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신앙인의 절개를 지키면서 살아요 = 민수기06;1-21(220911)

열려라 에바다 2022. 9. 8. 10:56

PW : 믿음 BIW : 절개를 지키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삼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절개를 굳건하게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베드로가 쉬는 날

 

천국 문에서 문을 지키던 베드로가 비번이라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새로 천국 문에 도착하는 무리를 체크하는 동안 매우 낯익은 노인이 앞에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요셉입니다.”

예수님은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직업은?…”

“목수인데…?”

예수님은 더욱 흥분되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죠?”

“예!…󰡓

“팔목과 무릎에 구멍이 뚫려 있죠?!”

“예!…”

예수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노인에게 다가갔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노인은 의아해하면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잠시 고개를 꺄우뚱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너..... 피노키오냐?”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추석 명절 잘 지내셨겠지요.

어떻게 웃든지 웃으면 좋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항상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웃음이 없는 성도는 문제가 많은 성도입니다.

우울증, 조울증, 원망, 불평, 짜증에 빠진 사람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셔서 웃을 수 있습니다.

웃으며 사는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P4.

 

나실인(Nazarite 또는 Nazirite)이란 용어는 히브리어 단어 나지르(נזיר)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거룩하게 되는” “분리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용어이다.

곧 나실인이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게 거룩함의 신분으로 구별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자기 스스로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서원하는 경우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렇지만 사사기에 등장하는 삼손인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나실인으로 지목하여 태어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블레셋 족속들로 인하여 압제를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사사로 세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나실인은 본인 스스로 서원하여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삼손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지목하여 나실인으로 세우시는 이들도 있다.

 

서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정기간 동안만 서원하여 그 기간 동안 나실인의 삶을 사는 서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일평생 온전하게 나실인의 삶을 살겠노라고 서원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서원한 사람들을 향하여 어떻게 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우리 신앙인들은 서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D4.

 

① 나실인의 삶을 살겠다고 서원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여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계신다.

곧 이 말씀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특별하게 자신을 나실인의 삶을 살겠노라고 서원하는 경우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역으로 읽어보면 하나님은 나실인의 삶을 살려고 서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셨다면 특별하게 서원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실인의 삶이 지켜야 할 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실인으로 서원하여 잘 지키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하게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서원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규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원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으신다.

특별하게 서원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은 삶의 모습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고 온전하고 정결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신앙인들이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답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인들이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살아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피눈물 나는 고난과 시련과 훈련의 시간을 보내면서 살아야만 기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뭇사람들에게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살점이 뚝뚝 찢겨나가는 채찍으로 39번 매를 맞고 침 뱉음을 당하면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뚜벅뚜벅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야만 겨우겨우 신앙인의 기본적인 삶이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특별하게 나실인으로 살아가겠노라고 서원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② 나실인의 규례를 정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게 나실인의 삶을 살겠노라고 서원한 이들이 지켜야 할 도리, 규례에 대하여 몇 가지를 정해 주고 계신다.

 

ⓐ 포도로 된 모든 것들과 독주를 멀리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3-4절에서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포도로 된 포도주나 씨나 껍질도 먹지 말아야 하고, 포도주로 만든 식초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건포도가 되었건, 요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생포도가 되었건 포도로 만들어지는 것들은 멀리하여 입에 대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신다.

아울러 하나님은 독주와 독주로 만든 식초도 먹지 말라고 하신다.

곧 하나님은 나실인으로 살겠다고 서원한 사람은 어떤 종류의 술이든 술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맥주는 괜찮지 않느냐?

포도주는 성만찬할 때 마셔야 하는 것이고, 유월절 만찬에도 마셔야 하기 때문에 포도주는 괜찮지 않느냐?

어떤 이들은 독주가 아닌 도수가 약한 술은 괜찮지 않느냐? 라고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실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하고 서원한 이들이라면 마땅히 어떤 종류의 술이든지 술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술이든지 그 술 하나를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결단하고 서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나실인으로 살겠노라고 서원한 사람이라면 먹는 음식이나 마시는 음료도 절제하여 가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포도 열매는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식물이다.

포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다.

