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하나님께와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시편 107편 1-22절)

열려라 에바다 2022. 11. 21. 19:27

하나님께와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시편 107편 1-22절)백대영 목사

 

행복은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나의 것이 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 마음에 정말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행복을 잡을 수 있으며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을 통하여서만 들어옵니다.1)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를 제물로 바치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겠고, 그가 길을 놓았으며 내가 그에게 하나님의 구조 안에 보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풍성한 감사를 표현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2) 하나님을 높여 중하게 대하는 방법이 감사를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감사를 제물로 바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조를 보이십니다.
 
 
1. 우리는 모든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여야만 합니다.
 
시편 9편 1절에 “모든 나의 마음으로 감사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모든 마음으로 곧 “전심으로” 감사하겠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나뉘어 일부분은 여기에 일부분은 저기에 있기 쉽습니다. 시인은 그의 마음의 조각이 아닌 모든 마음으로 감사하겠다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다윗처럼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시편 116편 17-19절에 “내가 감사의 제물을 제물로 도살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서약들을 야훼께 모든 그의 백성에 맞은편에서 완성하겠으며. 야훼의 집의 안뜰들 안에 예루살렘아 너의 중앙 안에,”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감사의 습성으로 습관적으로 “thank you”라고 합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욱 감사할 일이 많아집니다.
찬송가 429장의 가사를 보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복들을 기억하지 않아서 그렇지, 받은 복을 세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크신 복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편 97편 12절에 “올바른 자들아 너희는 야훼 안에 기뻐하고, 너희는 그의 성별의 기억에게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기억”은 종종 “이름”과 동의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한 사람들에게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유익한 이유는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3) 사이가 좋아지기 때문입니다.4)
감사가 우리에게 유익한 이유는 건강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5) 감사는 잠과 신체 운동 같은 건강 증진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6)
감사는 삶에서 주변 사람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감사는 일과 학문 등 삶의 여러 영역에 성공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감사가 주는 지지 관계는 자기 계발 노력에 큰 동기를 주게 됩니다. 감사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겸손한 감정의 빈도를 증가시킵니다.7)
감사는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켜서 건강과 안녕에도 도움을 줍니다. 감사는 절제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감사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오랜 시간 인내하며 자리를 지켰습니다.8)
그간의 연구는 여자가 남자보다 감사를 더욱더 느낀다고 말합니다. 일상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감사를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9) 남자는 약함을 드러내기 싫어하기 때문에 감사 표현이 어렵습니다.10)
시편 138편 1절에 “전심으로 감사하며 신(god)들 앞에 연주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물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에게 감사하여야 합니다. 감사를 잘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감사하는 내용을 말합니다.11) “전부 감사하다”가 아니라 “요리에 감사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며,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감사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직장과 건강을 잃었어도 감사하고 퇴직하게 되었어도 감사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죽음 앞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2) 소리 내어 감사하다고 말할 때에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합니다.13)
받으면서 감사 감정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빚진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보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적은 이런 빛 졌다는 부채 의식입니다. 부채 의식을 지닌 자는 보답 염려로 부정적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14)
동아시아 문화는 선물 받을 때에 부채 의식을 느낄 가능성이 더 큰데, 동아시아 문화가 그만큼 상호성에다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감사도 타인과 자신의 인간관계에다가 초점을 맞추어야만 합니다.15)
다른 사람에게 줄 때에는 조건을 달지 말고 값없이 주어야 합니다.16)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까 나중에 이만큼 받아야지’라는 마음으로 아니며 돌려받을 생각 없이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기쁨에 마음을 열 때에 참된 감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기를 때에 감사는 커지고 부채 의식은 줄게 됩니다.17)
조건 없이 나누는 기쁨에 마음을 여는 법을 실천해 보아야 합니다.18) 상대가 밥값을 내겠다는데도 기어코 자기가 돈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가 호의를 베풀 때 그 호의를 받을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한 것입니다.
시인은 주의 자비와 진리에 감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시 138:2).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힘듭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38편은 우리가 전심으로 감사하여야 할 이유를 가르칩니다.19)
시편 138편 7-8절에 “내가 고난의 내부에 가면 나를 살게 하시겠으며 나의 적들의 노염에 당신의 손을 보내시고 당신의 오른손이 구원합니다. 야훼께서는 나를 위하여 완성하실(perfect) 것이라 야훼여 당신의 자비가 영원에 지속하며(endures forever) 당신의 손의 작품들을 가라앉게 만들지 마실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고난의 내부에 가도 그가 나를 살게 하시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 손을 보내시고 그의 오른손이 구원하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20)
하나님께서 나에 관계되는 것을 완성하실 것이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 손의 작품들을 가라앉게 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시 138:8).21)
나의 약한 믿음, 인격, 가족, 친구, 비전, 계획, 나아가 나의 죽음까지 하나님께서는 나와 관계되는 모든 것을 완성하실 것입니다.22)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23)
 
