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은 아주 오래된 도시로서 창세기 35장 19절에 야곱의 시대에서 이미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보다 오래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의 등장은 여호수아서 10장 1절에 등장하지만 베들레헴은 창세기 35장 19절에 이미 등장합니다. 베들레헴은 인구가 매우 작은 소도시이지만 기독교에 있어서 그 역사와 중요성은 예루살렘만큼이나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베들레헴의 명칭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베틀레헴(בית לחם)이라고 하고 아랍어는 베틀라흠(بيت لحم)이라고 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은 집을 의미하는 ‘Beth’ 혹은 ‘Beit’와 고기, 빵을 의미하는 ‘Lehem’이 합쳐진 말로서, 그대로 풀이하면 “빵집”이 됩니다.
2. 베들레헴의 지리적 위치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해있습니다.
3. 현재의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1923년부터 1948년까지 팔레스타인의 위임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벌어진 중동전쟁(아랍-이스라엘)이 끝난 후 1950년에 요르단에 합병되어 원래 예루살렘의 아랍 명칭인 알 꾸두스(Al-Kudus) 주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나 1967년 벌어진 6일 전쟁(제 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의 서안 지구(West Bank)에 편입되어 통치를 받다가 1995년에 팔레스타인에 반환되었으나 아직도 여전히 분쟁은 계속되고 있는 중입니다.
4. 성경에 나타나는 베들레헴과 연관된 이야기(사건들)
첫째 베들레헴은 야곱이 사랑했던 여인인 라헬이 죽어 묻힌 곳입니다.(창 35:19)
야곱은 숙곳에서 이동하여 세겜에서 밭을 사고 살았으나, 그 지역에 있는 히위 족속 중에 하몰의 아들인 추장 세겜이 그 땅의 여자 아이들을 보러 나온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였습니다. 이에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은 하몰과 추장 세겜과 그 집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어린 아이와 여자들은 사로잡고 그 집의 물건들은 노략질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의 악행으로 위기를 느낀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갈 때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맹세했던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떠나 에브랏, 즉 베들레헴이 얼마 남지 않은 길에서 라헬이 베냐민을 낳기 위해 난산으로 고통을 겪습니다. 겨우 베냐민을 낳은 후 라헬은 베냐민에게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노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죽었으나 야곱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라헬은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길에 묻혔습니다. 이와 같이 베들레헴은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이 죽어서 묻힌 곳입니다.
둘째 베들레헴은 입다를 이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입산의 출신지입니다.(삿 12:8~10) 그는 사사가 되어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어서 딸들을 밖으로 시집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째 되는 해에 죽어서 베들레헴에 장사 되었습니다.
셋째 베들레헴은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주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첩을 얻은 곳입니다.(삿 19~21장) 레위 사람은 베들레헴에서 첩을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 중 기브아에 들렀는데, 기브아에 거주하는 베냐민 출신의 불량배들로 인하여 첩이 강간을 당하고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 첩의 시신을 열두 조각을 내어 열두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보냈고 열두 지파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악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베냐민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그 불량배들을 내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가 응하지 않음으로 이스라엘 열두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베냐민 지파가 멸절될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사사 시대를 특징짓는 표현이 사사기에 두 군데 있습니다. 그 표현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인데 사사기 17장 8절과 21장 25절입니다.
넷째 베들레헴은 나오미의 모압 출신 며느리 룻이 기업 무를 자인 다윗 왕의 증조 할아버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은 곳입니다.(룻기4:13~22)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나오미와 결혼하여 두 아들 말론과 기룐 낳았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의 가족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엘리멜렉은 병들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후에 두 아들은 각각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아내로 맞아 결혼을 했으나 모압에 10년쯤 거주한 후에 그들은 모두 어머니 나오미와 아내를 남겨 두고 죽었습니다. 마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풍년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그 때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나서 모압으로 돌아갔고 룻은 시어머니를 쫓아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엘리멜렉과 두 아들들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모두 죽어 버렸기에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의 기업으로 남겨진 땅은 나오미의 친족 중에 가까운 사람이 룻과 결혼하여 그 땅을 물려받아야 했습니다. 약간의 과정을 통해 보아스는 그 기업을 물려받았고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를 낳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으로 증손자인 다윗이 태어나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와 같이 다윗 왕의 증조부모, 그리고 조부모와 부모에 이어 자신들까지 거주하여 살았던 지역이 베들레헴입니다.