그렇지만 나실인으로 서원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지구촌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과일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실인은 자신의 모든 감정도 절제하여 하나님 중심의 감정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삭도로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5절에서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머리카락이란 것은 몸에서 가장 위에 있는 부분으로서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의미한다.

나실인은 오직 하늘 아버지를 위해서 살아가겠노라고 결단하고 서원한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상징하는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블레셋의 들릴라 여인에 의해서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랐을 때, 그동안 삼손에게 임재하시던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잃어버린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쇠사슬로 결박당하고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노예 신세로 전락 당하고 만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삼손의 머리카락이 자랐을 때, 떠났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회복된다.

블레셋의 다곤 신전에서 삼손은 하나님을 향하여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라고 부르짖을 때, 다곤 신전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사사기16;30절에서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본래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상징하는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수염을 깎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서원하는 기간이 끝나거나 부정한 기간이 지나면 머리카락을 자르고 수염을 깎는다.

사도바울도 겐그레아에서 서원이 끝나서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말씀이 사도행전18;18에 등장한다.

사도행전18:18에서 보면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나실인으로 서원하여 사는 동안에는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 된다.

나실인으로 서원하여 사는 동안에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은혜로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원하는 기간이 끝나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다.

 

ⓒ 사체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6-8절에서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의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죽은 사체를 만지거나 건드리게 되면 부정하게 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특별히 나실인의 삶을 살겠노라고 서원하지 않더라도 죽은 사체를 만지거나 건드리게 되면 부정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느 누구나 죽은 사체를 만지거나 건드리게 되면 부정하게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람으로, 나실인으로 살겠다고 서원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죽은 사체로 인하여 부정하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 형제, 자매가 세상을 떠나는 일을 당했더라도 절대로 죽은 사체를 만지거나 건드림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나실인으로 사는 동안에는 부모, 형제, 자매와의 관계도 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하여, 하늘 아버지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감정이나 인정에 따라서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폭적으로 인간적인 감정이나 인정을 떠나서 오직 하늘 아버지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③ 나실인으로 살겠다고 서원했으면 반드시 지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9-12절에서 ”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면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일곱째 날에 밀 것이며,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 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말미암아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그 날에 그의 머리를 성결하게 할 것이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나실인의 삶을 살겠노라도 서원한 그 서원의 기간을 지키는 과정에서 나실인의 곁에서 누가 갑자기 죽게 되면서 죽은 사체를 만지게 되었다면 지금까지 지켜오던 모든 규례를 중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죽은 사체를 만지거나 건드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규례를 범한 꼴이 되어서 지금까지 서원하여 지켜온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에는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속죄제, 번제를 드리면서 죄를 속함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숫양으로 속건제를 드리면서 다시 서원의 기간을 정하여 지켜야 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만큼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실인의 삶을 살겠노라고 서원하지 않기를 원하시지만, 그래도 어떤 이들이 자신은 반드시 나실인의 삶을 살겠노라고 서원했다면 반드시 그 서원을 지켜야 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나실인의 규례를 지키는 과정에 일시적으로 부정하게 되면 지금까지 지켜온 모든 것들은 무효처리가 되고 다시 처음부터 나실인의 규례를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나실인으로 살겠다고 서원하였으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서 반드시 지키면서 살기를 원하신다.

일시적으로 부정케 되어 중단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반드시 지켜야 한다.

 

B4 & L4.

 

나실인의 삶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겠다. 라고 다짐하고 결단하고 서원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다짐하고 결단하고 서원한 그대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신앙인들이 나실인처럼 살아가는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경우와 처지가 된다 하더라도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고 순종하면서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온전하게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결단하고 서원했던 그 때의 마음을 끝까지 지니고 초심견인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란 존재는 주어진 상황과 처지와 여건에 따라서 쉽사리 바뀔 수 있다.

사회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을 소위 처세술이라는 미명 아래 아주 손쉽게 이리저리로 바뀌고 바꾸면서 살아가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신앙인의 삶이란 아무리 지혜롭게 사는 삶이라고 치장하더라도 신앙인의 곧은 절개(節介)와 신앙인의 지조를 지키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분명히 서쪽으로 가야 옳은 선택인데, 요즘 사람들은 ‘고리타분하게 왜 서쪽으로 가느냐? 이제 서쪽으로 가지 말고 동쪽으로 가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추세이지 않냐?’라고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쪽을 향하여 달려가더라도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려가는 동쪽행이 아니라 서쪽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는 삶을 나실인의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동쪽행을 선택하면 얻는 것도 많고, 많은 부분에서 유익한 것이 많을 수 있다.

