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1~4하나님영광을 위한 질병20220821
요11;1~4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3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20120821도곡교회 김백수목사 .................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요11;1~4말씀으로[하나님영광을 위한 질병]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가족 여러분!
하나님 사랑과 축복으로 지난 주간 충청권에 많은 비로 어려움은 당하지 아니하였는지요?
수도권에 8월 2째 주에 내린 비로 지하에서 교회를 시작하는 곳들이 많이 침수를 당하여 큰 어려움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기도로 그들이 이 어려움도 이기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로 힘을 보태어 주는 생활이 되어지길 원합니다.
우리들 기도가 그들에게 교회에 큰 힘이 되면 새롭게 시작하는 데 하나님 도움을 받아 능력으로 일어서는 교회가 되어지길 소망하며 소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말씀을 듣기 전에 성령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요11장은 질병으로 죽는 과정과 그리고 그 죽은 나사로를 죽음의 질병에서 고쳐 주시지 아니하고 죽어 장사지낸 후에 썩어져 가는 한줌의 흙으로 되어가는 모습을 주님께서 생명을 부여 하십니다.
인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공동묘지에서 찾아 오셔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며 살려 주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10장에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수전 절 절기에 즈음하여(요10:22) 유대인들과 변론을 끝내시고, 요단강 저편으로 가셔습니다. (요10:40)
요11장부터는 예루살렘 성 밖 베다니에 사는 친구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시고 그를 살리기 위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시면서 제자들과 대화하신 내용을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접하신 장소는 요단강 저편 베다니로써(요1:28)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곳이요(요10:40)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38km되는 지점입니다. 예루살렘 동쪽 5리 밖인 나사로의 동네도 베다니(18절)입니다. 또 요한이 세례 주던 곳도 베다니입니다.
1)1~6절은 소식을 듣고 이틀을 더 유하신 일입니다. 2)7~16절까지는 출발하실 때에 제자들과의 대화입니다. 3)17~37절까지는 마중 나온 마르다와의 대화입니다.
4)38-46절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의 이적을 말씀하십니다. 5)47-57절은 예수께서 많은 표적들을 행하심으로 인해 유대교 내에서 일어날 혼란을 우려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본격 적으로 예수님 살해를 모의 하고 그 계획을 진전시킨 사실을 기록하면 들려주십니다.
인생은 살아가는 순간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죽어 하나님나라 가는 것은 더욱 큰 은혜 받은 인간의 축복입니다. 우리들 달려가는 것이 주변 사람들을 살리면 전도자로 달려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 하늘나라에 이르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로 생명의 양식을 주십니다.
*첫째로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나사로라1~2
*둘째로 하나님영광을 위한 질병이라3-4
사랑하는 성도 가족 여러분!
요11장은 병으로 인하여 예수님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은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죄가 오지 아니하였으며 죽음을 모르는 인생들을 살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 질병 수고 모든 것이 죄로 인하여 왔습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고 고쳐 주시면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 사랑받던 가까운 나사로가 죽은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예수님을 사랑해도 우리들은 병으로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영원히 끝나는 것이 아닙다. 우리들은 죽음에서도 소망이 있습니다.
잠14;32말씀에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저 하늘나라 소망으로 이겨 나갑니다. 저 하늘나라 소망의 나라 복음 전도자로 죽음의 문 건너 저 하늘나라를 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한 죽음이 될 것이니 복음 안에서 우리들은 아파도 약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새 힘을 구하면서 생활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말씀에 이끌려 따라가면 성령님 감동으로 하나님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나사로라1~2
본문성경 요11;1-2말씀에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나사로가 죽을 수밖에 없는 질병에 들었음을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요단 동편에서 다시 유대지방으로 건너오신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요11;3-16).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이틀 동안 지체하신 후에 베다니를 향해 가시는 것을 봅니다.
