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신실한 신앙인의 부부로 살아봐요 = 민수기05;1-31(220904)

열려라 에바다 2022. 9. 5. 11:47
 한상원목사

신실한 신앙인의 부부로 살아봐요 = 민수기05;1-31(220904)


PW : 믿음 BIW : 서로 깊이 사랑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부부의 연을 서로서로 존중해 주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티베트 속담이 주는 교훈

티베트의 속담에 장수하며 잘사는 비결로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 먹는 것은 절반으로~
ⓑ 걷는 것은 두 배로~
ⓒ 웃는 것은 세 배로~
여행이 즐겁게 살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 짐이 가벼워야 한다.
ⓑ 동행자가 좋아야 한다.
ⓒ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여기 사는 동안 잠시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여행 간 호텔에서의 치약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는 줄을 알아야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없는 것이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 정답이 없다.
ⓑ 비밀이 없다.
ⓒ 공짜가 없다.
죽음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있는 것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
ⓑ 나 혼자서 죽는다.
ⓒ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모르는 것 3가지 있다고 합니다.
ⓐ 언제 죽을지 모른다.
ⓑ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답니다.
모든 사람이 출생하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지만, 그러나 죽는 방법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평가는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과 사랑에 감사드리는 마음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P4.

열 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하고 한 부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어가는 것 자체가 신비로운 일이요 모르는 것들 투성이지 않을까 싶다.
로마 시대에 유명한 로마 귀족의 귀부인이 유대인 랍비를 찾아와서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1주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지요. 그러면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에는 무엇을 하였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랍비는 “예.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혼인식 중매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귀부인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렇게 쉬운 것을 지금까지 하고 있단 말이요. 나는 하룻밤에 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기양양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랍비는 귀부인에게 “그러면 그렇게 해 보세요. 결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라고 하면서 귀부인을 돌려보낸다.
귀부인은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집에 있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 종들을 다 불러서 일렬로 서도록 한다.
그러면서 귀부인은 “오늘부터 너희들 앞에 있는 사람이 너의 남편이고, 너의 아내다. 너희는 오늘부터 부부가 되었으니 부부로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다음 날 아침에 큰 야단이 일어난 것이다.
“난 절대로 저 여자랑 살 수 없습니다.
난 절대로 저 남자를 남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이라고 하면서 여기저기서 난리 난리 난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귀부인은 다시 랍비를 찾아가서 ”정말 하나님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군요.“라고 했다고 한다.
귀부인은 자기가 말 한마디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부부는 그런다고 부부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모르는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부부로 맺어지고 한평생 부부로 회로하며 살아가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고, 기적같은 일이다.
우리 가족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은혜로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배우자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섬기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부간에 일어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라고 말씀하고 계실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말씀으로 들려주고 계시는 말씀일까?

D4.

① 너무나 매정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2-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경로로 부정하게 되었든지 하나님은 부정하게 된 사람은 이스라엘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말씀하신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부정하게 된 사람은 이스라엘 진영 안에서 거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부정한가? 정결한가? 하는 개념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신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결한가 부정한가에 초점을 맞추고 계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시고 온전하시고 완벽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상태인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추고 계신다.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제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사람은 정결한 상태라야만 가능하다.
아무리 권세와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상태가 되면 절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매정하게도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없도록 금지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거룩함, 정결함, 온전함을 세워나가기 위해서 부정한 자에게는 매정하게 진에서 떠나도록 하신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하시면서 수많은 병자들, 장애인들을 고쳐 주시는 치유의 사역을 감당하셨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시는 치유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질병과 장애와 허물들을 고쳐 주심으로 정결케 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최우선적인 목적으로 삼아서 치유의 사역을 감당하신 것이다.

