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병, 질병에 대한 예화

열려라 에바다 2023. 7. 20. 09:55

병, 질병에 대한 예화          

병과 감사
대개의 병은 감사와 참회로써 낮는다. 뼈의 외상도 그와 같은 원인이다. 미국 뉴욕의 장로 교회의 접골 전문 의사 플랜더즈.더글러스(Flanders Douglas)박사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든 일이있다. 시어머니를 싫어하는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방문하러 오는 날 응접실을 청소하다가, 그 방의 융단에 걸려서 다리뼈를 상하고, 병원에 운반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감사심이 없음에서 뿐 아니라, 만나고 싶지도 않다라는 잠재 의식의 바람이 나타난데서이다. 그러므로 병을 물리치기 위해서도 감사는 필요한 것이다.



어느 헌병감의 순종
어느 사역자가 오래 전 강원도의 한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을 때의 경험이다. 그 교회에는 헌병 소령 부부가 출석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 부부가 목사를 초대하여 대접을 한 뒤, 다음과 같은 간절한 부탁을 하였다.
`목사님, 우리 내외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하심을 주의 종 앞에 절대 불순종은 없으나 순종할 수 있는 것만을 미리 알아서 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후 그들 부부는 시종일관 언제나 순종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좋은 것을 교인들과 함께 나누고 모든 이들에게 전도를 하며 교회에서는 순종하고 군대에서는 충성하였다. 그의 이런 생활을 중령이 되고 대령이 되어도, 헌병감이 되어도 변함 없었다. 그의 믿음은 전역한 후에도 변함 없었고 교역자를 섬기고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분노와 심장병
바가지의 효용은 다양했다. 물을 뜨고 옮기는 데만 썼던 것이 아니라 홧병으로 불리는 심신병(心身病)을 고치는 좋은 약재(藥材)이기도 했다. 그러했기로 바가지에 금이 가서 쓰지 못하게 되더라도 버리질 않고 새끼줄에 주렁주렁 꿰어 뒤란에 걸어놓곤 했던 것이다.
집안 어른이 무슨 송사(訟事)로 화를 못 가누어 몸져눕거나 또 고부간에 불화가 화근이 되어 어느 한쪽이 몸져누우면 타포(打匏)라는 바가지 깨는 굿을 베푼다.
야밤에 헌 바가지 한 죽(10개)을 나란히 엎어놓고 홧병 앓는 자로 하여금 작신작신 밟아 깨게 하거나 몽둥이로 후려쳐 깨뜨리게 한다.
화를 일으킨 상대방의 대갈통으로 바가지를 보고 후려쳤을 때 그 요란스런 파열음과 더불어 짜릿하게 느껴지는 쾌감이 누적된 화를 무산시켰음직도 하다. 부부 싸움과 더불어 짜릿하게 느껴지는 쾌감이 누적된 화를 무신시켰음직도 하다. 부부 싸움도 나라에 따라 유형이 다른데 한국의 부부 싸움은 기물 파괴형이란 점에서 특이하다. 깨뜨리면 파열음이 요란스런 사기그릇이나 요강 따위를 던지는데 금이 가거나 이가 빠진 그릇들을 골라서 깨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손실을 극소화시키는 경제적 부부싸움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버린다.
누적되면 울화병이 되는 스트레스나 좌절이나 분통, 울통, 화통을 현장에서 즉석으로 해소해버렸던 현명한 우리 선조들이었다. 홧김에 서방질까지 한다는 것은 심한 경우이지만 이처럼 화를 엉뚱한 제 3의 방법으로 풀어버리는 데는 도사들이었다.
동물학자 로렌츠에 의하면 동물에 내재된 공격심(攻擊心)이 좌절당했을 때 화(怒)가 생긴다고 했다. 한데 동물 가운데 사람처럼 잔인하게 공격심을 발휘하는 동물이 없다 한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던 늑대끼리도 상대편이 목이나 복부를 노출, 무저항의 자세를 취하면 공격을 멈춘다는데 사람은 늑대만도 못하다는 것. 그 왕성한 공격심들을 좌절당하고 살려니 분노의 지뢰밭에서 살고 있는 것이 된다. UPI의 과학 정보 서비스에 보면 3개 연구소의 연구를 종합, 심장병의 주요한 발생요인이 바로 그 분노이며, 담배 술보다 한결 더 심장을 해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 사람의 심장병 발생률이 서양 사람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유가 이 분노의 발산 민속이 꽤 발달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만 같다.


고침받은 사마리아인 문둥병자
본문 :누가복음 17:11∼19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8∼19절)
오늘의 말씀을 보면 그 당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 여길 수 있는 한센병자들이 고침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회에서 소외되었으며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았고 하나님으로부터도 저주받은 자들로 여겨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들을 피했고 그들 또한 ‘정상인’들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았던 것은 예수님은 누구도 거절하지 않으며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겸손히,그러나 애절하게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12∼13절)라면서 고쳐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오늘의 말씀이 이것으로 끝을 맺었다면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러한 치료함을 받기 위해 필요한 우리의 자세에 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말씀으로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바로 연속하여 나오는 고침을 받은 자들의 사후 태도에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나았으니 가서 제사장에게 그 나음을 보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는 도중에 고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 말씀을 향한 순종의 순간이 바로 그들의 나음의 순간으로 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10명의 한센병자가 예외없이 순종을 통한 치료함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10명 모두의 공통점이 존재하나 그 다음 그들의 태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감사’라고 하는 중요한 요소가 그들을 나누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감사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10명 중 단 한명의 감사, 그리고 그가 사마리아인이었다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통하여 감사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모임에는 어떠한 종류든 그들 가운데 상하의식 또는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이 존재합니다. 10명의 한센병자 속에서도 그러한 의식이 존재하였으리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만약 그렇다면 10명의 한센병자 중에서도 가장 천하게 여겨지는 한센병자가 오늘 말씀 속에서 유일하게 감사를 표현한 사마리아인 한센병자였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의 감사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감사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는 부분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감사하며 사는 모습의 중요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미 받은 것을 세어보며 감사할 때 더욱 커다란 감사의 경험들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감사로 표현되는 믿음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기도: 하나님,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모습이 있었다면 깨닫게 하여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는 감사를 습관으로 삼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백혈병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창세기 32:25)
필자의 40여년 임상 경험중 백혈병과 승부를 겨뤄본 적이 두 번 있다. 30년쯤 전에 한 처녀가 어머니와 함께 왔는데 열이 나면서 사지 관절이 아프고 코피가 나며 피부에 멍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식욕이 떨어져 기운도 없었다. 비위계통에 장애가 온 것으로 진맥하고 약을 썼는데 얼마 안 돼서 직접 친척 아기를 업고 내원할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정상으로 보였다. 더욱이 병원 검사에 이상이 없어졌다면서 기뻐했다.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몇 달 후에 그 병마가 다시 밀물과 같이 들이닥쳤다.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코피를 흘리면서 운명하였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때의 허망함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또 한번은 어린아이였다.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내 한방치료를 겸했다. 역시 비위를 다스리며 보약을 가미하여 상당 기간 치료했는데 몇 년 후에 완전히 나았다.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그 가족의 가정주치의가 되었다.
백혈병 등 암은 난치병이며 대부분은 사망에 이르는 질환이다. 그러므로 초기에 한방치료를 권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모두 병원에서 포기한 사람들이다. 결국 양방과 한방의 협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환자에게 신앙을 갖게 하면 영혼 구원은 물론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결국 의술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목마른 병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요 4:14) 목이 말라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병일까? 한의사로서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한순간 운동을 많이 하거나 음식을 짜게 먹고 나서 목이 마른 것이야 정상적인 건강한 반응이지만 평상시에도 당뇨병이 있거나 당뇨병이 아닌데도 입이나 목이 탄다거나 마른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다. 물을 마시거나 수박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고 갈증도 없이 입안이 마른다고 한다. 심하면 코도 마르고 눈도 침침해지며 눈과 혀와 입술이 붉어지며 식욕이 감퇴하고 소변이 잦아지며 구내염도 생긴다. 이런 경우에는 서둘러 치료를 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종합진단상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나 그로 인하여 간장병이 되거나 혈당과 콜레스테롤이 증가하여 성인병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한방에서는 상소 또는 적열이라 하여 장부에 열이 울적되어 목이 자주 마른다고 되어 있다. 청심연자음 생진양혈탕 양격산 등을 쓴다. 이러한 치료법은 병의 원인을 화로 보고 있는 것이다. 화병은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이 있으며 허증과 실증으로 구별된다. 깊은 신앙생활은 화를 다스린다. 성경은 분노를 품고 잠자리에 들지 말 것을 가르친다.


당뇨병 치료 효능 신물질 특허 출원
아미노산의 일종인 ‘시스테인 전구체(前驅體)’가 당뇨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국내 연구진이 처음으로 밝혀내 용도특허를 출원했다.
전북의대 김우현 교수팀은 인체에 있는 20개 아미노산 가운데 하나인 시스테인을 세포 속으로 전달하는 일을 하는 인공화합물 ‘OTC’가 췌장의 베타세포에 침투,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킴으로써 혈당 감소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해 미국 생화학 전문지 ‘저널 오브 바이오로지컬 케미스트리’ 온라인판 최신호에 공개했다고 5일 밝혔다.

공포심은 신경계통의 병을 유발
공포심이 우리의 육체적 생활 곧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해로운지 아는가? 병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세균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반드시 부상당해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소위 기능적 질병이라 하여 여러 가지 심리적 관계로 우리에게 병이 오는데 특별히 신경계통의 병, 소화기 계통의 병, 심장병 같은 것은 공포심에 싸여서 근심과 염려로 세월을 보낼 때에 이러한 병이 자연히 우리에게 온다고 한다.



