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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사본

열려라 에바다 2022. 9. 15. 15:01

 

성경사본         

1) 성경의 원본과 사본

① 성경의 원본은 유실되고 현재는 필사한 사본만 남아 있지만, 수많은 필사본들이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하늘로부터 계시된 성경의 원본이 확실히 존재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초대교회에서는 자필 원본의 문서 자체보다 정확하게 전해진 말씀 자체에 더 가치를 두었다. 성경의 원본들은 오토그래프(Autograph)라고 부르고 사본들을 애퍼그래프(Apograph)라고 부른다. 성경을 복사하여 사본을 만들 때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했다. 처음에는 제사장들이 이 일에 종사하게 되어 있었다.
신 17: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② 후에는 서기관들이 이 일을 맡았다.
렘 8:8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서기관들은 오로지 성경만을 그대로 필사하는 전문가들이었다. 사본 성경의 수요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서기관들의 수도 많아지고, 또 성경의 필사가 전문화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일도 서기관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③ 성경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은 19가지의 엄격한 규정을 따랐다. 양피지는 유대인이 만든 정결한 동물의 가죽만 사용할 것, 각 가죽종이는 같은 수의 단(段)으로 구분할 것, 한 단에는 48~60의 줄을 가질 것, 먹(墨)은 특별하게 제조한 검은 먹만 사용할 것, 글자나 단어를 기억으로 기록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인증된 사본을 보고 기록할 것 등이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야훼’나 “엘로힘”을 기록할 때에는 매번 펜을 경건하게 닦고 기록해야 했으며, 실수가 하나 생긴 경우에는 그 장(章)을 폐기해야 했다. 또 성경을 필사하는 중에는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말아야 하며, 왕이 들어와도 쳐다보지 말아야 했다. 그들의 필사 규정과 방법은 치밀했고, 필사자에 대한 감독도 엄격했다. 다음은 어느 랍비가 성경 필사자에게 엄중히 경고한 내용이다.
“너는 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주의하라. 네 일은 하늘의 일이다. 사본에서 철자 하나를 빼거나 더하면 너는 세상의 파괴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철저한 규칙 속에서 복사했기 때문에 사해 사본이나 마소라 사본의 기록이 똑같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2) 성경의 보존


① 성경의 원본은 가장 조심스럽게 보관되었다. 모세가 기록한 오경은 제사장들에 의해 지성소의 법궤 옆에 안치되었다.
신 31:24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26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수 24:26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취하여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고
삼상 10:25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② 성막이 없어지고 성전이 세워졌을 때에는 성경의 원본들이 성전으로 옮겨졌다.
왕하 22:8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성경 원본들을 법궤 옆에 보관한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는 기록된 두루마리 책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되고, 세상의 다른 책들과 거룩히 분리시켜 놓음을 의미했다.


3) 70인역(LXX, Septuaginta)


① 전승에 의하면 BC 250년경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 2세의 명령에 따라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소위 “70인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가 70인역의 존재에 대한 유일한 증거물인데, BC 250년 전후로 구약성경 전체를 번역한 그리스어 필사본은 현재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역사에도 그런 기록은 전무하다고 한다. 70인역의 작업에 참여한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별되었다고 전해지나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다. 유대인 중 성경 기록을 담당한 책임자는 레위 지파였기 때문이다.
신 17: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신 31:24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26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말 2:7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② 70인역 구약성경에는, 450년 이후에 정착된 히브리 성경 마소라 본문(Massoretic Texts)에 없는 경전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외경(apocrypha)이라고 부른다. 또 70인역에는 마소라 본문보다 분량이 적은 책도 포함되어 있는데, 70인역의 예레미야서는 마소라 본문의 예레미야서보다 1/8이 적다. 70인역은 로마 카톨릭의 성경에 큰 영향을 주었고, 개신교에서는 정경의 범위에서는 마소라 본문을, 책 배열 방식에서는 70인역을 따르고 있다.


4) 마소라 사본(Masoretic text)


① 고대 유대인들은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글을 썼으며, 구약 성경의 내용을 거의 암기하여 그것을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어는 점차 잊혀지게 되었고, 대신 아람어가 통용되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낭독했는데, 히브리어가 점차 사어(死語)가 되어가자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와 예언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7세기부터 자음만 있던 히브리어에 모음을 달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을 주도한 유대인 학자들을 “마소라”라 불렀고, 그들에 의해서 모음이 붙여진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마소라 사본”이라 부른다. 마소라는 “전통” 혹은 “말을 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마사르” 에서 나왔다.


