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어찌 되었든...
진리를 알려면 분명히 성경은 읽어야 하며,
성경을 통하여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어디론가 가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이 성경에 너무 자세히 나와 있기에, 무조건 성경을
읽어야 모든 의문이 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노라 하면서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법도 모르고 농사를 짓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복음이며...
복음은 주님의 말씀이고, 주님의 말씀은 곧, 주님 그 자체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요한복음 1장 1-4절)
위 말씀으로 진리는 빛으로 이 땅에 다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마귀에게 속아 어둠 속에 살던 이 땅의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이끌어내어 살리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인 성경을 어찌 대하고 있습니까...
항아리 속에 물만 계속 붓듯 성경 내용을 머릿속에만 계속 입력하고
있습니까? 또 그것을 믿음이라고 굳게 자부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믿음이 아니라, 성경 정보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맹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어야 포도주인 것입니다.
성경을 그런 식으로 대하면, 평생 마귀에 의해 왜곡된 어둠의 진리에
속아 살다가,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에만 성경 정보를 백번 천번 넣어서는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머리로만 들어가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지 않고 바리새인으로
진화되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의 두뇌 시스템만 계속 업그레이드 시켜,
이론만 난무하는 노련한 성경 이론가로 스스로 만들어갈 뿐입니다.
하여, 바리새인들처럼 높아져서,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누가 더 낫나
논쟁만 벌이며, 자기 자신이 아닌, 남들에게만 성경 말씀을 적용하여
정죄 판단의 악한 도구로만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이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들어가면, 단 한 구절을 취해도
심령의 골수를 쪼개고 들어와 내 영혼육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그게 복음의 위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장 12절)
복음은 머리만 변화시키려고 주신 게 아닙니다.
복음은 반드시 심장으로 받아야 내 영과 혼과 육 모든 것을 변화시켜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에 합당한 빛과 소금으로 살 게 됩니다.
그것이 복음의 영향으로 인한 영혼육의 전격 변화입니다.
왜냐하면 영이 깨어나야, 연쇄반응으로 영의 지배를 받는 혼(생각)이
바뀌고, 또한 혼의 지배를 받는 행위, 즉 삶이 거룩하게 바뀌도록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영계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머리로만 들어가면... 연쇄 반응이 없기에
머리에만 계속 머물러
영이 깨어나지 않음으로, 혼(생각)이 영의 지배를 받지 못하게 되어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 생각에 의하여 움직이는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내 머리가 아닌, 내 심장으로 들어와야...
반드시 나의 육적 세상적 가치관과 충돌이 일어나, 내 본 모습을
제대로 알게 되어... 이대로 안 되겠다는 가난하고 절박한 심령으로
주님을 간절히 찾게 되며, 나를 부인하게 되고, 결국 주님의 은혜로
회개하고 거듭나는 역사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론으로는 알겠는데...
왜 가난하고 절박한 마음이 내 안에 안 들어서는지 아십니까?
아직도 주님보다 세상이 더 눈에 들어오고, 또 그것을 더 의지하고
누리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귀에게 세뇌된 육의 악한 속성(자아)에 대하여... 머릿속에서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실상에서는 포기하길 거부하는
완강한 본능이 깊숙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는, 가난한 심령과 거리가 먼 부한 심령입니다.
하여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이런 악한 속성들이 철벽처럼 가로막고
있기에 도무지 심장을 찌르며 들어오질 못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말씀이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계속 마르거나 마귀에게 빼앗기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말씀이 머리로만 들어갈 뿐, 절대 심장으로는 스며들지 못합니다.
정말, 절박함에 울부짖는 가난한 심령의 사람은 일부로 머릿속에
말씀을 넣으려고 해도, 심장으로 방향을 틀 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심령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괜히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귀한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주님의 터치로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진정 마음을 찢는 회개가 되고,
회개가 되어야, 필연적으로 나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그런 이들이 거듭나기에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는 이유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
성경을 대할 때 성경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제 3자의 관찰자 입장이 되어서는 절대 마음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나 자신이 성경 속 당사자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직접 받는 당사자의 위치에 서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앞에서 친히 말씀하고 계심을 실제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을 간절히 원했던, 삭개오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혈우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이를 치유받고자 주님을 절박하게
만나려 했던 그 여인의 심정이 내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눈을 뜨고자 하여 방해를 무릅쓰고 더욱 소리 질러 예수님을 구했던
맹인 바디매오의 간절함이 내 간절함이 되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당당히 신앙고백까지 하며
예수님을 따르다가, 한순간의 위협에 주님을 배신하고
그 죄책감에 울부짖었던 베드로의 찢어지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삭개오, 혈우병 여인, 바디매오, 베드로여야 합니다.
위 성경 속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절박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래야 그들처럼 주님을 만나고 변화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마음의 중심을 아시고 터치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둠의 낭떠러지기에 매달려 있는 내가, 살고자 하여
진리(주님, 거듭남, 빛)에 목말라 그분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갈급한 심령이 되어야만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복음이 흡수되고
내가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겠습니다...
머리로만 인식하는 성경 전문가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머리에만 들어간 성경 말씀은... 절대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여, 거룩한 성경 말씀에 저절로 이끌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주님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과 영은 서로 충돌하여 밀어내기 때문에... 성령께서 날 장악하면
육이 밀려나, 내 영혼육이 그분께 자연히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주님)이...
내 골수를 쪼개고 들어와 나를 장악하여 역사한다면...
그 말씀에 의하여 반드시 나는 죽게 되고... 내 삶을 통해 그분의
거룩한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열매이고, 복음의 능력이고, 영계의 법칙이고,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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