반면에 서쪽행을 선택하여 서쪽방향으로 가면 그만큼 손해 보는 일들도 많고 안 좋은 일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파도처럼 밀려올 수도 있다.

그러더라도 신앙인의 삶, 나실인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서원했다면 비록 자신에게 손해 보는 일들, 불의를 당하는 일들, 좋지 않은 일들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해도 바보처럼 그 길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바보처럼 보이는 길을 선택하여 갈 수 있는 사람이 신앙인이 선택하여 가야만 되는 길이요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이란 존재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좋은 게 좋지 않냐?’ 하면서 인간적으로 판단하여 좋은 방향으로, 유익한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을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 주에 특별히 노아의 삶을 추앙하는 이들이 많다.

노아의 삶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동쪽행을 선택할 때 노아 혼자만 서쪽행을 선택하여 살아간 사람이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 대하여 창세기6:8-9에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어쩌면 노아의 형제, 자매, 친족들이 세상이 추구하는 삶을 따라서 살아갈 때 노아 혼자만 거꾸로, 반대 방향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 당시 노아의 삶은 성공자의 삶이었을까? 실패자, 낙오자의 삶이었을까?

그 당시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노아 한 사람만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성공자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노아의 삶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노아를 향하여 비아냥거리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협박하고...

이루 말할 수 없도록 처절하게 실패자의 삶, 낙오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노아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아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비우면서, ”야 이 정신 나간 사람아. 정신 차리고 살게나.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타령만 하면서 사나? 이렇게 살기 좋은데 어떻게 홍수로 심판한 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더 이상 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살게나.“하면서 비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달려가는 삶을 거역하고 반대방향으로, 거꾸로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님의 길이요, 하나님께서 추구하는 삶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신앙인의 절개를 굳건하게 지키면서 나실인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의 절개를 굳세게 지키고 순종하면서 나실인처럼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① 하나님 말씀이라는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신본주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결코 인본주의나 좌파 신앙인이 될 수 없다.

좌파는 신본주의보다는 인본주의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는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를 거역하고 인간의 욕망과 사탄의 욕구에 따라가면서 사탄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상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만들어놓은 사상들, 신학들, 철학들, 종교들, 문화들이 사탄의 욕구에 따라서 만들어진 인본주의 문화, 세상 신들의 문화의 범주에 속해 있는 것들이다.

소위 좌파 목사라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신앙 생활한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면서 성경을 자유롭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인본주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좌파들은 동성애를 인정하고, 수간을 인정하고, 각종 사회 이슈에 인본주의 사상, 공산사회주의 사상으로 공조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도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이단들도 기본적으로 성경을 기준으로 신앙 생활한다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이슬람교도 모세5경을 따른다.

로마카토릭교회도 성경을 활용한다.

그러니 성경을 활용한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성경을 자기들 입맛에 맞도록 난도질하여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성경에 대하여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절대불변의 원칙임을 확신해야 한다.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바뀔 수 없는 절대적인 불변성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세상의 그 어떤 사상과도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임을 확언하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매일매일 굳건한 신앙인의 절개를 지키면서 살겠노라고 결단하고 선포해야 한다.

 

신앙인의 절개는 시대와 문명 문화와 지역과 민족에 따라서 적당하게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오직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충성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믿음으로 살겠노라고 결단하고 결단하고 결단하고 결단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비록 결단하여 곧 잃어버리거나 지키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결단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신앙인의 절개, 나실인의 절개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숟가락에 배 부르지 않는 법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인고의 시간을 가지고 처음에 다짐하고 결단하고 서원했던 그 첫 마음을 끝까지 지키면서 초심견인 하는 신앙인의 자세로 살아가다 보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의 절개를 지키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신앙인의 절개를 굳건하게 지키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시기를 소망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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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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