뉴욕에 번진 ‘선행 전염병’
최근 뉴욕 34가에 무명의 한 사업가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조용히 돈을 나눠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 사람은 지난해에도 캔사스시에서 똑같은 행동으로 화제가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무명의 이 사업가는 지난 30년동안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렇게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줬다.
사업가는 허름한 옷차림의 젊은이에게 돈을 건네주면서 “누가 당신에게 이 돈을 주라고 했습니다”하고는 사라져버렸다.
그가 이같은 일을 하는 것은 30년전 크리스마스 때의 일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헐벗고 배고파 식당에서 마지막 남은 돈으로 조반을 먹은 뒤 앞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앉았던 사람이 다가오더니 자기옆에 20달러짜리 지폐 1장을 떨어뜨렸다가 주워 자기에게 주며 “젊은이,이 돈이 여기 떨어져 있는 것을 보니 자네 것인가 보네”하며 나가버렸다. 그 청년은 그 고마움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사업가가 되어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수천달러씩 길거리에서 돈을 나눠주고 있다고 한다.
선행은 감동이 있고 전염성이 있다.“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30배 60배 100배를 거두느니라” (마 13:8).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병입니다
어느 소아과 병원 의사 선생님이 파리하게 병든 어린 아이를 진찰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내가 고칠 수 있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으로 "무슨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까 ?" 하고 물었더니 그 의사는 대답했습니다. "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병입니다." 다시 어머니는 물었습니다. "
나는 이 어린 아이를 열심히 사랑했는데요." 의사 선생님은 말합니
다. "어머니는 사랑했다고 하지만 이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흔적이 없습니다."


문둥병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와이 군도 중에 있는 몰로카이 섬에는 나환자들을 위한 큰 병원이 설립되어 있는데 이 병원이 세워지기 전에는 이곳은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족들과 결리되어 이 섬에 살고 있는 나환자들은 죽음의 날만 고대하며 매일같이 싸움을 일삼고 자살하는 자가 속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불쌍한 나환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망을 주기 위하여 자원해서 이 섬에 들어간 다미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회있는 대로 이들을 위로하며 진리로 설교했다.
그러나 인생을 자포자기한 환자들의 마음은 냉냉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우리같이 병들어 고통당하는 자들을 버려둘 수 없지 않느냐? 하나님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구ㅘ 같이 건강한 사람만이 아니냐?"고 하며 빈정거렸다. 다미안은 이런 말을 듣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부터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오! 하나님! 나로 하여금 문둥병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야 이들의 마음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다." 잃게 기도를 시작한 지 얼마가지 않아 하나님의 응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미안의 손과 얼굴 그리고 온몸은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버림받은 문둥병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했다. 그래서 그는 단 위에 서서 외치기를 "사랑하는 형제들아! 나의 얼굴과 나의 손과 육신을 보라! 나의 육신도 병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공중에 구름이 어떻게 변화되든지 그 속에는 푸르고 맑은 창공이 있는 것처럼 나의 마음 속에 평화가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를 믿어 영원한 그 나라를 소유하자."하고 외칠 때에 완고하던 이들의 마음은 녹아지고 그 후부터 몰로카이 섬에는 자살자와 싸우는 자가 없어지고 평화스런 세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3)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나병 옮겨지길 바랐던 손목사
손양원 목사가 여수 애양원에 부임해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손목사는 나환자들의 피고름나는 손을 거침없이 부여잡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환부에 직접 입을 대어 피고름을 빨아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환자들이 오히려 놀라고 당황해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저 젊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애양원에 와서 우리에게 이토록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하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손목사의 진심을 알게 됐고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가 됐다.그래도 목사의 손길을 거부하기는 마찬가지였다.혹시라도 병을 옮기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한번은 손목사가 나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그때 손목사는 이렇게 말했다.“차라리 내가 나병에 걸린다면 오죽 좋겠나.그리되면 가까이 오지 말라고 뒷걸음질치는 환자도 없을 것 아닌가.언제라도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놀 수 있지 않겠는가”
성탄을 맞이하면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병 완쾌 되었을때 할 감사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Calvin, jean)은, 제네바에서 목회하는 때, 특히 1549년부터는 거의 매일 설교했다. 그러
나 1558-1559년 사이의 겨울에는 몹시 아팠기 때문에 일시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봄에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강단에 서게 되었는데, 그 때 칼빈의 감사하던 모습을 그 첫 설교의 필기자 꼴라동(Colladon)은 다음과 같이 기록 했다 `그가 병석에서 일어나 다시 강단에 서게된 것은 교회
를 위하여 큰 기쁨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대로는, 그것이 주일날이었으며, 우리는 다 같이 시편 제30편을 노래하였다.
그것은 그의 회복을 감사하는 데 적당한 시편이었다. 그가 얼마나 진실한 경건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는가는, 그의 낯을 보 아서 알 수 있었다`가 그것이다. 병이 완쾌되었을 때, 그리
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때, 먼저 하여야 할 것은, 하 나님께 진심으로 칼빈처럼 감사하는 일이다.



라이안의 투병 자세
`세계2차대전`, `너무나 먼 다리`, `가장 길었던 날`등 대작을 쓴 문학가 코넬이어스 라이안은 5년간 암과 싸우다가 죽었다. 그 투병 기록을 후인이 책으로 엮은 것이 `가장 긴밤` (The longest night) 인데 남편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남편은 `또 하루 좋은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는 짧은 기도로 매일 아침을 시작했다.
어느날 나는 남편에게 무엇이 그토록 좋은 날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자기가 암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은 날이 많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었을 터인데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남편은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것처럼 새날을 맞이하는 기쁨을 다섯가지로 척척 말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하루가 좋은 이유는 첫째, 아내를 또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세째, 병들어 눕기 전에 마지막 작품인 `가장 길었던 날`을 탈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네째, 병과 싸울 의지의 힘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며, 다섯째 주님은 언제나 `저기게` 계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


풍과 질병
심장 질환과 인체의 악성종양과 더불어 성인의 3대사망원인을 이루고 있는 중풍은 동양인들이 유럽인 들보다 발병률이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풍이란 `바람에 맞았다`란 뜻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중풍을 뇌졸중이라고도 한다. 뇌졸중이란 뇌혈관의 순환장애로 인하여 야기되는 제반증후군즉, 의식장애와 운동장애 등을 총칭하는 말인데 이는 대개 갑자기 발생한다.
이러한 중풍은 대개 고혈압.동맥경화.당뇨병.심장병.혈액질환.혈관질환.종 양.외상 등에 의해 거의 40대이후에 발병되고, 추울때나 환절기에 많이발 생한다. 특히 서구식 식생활이 습관화된 복부비만자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과 음주나 흡연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빈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같은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이 계속적으로 과음. 과식.과로 등의 무절제한 생활을 하거나, 사업실패 등 과도한 흥분이나 긴장, 불안, 초조,울 적함 등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 갑자기 찬공기에 노출됨으로써 기후의 변화에 인체가 적응하지 못해 오장육부가 불균형을 일으키게 되어 발병된다.
중풍은 한쪽(간혹 양쪽) 손발을 못쓰거나 힘이 떨어지면 말이 둔해지거나 기억력장애.정신이상.치매.두통.현훈.구토.오심.시력 장애.청력장애 배뇨 및 배변장애. 손발저림과 간혹 히죽히죽 웃거나 우는 증상 등이 나타나는데, 주증상은 의식장애와 손발의 힘이 떨어지는 것이다. 중풍은 뇌혈관이 막혀서 오는 뇌경색과 터져서 오는 뇌출혈, 일시적으로대뇌의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서 생기는 일과성 뇌허혈발작과 혈압이 높아서(확장기혈압이120mmHg이상) 뇌에 부종이 생겨 두통.현훈.구토.의식장애.손발의 경련.시력이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고혈압성 뇌증 등의 4가지로 분류된다. 대개 중풍이라고 하면 뇌경색이나 뇌출혈로 나눈다.
뇌경색은 주로 동맥경화.심장병.혈관질환.당뇨병 등에 의해서 발병되는데 발병양상은 서서히 진행되고 후유증이 크며, 뇌출혈은 고혈압.외상.뇌혈관 기형.뇌혈관류 등에 의해서 발병된다.
발병양상은 급속히 진행되어 1~2일내에 혼수상태에 이르러 사망에까지이를 확률이 많으나 그 시기를 넘기면 회복이 비교적 용이하고 후유증이적게 남는 경우가 많다.
일과성 뇌허혈발작은 수일내에 완전회복이 되어 후유증이 생기지 않으나후에 뇌경색의 발병률이 높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고혈압성 뇌증은 혈압강하제등의 복용으로 진정되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한의학적으로 중풍은 침과 약물등으로 오장육부의 불균형을 치료하여 균형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이러한 불균형이 일어나지 않도록 체질에 맞는 식생활과 좋은 환경속에서 생활하도록 해야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중풍은 재발률이 높으므로 한번 발병된 환자는 체질과 증상에 맞게 계속 치료를 해 재발을 방지하여야 한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
#현재 미국 안에는 약4천만 명의 만성 두통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과학 천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에 왜 그토록 많은 만성 두통환자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이나 욕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만성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의사인 그레이스와 그래함팀이 128명의 외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가 있습니다.
두드러기 때문에 찾아온 31명의 환자들-자신이 멸시, 천대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에 두드러기가 생긴다고 합니다.
27명의 습진 환자-심한 간섭이나 방해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습진이 일어났고 10명의 비염 환자-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비염이 일어났고 7명의 천식 환자-어떤 절망감을 가졌을 때 천식이 일어났고 9명의 십이지장 궤양 환자들-증오심을 품고 복수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걸림 =연구팀의 연구 결과-대부분의 질병의 원인이 물리적인 데 있기보다는 정신적인 데 있다는 것입니다.
화 잘 내고 신경질 잘 부리고, 혈기 내는 것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인 80% "기도하면 불치병도 낫는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기도의 효과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위크"가 최근 미국의 성인남녀 7백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매일 기도를 하고 3분의 2의 기독교인이 간혹기도의 응답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응답자들의 주요기도 제목으로는 가족들의 건강과 성공,개인적인 약점의 극복 등이 손꼽혔고 경제적인 성공과 보다 나은 사랑을 위한 기도가 뒤를 이었다.
특히 응답자의 80%가 "기도를 하면 불치병도 나을 수 있다"고 응답,기도의 효과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시사했고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을 때 신앙생활을 중단하게 된다"는 응답자도 17%를 차지했다.


