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이스라엘 회복과 제 3 성전 예언에 기록 되어 있는가?

열려라 에바다 2022. 8. 6. 07:44

이스라엘 회복과  제 3 성전 예언에 기록 되어 있는가? 

 

권두언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진리를 어둡게 하려는 많은 세력들이 출현합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성경말씀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사람들은 예언을 미래의 사건을 알아맞히기 위한 것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의 예언들을 주신 목적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거짓과 속임수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누가, 어떤 교회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인지를 식별하여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다가오는 미래의 사건들에 대하여 이해하고 준비토록 하시기 위하여 예언을 주신 이유도 있습니다만, 예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갖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언된 사건들이 그 정해진 시간과 상황들에 맞추어서 정확하게 성취되어 온 것을 알고 나면 확신을 하고 미래를 맞이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력을 가질 수가 있게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에 대한 확실성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이 복잡한 지구의 사건들 속에서도 결국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신뢰하게 됩니다.
이번 호는 마지막을 통과하기 위한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큰 영적 유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제1부_1948년 이스라엘 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작하며

우리는 진리로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성경대로 믿어야 하고, 말씀을 순종하고 따라가고 가르쳐도 성경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에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가르침과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말세에는 미혹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비밀휴거, 7년대환란, 세대주의, 메시아닉쥬, 이스라엘 회복, 예루살렘성전 재건, 적그리스도…
참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악의 영은 수많은 신학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진짜를 찾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가짜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거짓 가르침을 믿어 온 사람들은 큰 위조 사건에 속아 넘어갈 것입니다.

1부> 1948년 이스라엘 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 속임수, 1948년 이스라엘 재건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생활이나 민족적 정서의 차이 때문에 주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늘 분파와 분쟁이 있어, 그들을 하나로 연합하려고 많은 근심과 노력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대기독교회가 7년 환란이라는 교리로 사도 바울의 수고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며 세상을 또다시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1948년 이스라엘 재건이 수많은 기독교인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 재건이 성경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뉴스에 관심을 두고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 실제 이스라엘을 보면 말세와 관련된 성경 예언이 어디까지 성취되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나서 2,000여 년이 흐른 뒤에, 지금의 중동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1948년 5월 14일에 재건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말 하나님은 이스라엘 국가를 통해 마지막 예언을 성취하시려는 것일까?

유대 민족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온 세상에 흩어져 버렸다. 북방 이스라엘의 10 지파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후 앗수르의 혼혈 정책에 의해 그 씨가 없어져 버렸고,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철저히 파괴된 후 유대 나라의 두 지파인 베냐민과 유다 지파도 혼혈과 잡혼, 그리고 실종 등으로 그 순수한 피가 전혀 없어진 상태에 이르게 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1948년에 흩어진 소수의 유대인이 비밀조직들의 활동으로 다시 국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일부 현대 기독교회는 이러한 실제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을 보고 그것이 성경 예언의 성취이며 그들이 여전히 참 이스라엘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 성경 예언의 성취라고 믿는 사람들은 중요한 실수를 하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와 이스라엘이 진리를 거부해온 역사를 무시하고 있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와 진리를 거부한 이스라엘의 역사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 2:4).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진리를 전하도록 계획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43:10~12).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사 42:6, 7).
예수님도 우리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바로 나타내야 함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사도 바울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고후 3:2,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통하여 세상에 축복을 주시고자 하셨다. 요셉의 성실을 통해 온 백성의 생명이 보존되게 하셨다.
또한 다니엘을 통하여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의 생명을 구원하셨다. 이러한 구원은 요셉과 다니엘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 세상에 주어진 영적인 축복들을 보여준다.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사람,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사람은 모두 인류의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그분의 품성과 진리를 알리시려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늘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의 계시를 맡기셨다. 이스라엘의 초기 시대에 세상 열국들은 타락하였고 하나님을 몰랐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통하여 그들에게 그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진리를 주셨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이 완수될 때에 이스라엘은 계속 선택된 백성으로 남을 것이었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4~7)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이스라엘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의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었으며 그들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받은 축복을 세상에 나누어 주지 않았고, 그 모든 이점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 2:21).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 5:3~7).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여러 선지자를 보냈다. 그러나 수많은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였다. 그런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심지어 죽이고자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함하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몇 일 전에 여러 가지 도전하는 질문을 하였다. 그런 질문들에 예수님은 친절하게 답변하셨고 그들의 악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다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좇아 죽였느니라"(마 21:33~39).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후에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라고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을 때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찌니이다"라고 직접 말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셨다.
이 비유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하셨다. 수많은 선지자를 보냈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고 예수님까지 죽였다. 이 비유를 듣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스스로 자기들의 심판을 말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서 빼앗기고 열매 맺는 백성이 받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분명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절에 보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결국 예수님을 죽이도록 넘겨준다. 이렇게 자신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언을 성취하게 된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마 21:45).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7,38).
이렇게 이스라엘이 진리를 거부하였기에 예수님도 더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실 수 없었다.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이스라엘을 쓸 수 없었다.
십자가 이후에도 한동안 제자들은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만 일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3년 반 후인 서기 34년, 새 언약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경고와 호소의 설교를 하던 스데반에게 산헤드린 공회가 돌로 쳐서 죽이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스데반은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 (행 7:51~60), 곧 이어서 일어난 핍박과 함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행 8:1~).

3. 영적 이스라엘과 육적 이스라엘
하나님의 뜻을 이룰 하나님의 백성은?
그 후로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교회로 넘어간다. 아브라함의 실제 후손들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는 진리를 가지고 있었고 이방 나라에 전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진리를 명백히 거절한 이후로 지난 2천년간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전파하였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전달하는 백성이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이제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된 것이다. 성경은 실제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들이신 사실을 말하고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8,29) 또한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롬 2:28,29)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위 성경 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은 현재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육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절하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영적인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참 백성인 교회가 생긴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사도 바울의 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음을 받은 자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 6:15,16)

구약시대는 광야교회인 이스라엘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지만, 신약시대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된 초대교회가 믿음으로 따라 난 영적 이스라엘로 불리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받았던 하나님의 백성과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의 축복의 말씀이 동일하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약이 되었다.
[구약]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출 19:6).
[신약]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 1:6).

하나님의 진리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자들이 영적인 이스라엘이요 ,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새로 지음을 받은 자,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믿고 개인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국가적,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열두 지파
흔히들 계시록에 나오는 14만4천이 결국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계 7장에 그들이 열두 지파에서 나온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록 7장의 열두 지파의 이름들은 원래의 지파들과 조금 다르다.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빠지고 요셉 지파와 레위 지파가 들어가 있다. 원래 고대 이스라엘에서 레위 지파가 열두 지파에서 빠져 있었던 이유는 그들은 제사장의 임무와 성전 봉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 7장에는 레위 지파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원래의 열두 지파와 계시록 7장의 14만4천의 열두 지파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야고보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 1:1)
흩어져 있는 12 지파는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소아시아 지방의 초대 교회를 일컫는 말이었다.