이일은 특별한 목적을 지닌 일로 이렇게 하셨습니다. 죽어 4일째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때를 기다린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본문성경 요11;1말씀에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전 절에 예루살렘에서 당한 박해를 피하여 요단 강 동편에 계시던 예수께서는 베다니 마을에 사는 마리아의 집으로부터 그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으로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지금 중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오셔서 나사로 주님 사랑하는 아들을 고쳐주옵소서 간절함이 묻어있는 말을 전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죄로부터 오는 우리들 죽음의 신호가 육신의 아픔으로, 고통으로, 우리들 몸에 나타남으로 우리들도 죽음건너, 저 하늘나라를 기억하면, 생활하는 인생이 죽음이 오면 이 세상 떠나 예수님의 신부로서 저 하늘나라갈 수 있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저 하늘나라 우리들 본향 집을 생각하면 날마다 생활하는 축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릴 때는 나이가 먹는 것이 행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아니하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법칙으로 자동으로 나이를 먹습니다.
요사이는 나이로 인하여 피부가 노화현상이 나타나도 젊음을 유지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 육신이 늙어간다는 것은 언제든 죽음을 받아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세상에 아프지 아니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연세가 들어서 면역체계가 약화되어 병에 걸리면 치료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관심은 곧 질병과 죽음에 대한 관심입니다.
병과 죽음은 우리만의 관심사이지는 않습니다. 인간과 같이 똑같은 관심을 가지는 분이 계십니다.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신 것 중 에 어쩌면 반 이상이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만병을 치료하시는 의사로 찾아오셨습니다.
아플 때 우리만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아픔에 동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돌아보시는 분이십니다.
나사로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혼자 아프지 않습니다. 함께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누구 이야기입니까?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사로의 이야 기입니다.
마리아란 높다는 뜻입니다. 그의 언니였던 마르다는 여주인이란 뜻입니다. 베다니.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네입니다.
나사로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7가지 표적 중 마지막표적 이야기입니다. 이 표적 이야기는 긴요11장을 거쳐 12장 전반부까지 연결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도 병든 아픈 곳이 있습니다.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사로라는 사람이 병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가르침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이 땅에는 병들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병에 걸려 있는 사람입니다.
육신의 병만 병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분노라는 질병에 걸려 있습니다. 미움의 질병에 사로 잡혀버린 사람입니다. 자존심이라는 엄청난 병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경쟁심과 실력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병든 자입니다. 돈 떼어먹은 사람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누구나에게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본문성경 요11;2말씀에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마리아는 6사람이 신약에 나옵니다.
1)예수님의 모친(마1:20-21) 2) 글로바의 아내(19:25) 3) 막달라 마리아(막15:47) 4) 본절의 마리아 5)마가의 모친(행12:12) 6) 로마 성의 마리아(롬16:6)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주님 말씀을 즐겨 듣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12;1-8말씀에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헌신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장차 곧 다가올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했다는 주님의 칭찬을 들었던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죽어가는 나사로의 여동생들은 주님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나사로가 앓고 있는 병은 매우 치명적인 병으로서 위독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마리아는 눅10장에 보면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긴 일로 제자들에게 더 잘 알려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초청으로 그의 집에 들어갔을 때, 마리아는 예수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39절).
그때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여 예수님께 부탁을 드립니다.
눅10:39-42말씀에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확실히 예수님을 알고 그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면 말씀을 듣는 일에 주님 앞에 예배가 우선인 생활을 했습니다.
마르다와 같은 열심 있는 모습과 그리고 말씀을 듣는 일에 예배자로 열심을 회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가 아픈가요? 아픈 데를 몰라도 오늘도 우리들은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너도 나도 죽어가고 있는 것을 기억하면 생활하는지요?
나사로가 죽어갈 때 가족이 주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들도 죽어가는 나를 생각하면 영원한 영생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면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들이 되어지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영광을 위한 질병이라3-4
본문성경 요11;3-4말씀에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의 병을 인하여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이 4절에서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죽음으로 끝낼 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과 또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이 사건, 부활시키는 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든 이유와 목적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나사로의 병과 죽음은 욥의 고난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나타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 목적에 대응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성경 요11;3말씀에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사로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이었습니다. 누이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평소에 예수님께서는 그 가족들, 즉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우리 친구 나사로라고 부르십니다. 친구라는 헬라어(필로스)는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나사로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병들 수 있습니다. 아플 수 있습니다. 힘들 수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생활할 수 도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에 큰 어려움을 영적 육체적으로 마음으로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귀로만 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욥42;1-5말씀에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3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때로 우리가 지쳐 주님께 부르짖을 힘조차 없을 때도 먼저 다가와 도우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족 간에 사랑이 돈독한 사람들은 한 가족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면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도와줍니다.