깊은사귐이없는 것,이것이 현대인의 병이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깊은 사귐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독한 채로 남아있게 된다. 심지어는 죽을 지경에 있는데도 본척 만척할 정도로 인정이 메말라가고 지나친 자기과보호로 빠져가고 있다. 물질문명이 발달될수록 사람들은 물질을 닮아간다. 그래서 인간고유의 사랑도 인정도 관심도 잃어가고 있다.
인류는 물질에 혜택을 많이 받는 것 같으나 정서적이고 심적인 혜택은 갈수록 잃어가고 있다. 그만큼 인간은 물질적 세계관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현대인들은 왜 그렇게 서로가 관심이 적고 기이 사귀지 못하게 되는가를 알아보자.
1. 잦은 이사 및 이동
한 동네에서 몇 년간 살면서 이웃과 조금 사귀는가 했더니 사업관계로 이사를 가야했다. 또 다른 동네로 이사 가서는 2,3년 살다 보니 자녀교육문제로 이사할 일이 또 생겼다. 주요 원인은 직장이나 사업, 그리고 자녀들의 학교 때문이다. 보다 더 좋은 학군을 따라 가느라고 그렇다. 남편들은 직장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더 좋은 직장을 찾아 옮긴다. 남자들은 이런 이유에서 한 동료와 오래 또는 깊게 사귀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요즘은 이민까지 겹쳐 이 나라 저 나라로 흩어지다보니 가족관계나 친척관계까지 멀어지는 현상이 나타나 말이 형제며 부모지 오랫동안 만나지도 못하니 그것이 무슨 형제란 말인가. 그밖에 출장과 파견이 잦으며 해외지사 근무도 있어 같은 회사 내에서도 서로 사귀기가 힘들다.
2. 바쁜 생활
한집에 살고 한 아파트나 한 마을에 살아도 서로 잘 친교할 수 잇는 기회가 적다. 그 이유는 바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부인은 부인 나름대로 직장에 다니고 자녀들은 학교에 다녀와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각종 학원에 나가야하며 남편은 직장과 사업관계로 거의 날마다 집에 늦게 들어온다. 우리 집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이웃집도 그렇다. 이렇게 서로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까 빤히 창문을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인사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낸지가 벌써 몇 달이 된다.
한집 식구들까지 마찬가지다. 집에 모처럼 다 모였다 해도 남편은 신문 보거나 텔레비전에 취해 있으며 자녀들은 자기 방에서 공부하거나 자기 일을 한다. 부인은 때로는 비디오에 너무 열중하다가 부엌일에도 소홀히 한다. 그리고 이 생활이 반복되다보면 타성이 되어 관심을 기우려도 간섭하는 것으로 여겨져 귀찮게 느껴진다.
현대 가정은 이렇게 한집에 살면서도 다정한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 힘들 정도로 각자가 자기 개인의 취미와 필요성에 도취되고 있다. 개인주의라고 하는 귀신은 현대 가정도 이간시키고 현대인 모두를 핵분열 시켜서 각자가 자기 욕구에만 도취되어 살게 한다. 우리가 바쁘다고 할 때 무엇 때문에 바쁜가를 한 번쯤 생각해야겠다. 그리고는 가정의 화목과 개인의 인격과 도덕, 신앙의 훈련에 도움이 되는 그런 질적인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단순히 돈과 일에만 도취되어 바쁘다는 것은 건강 잃고, 가정 잃고, 친구를 잃고 만다.
3. 희생이 없다
진정한 사귐은 약간의 자기 희생을 요구한다. 현대인들은 자기 희생을 피하려고 한다. 이웃의 고난에 대해 외면함으로 자기의 것을 보호하려고 한다. 시간과 물질, 정신적인 면에서 부담 느끼는 것을 싫어한다. 이러한 현상은 얼마만큼 자기라는 존재를 아끼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이웃과 내가 자연적으로 멀어지고 서로의 대화도 단절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도 서로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게 되는 습관을 가져오게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약간의 자기 희생으로 인한 결실이 얼마나 소중하게 나타나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서로가 이웃을 위해서 조금씩 희생하면서 서로 돕는 운동이 일어나며 동시에 그만큼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인정 많고 살기 좋은 사회로 바꾸어 간다. 바로 그곳이 작은 천국이다.
4. 기회를 나눌 줄 모른다.
각 가정마다 1년에 몇 번씩 가정적인 행사가 있다. 이럴 때마다 이웃이나 친지들을 초청하며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친교시간을 갖는다. 회사 모임이나 학교 동창모임. 계모임. 특별히 축하해야 할 각종 모임시 소외되어 있는 친지들이나 소외계 층들을 초대하거나 찾아가는 일들이 있어야겠다.
제한된 사람들끼리만 즐기는 것은 항상 소외되는 계층을 그대로 남겨 놓는 것과 같다. 즐거운 날, 보람된 날, 축하할 날이 있을 때마다 그런 기쁨과 즐거움을 골고루 함께 나누는 운동이 이 사회를 더욱 온정이 넘치는 사회로 만들어 간다.



도둑놈 의식구조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
대한 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장은 잘막고 사는데 나는 왜 피눈물나게 일해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느냐고 항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사장과 자기의 입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 나라가 민주주의 나라이기에 이런 유형의 항변은 그 정당성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옛 조선 왕조와 같이 반상의 계급이 출생과 더불어 정해져 있다면 사회적인 괴회가 균드 허ㅏ지 못하기에 이런 부조리가 파생된 것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다ㅣ.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에게 ㅈ어진 기회는 균둥하지 않은가?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학에 입학 할 수 있고 건전한 경제적인 활동과 남다른 역량의 발휘로 누구를 막론하고 사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나 못살고 너 잘사는 것이 비리요 부조리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가 심각한 부조리이다.
학창시절엔 열과 성을 다하여 놀고 즐겼으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근검절약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향락을 추구하고 힘껏 사치하고 방탕하던 사람이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자기의 삶을 살고 지금도 세상 어느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일하여 성공한 사람과 똑 같은 특혜를 누리겠다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치졸하기 짝이 없다.
공산주의가 망하고 공산주의적인 사상에 물든 사람들이 영겁에 이르도록 불행을 걸머쥘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자기의 삶에 자기가 책음일 진다는 의식이 없고 무조건 너와 나는 모든 혜택을 같이 받아 누려야 한다는 도둑놈의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말씀위에 자기들이 서 있다는 것을 명신해야 한다.
바로 우리가 누리는 복은 그러한 건전한 입지를 통해 얻어지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딤후2:6에서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모든 질병 유전자와 깊은 관계
k씨는 최근 아무런 증상이 없음에도 의사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대장전체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아야했다.
이유는 집안에 대장암 환자가 많아 병원을 찾은 k씨에게 가족성 용종증이란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아버지형제등 4명이 대장암으로 사망한 k씨의 가계도에서 의사는 유전성 대장암을 의심했고 실제로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작은 혹들이 수없이 많이 발견된 것이다.
혈액검사에서도 5번 염색체의 대장암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관찰됐다. 이처럼 가족성 용종증 진단이 일단 내려지면 k씨가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섭생에 주의하며 장에 좋다는 고섬유식을 해도 1백% 대장암에 걸리게 된다.
가족성 용종증과 같은 유전성 대장암은 전체 대장암의 1%정도를 차지하며 서울대 암연구소에 등록된 에비환자만 1천명을 넘는다.
대장속에 용종이 생기지 않고 우성유전되는 비용종성 대장암도 있다. 이들은 대장 내시경으로도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아 그동안 진단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최근 서울대 암연구소 한혜정 연구원의 유전자규명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진단이 가능하게 됐다.
비용종성 대장암 역시 전체 대장암의 5%나 되므로 결국 국내에서 발생하는 대장암 환자의 6%정도는 1백% 유전되는셈이다.
대장암뿐 아니라 유방암. 난소암등 10종 암도 유전성향이 짙은 암으로 분류돼 서울대 암연구소 내 한국유전성종양등록소에선 지난 93년 8월부터 이들 유전이 의심되는 암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등록사업을 시행중이다.
이들 유전성 종양을 제외한 위암.간암.폐암등도 환경못지않게 유전이 일정부분 관여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
따라서 다른 종류의 암이라 할지라도 3인 이상의 암환자가 ▲한 형제내에 있거나 ▲3대내의 직계가족내에 있고 ▲4촌간 세 가족내에 있을 땐 의학적으로 암가족으로 분류되며 이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 같은 종류의 암이 부모자식간에 수직 전이되거나 30대 이전의 젊은 나이에 암이 발생할 경우에도 암유전성이 의심될 수 있다.
이들 암가족은 가계도 분석을 비롯한 유전상담이 필수적이며 대장. 유방암등 현재 기술로 유전자진단이 가능한 암에 대해선 예방적 목적의 절제수술을 미리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 유전자 검증이 어려운 암의 경우엔 발암인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보통 사람보다 더욱 엄격한 정기검진으로 조기발견, 치료하는 것만이 암의 대물림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다.