4. 이스라엘의 구원인가? 세상의 구원인가? 로마서 9~11장 해석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길을 설파한 후에 로마서 9~11장까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사의 범위가 이스라엘 중심에서 세계 만민에게로 확대되는 것을 설명한다.

로마서 9:1-5절까지 바울은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도 저희 중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애끓는 심정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정의는 종족(種族)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있음을 밝힌다(9:6-13). 로마서 9:14-29까지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설명하고 있다.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의 방법에 대해 인간은 불평할 수 없다. 이스라엘도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9:27). 왜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9:32)하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설명한다. 로마서 10장에서도 역시 계속하여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10:2,3) 아니 하였기 때문이다. 로마서 11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실족을 오히려 전 세계의 구원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웅대하심을 밝힌다. 이스라엘이 거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셨는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에게로 퍼져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11:11). 그리고 이방인의 구원이 이스라엘을 시기하게 하고 분기시켜 그들도 또한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사의 섭리이다(11:12,25).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잘려나간 곳에 믿음으로 접붙임을 얻어 지금 구원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믿지 아니하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께서 접붙인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찍어 내버릴 것이다. 그리고 잘려나간 원가지들도 믿으면 다시 접붙이실 것이다(11:24).

이방인의 충만한 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1:25)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그다음 절의 “온 이스라엘”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 만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모든 이방인”을 가리키고 “온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말한다면, 바울은 여기서 모든 사람이 결국은 다 구원을 받는다는 “만인 구원론(Universal Salvation)”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바울의 서신 어디에서도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 일이 없다. 바울은 오히려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그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시기하게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11:14)이라고 말하며 모두가 구원받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11:26)것인가에 대한 말씀의 의문은 수 세기 동안 논쟁거리였다.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해석들이 있다.
1)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다 구원받는다.
2) 전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의미하지만 반드시 개개인을 포함할 필요는 없다.
3) 이스라엘 백성 중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4)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중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5) 그리스도를 영접한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첫 번째 해석은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으로써 가장 설득력이 약하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인데 그때 남아있는 지금의 유대인들을 온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실상 이스라엘의 12 지파가 와해된 것은 오래전 일이며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을 찾는 것도 지금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오랜 세월 메시아를 거절하고 지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이 재림 직전 집단적으로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과는 조화되지 않는다. 두 번째 해석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개인을 떠난 국가나 집단의 구원은 성경적이 아니며 바울 사상과도 모순된다. 세 번째 해석은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만 구원받는다는 것인데 여전히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바울이 비밀을 말한다고 하면서(11:25,26) 알려주는 것이 고작 이스라엘 중에서 선택된 사람이 구원받으리라는 것이라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고 당연하지 비밀이 될 수 없다. 네 번째 해석은 칼뱅(Calvin)의 주장으로서 이스라엘을 민족적 이스라엘로 보지 않고 이방인들을 포함한 영적 이스라엘로 본 것은 타당하지만, 11장의 문맥으로는 맞지 않다. 11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비교하는 장이다. 그 둘은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로 비교되고 있으며 11장에서 이방인들은 2인칭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3인칭으로 불리고 있고 구원에 대한 묘사도 이방인들은 “충만한 수가 들어오는” 것으로,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는 것”으로 다르게 쓰였다. 그러므로 갑자기 문맥에 맞지 않게 온 이스라엘 속에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해석이 아니다. 마지막 해석, 즉 “온 이스라엘”을 그리스도를 영접한 “영적 이스라엘”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한 것과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의 비유에 근거하고 있다. 원가지인 이스라엘이 떨어져 나가고 돌감람나무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져 참감람나무를 이루는 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순종을 허락하심은 오히려 모든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다. 로마서 11장은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감동한 바울의 송영으로 끝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3-36).


5. 이스라엘 회복의 진실 - 시오니스트와 신세계질서
사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은 중동지역에 끊임없는 분쟁을 만들고 미국의 영향을 극대화하며 결국 온 세상을 적그리스도의 세력 아래 넣기 위한 거짓 기독교의 작품이다. 그들은 소설 같은 시나리오를 써서 세계정세를 거기에 하나씩 맞춰가고 있다.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되기 전에,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시오니스트의 소문을 들었다. 시오니즘(Zionism)은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고대 언어이다. 시오니즘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뒤에 수백 년 동안 숨어서 활동한 동유럽 유대인인 아슈게나지의 정치적인 활동이다. 데오돌 헤즐은 1917년 시온운동을 일으켰고 앞으로 30년 후면 이스라엘은 국가를 갖게 될 것이라 했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30여 년 후인 1948년에 이스라엘은 성경과 상관없이 독립하게 되었다. 이것은 성경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 마지막 시대 7년 대환란 시나리오를 통해 이 세상을 기만하기 위한 목적의 성취이다.

정치적인 시오니즘의 탄생
1897년 첫 번째 시오니스트 의회가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어 유대인 국가 건설이 결정되어 장소를 찾기 시작할 때 영국이 아프리카를 제공하였으나 시오니스트들은 거절하고 팔레스타인을 원하였다. 이때 팔레스타인 땅에는 50만 명 정도의 아랍인들과 이들과 혈연으로 연결된 소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 수백 년 동안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다.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을 자신들의 땅으로 결정하고 유럽의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이 그 땅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의 3가지 얼굴
이스라엘은 정확히 말하면 막시스트 국가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세 가지 얼굴인 공산주의, 파시즘 그리고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이스라엘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그들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을 많이 실행하였다. 이스라엘은 민주주의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고전적 선거를 통하여 의회를 구성하는 것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그러나 리쿠르트당이 정권을 잡던 노동당이 정권을 잡던, 엘리트 시오니스트들이 독재정치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들은 엘리트 집단을 따르며, 이들에 반대하는 어떠한 세력도 잔인하게 억압한다.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계획에서 이스라엘의 임무는 중동에서 끊임없는 분란을 만드는 것이다.

누구라도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 이스라엘이 성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하리라고 생각한다. 시오니스트들이 이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을 세운 후로 이 땅은 세상에서 가장 죄악이 가득하게 바뀌었으며 유대교를 믿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5%밖에 안 된다. 이스라엘의 법은 모든 종교를 억압한다. 예를 들면, 유대인을 다른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그 유대인이 무신론자이거나 휴머니스트이거나 관계없이 불법이다. 미국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믿도록 세뇌되었다. 이런 신화는 소수 유대인 지도자들이 성경에서 몇 문구를 발췌해 이것을 근거로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된 민족’으로 정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들은 사실 유대교를 믿지 않는 유대인 무신론자들이다. 이들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유대교를 선택한 것일 뿐, 성경에 나오는 실제 유대인과는 아무런 혈연적 관계가 없다. 그들과 관련하여 성경에는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계 3:9)라고 한다. 누구라도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선민의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해야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언약을 저버리고 맘몬을 숭배하였다. 누구나 성경을 읽어보면 오래전에 유대인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권리를 잃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시오니스트들이 통제하는 미국 언론은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공산주의를 막는 방어막이라고 선전하지만,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나치 스타일의 파시즘이 혼합된 막시스트 공산주의 국가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공산당의 활동을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이며, 역설적으로 아랍국가들은 공산주의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날 육적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 같은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시오니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성경은 이것을 경고한다. “거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미개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또 모든 것 안에 계시느니라”(골 3:11) “유대인들의 헛된 이야기들과 진리에서 돌아선 사람들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딛 1:14)

