은 ‘십계명장’, 열왕기상 8장은 ‘성전봉헌장’, 이사야 53장은 ‘메시아 수난장’, 말라기 4장은 ‘십일조장’ 등으로 부릅니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5장을 ‘팔복장’,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은 ‘주기도문장’,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장’, 로마서 8장은 ‘황금장’, 고린도 전서 11장을 ‘성만찬장’, 고린도 전서 12장을 ‘은사장’,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장’, 고린도 전서 15장은 ‘부활장’, 데살로니가 전서 4장은 ‘재림장’,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장들은 외워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접해서 자동적으로 떠오를 정도로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여러 장들 중에서 고린도 전서에는 성만찬장, 사랑장, 은사장, 부활장이 들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실 생활과 가장 밀접한 책이 아마도 신약에서는 고린도전전서와 후서일 겁니다.


자 오늘 말씀은 특별하게 이름 붙여진 장 중에서,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 나오는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장’의 내용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3절을 읽어 드립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씀은 하나님 본체의 속성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과 행위에는 사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랑하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오래 참으시고, 사랑하셔서 용서하시고, 사랑하셔서 예수님 보내셨고, 사랑하셔서 죄에서 돌이켜 구원 받을 기회를 끊임 없이 주시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기독교도 존재하지 않고, 사랑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고, 사랑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면서, 모든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세상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며 살아가야 하는 품성 역시 사랑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지식을 자랑하고, 은사를 자랑하고, 분파를 만들어 서로 주도권(헤게모니)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은사장)에서 모든 은사는 사모하고 풍성하게 받되, 결코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은사를 받았으면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만 사용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1~3절은, 고린도 교회 내에 방언의 은사를 질서 없이 사용하는 것에 대한 권면을 하는 내용입니다. 무질서를 정리하는 핵심 단어가 곧 ‘사랑’이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뒤로 하고,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면 그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말 그대로, 사랑이 없으면 방언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방언 뿐만 아니라, 어떤 은사, 어떤 지식, 어떤 능력이라고 할 지라도 사랑이 없는 행위들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시끄러운 소음일 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도 전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을 특별하게 강조한 것은, 모든 일에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앞세워서, 하나님이 뜻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을 추구 하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이렇게 사랑을 앞세워 행동하는 것이 덕을 세우고 칭찬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언, 지식, 믿음, 구제,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라고 단언 합니다. 이 모든 사랑은 하나님이 아들을 대가 없이 내어 주신 그 지고지순한 사랑에 근거합니다.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의 사랑 정신을 이어 받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반드시 사랑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사랑의 향기를 만방에 퍼트리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유독 사랑을 앞세웠을까요? 사람들이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의 정신이 약해지면서 점점 자기 의와 뜻을 사랑(하나님)보다 앞세우려고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못된 습성은 잊을만 하면 떠오르고, 잊을만 하면 점점 강해져서 나타납니다.


고린도 교회도 처음 사랑을 점점 잃어버리고, 사랑 대신에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은사들을 내세우다 보니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무질서와 혼동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질,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사랑을 앞세운 것입니다. 기독교는 본질과 기본이 흔들리면 존립 자체가 부정당하게 됩니다. 종교개혁도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도신경 같은 신조(믿음의 고백)들이 왜 생겨난지 아십니까? 사도신경 이외에, 웨스트민스터 신조, 도르트문트 신조, 장로교 신조 등 수 많은 신조들이 기독교 역사 중에 생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조들은, 이단들, 비진리, 그리고 본질에서 벗어난 심각한 도전에 대항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사랑을 부정하고, 인본 주의적인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를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신조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장을 기록한 것은 바로 본질,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회복운동의 외침이었습니다. 그 핵심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정신으로 무장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사랑이 회복되고, 교회 공동체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신조를 만들어 교회 공동체를 방어했듯이, 사도 바울은 사랑의 열기를 불어넣어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자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말씀이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사랑이 없이는 아무 것도 우리를 유익하지 못하게 하며 아무리 열심을 낸다하여도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말씀도 꼭 기억해야 합니다.


00교회는 기본에 충실한 신앙을 추구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사랑의 본질을 잃지 않는 신앙을 붙잡으셔야 합니다. 수시로 내 안에 사랑의 채워짐이 충분한가, 사랑의 온도가 뜨거운가를 확인하셔서, 모든 것을 함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모든 사람에에 유익함을 전해주시는 사랑의 전파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서 사랑의 찬가로 불리는 4~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한 구절 한 구절 점점 고조 되는 감정으로 끌어올려지다가, 7절을 읽을 때면 “모든 것”이라는 부분에 액센트(강조)가 주어지며 읽어 집니다. 이번 에는 “모든 것”이라는 부분에 힘이 들어가는 것 뿐만 아니라 장단을 맞처서 오른 손으로 책상을 두들기면서 읽었습니다.


참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쓸데없는 지저분한 것들이 쓸려 내려 가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 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흥이 나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폭발할 것 같은 벅찬 기분과 감정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제 전화기ㅏ에 저장된 친구들의 카톡 프로필을 보면, 7절 구절만 떼어서 프사(프로필사진)로 올려 놓으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사랑의 힘이 주어지면 7절과 같은 엄청난 능력의 삶을 충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도 7절의 모든 것에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모든 것이 ‘all things’(K.J.V)이라는 단어와, ‘always’(N.I.V) 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 이든, 항상 이든 나름대로 사랑과 잘 매치되어서 느낌이 잘 전달이 됩니다.