‘확신적 믿음이 있다면 훨훨 타오르는 불 위를 걸을 수 있을까’
1980년 불 위를 걷는 열풍이 북미 대륙을 휩쓴 적이 있었다.당시 맨발로 불위를 걷는 열풍에는 스리랑카의 힌두교도와 인도의 불교신자가 주류를 이뤘으나 기독교 신자도 일부 포함됐었다.그리스 기독인들의 종교의식 속에 불 위를 걷는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의식에 영향을 받은 기독인들이 참여한 것이다.
이런 열풍은 당시 상술에 눈이 밝은 사람들에 의해 ‘물질을 극복한 마음’이란 주제로 포장된 상업화 전략의 하나인 이벤트로 탈바꿈됐다.마음의 힘(믿음)이 이글거리는 숯불 위를 아무런 화상없이 걸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 많은 이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125달러를 내고 이벤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봤다.과학자들이 얻은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활활 타오르는 숯의 열전도가 느리기 때문에 한 발바닥이 숯과 닿는 시간이 1초 이내가 되면 화상은 물론 뜨거움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과학자들도 실험에 나섰다. 75명의 대학생에게 이런 과학의 이론을 설명해주고 이벤트에 참여해 사전에 주의사항 등 철저한 교육을 받은 신자들과 똑같이 걷게 했다.결과는 대성공이었다.이글거리는 숯불 위를 걷는 것이 마치 수행의 최고봉에 이른 것처럼 많은 이들을 현혹시킨 ‘북미 대륙의 숯불위걷기 열풍’은 올바른 믿음과 개연적이고 불확실한 기대를 쫓는 미신과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잘 설명해주는 대사건이었다.
이같은 미신은 영적 건강의 혼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첩경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눅 4:33)의 결론은 멸망인데 이는 영혼과 육체 그리고 삶 전체의 멸망을 뜻한다. 영혼의 건강지수는 정신과 육체,그리고 인생 전체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미신은 미래를 점치고 규명하는 형태로서 마술과 같이 무조건적인 직관과 행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올바른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지만 미신이나 마술 등은 막연한 기대와 허상을 쫓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특히 미신의 형태를 분석해보면 허상을 쫓는 모든 이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종의 ‘속임수’가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컨대 국내 종합일간지나 스포츠지에 소개되고 있는 오늘의 운수(혹은 운세)난을 살펴보면 ‘모든 것 중에서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먼저 베풀면 그 이상의 보답을 받는다’‘오늘의 고난은 내일의 행복이다’ 등의 문구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이같은 해설은 성인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그래서 이 운수난을 보는 사람은 “아주 잘 맞는다”고 대답한다. 이런 대답을 유도하는 것을 바넘효과(Barnum effect)라고 일컫는다.바넘(P.T.Barnum)의 “매분마다 기생충이 태어난다”는 유명한 말을 기념한데서 붙여진 말인데 어차피 해로울 것이 없기 때문에 미신을 상품화시키는 이들은 불확실한 기대를 쫓는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런 문구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폴 투르니에는 ‘A Doctor’s Casebook in the Light of the Bible’(올바른 성경적 치유법)란 저서에서 “마술(혹은 미신)에 대한 믿음은 사람을 전체적으로 종속시켜 비판정신을 마비시키고 독립적인 사고를 파괴한다.또 인간성 전반에 편견을 심어 객관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지적하면서 “점성술이나 행운을 점치는 것,심령론 그리고 각종 미신이 널리 수용되는 현상은 사회에 상당한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따라서 그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의해서만 올바른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토대에서 기독교심리학을 체계화시켰다.


발병·치료는 정해진 때가 있다
한의학은 기의학이다. 최고의 고전 의서인 황제내경엔 68종의 인체의 기가 설명되고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영기(營氣)와 위기(衛氣)는 낮과 밤을 주기로 인체의 체표와 오장육부를 규칙적으로 순행하며 생명현상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새벽3∼5시를 시작으로 수태음폐경에서 시작된 영위기의 순행은 인체를 순환하며 에너지를 전달하고 장기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결국 시간의 변화에 따라 인체의 생리병리 현상이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의 시조인 히포크라테스도 인체의 생리학적 변화에 대한 임상적 관찰을 실시하여 환자의 컨디션이 좋은 날과 나쁜 날을 구별하여 치료하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하루중에는 아침시간대에 심장질환의 발병률이 높고 밤이 되면 호흡기질환과 피부 소양증이 더 심해지며 위궤양도 악화된다.겨울에는 기온차가 심해지면서 고혈압 중풍환자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약을 복용하는 시간도 효과적인 때가 있다. 수면제는 당연히 낮보다는 밤이 효과적이며 변비약은 새벽에 복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암세포의 증식이 밤에 이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어떠한 질병이든 진행기가 있고 회복기가 있다. 진행기에는 어떠한 치료법도 약발이 듣질 않다가 회복기에는 적은 약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병들 때가 있고 치료될 때도 있다. 만물의 때를 정하신 그분을 의지하는 게 치료의 첩경이다.


나병 옮겨지길 바랐던 손목사
손양원 목사가 여수 애양원에 부임해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손목사는 나환자들의 피고름나는 손을 거침없이 부여잡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환부에 직접 입을 대어 피고름을 빨아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환자들이 오히려 놀라고 당황해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저 젊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애양원에 와서 우리에게 이토록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하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손목사의 진심을 알게 됐고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가 됐다.그래도 목사의 손길을 거부하기는 마찬가지였다.혹시라도 병을 옮기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한번은 손목사가 나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그때 손목사는 이렇게 말했다.“차라리 내가 나병에 걸린다면 오죽 좋겠나.그리되면 가까이 오지 말라고 뒷걸음질치는 환자도 없을 것 아닌가.언제라도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놀 수 있지 않겠는가”
성탄을 맞이하면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사랑 병
다정(多情)도 병이라는데 하물며 지나친 너무 사랑이 병이 안 될 수 없다. 고려의 칠현(七賢)으로 손꼽히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남주락적(南州樂籍)에 군수로 와 있던 사나이가 임기가 끝나 그곳에서 사랑에 빠진 기첩(妓妾)과 이별하게 되었다. 너무 사랑했던 터라 기첩은 오로지 임만을 사랑할 수 있게끔 아무 누구도 자신을 유혹할 수 없게 해놓고 떠나라고 안달을 했다. 그리고 촛불을 건네주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비롯하여 유방이며 얼굴이며 온몸을 어느 한군데 남기지 않고 화상을 입힐 것을 애원했고 또 그렇게 상처를 입혔다. '너무 사랑'이 가공할 피학증(被虐症)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가극(歌劇)으로도 곧잘 상연되고 있은 12세기의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너무 사랑도 병이 되고 있다.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것만으로 사랑을 충족 못 해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를 거세시켜가면서까지 사랑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그 후 수도승과 수도녀가 되어 사후 나란히 매장되고 있다.
근년에 인상적이던 너무 사랑병으로 '인형의 집'의 주연으로 유명해진 여배우 리브 아르망과 명감독 잉그마 버그만의 격렬한 사랑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위치한 연중 겨울인 불모의 무인도에 단 둘이만을 위한 집을 짓고 도피,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 가면서까지 사랑을 했다.
"외계로부터 문을 닫고 친구도 친척도, 그리고 과거며 추억이며 두 사람의 관계를 위협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결별, 행복과 소유욕을 충족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각기 "고독을 슈트케이스에 담아 들고....." 이별의 길을 떠나가고 있다. 너무 사랑이 중증이 되면 별의별 변태로 다 나타난다.
변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너무 사랑(too much loving)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성이 적지않다. 지금 미국에서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이라는 이 증후군을 다룬 책이 40주간 베스트 셀러로 2백만 부를 돌파하고 있다.
알콜중독증이나 마약중독증 환자수 이상으로 많은 여인이 이 너무 사랑중독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웬만한 도시에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임' 이 없는 도시가 없을 정도라 한다.
이 너무 사랑병의 원인은 결손가정-부모가 없거나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없이 자랐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주정이 심하고 노름으로 지새우는 등의 가정에서 가족애 없이 자란 여인들일수록 이 증후군에 걸리기 쉽다 한다. 너무 사랑병 환자는 버림받는다는 것이 최대의 불안이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피학으로 자신을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만들려 하기도 하고 지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상대를 그 결함을 미끼로 잡아두고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채우려 들기도 한다. 헌신적일수록 아름답다는 사랑도 한계가 있는 것이 되니 무상하다. 한계애정량(限界愛情量)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라도 없는 것일까.