 

제2부_메시아닉 쥬와 대체신학

1.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
본래 메시아닉쥬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요즘 회자되는 메시아닉쥬는 실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는 상관없는 하나의 교파와 같은 개념으로 현대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특별히 한국 메시아닉 쥬는 기독교가 유대주의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헬라철학의 오류 위에 세워진 대체신학이라고 언급하며 토라(모세 5경)와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 국가가 2,000년 만에 다시 세워지고 또한 이스라엘에서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는 제3성전을 짓기 위한 움직임 등이 그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절기를 지키며 동물희생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사실 메시아닉쥬라는 이름보다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절기파” 또는 토라에 언급된 실제적 실천을 주장하기 때문에 “토라파”라고 해야 더 합당한 이름일 것이다.
과연 눈에 보이는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과 토라의 모든 율법(절기와 동물희생제사 등)이 회복되는 것이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일까?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초대교회 당시도 이런 유대주의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러한 주장을 다른 복음이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거짓교사라 하여 사도들과 바울이 신랄하게 경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 1:6) 이스라엘에 대한 잘못된 개념 때문에 육적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세대주의 핵심이다.

2. 대체신학
예수님은 혈통적 유대인들에 대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는 마지막 예언을 하셨고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국가적/선민적 유대인들의 운명도 이것으로 끝이 났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열방으로의 흩어짐)는 성경의 예언대로였지만 1948년 육적 이스라엘이 독립한 것은 결코 성경의 예언과는 무관한 것이다. 성경에는 그런 예언이 없다. 이스라엘 국민들도 이제는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있어도 선민으로서의 지위는 서기 70년에 끝났고 그 자리에는 열매를 맺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이방인 교회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메시아닉 쥬는 대체신학이라고 폄하하는데 이것은 성경의 말씀과 예언을 크게 곡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신약성경은 혈통적/국가적 유대인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 백성의 출현과 사역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 부활승천 이후 초대교회가 새로이 조직되기 시작했는데 이들 구성원들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열매맺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사도바울은 그들을 새로운 영적이스라엘로 보고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만일 메시아닉 쥬의 주장대로 교회의 자리에 유대인들이 사라지고 이방인들이 새로운 언약백성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 대체신학이라 한다면 대체신학의 창시자는 바로 예수님과 사도바울이 될 것이다.
한국 메시아닉 쥬는 또한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의 회복에 대한 예언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에 연관지어 설명하는데, 이것은 성경의 해석의 원칙을 잘못 적용한 결과이다. 성경의 예언을 구분하는 데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는 역사적(문자적) 해석이요, 둘째는 묵시적(상징적) 예언해석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바벨론 포로 70년, 애굽의 노예 400년 이런 예언들은 역사적(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들이고 다니엘서와 계시록에 있는 대부분의 예언들은 묵시적(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다니엘서 내에서도 느부갓네살의 일곱 때 등은 역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문맥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적이냐 묵시적이냐를 구분 짓는 것은 예언을 해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가 된다.

에스겔 37장 마른뼈의 환상도 역사적(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문맥자체가 그것을 당시 실제적 사건에 대한 예언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당시의 북방 이스라엘은 이미 100년 전에 사라졌으며 남방 유다의 멸망은 신속히 다가오는 때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마른 뼈들에 대한 이상은 소망 없어 보이는 유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생활은 70년만 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듯이, 에스겔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번영할 때 배우기를 등한히 했던 하나님의 교훈을 역경가운데서 배우도록 허락하셨음을 선포하는 예언이었다. 이것을 저 멀리 2500여년이 지난 이스라엘 독립으로 해석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스라엘 회복에 관한 말씀들을 여기서 모두 열거 할 수 없지만 1948년 회복의 예언이 아니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소선지서등 모든 회복 예언은 바벨론에서 돌아 올 것이라는 예언이다.


3. 절기와 동물희생제사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인가?
한국 메시아닉 쥬들은 사도들과 초대교회도 절기를 지키고 동물희생제사를 드렸다고 하면서 토라의 모든 율법이 회복되는 것이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사도들과 초대교회도 절기를 지키고 동물희생제사를 드렸는지 성경으로 확인해 보자.
1)초대교회도 절기를 지켰다는 성경구절에 대하여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8)
이 말씀은 바울이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유월절 날짜와 규례대로 정확히 유월절을 지키자고 말씀한 내용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희생양의 실체로써 우리를 위해 완전한 속죄제사를 치루셨으니 죄악의 누룩들을 버리고 순전한 마음과 정신으로 무교절의 영적의미를 지키자는 말씀이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력 1월(니산월) 14일 곧 유월절을 그리스도의 수난 기념과 무교절의 영적 의미를(고전 5:6~8) 새 언약에 연관시켜 오랫동안 준수해 왔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절기를 폐하셨기 때문에(엡 2:15, 골 2:14) 새로이 제정된 성찬예식으로써 지켜졌던 것이지(고전 11:23~26) 당시 유대인들과 똑같이 토라에 근거한 유대의 명절로써 희생제사를 드리며 지켜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외의 다른 절기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고 이루신 표상적 제도였다는 것이 깨달아 지면서 점차 초대교회에서는 절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메시아닉 쥬, 안상홍 증인회 등)의 관점에서는 초대교회가 여전히 절기를 지켰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2)예루살렘 총회 (AD 49년경)_
바울과 바나바는 2년 동안 1차전도 여행 중에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널리 가르쳤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 15:1)하여 그들의 기쁨과 신앙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들이 교회를 소란하게 했으므로 바울과 저들 사이에 많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고(15:1~6). 안디옥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택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장로들에게 파견하기로 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시 총회를 소집했는데, 이것이 AD 49년경에 열렸던 예루살렘 총회이다.
사도들의 전도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의 의문에 속한 여러가지 규례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교리적인 문제들이 다루어 졌다. 그때 유대주의 거짓교사들은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절기와 제사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행15:5) 그런 주장에 대하여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의식적인 율법인 할례문제는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15:7) 폐지하기로 결의하였고(15:19~21),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전도했던 자기의 경험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모세의 율법)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5:10) 할례나 절기 혹은 제사제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 믿노라 하니라”(15:11). 그래서 총회의 의장인 야고보가 마지막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15:19,20).
이러한 사도행전의 역사적 기록과 사도들의 증언들을 통해서라도 메시아닉 쥬의 주장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절기와 제사를 지냈다”는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오히려 사도들은 이러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행15:24) 당시 모세의 율법(절기와 희생제사)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을 사도들은 마음을 혹하게 하는 자들이라 표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폐지됨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5)
‘의문’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도그마’인데 ‘법령’‘교리’라는 뜻이다. 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하는 제사제도에 관한 법령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폐지될 수밖에 없었다. 제사를 드리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았던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찢어지면서 성소에서 드려지던 모든 제사제도는 끝났고 제사와 관련된 율법도 폐지되었다.