② 진영에 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3절에서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 가운데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다.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 가운데 거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부정하게 되었든지 부정한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 진영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4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냈으니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을 세워주시면서 그 에덴동산에 거하셨다.
에덴동산에 거하신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성막에 거하시고, 성전에 거하신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 안에 거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우리 신앙인들과 함께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과 항상 함께 거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신앙인들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거하신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이유가 되었든 부정하게 된 자는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내보내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부정하게 된 사람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낸다.
내보내야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게 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보면 사랑하는 가족이요 친족이요 친구요 동료요 이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느끼고 감싸 안아야 하는 정(情)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③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6-7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본의든 아니든 하나님과 이웃들과 가족들에게 죄를 범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치고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죄를 범하지만, 서로서로 친분과 이웃이기 때문에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죄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눈꼽만큼의 죄도 용납이 되지 않고 숨겨지지 않고 모든 죄악들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죄를 자백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죄를 자백하였으면 자신이 자백한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갚으라고 말씀하신다.
만약에 그 죄에 대하여 갚을 대상이 생존하지 않는다면 그 대상을 대신하여 제사장에게 그에 대하여 배상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죄를 자복하기를 원하신다.
죄는 자복하면서부터 해결과 용서의 길이 열리게 된다.
죄를 자복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길이 점점 멀어져 간다.
죄인은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기를 원하신다.

④ 순결과 진정한 사랑을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2-15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탈선하여 남편에게 신의를 저버렸고, 한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였으나 그의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더럽혀졌거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으나 그 아내가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든지,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라고 말씀하신다.
남편이 볼 때, 자기와 결혼한 아내가 자기가 아닌 다른 남자와 간음을 행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 남성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흔히 바람을 피운다고 할 때, 아내가 더 많이 바람을 피울까? 남편이 바람을 더 많이 피울까?
바람을 피우려고 하면 쌍방이 있어야 바람을 피울 수 있다.
그러니 아내가 되었든, 남편이 되었든 바람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아내 쪽보다는 남편 쪽이 더 많이 바람을 피운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성경에서는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죄에 대하여 정죄하는 일이 흔치 않다.
유다와 다말의 관계에서도 보면 유다도 잘못이고, 다말도 잘못인데,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징계하라고 요구한다.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다말을 징계해야 한다면, 유다도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징계해야 합당하지 않을까?
다말은 남편을 잃은 사람이고, 유다는 아내를 잃은 사람이기 때문에 똑같은 입장이다.
그런데도 유다는 정죄를 당하지 않고, 다말은 정죄를 당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남편은 간음죄를 저질러도 봐주고, 아내는 실제로 간음죄를 범하지 않았는데도 간음죄를 범했다는 의심이 생기면 정죄를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체적으로 남성 중심 사회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인권이 인정받게 되는 것은 근현대사회에 와서야 인정받게 되었다.
3월8일은 국제여성의 날이라고 한다.
국제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IWD)는 1908년 15,000명의 여성이 노동시간 단축, 더 나은 급여, 투표권을 요구하며 미국 뉴욕을 행진하게 되었다.
1909년에 미국사회당에서 최초로 전국여성의 날을 선언하게 된다.
1910년 러시아의 공산주의운동가이면서 여성인권 옹호자인 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이 코펜하겐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제안하면서 제정하게 된다.
1911년에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에서 제정하면서 세계여성의 날이 되었다고 한다.
2022년은 세계여성의 날이 제정된 지 111년이 되는 해이다.
이처럼 여성의 인권은 20세기가 되어서야 주장하게 되었다.
20세기가 되기 전에는 여성이란 존재는 철저하게 남성에게 속해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나라만 혼인한 여성이 자기 본래 성과 이름이 그대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이다.
많은 나라와 민족에서 여성이 혼인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간다.
여성의 인권,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혼인한 여인이 자신의 성과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가장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여성이 혼인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간다.
21세기 최첨단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데 고고고고고대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여성은 태어나면서도 남성에게 속해 있는 존재로 인식하였다.
성경시대에는 여성이란 존재는 혼인하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혼인하면 남편에게 속해 있는 존재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분명히 남편이 더 많은 간음죄를 범할 수 있는데, 남편의 간음죄는 덮어두면서 아내의 간음죄만 다르고 있는 것이다.