사랑 병
다정(多情)도 병이라는데 하물며 지나친 너무 사랑이 병이 안 될 수 없다. 고려의 칠현(七賢)으로 손꼽히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남주락적(南州樂籍)에 군수로 와 있던 사나이가 임기가 끝나 그곳에서 사랑에 빠진 기첩(妓妾)과 이별하게 되었다. 너무 사랑했던 터라 기첩은 오로지 임만을 사랑할 수 있게끔 아무 누구도 자신을 유혹할 수 없게 해놓고 떠나라고 안달을 했다. 그리고 촛불을 건네주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비롯하여 유방이며 얼굴이며 온몸을 어느 한군데 남기지 않고 화상을 입힐 것을 애원했고 또 그렇게 상처를 입혔다. '너무 사랑'이 가공할 피학증(被虐症)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가극(歌劇)으로도 곧잘 상연되고 있은 12세기의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너무 사랑도 병이 되고 있다.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것만으로 사랑을 충족 못 해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를 거세시켜가면서까지 사랑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그 후 수도승과 수도녀가 되어 사후 나란히 매장되고 있다.
근년에 인상적이던 너무 사랑병으로 '인형의 집'의 주연으로 유명해진 여배우 리브 아르망과 명감독 잉그마 버그만의 격렬한 사랑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위치한 연중 겨울인 불모의 무인도에 단 둘이만을 위한 집을 짓고 도피,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 가면서까지 사랑을 했다.
"외계로부터 문을 닫고 친구도 친척도, 그리고 과거며 추억이며 두 사람의 관계를 위협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결별, 행복과 소유욕을 충족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각기 "고독을 슈트케이스에 담아 들고....." 이별의 길을 떠나가고 있다. 너무 사랑이 중증이 되면 별의별 변태로 다 나타난다.
변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너무 사랑(too much loving)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성이 적지않다. 지금 미국에서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이라는 이 증후군을 다룬 책이 40주간 베스트 셀러로 2백만 부를 돌파하고 있다.
알콜중독증이나 마약중독증 환자수 이상으로 많은 여인이 이 너무 사랑중독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웬만한 도시에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임' 이 없는 도시가 없을 정도라 한다.
이 너무 사랑병의 원인은 결손가정-부모가 없거나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없이 자랐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주정이 심하고 노름으로 지새우는 등의 가정에서 가족애 없이 자란 여인들일수록 이 증후군에 걸리기 쉽다 한다. 너무 사랑병 환자는 버림받는다는 것이 최대의 불안이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피학으로 자신을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만들려 하기도 하고 지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상대를 그 결함을 미끼로 잡아두고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채우려 들기도 한다. 헌신적일수록 아름답다는 사랑도 한계가 있는 것이 되니 무상하다. 한계애정량(限界愛情量)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라도 없는 것일까.

사랑 병
다정(多情)도 병이라는데 하물며 지나친 너무 사랑이 병이 안 될 수 없다. 고려의 칠현(七賢)으로 손꼽히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남주락적(南州樂籍)에 군수로 와 있던 사나이가 임기가 끝나 그곳에서 사랑에 빠진 기첩(妓妾)과 이별하게 되었다. 너무 사랑했던 터라 기첩은 오로지 임만을 사랑할 수 있게끔 아무 누구도 자신을 유혹할 수 없게 해놓고 떠나라고 안달을 했다. 그리고 촛불을 건네주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비롯하여 유방이며 얼굴이며 온몸을 어느 한군데 남기지 않고 화상을 입힐 것을 애원했고 또 그렇게 상처를 입혔다. '너무 사랑'이 가공할 피학증(被虐症)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가극(歌劇)으로도 곧잘 상연되고 있은 12세기의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너무 사랑도 병이 되고 있다.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것만으로 사랑을 충족 못 해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를 거세시켜가면서까지 사랑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그 후 수도승과 수도녀가 되어 사후 나란히 매장되고 있다.
근년에 인상적이던 너무 사랑병으로 '인형의 집'의 주연으로 유명해진 여배우 리브 아르망과 명감독 잉그마 버그만의 격렬한 사랑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위치한 연중 겨울인 불모의 무인도에 단 둘이만을 위한 집을 짓고 도피,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 가면서까지 사랑을 했다.
"외계로부터 문을 닫고 친구도 친척도, 그리고 과거며 추억이며 두 사람의 관계를 위협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결별, 행복과 소유욕을 충족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각기 "고독을 슈트케이스에 담아 들고....." 이별의 길을 떠나가고 있다. 너무 사랑이 중증이 되면 별의별 변태로 다 나타난다.
변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너무 사랑(too much loving)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성이 적지않다. 지금 미국에서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이라는 이 증후군을 다룬 책이 40주간 베스트 셀러로 2백만 부를 돌파하고 있다.
알콜중독증이나 마약중독증 환자수 이상으로 많은 여인이 이 너무 사랑중독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웬만한 도시에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임' 이 없는 도시가 없을 정도라 한다.
이 너무 사랑병의 원인은 결손가정-부모가 없거나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없이 자랐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주정이 심하고 노름으로 지새우는 등의 가정에서 가족애 없이 자란 여인들일수록 이 증후군에 걸리기 쉽다 한다. 너무 사랑병 환자는 버림받는다는 것이 최대의 불안이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피학으로 자신을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만들려 하기도 하고 지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상대를 그 결함을 미끼로 잡아두고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채우려 들기도 한다. 헌신적일수록 아름답다는 사랑도 한계가 있는 것이 되니 무상하다. 한계애정량(限界愛情量)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라도 없는 것일까.


라오디게아의 중병, 영적 무관심
아름다운 꽃이 많은 화단을 망쳐버리는 방법을 아세요? 그 꽃밭에 불을 지르고 물을 많이 부어버리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를 하지 않아도 쉽게 망칠수 있는 비결은 그 화단을 그냥 내러벼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잡초가 무성해지고 저절로 망쳐집니다. 또 어떻게 하면 친구간의 우정을 망쳐버릴수 있을까요? 돌아다니면서 마구 헐뜯고 비방을 하면 그 친구와의 우정을 망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망쳐버릴수 있을까요? 방탕하고 법을 어기며 타락해 버리고 건강을 마구 상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세상이 악하게 돌아가는 대로 그냥 편하게 두면 우리의 인생은 저절로 망쳐버릴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하면 망쳐버릴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진리를 철저히 배반하고 나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영혼을 끊임없이 돌보고 말씀의 양분을 주며 기도의 호흡을 하며, 끊임없이 세상의 먼지들로 더럽혀지는 영혼을 청소하는 일들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아무런 관심도 갖지 말고, 그냥 버려 두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인생, 우리의 영혼은 무참히 망쳐서 멸망으로 갈 것입니다.


꿈 클수록 질병 극복 도움

유능한 배우는 무대장치가 만들어지기 전에 각본을 보며 연극작품을 상상한다. 설계사는 도면을 그리기 전에 건물의 아름다운 모양새를 마음으로 그려본다.
생각은 행동의 씨앗이며 꿈은 행동의 원동력이다. 꿈과 욕심은 다르다.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구하는 게 욕심이라면 꿈은 이웃과 더불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소원하는 것이다. 건강한 삶을 누리려면 지나친 욕심은 버려야겠지만 꿈이 있어야 한다.
좋은 꿈은 역동적인 삶의 추진력이 되지만 지나친 욕심은 욕구불만을 초래하여 결국에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지나친 욕심은 욕구불만을 유도하여 교감신경계를 흥분시켜서 신진대사를 방해하며 소화기능 저하에 따른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시대가 산업화되면서 모든 게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만족함이 없으며 상대적인 빈곤감으로 욕구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옛 의서에는 소욕(少欲)을 양생법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식욕을 주셔서 육체의 생명을 존속케 하셨으며 성욕을 주셔서 자손을 잇게 하셨다. 현실에 집착하여 사는 사람보다 꿈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강하며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된다. 병들지 말아야지 하는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건강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또한 그분께서 이미 허락하셨다.



염려는 습관이요 질병이
폴 터니어 박사는 염려를 물리치는 실제적 지침 일곱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우리 삶의 목적으로 하고 매일매일을 살아야 한다.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둘째, 성경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그 말씀을 적용하는 데에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말씀으로 생각을 바꾸고 염려하는 감정을 물리쳐야 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 에너지요, 치료하는 능력이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셋째, 마음의 쓴 물을 없애야 한다. 원한과 유감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것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격렬하게 거부해야 한다.
넷째,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과 좀더 친밀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염려와 걱정은 가정문제에서 비롯된다. 가족을 기피하지 말고 자주 접촉하고 솔직히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믿는 친구들이나 부부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잠언 13장 20절에서 솔로몬은 가급적 지혜로운 자와 함께 하라고 했다. 행복한 사람들과 자주 교제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해지게 마련이다.
여섯째, 일상적인 작은 일에 충실하면서 만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평범하고 반복되는 작은 일도 하나님의 일이며, 그 일을 통하여 주께 영광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곱째,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인간은 남을 도와줄 때 행복해진다. 어떠한 사람도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우리의 자세와 선택이다.
고민은 습관이요 질병이다. 습관은 고칠 수 있고 질병은 치료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불행도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불행을 거부하고 행복을 선택하도록 하자. 행복은 선택이다.



축복에 익숙해 지는 병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 106: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 11:5,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종 찾아오는 특별한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해가 일 년에 한 번만 뜬다고 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그 해를 보고 감탄할 것이며, 해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뜹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감사거리들이 있습니
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평거리만을 찾아 다닙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 우리는 축복에 익숙해져 있는 마음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 유일한 치료 방법은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보고 듣는 것마다 신기해하며 놀라움을 발하듯이 말입니다.