4) 의문에 쓴 증서가 도말됨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들)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4,16)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소에서 유지되어야 할 의식의 형식에 대한 율법을 주셨는데, 모세는 이 의식 율법을 책에 기록하였다. 이 희생제도에 관한 의식 율법을 신약 성경에서는 의문의 율법 (ceremonial law)이라고 부르는데, 십자가에서 폐지된 율법은 바로 이 의식 율법을 뜻한다. 구약시대의 성소에서 이루어졌던 동물의 희생제도에 대해서 기록한 의문의 율법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제사 제도의 목적과 그 완전한 의미가 실현될 때까지만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 실체가 오셔서 희생제물이 되셨으므로 더 이상 표상적으로 양을 잡아 죽이는 희생제도가 불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의문의 율법을 그리스도께서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고 기록하였던 것이다(골 2:14). 골 2:14~17까지의 전체 내용을 읽어보면, 여기에 나오는 “의문에 쓴 증서”는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절기안식일들(sabbaths)”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절기 제도의 의식 율법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5) 예언된 의문의 율법의 폐지
다니엘 9장 예언 속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지상의 성소제도가 폐지될 것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였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지상 성소에서 행하여졌던 동물의 희생제도가 그 종말을 고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 제도의 종말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 안의 휘장을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두 조각으로 찢어지는 놀라운 사건을 일으키셨다(마 27:50,51, 막 15:37~38, 눅 23:45~46).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써, 더 이상 동물의 피가 흘려질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새로운 언약을 인치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모세가 제사 의식에 대해서 기록한 증서인 의문의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마지막 때 왜 절기와 희생제사들 드려야 한다는 다른 복음이 또 다시 등장하는가?
마지막 성경 예언의 성취는 짐승의 표 환란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 이 환란에서 살아남는 자들을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라고 기록해 두고 있다. 선지자들과 그리스도는 헛된 의식에만 사로잡혀 형식적 종교의 나락으로 떨어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고 사도들 역시 새로운 언약백성으로 선민의 지위를 얻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의 정신에 맞는 성품의 열매를 맺을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원의 대주제가 마지막 때 짐승의 표 환란 시에도 적용이 되어 이 마지막 때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품성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계시록은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사탄은 또 다시 초대교회 때 그랬던 것처럼 그의 기만을 펼치면서 믿음과 성품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식들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구원이라고 속이고 있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어떤 의식들과 행위제사들을 통하여 마음의 평안을 누리려는 경향들이 있다. 사탄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성을 충돌질하면서 그러한 의식과 행위들을 통하여 거짓평안 가운데 우리를 잠들게 하려고 노력한다. 참된 변화와 거듭남을 통하여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생애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러한 유혹과 헛된 가르침에 쉽게 마음을 열고 멸망의 다른 복음을 좇아가게 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늘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오직 마음에 의로운 성품의 옷을 입은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으며 돌아다니는 이 때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메시지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지 인간의 헛된 철학과 거짓 가르침인 다른 복음이어서는 안될 것임을 항시 명심해야 한다.

 

제3부_그리스도인가 적그리스도인가?

성경의 어떤 부분을 해석할 때, 어떤 존재를 한쪽 부류는 메시아로 해석하고 다른 부류는 적그리스도로 해석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3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성경 말씀으로 분별해보겠다.

제3성전과 7년 대환란 시나리오
제3성전은 성경 예언의 성취인가?
현재 이스라엘에서 성전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름하여 제3성전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에 솔로몬이 처음 건축한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다. 70년 바벨론 포로생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재건했다. 그러나 이 성전도 예수님의 예언대로 로마에 의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진 지 약 2천 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성전을 재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제3성전]은 유대인들이 성전 재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성전 재건이 기독교인들에게 이슈가 되는 이유는 성전 재건이 성경 예언들의 성취라고 믿기 때문이다. 제3성전 영화 포스터에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현재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라는 문구로 제3성전 건축이 성경 예언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기독교 일부에서는 유대인들의 숙원사업인 성전 재건이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3성전 건립을 성경 예언의 성취로 보려는 사람들은 성경 예언을 세대주의로 해석하는 사람들이다.

세대주의자들의 종말 시나리오
세대주의는 크게 7년 대환란과 그 전에 있을 비밀휴거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세대주의자들이 가르치는 종말론의 시나리오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연합 국가들 간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중동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상태로 들어가며 이 전쟁 기간에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황금 돔 사원은 전쟁이나 큰 지진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이런 혼란 중에 전 세계에서 갑자기 동시에 사람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는 7년 대환란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을 비밀리 데려가신 “휴거”의 놀라운 사건이다.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전 세계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되는데 이런 중동의 전쟁과 휴거의 공포 속에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간의 전쟁을 끝내고, 휴거되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타나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를 화해시키고 예루살렘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7년 평화조약”을 맺게 하며 휴거의 공포 속에 떨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위로와 평화를 안겨준다.
세계적인 지도자로 인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고, 3년 반 동안 전 세계는 전쟁과 질병과 기아와 재난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3년 반이 지나서 그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칭하며 독재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배신하고 제사를 금지하며 자신의 말에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666표를 주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몇이든 죽이는 “피의 정치”를 펼친다.

독재자의 모습을 드러낸 적그리스도는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가증한 일을 행하며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지만 이에 자극을 받은 아랍과 아프리카 동맹세력이 일어나고 러시아와 그 동조세력들이 개입하여 제3차 세계대전인 “아마겟돈” 전쟁이 발발한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는 중동과 러시아의 연합군대는 이스라엘에 대패하고 이를 틈타 동방의 왕 중국의 2억의 군대가 이스라엘로 쳐들어오고 이스라엘의 연합국인 미국의 전쟁개입으로 온 세상은 드디어 “핵폭탄”으로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3년 반의 위기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이 회심하여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십사만 사천이 나타난다. 십사만 사천은 복음 전도자로서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돌이키는 대역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으로 황폐해진 이 세상을 7년 대환란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전쟁을 끝내고 이 땅을 아름답게 복원하시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유대인 3분의 1과 핵전쟁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세상 사람들과 유대인 위주의 천년 왕국을 이 땅에 세우신다. 천년왕국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그 땅에서 100세에 죽는 자는 아이라고 할 정도로 평화로운 삶을 살지만 1000년이 지난 후 천년왕국의 많은 사람은 사탄에게 속아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될 것이다.