다섯째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으로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던 지역입니다.(삼상 16:12~13) 사무엘 선지자는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부었으나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말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을 찾아야 했었는데 ..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셔서 그를 기름 부어 왕을 삼게 하셨습니다. 이새의 집을 찾아와 이새의 여러 아들들 중에서 사무엘의 마음에 드는 자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은 결국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다윗에게 기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던 곳이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입니다.
여섯째 베들레헴은 다윗이 마시기를 원하는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대상 11:6~12) 다윗은 베들레헴 출신이었기에 그 지역에서 나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며 살았던 추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을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윗은 그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이 샘물을 마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을 때, 다윗의 가장 유능한 세용사인 스루야의 아들 요압, 학목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 블레셋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세 용사들의 충성스러움을 본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그 물을 부어 드렸습니다.(대상 11:18)
일곱째 베들레헴은 비록 유다 족속이 거주하는 지역 중에 작은 지역이지만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의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즉 메시야가 나올 지역으로 예언되었습니다.(미 5:2) 그 메시야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근본이 상고(from long ago)에 영원(From the days of eternity)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 이 예언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여덟째 베들레헴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태어나신 곳입니다.(마 2:1, 눅 2:7) 로마 제국의 황제(Caesar)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가 로마 제국에 있는 인구 조사를 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세금을 거두기 위한 인구 조사였을 것입니다. 이 시기는 구레뇨(퀴리니우스,Quirinius)가 시리아(Syria) 총독(Governor)으로 있었던 시기입니다. 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의 지역으로 가서 신고를 해야 했었는데 당연히 유다 지파요, 다윗의 후손이었던 요셉은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원래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로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조상의 지역인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으로 인구 조사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이동하는 상황이었기에 베들레헴의 여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요셉과 마리아가 묵을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 예수님을 낳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여관 주인의 호의로 마구간을 빌려서 그곳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아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로마 황제의 명으로 호적에 등록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방문했던 요셉과 마리아에 의해 미가서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은 태어나시게 되었습니다.
아홉째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던 2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은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마 2:16) 동방으로부터 별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날 아기를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을 인도했던 그 별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의 헤롯왕을 찾아가 별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경배하러 왔다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왕은 권력에 매우 집착하는 인물이었으므로 그 아기를 없애버릴 생각을 갖고서 그 아기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알기 위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메시야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미가서를 인용하여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에게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알려 주고 그 아이를 찾거든 자신에게도 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기를 없애버리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찾아서 경배하고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꿈 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서 다른 길로 동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격분한 헤롯은 병사들을 보내어 베들레헴에서 두 살 아래인 모든 아기들을 죽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악한 헤롯의 권력욕으로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1. 베들레헴의 명칭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베틀레헴(בית לחם)이라고 하고 아랍어는 베틀라흠(بيت لحم)이라고 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은 집을 의미하는 ‘Beth’ 혹은 ‘Beit’와 고기, 빵을 의미하는 ‘Lehem’이 합쳐진 말로서, 그대로 풀이하면 “빵집”이 됩니다.
2. 베들레헴의 지리적 위치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해있습니다.
3. 현재의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1923년부터 1948년까지 팔레스타인의 위임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벌어진 중동전쟁(아랍-이스라엘)이 끝난 후 1950년에 요르단에 합병되어 원래 예루살렘의 아랍 명칭인 알 꾸두스(Al-Kudus) 주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나 1967년 벌어진 6일 전쟁(제 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의 서안 지구(West Bank)에 편입되어 통치를 받다가 1995년에 팔레스타인에 반환되었으나 아직도 여전히 분쟁은 계속되고 있는 중입니다.
4. 성경에 나타나는 베들레헴과 연관된 이야기(사건들)
첫째 베들레헴은 야곱이 사랑했던 여인인 라헬이 죽어 묻힌 곳입니다.(창 35:19)
야곱은 숙곳에서 이동하여 세겜에서 밭을 사고 살았으나, 그 지역에 있는 히위 족속 중에 하몰의 아들인 추장 세겜이 그 땅의 여자 아이들을 보러 나온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였습니다. 이에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은 하몰과 추장 세겜과 그 집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어린 아이와 여자들은 사로잡고 그 집의 물건들은 노략질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의 악행으로 위기를 느낀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갈 때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맹세했던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떠나 에브랏, 즉 베들레헴이 얼마 남지 않은 길에서 라헬이 베냐민을 낳기 위해 난산으로 고통을 겪습니다. 겨우 베냐민을 낳은 후 라헬은 베냐민에게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노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죽었으나 야곱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라헬은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길에 묻혔습니다. 이와 같이 베들레헴은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이 죽어서 묻힌 곳입니다.