죄악을 깨닫게 하는 질병
질병의 근원은 어디일까. 과연 인간이 병을 지닌채 이 세상에 나왔을까, 아니면 온전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질병에 걸리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인류의 기원과 우주의 신비를 명쾌하게 밝혀놓은 창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인류의 시조였던 아담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타락하기 전에는 어떠한 질병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망과 질병은 모두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생긴 죄의 결과라고 밝히고 있다.
전능하신 분께서 창조한 것은 당연히 완전한 상태로 시작된다. 인간도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창조하셨지만 인간 스스로가 타락의 길을 자초하여 병적 상태를 유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질병의 원초적인 배경은 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질병의 대다수가 원망 미움 시기 질투 과음 퇴폐적인 생활 등의 원인으로부터 발병되는 것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에이즈는 타락한 성생활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보아도 죄와 질병의 상관관계는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질병이 직접적인 죄의 결과라고 보는데에는 무리가 있다.질병의 근원은 죄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삶의 무질서,나쁜 식생활 습관,과로 등의 원인들도 헤아려 봐야 한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 있어서 질병은 결코 우연일 수 없기에 때로는 질병을 통해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도 되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케도 된다.질병은 결코 축복일 수 없으며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도 없지만 질병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축복과 거룩의 자리에 이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질병을 통하여 성도들을 좀더 거룩하고 경건하며 순종하게 하시기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성도의 고통을 지켜보시는 것이다./이상룡(우석한의대학장)


교인병
나이 드신 어른들이 부르시던 노래의 가사를 소개한다.
첫째는 주일날을 당하였어도 세상일만 생각하니 세상병이요,
둘째는 예배당에 재종을 쳐도 아직도 우물쭈물 게으름병이라.
셋째는 믿는 형제 서로 보면서 두 눈만 힐끗힐끗 시기병이요, /
넷째는 예배당에 앉아도 살림살이 염려하니 염려병이라.
다섯째는 예배당에 출석부 보니 동그라미 가득하니 결석병이요, /
여섯째는 예배당에 늦게 나와서 정신없이 기도하니 외식병이라. /
일곱째는 예배당에 와서 앉아 고개만 끄덕끄덕 졸음병이요, /
여덟째는 성경말씀 암만 들어도 은혜 받지 못했으니 기갈병이라. /
아홉째는 헌금 바칠 때 돈 아까워 우물쭈물 인색병이요, /
열째는 예배하고 돌아가서도 세상일만 생각하니 세상병이라.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가장 걸리는 것이 무엇인가? 살아 계신 주님을 믿지 못하여 온갖 세상 염려 속에 살고 있는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예배를 잘 빼먹고, 또 예배드리러 와도 꼭 지각하고, 늦게 와서는 설교 시간에 졸다 가는 병에 걸리지는 않았는가? 또 서로 사랑해야 할 형제를 두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배 잘 참석하고 기도 잘하는 듯해도 혹시 외식하는 자와 같지는 않는가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조차도 아까워하며 바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가난이라는 병
유대인의 일화 중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자들이 의사를 찾아와서 치료를 받고 처방을 받아갔습니다. 이 의사는 매우 유능하다고 전국에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전국 도처에서 몰려들었고 이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거의 모든 사람이 완치를 보았습니다.
어느 날 색다른 병으로 고생하는 한 환자가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 병으로 평생을 고생하고 있으니 제발 고쳐 주십시오. 선생님은 유능하여 어떤 병이라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
"어디 아픈 곳을 봅시다. "하고 의사가 진맥을 하려 하자 이 환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 병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병은 가난이라는 병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씁쓸하게 대답했습니다.
"가난이란 병은 누구도 고칠 수 없습니다. "



열병식
나라에 군대가 생긴 이래 그 군대의 막강함을 과시하는 열병식(閱兵式)을 갖게 마련이다. 문헌에 나타난 우리 나라 최초의 열병식은 신라 5대임금 파사왕(婆娑王) 15년(94년)에 경주 알천(閼川)에서 벌이고 있으니 역사도 유구하다.
조선왕조에는 대열(大閱)이라 하여 1년에 한 번, 주로 뚝섬 살곶이벌이나 지금 독립문 근처의 모화관(慕華館) 앞뜰, 그리고 노량나루벌에서 열병식을 가졌다.
갖가지 모양과 갖가지 색깔의 1천여 군기에 둘러싸인 사열대에 임금이 올라앉으면 나팔 소리와 방포(放砲)를 신호로 제군 지휘관이랄 병조판서가 융복을 입고 나와 임금 앞에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고두(叩頭)를 하고, 이어 사령관이랄 중군(中軍)이 오영 (五營)의 각군(各軍)들을 이끌고 나와 임금 앞에 이르러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가 방포 소리에 일제히 일어나 걸어나갔던 것이다. 그 행렬이 10리에 이르렀다 했으니 장관이 아닐 수 없었겠다.
수군(水軍)의 열병식도 대단했다. 각종 깃발로 요란스럽게 장식된 동래부사(東萊府使)의 배가 중앙에, 그 오른편에 다대포첨사의 배, 그 왼편에 부산포첨사의 배가, 그 뒤를 크고 작은 전선 수백 척이 따랐다.
부사가 열병장인 영도(影島)에 내리면 여기(女妓) 30명이 양쪽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뒤따랐고, 사열대 위에 올라앉자 소총과 나팔 소리를 신호로 대소의 전함이 뭉쳤다
흩어졌다 열을 지었다가 원을 그렸다가 하는 것이 볼 만 하였다. 이 수군 열병식은 밤에까지 계속되는데 횃불로써 바다 앞을 메웠다 했으니 이 역시 장관이었겠다.
우리 나라 최초의 신식군대는 일본인 교관 굴본예조(堀本禮造:호리몬트 레이조오) 중위를 초빙해서 훈련시킨 별기군(別技軍)이다. 양반집 자제들만을 모아 초록색 군복을 입히고 세검정 평창(平倉)에서 훈련시켰는데 그 최초의 열병식이 어처구니없는 일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교관이 중인(中人)출신인데 반말로 구령을 부른다 하여 양반군인들이 따르지 않겠다는 항명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후 신식군대의 열병식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파천한 후에 있었다. 러시아의 입김으로 역시 양반자제들로 근위병을 뽐아 프차토이 노군대령(露軍大領)으로 하여금 노식(露式)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모두가 양반자제들이라 종들을 데리고 입대, 요강을 들고 뒤따르는가 하면 훈련받기 싫어하여 떼를 쓰는 바람에 종이 등에 업고 제식훈련
을 받기도 했다 한다.
이 근위병의 열병행진은 프차토이 대령을 선두로 하여 북 치고 나팔 불며 깃발을 들고 기웃뚱기우뚱 오리걸음처럼 뒤뚱거리며 행진했던 근위병의 열병은 다시 진귀한 구경거리라 인사인해를 이루었다 한다. 오늘 국군의 날 열병식으로 절정을 이룰 것이고 해서 그 역사를 훑어본 것이다.


의식(意識)속의 질병
백만장자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다급한 부자는 마지막으로 신의로 소문난 의사를 수천리 밖에서 모셔다가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사정을 했다. 의사는 소년을 진맥한 다음 한 첩의 약을 지어놓고 이것이 효험이 없으면 다행이고 그렇지않으면 자기로서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노라고 선언하고는 가버렸다.
주인집 도령이 깊은 산골에 들어가 옹달샘에서 물을 마시다가 실지렁이를 함께 들이키고 자기 뱃속에는 엄청난 수의 실지렁이가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끝에 이같은 병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짐작한 그 집의 늙은 머슴이 의사가 지어놓은 약을 자기가,다리겠노라고 자청을 했다.
자기 아들을 무던히도 사랑했던 머슴인지라 그 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머슴은 의사가 지어준 약을 땅에 쏟아버리고 대신 자기의 삼베끈을 잘라서 약탕관에 넣고 푹푹삶은 다음 그것을 도령에게 가지고 갔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이 약을 먹을 때는 반드시 눈을 감고 먹으라고 했다면서 도령의 눈을 감긴채 자기의 삼베탕을 먹였다.
다음날이었다. 도령은 길게 죽어있는 무수히 많은 실지렁이를 배설해 냈다.
도령은 의사가 지어준 약을 먹고 실지렁이가 모두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면서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말았다.
뱃속에서도 녹지 않는 긴 삼베가닥을 실지렁이로 보고 병에서 고침받은 것이었다.