7년 대환란을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의 허구
과연 이런 종말 시나리오가 성경에 예언되어 있을까?
오늘날 거의 대부분 교회는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 3년 반 동안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를 박해할 어떤 독재자라고 상상하고 있다. 이 공상 소설 같은 이론은 적그리스도의 정체가 교황권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로마 카톨릭이 예수회를 통해 여러 신학적 노력 끝에 이루어 놓은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7년 대환란의 교리는 도대체 성경의 무엇을 근거로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어냈을까?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7년 대환란을 너무나 자주 언급하고 있어서, 많은 기독교인은 성경이 그 기간을 매우 자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성경의 단 한 구절도 7년이라는 기간을 세상 끝이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비밀 휴거를 가르치는 세대주의자들이 7년이라는 기간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니엘 9장 24-27절을 문맥을 무시하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놀랄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이 7년 대환란의 7년 기간의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 절은 다니엘 9장 27절에 나오는 “한 이레”가 유일하다. 한 이레(한 주)는 묵시적, 상징적 예언을 해석할 때 적용하는 1일 1년 원칙에 의해 7년으로 해석한다. 다니엘 9장 27절에 나오는 한 이레는 따로 떨어져 있는 기간이 아니라 다니엘 9장 24절부터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주신 칠십 이레(70주 = 490년)에 포함된 기간이다.

다니엘 9장 27절의 한 이레는 언제 적용되는가?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2300 주야의 묵시의 정한 때를 정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는 70이레 490년의 기한을 정하셨는데 이 490년 안에 있을 역사적 일들을 정확히 예언해 주셨고 실제로 그 일들은 모두 이루어졌다. 70이레 예언 해석에 있어서 세대주의는 483년은 끊어짐 없이 이어서 오다가, 유독 한이레 “7년”만큼은 거의 2000여 년을 건너뛰는 공백 기간을 둔다.

69이레와 1이레 사이에 2000년 공백 기간이 있는가?
“때가 찼다”는 70이레가 “다 되었다”는 증거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이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을 주심으로써, 그들의 소망을 고취하셨고, 약속대로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만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 성을 침공함으로 바벨론 제국은 몰락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열리게 되었다. 70이레의 언약 중 69이레가 지나서 메시아의 구속사역이 시작되기전 하나님께서는 침례 요한을 통해 그때가 가까웠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로마황제 디베료 가이사 15년 때 요단강 부근에서 침례 요한이 나타나 이스라엘 벡성에게 회개의 침례와 천국이 가까왔음을 전파하면서 선지자 이사야와 다니엘로 말씀하신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외친다. 침례 요한의 말은 힘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70이레의 언약의 내용을 알고 있었고(다니엘서 기록) 그 계시의 정한 시기가 끝이 다 되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례 요한은 크게 외쳤다. “때가 가까왔으니 회개하라!”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약속한 70이레의 때가 가까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다.

드디어 기름 부은 자,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시키실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그분의 구속사역을 행하셨다. 이와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바로 69이레 전에 기름 부은 자인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을 근거로 당신의 지상사역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 14, 15)

다니엘 9장에 예언된 69주일(483년)의 예언의 때가 찼던 서기 27년에, 예수님께서는 침례를 받으셨으며,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다. 마지막 이레인 7년 기간의 절반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하신 대로 “굳게 정한 한이레 언약”을 성취시켜 주셨다. 나머지 3년 반 동안 제자들은 주로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끝까지 사역하였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3년 반 후인 서기 34년, 새 언약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향하여 경고와 호소의 설교를 하던 스데반에게 산헤드린 공회가 돌로 쳐서 죽이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스데반 집사는 초대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음으로 이방을 향한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을 위한 70주일(490년)의 언약의 기한이 완전히 끝났으며, 곧이어서 일어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과 함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A.D. 27년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그 이레의 절반인 A.D. 30년 유월절 봄에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기름 부음 받은 분이 끊어져 지게 되었으며, 3년 반 후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성령체험으로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 백성과 정하신 70이레 즉 490년의 기한이 종결을 맞게 된다.

침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외치신 “때가 찼다”는 의미는 다니엘의 말 한바 70이레 기한이 다 찼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라는 의미였다.

69이레와 1이레의 성취된 예언의 증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 26)

69이레가 지나 후에야 기름부은 자가 끊어질 것이라는 말씀은, 나머지 한 이레 안에 있을 일인데 정말 중요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기름부은 자 곧 메시아인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고 돌아가실 기점이 바로 “69이레”이다. 말씀은 69이레 후에 기름부은 자 곧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할 것인데, 이는 69이레 안에 있을 일이 아니라 69이레가 지난 후에 될 일인데 이 내용만 이해해도 “7년 대환란”의 교리가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69이레 동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기간으로 나누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69이레 동안에는 예루살렘 성이 중건되고, 백성들이 고토로 귀환하고, 기름부은 자 곧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오실 일이 계시대로 이루어졌으며, 남은 한 이레 동안에는 메시아의 죽음과 구속사역이 이루어 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은 자 메시아께서 한 이레 동안의 하실 일과 또한 그 후에 예루살렘의 멸망이 있음을 경고하셨다. 이 뜻은 하나님께서도 70이레가 2000여 년의 공백기가 없는, 한 묶음의 기간으로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이레”는 2300주야 및 70이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한이다. 그 기한 안에 기름부은 자인 메시아가 돌아가심으로써, 죄가 끝나며, 죄를 영원히 용서(죄악이 영속)받을 것이며 영원한 의가 이루어질 환상과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대주의는 이 “한 이레”를 2000여 년이 지난 미래의 어느 날로 옮겨버림으로써 성경적으로는 당황스러운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교리대로라면 아직 기름부은 자 메시아께서 끊어져 돌아가시지 않은 것이 된다. 또한 죄가 끝나며, 죄를 영원히 용서(죄악이 영속)받을 것이며 영원한 의가 이루어질 환상과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새 언약”은 아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못한 것이 된다.

70이레는 2300주야와 계속해서 이어지는 예언의 기간이지 절대로 떨어질 수가 없다. 성경 어느 곳에 2000여 년의 공백기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가?
그 중요한 “한 이레”에 기름부은 자 메시아께서 하실 일을 7년 대환란 교리는 적그리스도가 활동하는 기간으로 변개하여 놓았다. 이 얼마나 놀라고 기가 막힌 사실인가?

다니엘서 9장 27절 한 이레 해석에 대한 세대주의의 오류
다니엘 9장 27절을 세대주의는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가?

세대주의 교리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적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이 포함된 7년 대환란과 한 언약에 관한 것이다. 이 언약은 중간 어디쯤에서 적그리스도가 파기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교리의 성경적 증거를 요구하면 그들은 다니엘 9장 27절을 제시할 것이다. 이 참뜻을 알기 위해 KJV 성경으로 반드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 이 구절에 너무나 많은 요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분께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주간 동안 그 언약(the covenant)을 확정(confirm‎)하실 것이요, 그 주간의 중간에 그분께서 그 희생예물과 봉헌예물을 중단시킬(cease) 것이요 또 가증한 것들이 뒤덮이므로 그분께서 그것을 황폐하게 하시리니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하실 것이요 또 그 작정된 것이 그 황폐하게 된 것들 위에 쏟아 부어지라 하니라”(단 9:27, KJV)
“And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and in the midst of the week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KJV)

“ⓐ그 육십이 주간들 후에 그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나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 ⓑ또 장차 이를 한 통치자의 백성들이 와서 ⓒ그 성읍과 그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것의 종말은 한 홍수로 뒤덮인 것 같을 것이요 또 그 전쟁의 끝이 이르기까지 황폐하게 되는 것들이 정하여졌느니라”(단 9:26)

ⓐ 이것은 메시아의 죽으심과 ⓑ 통치자(로마 베스파시안 황제)의 백성들(타이터스 장군과 군사들)이 올 것과 ⓒ A.D. 70년에 발생했던 그 도시와 성전의 파괴를 미리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2절에서 이 사건(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아니하고 다 무너지리라)을 미리 말씀하셨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통치자가 적그리스도라고 추측하지만, 이것을 뒷받침해주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이제 27절을 설명해보자.