 
2. 우리는 감사로 하나님의 성문들에 들어갑니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로 그 성문에 들어가며 찬양으로 그 안뜰들에,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에 송축하라”고 하였습니다.
강도를 만났는데 한 사람은 감사하고 한 사람은 원망하였다고 합니다. 감사한 사람은 지난 50년 동안 강도를 만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 반면에, 원망한 사람은 왜 여행 때에 지켜 주지 않으셨냐며 원망하였답니다. 감사한 사람은 돈은 빼앗겼어도 생명은 안 빼앗겼음에 감사한 반면에, 원망한 사람은 무슨 돈으로 남은 여행을 하느냐며 원망하였답니다.24)
같은 상황 속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경우를 당하여도 감사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25)
하박국 3장 17-19절에 “이는 무화과나무가 싹트지 아니하고 그 포도나무들에 산물이 없어지며 올리브나무의 제작품이 실패하였으며 밭에 양식이 없고 우리에서 양떼를 끊어 버렸고 외양간 안에 소가 없고. 나는 야훼 안에 기뻐하겠으며 나의 구조의 하나님 안에 즐거워하겠노라. 야훼께서는 나의 재력이시고 그가 나의 발을 그 암 사슴들처럼 놓으시고 그가 나의 높은 곳들 위에 나를 나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 안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조의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합 3:18).
크리스천들은 직장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26)
학생의 경우 누군가가 자신과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있음을 아는 때에 자기 계발하려는 동기부여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도우면 나에게 ‘유익’이므로 감사하여야 합니다.27)
사람들이 가장 조금 감사하고 적게 감사를 표현하는 곳이 직장입니다. 하지만 “감사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직장 생활이 더욱 즐거워집니다.28) 사장이나 상사도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하여야 합니다.29) 시원이나 직원도 사장이나 상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었음을 수긍하는 것입니다. 그 도움으로 나의 삶이 어떻게 좋게 되었는지 알 때에 감사입니다.30)
풍성한 감사 기회를 마련하여야 합니다. 위기가 지나간 후에 감사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31)
감사는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생존 기술입니다.32) 감사하는 사람이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 탄력성이 더욱 높습니다.33)
역대상 16장 8절에 “너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 안에 부르라 너희는 그의 행위들을 그 백성들 안에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평행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감사로써 하나님의 성문들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시 100:4).
역대상 16장 36절에 “‘하나님께서 송축함을 받으시노라’라고 하였으며 모든 그 백성이 ‘아멘’이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찬양하기에.”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말하였기를, ‘하나님께서 송축함을 받으시노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다윗의 송축에 화답하여서 ‘아멘’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칭찬하였습니다. 이렇게 송축은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을 생각해 그 복의 출처가 하나님이시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기리고 칭송(稱頌)하는 것이 “송축(頌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아멘”이라고 말하며 감사하여야 합니다.34) “아멘”은 하나님을 송축함에 그들이 “그렇다”고 동의하였음을 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송축함에 “아멘”이라고 동의를 말하고 찬양하였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감사의 감격이 있을 때에 감격하는 만큼 행복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35)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영화의 이름에 찬양합니다(대상 29:13). 다윗은 자신과 그의 백성이 누구기에 기꺼이 능력이 있었는지 물었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에서고 그의 손에서 그들이 드렸음입니다(대상 29:14).
모든 것이 하나님에서 있고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드리며(대상 29:14), 우리에게 하나님께 드릴 능력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력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신 8:18).
재산은 약탈을 받을 수 있고 약탈할 수 있습니다(창 34:29, 민 31:9). 우리의 손의 힘이 재산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신 8:17). 재산을 만들 수 있는 능력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신 8:18). 따라서 나의 능력으로 재력을(70인경, 능력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질이 많은 것은 “풍부”입니다. 많은 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있는 복입니다(창 17:4-5, 대상 29:16). “풍부”는 하나님의 손으로부터고 모두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다윗은 마음을 검사하시는 하나님께 그 마음의 똑바름으로 바쳤습니다.
시편 136편 1-3절에 “너희는 야훼께 감사하라 이는 좋으심이니,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 지속함이라(endures forever). 너희는 신(god)들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 너희는 주들의 주(Lord)께 감사하라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라고 하였습니다.
감사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좋은 분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시 100:5). 이것은 시편 106편, 107편, 118편의 시작과 136편의 시작에도 나옵니다. 야훼께서 좋으심은 그의 자비가 영원히 지속하기 때문입니다(시 136:1).
속 썩이는 가족이 있다면, 걸림돌이 아니고 디딤돌입니다. 나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고 고맙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36)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꼬투리잡기보다 고맙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 에너지는 참으로 좋은 에너지입니다. 가족을 감사와 사랑으로 대하여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했냐고 지적하기보다는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습관이 형성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어렵습니다.37)
그러나 우리는 의도적으로 “고맙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여야 하며,38) 하루에도 가능한 많이 감사로 씨를 뿌리면, 감사의 열매는 클 것입니다.
상대방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고 인식합니다실업이 심각한 요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도 고맙습니다.39)
“고맙다”는 순 우리말이고, “감사하다”는 한자라는 점이 다릅니다. 우리가 “고맙다”고 말하면 그렇게 말하는 때에 기분도 좋아집니다. 또한 그 가정이 변하고 그 직장이 변하고 그 자신이 변하게 됩니다.40) “고맙다”는 말의 큰 혜택은 고맙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감정도 습관입니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감사하여 감사의 감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41) 감사의 감정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습관처럼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의 감정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감사거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감사”라는 감정도 경험하여 보아야만 비로소 눈을 뜨는 것입니다. 감사의 감정에 눈을 뜨면, 감사거리가 차츰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몰랐던 감사거리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42)
우리에게는 삶 가운데에서 고마움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43)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받은 복을 세어 보면 주의 크신 복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받은 복을 세어 보라”라는 찬송가도 있습니다(찬송가 429장). 상대방에게 받은 것들을 세어 보면, 우리가 많이 받았음을 알 것입니다.
이제 “때문에”라는 말 대신 “덕분에”라는 말을 쓸 것을 결심합시다!44) “당신 때문에”라고 말하지 말고 “당신 덕분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 처소가 있어서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45) 대면 예배가 금지되었었는데 함께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니 좋으신 까닭입니다.
 