도둑놈 의식구조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
대한 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장은 잘막고 사는데 나는 왜 피눈물나게 일해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느냐고 항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사장과 자기의 입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 나라가 민주주의 나라이기에 이런 유형의 항변은 그 정당성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옛 조선 왕조와 같이 반상의 계급이 출생과 더불어 정해져 있다면 사회적인 괴회가 균드 허ㅏ지 못하기에 이런 부조리가 파생된 것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다ㅣ.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에게 ㅈ어진 기회는 균둥하지 않은가?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학에 입학 할 수 있고 건전한 경제적인 활동과 남다른 역량의 발휘로 누구를 막론하고 사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나 못살고 너 잘사는 것이 비리요 부조리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가 심각한 부조리이다.
학창시절엔 열과 성을 다하여 놀고 즐겼으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근검절약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향락을 추구하고 힘껏 사치하고 방탕하던 사람이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자기의 삶을 살고 지금도 세상 어느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일하여 성공한 사람과 똑 같은 특혜를 누리겠다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치졸하기 짝이 없다.
공산주의가 망하고 공산주의적인 사상에 물든 사람들이 영겁에 이르도록 불행을 걸머쥘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자기의 삶에 자기가 책음일 진다는 의식이 없고 무조건 너와 나는 모든 혜택을 같이 받아 누려야 한다는 도둑놈의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말씀위에 자기들이 서 있다는 것을 명신해야 한다.
바로 우리가 누리는 복은 그러한 건전한 입지를 통해 얻어지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딤후2:6에서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무병장수의 신앙적 탐색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사 탐색으로 삶을 의미있고 풍요롭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흔히 '고령화 시대'라고 부른다. 사회복지정책이 잘되어 있는데다 특히 의학이 발달되어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연장되어 가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백살을 넘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며칠전 KBS의 심층취재 프로그램에서 전남 구례를 비롯해서 고국의 장수마을들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 마을들은 초현대화된 실버타운이 아니라 산간 벽촌이었다. 아직도 문명의 빛이 별로 스며들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갖가지 나물과 된장국을 먹고, 채소를 가꾸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 가운데 백살을 넘기는 경우가 있다는 보도였다. 언론에서 약광고를 자주 접한다. 신문을 읽어도, 라디오를 들어도, 또 TV를 보아도 온갖 건강 비법이 소개되는데, 특히 요즘에 와서는 무병장수(無病長壽)를 확실히 다짐한다는 약광고 홍수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라디오에서 "본전도 안되는 값에 대량으로 들여온 XX을 판다"는 어느 상품선전을 듣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접어두었는데, 이번에는 "암 극복"이라는 광고까지 접하게 된다. 이 세상에 아직은 암을 완치할 수 있는 약품제조나 치료방법을 찾아냈다는 의학계의 연구보고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지난 70년대에 모국에서 발행되는 세 일간지 미국판을 창간하는 일에 참여했었다. 코리아헤럴드(Korea Herald)를 비롯해서 동아일보, 중앙일보 미주판 초대 편집국장으로 일했는데, 그때마다 '점술'과 '오리엔탈 마사지' 광고는 하지 않는다는 광고정책을 고집했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미신적인 영업이나 윤리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업자들이 내미는 고가의 현금공세는 다소 유혹이 되었지만 미국 속의 한인공동체를 지킨다는 신념으로 이겨냈었다.
그런데 요즘와서 '암완치약' 공세를 맞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이런 광고가 왜 한인언론매체에만 나오고 주류언론에는 나오지 않는가?
나는 요즘 어느 선배가 읽어보라고 보내온 새 책 "하나님은 계신다: 그 증서"를 즐겨 읽고 있다. 토론토대학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17년 동안 개신교회에서 목회하고 최근 은퇴한 박하규 목사의 신간저서이다. 그는 자연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 역시 완전한 증명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믿음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다소 남아 있으며, 오히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존재의 증명에 지식과 함께 믿음이 필요하다는 논법이다. 마치 노예가 무서운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이 우리 인간이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고 그를 맹종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암세포는 인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체내조직이다. 암은 확실히 죽음을 낳는다. 현재 단계에서는 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온 몸에 퍼지기 전에 수술을 받는 방법 밖에 치료의 길이 없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정신과 도덕성을 파괴하는 이기심과 재물을 우상으로 여기는 황금만능주의이다. 만일 암 완치약 선전이 인간의 진정한 무병장수보다는 이기심과 배금주의에 자리잡고 있다면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현대의학은 암과 같은 죽음의 병을 치유하고 정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머지않아 확실한 해답에 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동안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과학적인 건강법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우선 건강보존의 주체는 자기자신이라는 인식에서 의료 전문인을 정규적으로 만나 예방의학을 습득하고,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이고 도덕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이해와 협력 그리고 사랑을 통해 이웃들과 화평을 도모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성과 감성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와 은사를 탐색하는데 노력함으로써 삶을 의미있고 풍요럽게 영위하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육체는 정신이나 영혼과는 달리 언젠가는 예외없이 쇠퇴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흙으로 빚어진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신앙상실 병
정신분석학자 융은 인생의 고민과 신앙심의 회복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30년 동안 지구상의 모든 문명국사람들이 나를 찾아 왔으며 수많은 환자들이 내 손을 거쳐갔다. 생의 후반 즉 35세가 넘은 환자들은 결국 신앙심과 연관된 근원적인 문제로 생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선조들이 물려주었던 살아있는 신앙심을 상실하게 됨으로 병을 앓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다시 신앙심을 되찾지 않고서는 결코 치료될 수 없다"


다이어트 병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 사는 41세의 주부가 비만수술 후 급사, 일본 사회에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유가족들은 병원측이 2㎏의 지방을 제거해야 하는 데도 복부와 허리, 어깨 등에 걸쳐 무려 6㎏의 지방을 소독하지 않은 의료기 구로 제거함으로써 수술 5일 만에 사망케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세계적인 공통 관심사는 다이어트일 것이다. 체중감량을 위한 약품이나 병원 클리닉이 지금처럼 번창한 적은 없다. 외모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사이 영혼은 병들어 가고 있다.


신앙상실 병
정신분석학자 융은 인생의 고민과 신앙심의 회복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30년 동안 지구상의 모든 문명국사람들이 나를 찾아 왔으며 수많은 환자들이 내 손을 거쳐갔다. 생의 후반 즉 35세가 넘은 환자들은 결국 신앙심과 연관된 근원적인 문제로 생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선조들이 물려주었던 살아있는 신앙심을 상실하게 됨으로 병을 앓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다시 신앙심을 되찾지 않고서는 결코 치료될 수 없다"



심장병이 되게 하는 걱정
심장병은 오늘날 미국에서 제일 많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백 만명 중의 거의 3분지 1가량이 전투에서 죽었는데, 똑같은 기간중에 심장병은 2백만의 인간을 죽였다.
그런데 이 사망자들의 백 만명이 걱정과 지나친 긴장된 생활에서 생기는 심장병으로 말미암아 사망한 것이다.


사랑 병
다정(多情)도 병이라는데 하물며 지나친 너무 사랑이 병이 안 될 수 없다. 고려의 칠현(七賢)으로 손꼽히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남주락적(南州樂籍)에 군수로 와있던 사나이가 임기가 끝나 그곳에서 사랑에 빠진 기첩(妓妾)과 이별하게 되었다. 너무 사랑했던 터라 기첩은 오로지 임만을 사랑할 수 있게끔 아무 누구도 자신을 유혹할 수 없게 해놓고 떠나라고 안달을 했다. 그리고 촛불을 건네주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비롯하여 유방이며 얼굴이며 온몸을 어느 한군데 남기지 않고 화상을 입힐 것을 애원했고 또 그렇게 상처를 입혔다. '너무 사랑'이 가공할 피학증(被虐症)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가극(歌劇)으로도 곧잘 상연되고 있은 12세기의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너무 사랑도 병이 되고 있다.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것만으로 사랑을 충족 못 해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를 거세시켜가면서까지 사랑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그 후 수도승과 수도녀가 되어 사후 나란히 매장되고 있다.
근년에 인상적이던 너무 사랑병으로 '인형의 집'의 주연으로 유명해진 여배우 리브 아르망과 명감독 잉그마 버그만의 격렬한 사랑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위치한 연중 겨울인 불모의 무인도에 단 둘이 만을 위한 집을 짓고 도피,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 가면서까지 사랑을 했다.
"외계로부터 문을 닫고 친구도 친척도, 그리고 과거며 추억이며 두 사람의 관계를 위협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결별, 행복과 소유욕을 충족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각기 "고독을 슈트케이스에 담아 들고....." 이별의 길을 떠나가고 있다. 너무 사랑이 중증이 되면 별의별 변태로 다 나타난다.
변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너무 사랑(too much loving)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성이 적지않다. 지금 미국에서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이라는 이 증후군을 다룬 책이 40주간 베스트 셀러로 2백만 부를 돌파하고 있다.
알콜중독증이나 마약중독증 환자수 이상으로 많은 여인이 이 너무 사랑중독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웬만한 도시에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임' 이 없는 도시가 없을 정도라 한다.
이 너무 사랑병의 원인은 결손가정-부모가 없거나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없이 자랐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주정이 심하고 노름으로 지새우는 등의 가정에서 가족애 없이 자란 여인들일수록 이 증후군에 걸리기 쉽다 한다. 너무 사랑병 환자는 버림받는다는 것이 최대의 불안이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피학으로 자신을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만들려 하기도 하고 지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상대를 그 결함을 미끼로 잡아두고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채우려 들기도 한다.
헌신적일수록 아름답다는 사랑도 한계가 있는 것이 되니 무상하다. 한계애정량(限界愛情量)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라도 없는 것일까.


나병환자가 된 것을 감사
메리 리드 선교사는 본국을 떠나 인도에서 그리스도의 선한 사업에 힘쓰고 있었는데, 그녀는 한 가지 고민으로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쌍한 처지에 있으며 비참한 생활을 해 나가는 나병환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로서는 나병환자를 구제할 변변한 방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메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는데, 고원주둔소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은 전혀 낫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본국으로 송환되어 정밀검진을 받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손가락이 점차 감각을 잃었고 얼굴에는 반점 하나가 생기더니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의사는 그녀의 질병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그녀는 나병에 걸렸던 것이다.
이 사실을 메리 리드는 곧 알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 모두 그녀가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 하는 안쓰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메리 리드는 그 말을 듣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게 나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인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에 있는 나병환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그들에게 돌아갈 수 있음을 감사한 그녀는 일어나 인도로 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병상에서의 감사
춘원의 역작 <사랑>의 주인공 안빈 박사의 모델이었던 장기려 박사, 70년대 후반으로 기억되며 내 귀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간곡한 재혼 권유를 어렵게 물리치고 친구 사무실을 나온 그는 2층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그만 한쪽 아킬레스건이 끊기는 불상사를 당했습니다.
그는 즉시 백병원에 입원했고 병상에서 세 가지 감사를 느꼈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을 이겨낸 것을 마치 자기가 선하여 된 것으로 생각했던 불경죄를 깨닫게 되어 감사.
둘째,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많은 친지와 제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됨을 감사.
셋째,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을 병상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됨을 감사.
그는 기적처럼 아킬레스건이 잘 이어져서 그후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테니스까지 칠 수 있었지요. 나는 그의 병상에서의 감사를 기억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감사를 되찾곤 합니다.


