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추수감사] 영광 돌리는 감사 (눅 17:11-19)

열려라 에바다 2022. 11. 21. 19:20

영광을 돌리는 감사 (눅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이 시간에 “영광을 돌리는 감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올해도 추수감사로 영광 돌릴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립니다. 올해 큰 태풍으로 벼의 꽃눈이 많이 떨어졌지만 우리 예측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좋은 일기를 주셔서 풍작을 거뒀습니다. 풍작이든 흉작이든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만 가지면 언제나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더욱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의 은혜로 다 나음을 얻었지만 하나님께 감사로서 영광을 돌린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죄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더 깊은 은혜 안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벧전1:8-9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한 그 감격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마리아인처럼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 감사해서 더욱 감사로서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로서 큰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1. 우리를 불러주신 은혜가 크시기 때문입니다.

 

11-13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신 이 사실은 귀한 복음입니다.

 

원래 유대인은 사마리아 길은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B.C.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고 포로로 잡힐 때 앗수르는 반란 없는 통합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혼혈정책을 썼습니다. 그 결과 인종도 뒤죽박죽, 신앙도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하고 그 지방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마리아 길로 가셨습니다. 그것만도 은혜인데 가시다가 나병환자들이 모여 사는 한 마을에 들리셨습니다. 레13:45-46에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었습니다.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몸은 다 뭉그러진데다가 옷을 찢고 머리까지 푼 그 모습이 얼마나 흉측합니까? 보는 이로 하여금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가까우면 접근하지 못하도록 환자가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오지 말라 외쳤습니다. 이런 마을에 구세주가 들리셨다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처럼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택해 주시고 불러 주셔서 예수 믿어 구원 받게 해주신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누구라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구원해 주시다니... 우리보다 선하고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걸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엡1:3-6에서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찬양했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면서 더 큰 은혜, 더 큰 능력, 더 큰 축복, 더 큰 건강, 그러나 택하시고 불러주신 이 큰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면 다른 무엇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합3:17-18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한 하박국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13-14절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께서는 소리 높여 부르짖는 나환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레 13장을 보면 나병의 진단을 제사장이 했습니다. 치유됐을 때도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래서 완치판정을 받으면 집으로 돌아가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신 것은 치료의 말씀을 믿고 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위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도착하기도 전에 놀라운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성경에서 나병은 죄의 상징입니다. 이처럼 죄에 대한 구원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마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했습니다. 롬1:17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이신득의 교리라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하여 이신득구라고도 합니다.

 

믿음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니 맘대로 살아도 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어찌 맘대로 삽니까? 롬6:2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했습니다. 가상적 구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완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2:40)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의 주로 믿어 영접했다면 예수님의 의가 내 의로움이고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공로로 죄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사탄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사탄 앞에서는 나는 예수 안의 승리자라고 믿으면서도 죄 앞에서는 예수 안에서 의인이라고 왜 믿지 못합니까? 방법은 똑 같습니다. 칭의를 넘어 성화의 은혜를 누리는 길입니다.

 

고전15:1-2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 가까워질수록 치유를 체험했듯 우리가 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 마땅히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15-19절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나환자 열 명이 믿고 순종하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만 감사하러 오고 나머지 아홉은 각각 제 갈 길로 흩어졌습니다. 그동안 격리 되어 만나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의 그리움이 더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3번이나 물으심에서 그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깊이 나타납니다.

 

미시간 주에 풍랑이 일어나서 배 한 척이 파선되어 승객들이 죽어갈 때 한 수영선수가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가서 23명이나 구조했는데 토레이 목사가 강단에서 그 때 일을 이야기했더니 예배 후 한 노인이 찾아와 “제가 바로 그 청년입니다.” 그래서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데 슬픈 사실은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답니다. 성탄카드 한 장도 받지 못했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서운하다면 하나님도 서운하십니다. 시50:22-23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그러면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기쁨이 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을 기쁘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 나병환자입니다. 심령이 고달프고 찢어지고 만신창이가 되었다면 하나님을 멀리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다면서도 그 은혜를 믿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늘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사마리아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우리를 택하여 주심을 감사하고 구원해 주심을 감사하고 기쁨을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날마다 영육 간의 치료의 은총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