And he(Jesus-예수님).
shall confirm‎ the covenant(그 언약을 확정하실 것이요, 히 9:15-16 “이는 한 유언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또한 그 유언자의 죽음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니”).
with many(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에 드리셨고…” 히 9:28).
for one week(7년) and in the midst of the week(그 주의 중간에, 예수님은 3년 반 사역 후 희생되셨다).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oblation to cease(“염소들과 송아지들의 피로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피로 단 한 번에 거룩한 처소 안으로 들어가시어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히 9:12) - 예수님의 희생으로 그 희생 제사는 중단되었다. 적어도 자신들의 속죄를 위해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신약 어디에도 교회의 사도들 중 누군가가 자기들의 죄들을 속죄하려고 동물 희생을 드리러 성전으로 가라고 한 적이 없다. “주님께서는 저 대제사장들같이 먼저 자기 자신의 죄들을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들을 위하여 날마다 희생 예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드리심으로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라”히 7:27, 그 증거로 막 15:38 “이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쪽으로 나뉘어 찢어지니라.”)
and for the overspreading(온통 뒤덮기 때문에).
of abominations(복수임, ‘가증한 것들’이며, 단 11:31과 12:11의 ‘황폐함의 가증한 것’(abomination of desolation)처럼 단수가 아니다. 가증한 것들은 성전에서 계속되던 불필요한 동물 제사들이다. “이제는 이들에 대하여 사면하셨은즉 거기에 더 이상 죄를 위하여 예물을 드릴 필요가 없느니라”(히 10:18), “소를 잡는 자는 마치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고, 어린양을 희생물로 드리는 자는 개의 목을 꺾는 것과 같으며 예물을 바치는 자는 돼지 피를 바치는 자와 같고 향을 사르는 자는 우상에 마음을 쏟는 것과 같도다. … 그들의 가증한 것들을 기뻐하였노라”(사 66:3).
He shall make it desolate(“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하신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여기고 또 은혜의 영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혹독하겠느냐 … 다시 주님께서 주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그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니”히 10:29-30, 주님은 A.D. 30년부터 심판을 실행하시기 전인 A.D. 70년까지 40년을 기다리셨다.)

갈 3:17은 주님의 단 9:27의 성취를 보여주는 훌륭한 구절이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확정하신 그 언약을(the covenant that was confirmed)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취소할 수 없으며 그 약속을 폐기할 수 없느니라”(갈 3:17, KJV)
이 구절(갈 3:17)을 알렉산드리안 본문과 근대 역본들에서 단어를 바꾸어, 단 9:27과 그것을 상호 연관시킬 수 없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NIV는 ‘confirmed’를 다른 의미의 ‘established’로 바꿔 버렸고, 또한 그 구절에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를 삭제시켜버렸다.

그러나 매튜 헨리의 주석은 단 9:27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70주는 일일 일년을 의미해서 490년을 의미한다. 이 기간의 끝에, 한 희생 예물이 드려지는데, 죄를 위한 완전한 속죄를 이루고, 모든 믿는 자들의 완전한 의로움을 위하여 영원한 의를 가져온다. 그 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못박은 후, 죄를 범할 것인데, 그것으로 해서 그들의 죄의 분량이 가득 차서 고난이 그들의 나라에 임할 것이다. 의인에게 주어지는 모든 복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통해 온다. 그분은 죄들을 위해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해서 의인으로서 한 번 고난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함이다. 여기에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우리의 길이자,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이분이 예언의 모든 것을 봉인하시고, 그 언약을 많은 사람과 확정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의 복 안에서 즐거워할 때 우리는 그것이 구속자께서 값으로 치르신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토록 큰 구원을 등한히 하는 자들은 어찌 피할 수 있을까!”

1599년의 제네바 성경 역시 다니엘 9장 27절의 이 해석과 조화롭게 일치한다.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복음의 전파로 인해서 최초로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후에 이방인들에게, 그분께서 그분의 약속을 확정하셨다.
cease -예수님께서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서 이것을 성취하셨다.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the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즉, 예루살렘과 성전이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반역, 그들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전적으로 파괴될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들이 읽는 대로, 그 재앙은 너무나 커서 그들이 그것들을 보고 놀랄 것이다.

‘언약’을 언급하는 구약의 모든 구절을 살펴본다면, 시드기야와 바벨론 사이에 있었던 에스겔 17장 15절에서와같이 특수하게 언급된 극히 드문 몇몇 부분들만 제외하고는, 심지어 ‘언약궤’를 묵상해보아도 그것은 언제나 주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의 언약과 관계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의 자손(children of the covenant)’(행 3:25)이라고 불렸고, 심지어 그 지도자는 ‘그 언약의 통치자(prince of the covenant)’(단 11:22)로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새 성경 역본들은 다니엘 9장 27절의 ‘그 언약(the covenant)’을 ‘한 언약(a covenant)’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약 B.C. 285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된 헬라어 본문 70인역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때문에 그것을 다니엘 9장 4절에 언급된 ‘그 언약’과 연관시키지 않으며, 남아있는 구약 시대와도 연관시키지 않게 된다. 이 구절은 이렇게 변개되었다.