또 우애가 돈독한 친구 사이는 친구가 곤란을 당하면 말하지 않아도 가서 기꺼이 도와줍니다. 주님과 성도 사이는 목자와 양 같은 사이입니다. 주님은 자기 양의 처지와 삶을 세밀하게 살피고 계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요10:3).
주님은 성도가 불행한 일을 당해 미처 구하지 못할지라도 돌보시고 구해 주십니다. 또 주님과 성도 사이는 친한 친구 같다고 주님은 증언하셨습니다.
요15:14-15말씀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큰 어려움을 만나 차마 간구조차 드릴 힘이 없을 때도 그 처지를 잘 아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힘이 되어 주십니다.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본문성경 요11;4말씀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소식을 들으시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말씀은 나사로가 그 병으로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그 병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사로가 죽어도 나사로를 다시 살릴 것을 의미하시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가 병드는 것도 구원운동을 위하여 필요하게 이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 전도자로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동물처럼 죽음으로 끝난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하여 자신이 십자가상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죽어도 사는 생명을 주시려 영생을 주시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상에 죽음으로 속죄의 구원을 이루신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처럼 죽으시고 삼일 후에 다시 부활 하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님은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도 살아도 예수님이요 죽어도 예수님 영광을 위하여 이 세상에 생활하는 것이 성도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운동에 유익 되게 하시려고 건강과 부요함도 주십니다. 또 질병과 궁핍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름이 같은 눅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는 거지입니다. 몸이 헌데를 앓아 개가 핥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믿음으로 부자의 업신여김을 받으면서도 먹지 못하며 주립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생활하며 부자 집에서 버린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으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오르지 먹어도 먹지 못하여도 그에게는 하늘나라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한분만이 그에게 위로 자가 되었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없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부럽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사로는 믿음을 지킴으로 이 세상 떠날 때 세상에서 알아주고 장례 지내주는 사람도 없이 가마니에 말아 뒷산에 누군가 묻어 주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천사의 환영과 주님의 위로로 하늘나라 들어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 부자는 보라듯이 호화로운 장례식을 치루어지만 그의 영혼은 지옥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눅16:19-23말씀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나사로라 이름 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21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23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축복으로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생활할 때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더 큰 축복으로 우리들이 꿈꾸지 못한 놀라운 축복으로 천국에서 우리들은 주님을 위하여 조금 수고 한 것을 갚아 주십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풍성한 축복으로 하늘나라 즐거움으로 갚아 주실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 위하여 복음 전도한 상급을 영원히 빛나는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자랑하고 나타냄으로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가족 여러분!
우리들에게 인생 마지막 죽음이 다쳐올 때 주님으로부터 위로받고 칭찬받는 삶을 살았노라 주님으로 인정받는 삶을 날마다 생활에서 준비하고 있는지요?
주님 앞에 설 때 잘했다 충성된 자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생활을 위하여 오늘도 충성된 전도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늘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나사로라1~2
*둘째로 하나님영광을 위한 질병이라3-4
사랑하는 성도 가족 여러분!
인간에게 질병이란 아무도 원하지 않는 비극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 비극이란 없습니다. 인간의 고통뿐만 아닙니다. 죽음, 그리고 피조물에게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영광을 위해서만 있습니다.
인간의 질병이나 죄악까지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위대한 승리와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간은 하루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은 우리들 삶 시간 생활을 주장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들 삶을 주님 뜻을 쫓아 생활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상속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요11;40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활할 때 주님은 이 세상에서 생활을 저 하늘나라에서 갚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대접하며 섬기기를 다할 때 나사로의 죽음은 하나님은 생명이요 능력인 것을 부활함으로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습니다. 우리들 삶이 복음을 전함으로 영광을 나낼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821도곡교회 김백수 목사
요11;1~4하나님영광을 위한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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