② 마소라인들의 목적은 어떠한 상황 아래에서도 구약 성경의 순결성을 보호, 보존, 전수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는 표준화된 히브리어 사본을 갖게 되었다. 10세기 말에 마소라 학자들이 사용한 본문의 기원은 AD 1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들이 만든 사본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가 900년경에 표준이 정해졌다. 마소라 사본 중 11세기(AD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은 히브리어로 구약성서의 본문을 모두 담고 있는 사본으로, 1세기 말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히브리어 성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사본은 완전한 히브리어 성서의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현재 레닌그라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사해 사본이 생겨난 지 1,100년이나 지난 시기에 필사된 것이지만, 원문에 훨씬 더 가깝게 필사되었다는 것이 사본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③ 1940년대까지만 해도 구약 성경의 가장 오래된 번역 사본은 AD 900년경의 마소라 사본(Masoretic Text)이었으므로, 구약 성경의 정확도에 대해 의혹을 가지는 학자들이 있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BC 400년 경에 기록되었고, 마소라 사본은 그로부터 1300년이나 지난 후에 쓰여진 사본이므로 사본의 정확도를 의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친히 지키신다고 말씀하셨다.
눅 21:33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1947년 쿰란 동굴에서 사해 사본이 발견됨으로써 이러한 의혹은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


5) 사해사본(Dead Sea Scrolls, DSS)


① “사해문서(死海文書), 사해 두루마리, 쿰란사본” 등의 명칭으로도 불린다. 이 문서는 히브리어 성경을 포함한 900여편의 다양한 종교적인 문서들을 아우른다. 1947년에서 1956년경까지 사해 서쪽 둑에 있는 와디 쿰란 (사해의 북서쪽 해변에 있는 고대 키르벳 쿰란 근처) 주변과 11개의 동굴들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의 연대는 기원후 100년 이내로 올라가기 때문에 엄청난 종교적, 역사적 가치가 있다. 현재 대부분의 문서는 예루살렘의 지혜의 신전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② 이 두루마리들은 여러 골동품 상인들의 손을 거쳐서 4개는 시리아의 예루살렘정교회 대주교인 마르아타나시우스 사무엘이 샀으며, 3개는 베들레헴의 아랍 상인을 통해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수케닉(Sukenik) 교수가 구입했다. 1953년 수케닉 교수가 사망한 후,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을 지낸 그의 아들 야딘(Yadin)이 교수이자 고고학자가 되어 1954년에 사무엘 대주교에게서 두루마리 4개를 사들였다. 그리고 1967년에 두루마리 1개를 추가로 구입하여 사해 사본 두루마리를 모두 8개 보유했다.


③ 현재 그 두루마리들은 이스라엘 국립박물관 성서의 전당에 보존되어 있다. 탄소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조사 결과, 사해 두루마리들은 BC 168년에서 AD 233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본들 중 이사야서 두루마리의 일부분을 35mm 필름에 복사하여 유명한 히브리 고고학자이며 고대 셈어의 최고 권위자인 존홉킨스 대학교의 윌리암 알브라이트(Willim F. Albright, 1891~1971) 박사에게 보냈는데, 알브라이트 박사는 연구 결과 이 사본이 BC 150년경에 기록된 구약 성경의 사본이라고 밝혔다. 이 사본이 질그릇 항아리 속에서 약 2000년 이상 보관되었음에도 썩거나 많이 훼손되지 않은 것은 사해 주변의 건조한 기후의 영향 때문이었다.


④ 지금까지 발견된 성경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쿰란에서 발견된 < 사해 사본 >이다. 사해 사본은 BC 2세기~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사해 사본의 중요성은 발견된 후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 남아 있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사본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AD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AD 10세기에 필사된 이 사본들이 예수님 당시에 사용되었던 성경과 같은 것이라고 증명하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사해 사본이 발견됨으로써 우리가 보고 있는 구약 성경이 예수님 당시의 성경과 같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⑤ < 사해 사본 >은 말라기가 기록되고 불과 30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에 필사된 것이다. < 마소라 사본 >은 말라기 기록 후 1300여 년이나 지나서 필사되었다며 그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에게 사해 사본의 발견은 그 공백기를 1000여 년이나 줄여놓은 것이다. 사해 사본과 1000여 년 후에 만들어진 마소라 사본, 이 두 사본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본 결과 놀랍게도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소라 사본은 사해 사본과 똑같은 성경이고, 그 이전 성경의 원본과도 똑같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해 사본으로 인하여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과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용하시던 성경이 동일하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모세와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성경과 똑같은 성경인 것이다.


⑥ 서기관들이 엄격한 규칙을 좇아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필사했기 때문에 사해 사본이나 마소라 사본의 내용이 똑같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구약 성경을 지켜왔고, 신약 시대에도 왈도파(派)나 틴데일 등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전해주기 위해 많은 고난과 희생을 감내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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