세대주의의 일정에 맞춰서, 새 리빙 번역 성경은 논의 중인 그 구절에서 ‘covenant(언약)’이라는 단어를 27절에 ‘treaty(조약)’으로 단 9:4에서는 ‘promises(약속)’로 번역하여 그 두 구절 사이에 연관성이 없게 하고, 단 9:27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하려고 모든 수단을 쓰고 있다.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사역하셨고, 거기서 그분께서 그분 자신의 백성들을 대하셨다(마 15:24). 그리고 주님은 70이레의 마지막 한 주간의 절반에 희생 예물이 되셨고, 나머지 3년 반 동안 제자들을 통해 오직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에 귀를 막고 이를 갈며 돌로 쳐 죽여 자신들의 구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복음은 이방인들에게로 전해져 참 이스라엘에 접붙이도록 하셨다.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 분”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주신 “제사법”은 하늘의 모형인 것과 그림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제사는 영원한 제사가 될 수 없으며 불완전한 제사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불완전한 제사를 완전한 제사로 바꾸어 주시기를 계획하셨다.
70이레의 기한에는 거룩한 분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며, 그동안 환상과 예언으로만 말씀하시던 영원한 의가 나타나셔서 죄가 끝나며,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면서, 지금까지 그림자이고, 모형이며 참 형상이 아닌 제사와 예물이 비로소 그 실체와 참 형상이 이루어질 것을 기록하였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 27)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는 그 분은 누구인가?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히 10:5~8)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메시아의 죽음을 상징하여 드려온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AD 31년 봄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므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다시 한 번 다니엘서의 예언을 정확하게 성취하셨던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이며, 얼마나 큰 사랑인가?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은 흠 없는 어린 양을 성소의 번제단 위에서 태움으로써,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으며, 양의 죽음을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아왔다. 그러나 기름부음을 받으신 A.D. 27년부터 정한 한이레의 7년의 절반인 A.D. 30년 봄,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더 이상 양을 잡아서 태워 죽이는 제사 제도가 필요 없게 되었다. 지금껏 유대인들이 지내던 성소 제도의 모든 제사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 것들이었으므로, 그 상징의 실체가 오신 다음에는 더 이상 양을 잡아서 제사와 예물 드리는 일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또한 구약 시대의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라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이 얼마나 분명한 예언의 성취인가?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더 이상 양을 잡아 죽이는 제사 제도가 필요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적이 성소에서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자, 이에 성소 안에 있던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짐으로써 더 이상 지상의 성전은 쓸모없게 되었다.
모세가 제사 제도에 대해서 기록하였던 의문의 율법이 정하고 있는 제사와 예물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음을 보여주셨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 2: 14)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우리 주님께서 오셨다. 이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드리던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몸을 드리시고 영원한 제사와 속죄 제물로서 오신 것이다. 저가 거룩하신 한 몸으로 영원한 의를 이루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시 40: 6, 7)

시편에 기록하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께서, 구약성경에 기록되신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이 드리던 불완전한 제사와 예물을 완전케 하기 위해 두루마리 책에 기록한 대로 오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고 큰소리로 외치신 것이다. 그것이 거룩하고 영원한 속죄 제사이며, 사람들이 드리는 외형적인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겠다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다.
아직도 여러분은 적그리스도가 7년 대환란 기간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주님의 자리에 적그리스도가 대신하여 앉아 있으니 세상에 이처럼 기막힌 성경의 오류가 어디 있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잠들게 만드는 세대주의의 "환란 전 휴거" 와 "7년 대환란" 교리에 대한 잘못된 점을 성경의 말씀으로 옳게 분별하여 영적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를 감추어버린 사악한 교리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바란다.

세대주의가 발전된 역사
성경을 교묘히 왜곡하는 세대주의는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었는가?

세대주의 교리들의 출발이 된 성경 변개의 역사
약 B.C. 250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 역 70인역 성경(the Septuagint)이 번역되었다. 헬레니즘(이교) 영향 아래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헬레니스트 황제 프톨레미 2세(Ptolemy II)의 명령을 받았다. 원본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서 그리스어 성경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변조들 중 어떤 것들은 세대주의 교리들의 출발을 위한 초석이 되었다.

2세기의 시리아, 안디옥에서 제자들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다(행11:26). 그곳에 있는 주님의 진실한 교회는 두렵고 떨림으로, 신실하게 성경의 원래 사본들을 재생시켰다. 그들은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라는 말씀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계 22:18)의 경고를 알고 있었기에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도 감히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플라톤과 필로(Philo)의 신비주의 학파는 원본 신약 사본들의 부패한 역본들을 양산해내기 시작한 영지주의, 신비주의 종교의 세계 본부였다. 클레멘트와 오리겐 같은 이들의 지도 아래 그 신비주의 학파는 진정한 기독교 정신에 반대하여, 자신들의 영지주의 신앙을 반영하도록 성경을 고쳤다. 결국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로 알려진 교리를 도입하는데 그 구절들이 사용되었다. 사탄은 하나님이 각 시대마다 구원의 원칙을 바꾸었으며, 하나님의 법은 폐기되었다는 이론을 성립시키기 위해 이 이론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길 원했다.

4세기 황제 콘스탄틴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공개적으로 공포했으나, 그는 여전히 태양신 솔(Sol)을 포함한 이교 신들을 공개적으로 숭배했다. 후에 자신을 최초의 교황(Summus Pontifex)이라고 선포했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오른팔 유세비우스 주교에게 50권의 새 성경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유세비우스는 이 작업을 위해 로마 카톨릭주의로 가면을 쓴 바벨론 신비주의 종교에 충실해야 했기에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사용했다. 이 성경은 후에 제롬이 라틴 벌게이트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고, 그것이 로마 카톨릭의 공식 성경이 되었으며, 다른 모든 성경은 금지되었다. 그렇게 부패한 사본들이 오늘날까지 바티칸의 품 안에서 보호받아 모든 근대 성경의 번역에 사용되었는데, 세대주의 교리들을 지지하기 위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를 감추기 위해 예수회 신부 리베라가 만들어낸 세대주의(미래주의) 교리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리베라와 벨라민이 만든 미래주의(Futurism) 예언 해석에서, 적그리스도는 한 독재자가 역사의 끝, 7년 대환란 직전에 나타나 모든 종류의 대 황폐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 개혁에 의해 교황권이 적그리스도임이 공개되자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미래의 어떤 것으로 해석해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공격을 교란할 목적이었다.
1590년 리베라는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견해에 대항하여 계시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리베라는 적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 영접받아 예루살렘을 건설할 한 명의 악인이라고 하였다. 예수회 미래주의는 그 악명 높은 공백기 이론으로 1500년 예언의 역사를 감추어 70주일의 예언이 로마가 멸망할 때 예언이 중지되고 미래에 휴거의 시대에 다시 재개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열 뿔, 작은 뿔, 짐승, 적그리스도는 오늘날의 기독교와 관련이 없게 만들어버렸다.

예수회가 만들어낸 세대주의가 개신교에 침투한 역사
리베라의 미래주의는 1800년대 초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법률가요 성서학자인 사무엘 미틀란드는 1826년에 종교개혁에 대해 공격하며 미래에 출현할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라는 리베라의 사상을 옹호하는 책을 출판해 널리 보급했다.

미틀란드 박사에 이어 나타난 사람은 더블린 대학교 히브리어 교수였던 제임스 토드 박사였다. 토드는 미틀란드의 미래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기 옹호적인 소책자와 책자를 출판했다. 이어서 영국교회 신자요 옥스퍼드 운동의 지도자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이 나타났다. 1850년 뉴먼은 '영국 국교의 고난에 관한 글'을 써서, 옥스퍼드 운동의 목적은 '여러 영국 종파'를 로마 카톨릭교회로 다시 흡수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에 관한 토드의 미래주의를 승인하는 소책자를 출판한 뒤, 뉴먼은 곧 완전히 로마 카톨릭교도가 되었고, 나중에는 추기경이 되었으며, 근래에 교황 베네딕트 6세로부터 복자로 시복 받았다. 미틀랜드, 토드, 뉴먼 등의 영향으로 '로마로 향한 운동이 이미 일어나 홍수와 같이 옛 프로테스탄트의 영역을 휩쓸고 있다'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당시 성령운동의 지도자 마가렛 맥도날드(Miss Margaret MacDonald)는 휴거에 관하여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바벨론 신비주의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심령술적 능력과 자동 수기(automatic writing)술이 있는 한 소녀와의 교류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가렛은 런던의 신비주의 예수회원인 장로교 설교자 에드워드 어빙에게 자기의 환상에 관하여 편지를 보냈다. 어빙은 후에 로마 카톨릭 사도교회(Catholic Apostolic Church)를 설립하였다. 편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휴거에 관한 이 계시가 어빙의 교회에서 발행된 정기간행물을 통해서 소개되었다.