7절의 모든 것이 나오기 전에 4~6절까지에는 사랑의 특징이 11가지나 나옵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다면 이러한 사랑의 특징들이 분출되어져 나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11가지 모든 특징이 모든 사람에게, 모두 다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상황과 시점에서 변함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특징들 앞에 모든 사람, 모든 상황, 모든 시간이라는 전제가 붙으면 해당되지 못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찬가라고 불리는 이 문장 속의 사랑의 특징들은 그냥 사랑의 기대치가 이런 종류들로 발산 될 수 있다는 정도의 소개로 끝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반드시 이 사랑의 특징들이 모든 사람, 모든 상황, 모든 시간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사랑이라는 단어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넣어서 차분하게 다시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예수님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 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성령님은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 하십니다” 아멘이 저절로 나옵니다.


사랑의 특징들이 제대로 나타나고, 실력이 발휘 되려면 반드시 삼위일체 하나님과 나 자신이 사랑의 연합을 이루는 관계 설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 주는 것이 요한 일서 4장입니다. 요한일서 4장 7~21절은 마치 사랑의 찬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서와도 같습니다. 몇 구절을 읽어 드립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요한 일서 4장 말씀을 읽기만 해도 사랑의 찬가가 저절로 해석이 됩니다. 사랑의 찬가에 나열된 사랑의 특징 들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능력을 굳건하게 믿는 자들을 통해 역사하는 은혜의 종류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각자 깊이 읽으시고 묵상하시면,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온기가 여러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채워지는 은혜의 강수가 흘러 넘치실 겁니다.
이렇게 4~6절이 내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기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속에서, 예수님과 맺어진 은혜속에서, 성령님과 동행하는 능력 속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무한 신뢰 할 때 비로소 7절의 “모든 것”에 해당 하는 구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주신 것도, 내가 사랑의 찬가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사모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과 인도하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겸손하게 반응하고 항상 감사로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7절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이 구절이 고린도 전서 12장의 은사에 대한 교회내의 무질서 속에서 나오는 권면의 결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찬가의 특징들을 세상에 발산하고 살아가도 모자랄 판에, 교회내에서 조차 서로 자랑하고, 교만하고,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면 이 무슨 창피한 모습이냐, 다시 사랑의 하나님 앞에 서서 사랑을 충전하고, 내 것을 자랑하지 말고 사랑을 자랑하며 살아가라는 권면입니다. 사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권면의 결론입니다.


회복하고 돌아가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 풀 충전되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짜증나고 사소한 일에 화내고 별거 아닌 것에 분노하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좌충우돌 이겨먹으려고만 하는 심성들은 모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지긋지긋한 불행한 모습은 그만 청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사랑의 하나님이 만드신 사랑의 걸작품들 입니다.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으로 만들어진 사랑의 자녀들입니다. 7절의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붙잡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특징, 사랑의 능력이 나를 통하여 날마다 역사하여, 천국 가는 그날 까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소망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권면을 마친 사도바울은 사랑과 은사들을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8~10절을 읽어 드립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아멘


사랑은 영원하고 은사는 분명히 한계성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외식 메뉴는 삽겹살과 치킨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외식 메뉴 5회 사용권과 일평생 무제한 사용권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제한 적인 사용권을 택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한적인 은사를 택할래, 영원한 사랑을 택할래 라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어느 것을 택하여야 합니까? 당연히 영원한 사랑을 택할 것 같지만 사람들은, 당장 내게 이익이 되고 자랑이 되는 것을 선뜻 선택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찬가와 권면을 마친 후에, 은사와 사랑 두 가지를 펼쳐 놓고, 이제 어떤 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선택함에 있어서 다시는 실수와 욕심을 부리지 말 것을 확실하게 매듭지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면 할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믿으면 믿을수록, 상상하지 못하는 은혜와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00의 모든 성도는, 당장의 좋아 보이는 것만 덜컥 집어 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충만한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풍성하게 받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의 결말 부분인 11~13절을 읽어 드립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아멘.


11, 12절은 사랑이라는 주제와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예(예시)를 통해 사랑의 탁월함을 보다 강조한 것입니다.


11절은, 어른(사랑을 알고난 후 – 구원 후)에는 어린 아이(사랑을 제대로 알기 전 – 구원 전)때의 말, 지식, 생각과 같이 유치한 것은 다 버리고, 성인 다운, 어른 다운 언행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 없이 어른답지 못하다는 것에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12절은,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돈, 재물,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것 같고, 믿음, 소망, 사랑, 은혜, 영생, 이런 것들은 희미하게 가려져 있을 지라도,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에는 희미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밝히 보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장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 진짜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예를 통하여, 사랑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다 설명한 후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3절입니다. “그런즉 믿음소망사랑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아멘. 다시 함께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문자 만을 보면 믿음과 소망보다 사랑이 우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이라는 큰 그림 안에 믿음과 소망이 다 농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예수님, 소망의 성령님, 사랑의 하나님이 눈에 들어 옵니다. 사랑의 찬가는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 것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은혜의 찬가 이기도 합니다.


사랑에 푹 빠져서, 사랑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는 능력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감동과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위로와 회복의 말씀으로 역사 할 것입니다. 응답과 소망의 능력으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오직 사랑에 붙들린 자로, 사랑에 빛진 자로, “모든 것을 참으며모든 것을 믿으며모든 것을 바라며” 일평생 사랑의 찬가를 부르며, 사랑이 주시는 하늘의 능력으로, 매일 매일 승리와 소망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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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랑의 하나님, 믿음의 예수님, 소망의 성령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오직 사랑 안에 거하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