본문 107편 1절에 “너희는 야훼께 감사하라 이는 좋으심이니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되사신 되삼을 받은 자들은 이야기할 것입니다(시 107:2).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되사셔서 해방시키셨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된 자들이 그에게 감사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이집트의 포로로 전락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되사셔서 해방시키셨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된 자들이 그에게 감사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감사 결핍증은 감사가 모자라서 그 영혼이 죽어 가는 증세입니다. 감사 결핍증은 행복하여야 하는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게 됩니다.46)
많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야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지만 무사고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생활이 더욱더 감사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이 사는 매일의 삶을 감사하여야만 합니다.47)
본문 107편 3절에 “그가 그들을 동서남북으로부터 소집하셨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의 동서남북에 흩어진 자들을 소집하셔서 가나안으로 이끄시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된 자들이 그에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노동으로부터 탄식하고 소리쳤습니다(출 2:23). 이에 그들의 도움을 위한 외침(cry)이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그들이 고생 중에 소리친 때에 그 곤경에서 구원하셨습니다(시 107:13).
그가 그들을 암흑과 사망의 그늘로부터 나오게 하셨고, 그들의 속박(band)들을 끊으셨습니다(시 107:14).
그런데 이런 일이 그들에게만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암흑과 사망의 왕국에서 나올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며 드리는 우리의 감사를 매우 기뻐하십니다.48) 만족스러울 때의 감사도 값지지만 고통스러울 때의 감사는 더 값집니다.
본문 107편 22절에 “감사의 희생 제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게 하시고, 그의 행위들을 고함(song)에 이야기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의 감사 예배와 감사 예물을 즐거워하십니다.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닫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49)
출애굽기 25장 2절에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나에게 헌물을 취하나니, 그 마음이 기꺼이 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너희는 헌물을 취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치는 물건인 “헌물(獻物)”은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드립니다.50)
 
 
구원영생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및 사람들을 향한 감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1)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복을 생각하고 세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니까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분이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 분이시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좋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지금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 처하여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좋게 만드실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범한 어떤 잘못으로 지금 징벌을 받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그 징벌조차도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때릴 때에 맞는 순간은 아프지만 맞는 것이 유익하듯이 하나님의 징벌도 결국은 인생을 돌아보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맞을 때에는 고통스럽고 아파도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며 살아서 징벌을 안 받고 평화롭게 산다면 더 복이겠지만 과거의 잘못으로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고통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아니고 다른 집 아이면, 잘못하든 말든 상관이 있겠습니까? 내 아이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범하는 삶을 살았는데 아무 일 없고 하나님께서 벌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벌하실 때에 그 자체가 복이고 감사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픔 중에도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사하여야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감사하고 사장에게 감사하고 직원에게도 감사하고 또 가정에서 부부 사이에 감사하고 자녀에게도 감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3) 우리의 자녀들은 감사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학업 성취도 중요하나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공부 잘해서 서울대학교에 가면 무엇인 것입니까? 온갖 나쁜 짓을 일삼으며 법관이 되어서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만들면 저주 받은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 서울대학교를 못 갈지라도 바른 인품을 지니고 감사할 수 있는 자녀들로 길러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일요일에 학원에 출석하여 열심히 공부하느라고 교회에 안 나오고 예배도 안 드리고 좋은 대학교 가면 무엇인 것입니까? 그런 사람으로 키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많이 배워서 서울대학교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그 아이에게 진정으로 복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일요일에 예배하느라 학원에 가지 못하고 공부하지 못해서, 그것 때문에 서울대학교에 가지 못해도 그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자녀들도 감사하는 자녀들로 기르는 복된 구원영생교회 성도들이 다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