예수회 비밀 휴거론을 개신교에 확산시킨 존 넬슨 다비와 스코필드
마가렛 맥도날드의 환상과 같은 시기에, 플리머스 형제단 지도자 존 넬슨 다비(John Darby)가 역사를 시대들(ages) 또는 세대들(dispensations)로 나누어 세대주의를 구성했다. 그 교리가 에드워드 어빙과 그의 교회로부터 힘을 얻어 신속하게 성장했다.
다비는 미국에서 스코필드(Cyrus I. Scofield)를 만났고 스코필드는 그 유명한 스코필드 주석성경을 편찬하여 세대주의 가르침을 기독교에 확산시켰다.

1900년도 초 오스왈드 J. 스미스(Oswald Jeffrey Smith 1889~1986)는, 세대주의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새로운 환란 전 휴거 가르침이 예수회 제자인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의 교회에서 한 여인에 의한 직통 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선포되었으며, 그 후 1800년 동안의 교회의 가르침과 정반대되게 역시 예수회 제자인 다비(John Nelson Darby)와 스코필드 주석성경에 의해서 채택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세기 동안, 어빙계의 여인으로 시작해서 1830년에 다비에 의해 전파된 이 새로운 ‘영감을 받은’ 가르침은 우리에게 전달되어서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다.
죠지 뮬러(George Muller)는 이를 반대하였으며, 뉴턴(Benjamin Wills Newton)도 그러하고, 트레겔레스 (S. P. Tregelles) 박사와 다른 교회 성원들도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패한 성경 사본 확산과 세대주의의 발전
존 다비는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근거한 자신의 성경 번역본을 만들었다. 바로 이때 영국교회의 호트(Fenton John Anthony Hort)와 웨스트콧(Brooke Foss Westcott) 두 사람 모두 헤르메스 클럽(Hermes Club), 고스틀리 길드(Ghostly Guild), 심령 연구회(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등을 포함한 몇몇 신비주의 클럽의 회원이자 설립자들이었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동 수기(automatic writing), 수정 점(crystal gazing), 영매, 다중 인격, 마술, 공중 부양 등이었으며, 그들은 신지학 단체들의 설립자인 H.P. 블라바츠키와 같은 이들과 함께 어울렸다. 이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 영국교회 사제였다. 웨스트콧과 호트가 기독교와 신비주의 사이에서 매우 상반된 이중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다중 인격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그것은 실제로 정신을 분열시키고 신비주의 의식을 계승한 부류이다.
대부분 근대 역본들은 웨스트콧-호트 헬라어 본문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시나이 사본, 바티칸 사본, 구약의 헬라어 70인 역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신비주의 종교 사본들이다. 1881년 이후로 이 역본에서 개정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성경들이 나왔지만 이것은 신비주의 환상가들에 의해 바티칸으로부터 보내진 거짓 선물이었다.

근대 성경 예언 연구가들의 베스트셀러
할 린드세이는 근대 성경 예언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미래주의를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1970년에 등장한 “지구의 마지막 때(The Late Great Planet Earth)”라는 그의 책은 3천5백만 권 이상이 팔려 나갔고 54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종말론 사업을 낳았다.
미래주의가 부와 명성을 얻는 길임이 분명해질 즈음에,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 예언의 흐름에 편승했다. 그 수혜자들 중 가장 유명한 두 명은 팀 라헤이 목사와 제리 젠킨스인데 그들은 휴거 시리즈(Left Behind)의 엄청난 성공으로 대부분 미국 도서관에 그들의 책들이 꽂혔으며, 휴거 시리즈는 8권 장편 책과 2편의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졌다. 만일 이것이 사소한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훨씬 더 사악한 것이 휴거 시리즈 뒤에 있다.

이처럼 성경 예언을 미래주의 해석으로 가르치는 방법은 로마 카톨릭에서 왔으며 특히 그 교회의 예수회 신학자들에 의해 이룩됐다. 현시대 미래주의 해석법을 옹호한 사람들은 카톨릭이 아니라 대부분 개신교인들로서 이와 같이 로마교회의 술수에 빠져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못 보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제4부_참 이스라엘

누가 이스라엘인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진 이후에는 유대인들이 더는 선택된 민족이 아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진리를 세상에 전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교회를 사용하실 수밖에 없으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빛 곧 진리를 전수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실 한 루트가 필요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영적인 이스라엘로 택하여 사용하시고 계신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제자들은 제일 먼저 예루살렘과 유대에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거절하였고 그래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나가게 된 것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배반하여 나간 한 민족, 수천 년 동안이나 진리를 떠나 세속적으로 살아온 민족, 그것도 그들의 혈통이 다 섞이어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혼합된 사람들을, 단지 과거에 한 번 선택 받은 적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시 선택된 민족이 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이지도 않다.
현재 이스라엘 국가의 99%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불신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갑자기 변화시키시어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지난 2000여 년 동안 핍박을 받으며 진리를 유지해온 그리스도 교회를 제쳐 놓고 갑자기 유대인들을 다시 등장시켜서 그들을 통하여 마지막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내려진다는 것은 참 교회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려는 악한 자의 술책에 불과하다.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6,7)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조건적이다. 그 조건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유대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역했을 때에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으며 포로로 잡혀갔다. 그때 에스겔과 예레미야 같은 여러 선지자가 예루살렘 황무지가 다시 꽃을 피울 것이라는 예언을 쏟아 내었다. 예루살렘과 유대 나라의 회복을 예언하고 소망을 고취하였다. 그래서 이 회복을 어떤 사람들은 1948년도의 이스라엘 나라의 재건으로 적용하고 있지만 그 예루살렘의 회복 예언은 이미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후에 다시 돌아와 느헤미야 때 성전을 재건축하는 일로 이루어졌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약속을 받은 자들의 배도나 반역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이 무조건 성취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고 합리적인 해석도 아니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며”(암 9:11)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은 신약시대의 교회에서 이루어졌다고 다음과 같이 적용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였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지어 일으키리니”(행 15:14-16)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리라는 아모스의 예언을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에 그리스도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적용하였다. 옛날 이스라엘에 주셨던 언약이 이제는 영적인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교회들에 주어진 것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 2:9,10)

참 이스라엘 백성은 열매 맺는 백성
예수를 믿는다고 다 영적인 이스라엘은 아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 열매를 맺는 백성만이 영적인 이스라엘이다. 실제 유대인들도 순종치 않고 열매를 맺지 않았을 때 버림받았던 것처럼 그 조건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무슨 열매인가? 성령의 열매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열매다. 우리는 참 하나님의 이스라엘,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증거와 결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거룩한 열매이다. 이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구원의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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