둘째 베들레헴은 입다를 이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입산의 출신지입니다.(삿 12:8~10) 그는 사사가 되어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어서 딸들을 밖으로 시집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째 되는 해에 죽어서 베들레헴에 장사 되었습니다.
셋째 베들레헴은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주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첩을 얻은 곳입니다.(삿 19~21장) 레위 사람은 베들레헴에서 첩을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 중 기브아에 들렀는데, 기브아에 거주하는 베냐민 출신의 불량배들로 인하여 첩이 강간을 당하고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 첩의 시신을 열두 조각을 내어 열두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보냈고 열두 지파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악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베냐민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그 불량배들을 내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가 응하지 않음으로 이스라엘 열두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베냐민 지파가 멸절될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사사 시대를 특징짓는 표현이 사사기에 두 군데 있습니다. 그 표현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인데 사사기 17장 8절과 21장 25절입니다.
넷째 베들레헴은 나오미의 모압 출신 며느리 룻이 기업 무를 자인 다윗 왕의 증조 할아버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은 곳입니다.(룻기4:13~22)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나오미와 결혼하여 두 아들 말론과 기룐 낳았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의 가족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엘리멜렉은 병들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후에 두 아들은 각각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아내로 맞아 결혼을 했으나 모압에 10년쯤 거주한 후에 그들은 모두 어머니 나오미와 아내를 남겨 두고 죽었습니다. 마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풍년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그 때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나서 모압으로 돌아갔고 룻은 시어머니를 쫓아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엘리멜렉과 두 아들들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모두 죽어 버렸기에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의 기업으로 남겨진 땅은 나오미의 친족 중에 가까운 사람이 룻과 결혼하여 그 땅을 물려받아야 했습니다. 약간의 과정을 통해 보아스는 그 기업을 물려받았고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를 낳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으로 증손자인 다윗이 태어나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와 같이 다윗 왕의 증조부모, 그리고 조부모와 부모에 이어 자신들까지 거주하여 살았던 지역이 베들레헴입니다.
다섯째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으로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던 지역입니다.(삼상 16:12~13) 사무엘 선지자는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부었으나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말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을 찾아야 했었는데 ..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셔서 그를 기름 부어 왕을 삼게 하셨습니다. 이새의 집을 찾아와 이새의 여러 아들들 중에서 사무엘의 마음에 드는 자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은 결국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다윗에게 기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던 곳이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입니다.
여섯째 베들레헴은 다윗이 마시기를 원하는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대상 11:6~12) 다윗은 베들레헴 출신이었기에 그 지역에서 나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며 살았던 추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을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윗은 그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이 샘물을 마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을 때, 다윗의 가장 유능한 세용사인 스루야의 아들 요압, 학목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 블레셋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세 용사들의 충성스러움을 본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그 물을 부어 드렸습니다.(대상 11:18)
일곱째 베들레헴은 비록 유다 족속이 거주하는 지역 중에 작은 지역이지만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의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즉 메시야가 나올 지역으로 예언되었습니다.(미 5:2) 그 메시야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근본이 상고(from long ago)에 영원(From the days of eternity)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 이 예언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여덟째 베들레헴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태어나신 곳입니다.(마 2:1, 눅 2:7) 로마 제국의 황제(Caesar)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가 로마 제국에 있는 인구 조사를 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세금을 거두기 위한 인구 조사였을 것입니다. 이 시기는 구레뇨(퀴리니우스,Quirinius)가 시리아(Syria) 총독(Governor)으로 있었던 시기입니다. 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의 지역으로 가서 신고를 해야 했었는데 당연히 유다 지파요, 다윗의 후손이었던 요셉은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원래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로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조상의 지역인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으로 인구 조사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이동하는 상황이었기에 베들레헴의 여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요셉과 마리아가 묵을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 예수님을 낳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여관 주인의 호의로 마구간을 빌려서 그곳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아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로마 황제의 명으로 호적에 등록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방문했던 요셉과 마리아에 의해 미가서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은 태어나시게 되었습니다.
아홉째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던 2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은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마 2:16) 동방으로부터 별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날 아기를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을 인도했던 그 별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의 헤롯왕을 찾아가 별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경배하러 왔다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왕은 권력에 매우 집착하는 인물이었으므로 그 아기를 없애버릴 생각을 갖고서 그 아기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알기 위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메시야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미가서를 인용하여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에게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알려 주고 그 아이를 찾거든 자신에게도 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기를 없애버리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찾아서 경배하고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꿈 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서 다른 길로 동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격분한 헤롯은 병사들을 보내어 베들레헴에서 두 살 아래인 모든 아기들을 죽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악한 헤롯의 권력욕으로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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