ⓑ 왜 아내의 간음죄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러면 왜 아내의 간음죄만 다르고 있는 것일까?
성경 시대에 혼인은 오늘날처럼 서로 좋아하는 감정으로 혼인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전폭적으로 신랑 신부의 의사는 전혀 상관이 없이 양쪽 아버지들의 주관으로 혼인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양가의 아버지들은 아들과 딸을 서로 혼인을 시킴으로서 자신들의 세력 확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양쪽 아버지들의 주관으로 혼례가 이루어지지만, 혼인하여 사는 것은 아버지들이 사는 것이 아니라 아들딸들이 부부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버지들의 거래로 혼인한 부부간에 서로 잘 맞을 수도 있지만, 전혀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부부간에 서로 잘 맞으면 더 이상 문제가 없겠지만, 부부가 서로 맞지 않으면 많은 갈등과 문제점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는 것이다.
웬만하게 서로 맞으면 조금씩 서로 양보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겠지만,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구실을 찾으려고 상대의 허물을 찾는 것이다.
남편 쪽에서 아내의 허물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아내의 허물을 찾던 남편이 아내에게서 아주 약간의 이상한 점이라도 찾게 되면 그 작으마한 허물을 크게 부풀려서 행음이라는 죄, 간음이라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아내와 이혼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도 이혼하고 싶은 것이다.
배우자가 다른 남자와 간음을 행했다는 죄만 찾으면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다.
이혼증서를 써주면 이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행음이라는 죄, 간음이라는 죄를 뒤집어씌워서 이혼하여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 왜 이렇게 이혼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연유로 혼인을 했다고 하더라도 남편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가 지니고 있던 크고 작은 어떤 허물과 죄가 있더라도 다 덮고 용서할 수 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없는 죄와 허물도 만들고 조작하여 행음죄로, 간음죄로 낙인찍어서 이혼하려고 하는 것이다.

ⓓ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이런 인간의 악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행음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는 여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의심의 법을 만들어서 행음하지 않은 것이 밝혀지게 되면 남편은 더 이상 아내와 이혼하여 내쫓지 못하도록 막아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심의 법에 의해서 정죄당하던 여인이 외도하지 않고 순결을 지킨 것이 확증하게 되면 임신의 축복, 상급을 주시면서 더 이상 남편이 아내를 외도한 여인이라고 정죄하지 못하도록, 이혼당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지켜주는 법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의심의 법은 아내를 질책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순결을 지키고 있는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사실이다.
이 법을 제정하시는 하나님은 혼인한 부부는 서로 순결, 정조를 철저하게 지키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부부는 서로 서로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지시길 원하고 계신다.

B4 & L4.

남편의 못된 이기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감동을 주시면서 에베소서5:25-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도바울이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주시는 말씀에 비추어보면 신앙인의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①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은 바로 십자가 죽음의 사랑이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다 쏟아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신다.
그러니 남편이란 사람은 아내를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랑이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 어쩌면 생명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사랑을 한다면 아내가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연약함이나 부족함이나 허물이나 죄가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있을까?
그 어떤 연약함도, 부족함도, 못 생김도, 허물도, 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령 과거에 어떤 죄가 있더라도, 현재 죄악 가운데 있더라도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할 수 있고, 품어 줄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간을 사랑하시듯,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 아내가 어찌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남편을 저버리고 배반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 하나님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되, 주님께서 교회를 십자가 사랑으로 사랑해 주셨듯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② 남편은 자기 부모의 곁을 떠나서 아내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성경은 아내가 부모님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성경에서는 남편이 아버지, 부모님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남편이 부모님의 집을 떠나서 아내와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 부모님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아내에게 심한 부담감을 안겨주고 각종 잡동산이 문제로 갈등하면서 대립하는 것이다.
남편이 자기 부모님의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은 환경과 물질적으로 떠나는 것과 정서적으로 떠나는 것과 영적으로 떠나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한 몸을 이룸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家長)의 권위를 세우면서 가정의 제사장으로 자신의 가정을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남편이 부모님의 집을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한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우려고 하시는 계획을 성취해 나갈 수가 없다.
남편이 부모님의 집을 떠나서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어야만 남편을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성취되어가는 것이다.

③ 서로 사랑하고 존중히 여겨야 한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남녀가 혼인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한 몸,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다르고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생각과 태도와 자세와 인격과 신앙이 다를 수밖에 없다.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만이 맞는 것이고, 상대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은 틀린 것이라고 판정해 버리면 서로서로 갈등하게 되고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되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 주고, 남편이 자기 부모님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가정의 제사장권을 세워가기 위해서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해 주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남편이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가정의 제사장권을 감당하려고 하더라도, 아내가 전혀 동조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양 손바닥이 서로 부딪쳐야 박수 소리가 나듯이,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동조하고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만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는 가정을 세워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회복하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먼저 가정에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모두 9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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