문둥병 환자가 된 것을 감사
북경에 어느 문둥병 환자 노인이 있었는데 이분이 선교사들에게 말하기를 "저는 제가 문둥병 환자가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자 그가 말하기를 자기가 문둥병이 들지 않았으면 이 병원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것인데, 이 병 때문에 병원에 왔고 병원에 와서 하나님을 알아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병이 완전히 치료되고 구원되는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
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삶을 추한 뒷면에서 보지 않고 아름답게 완성된 전면에서 보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추한 뒷면에서 보기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정에서 영화까지 구원의 파노라마 면에서 우리의 삶을 보면 낙심하는 대신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현재의 모든 도전과 고통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완벽한 구원 작품으로 함께 짜여져가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우리는 그 완성된 작품을 보고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셔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꿈 클수록 질병 극복 도움
유능한 배우는 무대장치가 만들어지기 전에 각본을 보며 연극작품을 상상한다. 설계사는 도면을 그리기 전에 건물의 아름다운 모양새를 마음으로 그려본다.
생각은 행동의 씨앗이며 꿈은 행동의 원동력이다. 꿈과 욕심은 다르다.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구하는 게 욕심이라면 꿈은 이웃과 더불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소원하는 것이다. 건강한 삶을 누리려면 지나친 욕심은 버려야겠지만 꿈이 있어야 한다.
좋은 꿈은 역동적인 삶의 추진력이 되지만 지나친 욕심은 욕구불만을 초래하여 결국에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지나친 욕심은 욕구불만을 유도하여 교감신경계를 흥분시켜서 신진대사를 방해하며 소화기능 저하에 따른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시대가 산업화되면서 모든 게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만족함이 없으며 상대적인 빈곤감으로 욕구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옛 의서에는 소욕(少欲)을 양생법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식욕을 주셔서 육체의 생명을 존속케 하셨으며 성욕을 주셔서 자손을 잇게 하셨다. 현실에 집착하여 사는 사람보다 꿈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강하며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된다. 병들지 말아야지 하는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건강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또한 그분께서 이미 허락하셨다.

병든 증거인
기도에 힘이 없다는 것은, 병든 증거이다.
걸을 수 없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어떤 잘못된 곳이 있는 무서운 증거이다. 곧 의사에게 뵈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을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와 은혜의 보좌로 이끄는, 새로운 생명의 길을 즐겨 걸을 수 없다는 것은, 실로 슬픈 일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위대한 의사이시다. 병자들이 모인 베데스다라면 어디라도 가신다. 그리고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낫고자 하느냐>고, 심중을 더듬으시는 듯한 물음을 하시는 것이다(그에게 기도력을 소생시켜 주심을 기도하자).




교회는 병원
교회는 훌륭한 기독교인들을 보여 주는 전시장이 아니다. 반대로 교회는 불완전한 기독교인들을 교육시켜 주는 학교다. 그리고 아픈 환자를 돌보아 주는 간호사며 세심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병원이다.
교회 부흥의 전제조건 평신도 설교가며 유명한 노동 지도자가 이렇게 말했다.
"교회가 회개하기에 충분할 만큼 커질 때까지는 성공적인 대규모 부흥은 결코 없을 것이다."

병든 양
부흥사 무디 목사의 친구가 경험한 일이다.
목자가 양들을 인도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목자에게 가서 이렇게 부탁했다. “내게 당신이 입고 계신 의복과 지팡이를 빌려 주십시오. 그것을 입고 한번 양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무디 목사의 친구는 목자의 하락을 받아 그의 의복을 입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서 목자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매-매-매”하며 양들을 불러 보았다. 그러자 양들은 따라오기는 고사하고 모두 놀라 도망쳐 버렸다. 무디 목사의 친구는 목자에게 “이렇게 했는데도 양들이 왜 저를 안 따라올까요?”하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병든 양이라야만 당신을 따라갈 것입니다.”


어느 통신병의 죽음
어느 전쟁터에서 통신병이 중요한 연락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통신선이 끊어져 연락할 길이 없었습니다. 통신대에 속한 병사들은 불안과 초조감 속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명령을 수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끊어진 전선을 연결하는 것이었지만 전쟁통이라 달리 연결할 방법은 없고, 적의 공격은 전 아군의 생사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한 통신병이 끊어진 양쪽의 전선을 자기의 양손으로 붙잡았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걸고 마지막 메시지를 아군 지원 부대에 보낸 것입니다. 그 통신병은 생명을 바쳐 아군을 위기로부터 구하고 자신은 장렬한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해 준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분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중보자라고 말씀합니다. '중보'라는 말의 뜻은 화친이나 계약을 맺을 때 또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때 당사자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기에 중보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은행을 턴 강도들이 감옥 안에서 아무리 노력한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죄가 없는 자가 중간에서 그들을 변호해 주어야만 합니다. 결국 죄 없는 예수님의 완벽한 증보로 인해 죄인이었던 우리는 죄의 대가를 면하게 된 것입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라." 디모데전서 2장 5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중보자로 믿는 분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미국인 80% "기도하면 불치병도 낫는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기도의 효과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나타났다. "뉴스위크"가 최근 미국의 성인남녀 7백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매일 기도를 하고 3분의 2의 기독교인이 간혹기도의 응답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응답자들의 주요기도 제목으로는 가족들의 건강과 성공,개인적인 약점의 극복 등이 손꼽혔고 경제적인 성공과 보다 나은 사랑을 위한 기도가 뒤를 이었다.
특히 응답자의 80%가 "기도를 하면 불치병도 나을 수 있다"고 응답,기도의 효과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시사했고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을 때 신앙생활을 중단하게 된다"는 응답자도 17%를 차지했다.


병든사회에 부는 「건강바람」
우리 사회가 요즘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하시리라. 다들 큰 일이라고 말한다.다들 위기라고 그런다.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들이 태산같다.
요즘에는 또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대유행이다.하기야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 암이 더 무서운 법이다.아프지 않아서 내 몸이 썩고 있는 걸 마지막 순간까지 모르는 것보다는 통증 때문에 내 몸이 어딘가 고장났다는 걸 알게 되는 건 하나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서 대부분의 "위기"란 "기회"이기보다는 "패배"의 전 단계이기 일쑤이다."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특별히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진지하게 새로운 자세를 다질 때에만 예 외적으로 적용되는 소리일 것이다. 위기가 공짜로 저절로 기회가 되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우리는 우리 사회의 건강을 아예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가 하면 때맞춰 "집단 히스테리"라고 느껴질 정도로 개개인의 건강 집착이 요란하다.이건 결코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어차피 병든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 못할 테니까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의 "몸"부터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언젠가부터 텔레비전 에서는 뉴스시간에도 "건강 꼭지"를 빠뜨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별난
대학교수들의 아리숭한 "건강 특강"으로 시청률 확보에 바쁘다.그래서 " 텔레비전부터 건강해져라"라는 소리도 들린다.
물론 건강관리는 모든 생명체의 생물학적 의무이다.동시에 "건강한 사회"를 위한 노력은 우리 모두의 사회적 의무이다. 최근의 "내 몸"에 대한 건강 집착증이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한 반사작용이 아니었으면, 사회적 의무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주의의 증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는 하지만,우리가 애오라지 튼튼하기 위해서 산 다는 건 아무래도 좀 웃긴다.무언가를 위해서 튼튼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마침 오늘 반가운 책을 만났다.조수철 교수(서울대 의대 정신의학박사)가 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는 책인데,"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주 성실하게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정신의학자가 "성선설을 믿는다"고 쓴 문구에 구미가 당겨서 점심 시간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우리의 마음을 해부하는 전문가가 "우리는 원래 착하다"고 말한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나는 우선 나 자신에게 희망을 갖고 싶었고 또 우울한 처지에 놓인 이 사회에도 희망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나는 이 책을 한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참으로 좋은 책이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조수철 교수는 말한다.
"모두들 앞다투어 나쁜 짓을 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우리 속에는 착한 부분이 더 많다. 어떻게 하면 이 긍정적인 부분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
"타인과 사회에 속하지 않은 인간이란 인간이 아니다"
아무리 건강한 개인도 병든 사회에서는 저 혼자 행복하기가 아주 어려운 건가 보다.



걱정으로 인한 병
영국의 어느 병원에서는 5백명 환자들의 조사를 통하여 시각장애의 30% 가량이 환자들의 정신적인 긴장으로부터 유발된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레오나드 S .포스딕박사는 걱정을 하게 되면 침의 분배가 억제되고 그로 인해 입속의 타액이 자연적으로 중성이 되지 못함으로써 충치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또한 21개의 타대학에서는 5천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걱정하는 학생들은 성적도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백혈병을 이긴 소년
스위스에서 열 여섯 살 난 한 소년이 백혈병에 걸려 아무 소망도 없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에게 화분 하나가 배달되었는데 그 기엔 다음과 같이 쓰여진 카드 하나가 있었다. "나도 7살 났을 때에 백혈병이란 사형선고를 받았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고침을 받아서 22살이 되도록 건강하게 살고 있읍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말고 용기를 내십시요." 이 소년은 이 카드를 보고 용기를 얻어 결국 백혈병을 이겨내게 되었다.



젊은 병사의 서원
미국 남북전쟁의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아틀란타 근처 산악지대에서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밤에 연합군 소속인 스물 한 살의 젊은 장교가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위생병들이 이 장교를 쳐다보고는. “죽었어, 숨을 쉬지 않는 걸.”하고 말하면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성격은 너무 과격해서 대학 시절에 항상 그는 종교적인 문제 밖에 있었으며 무신론자로 자처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젊은 장교는 누운 채로 의식을 회복하고 양친들의 믿음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만일에 나를 살게 해 준다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닥쳐서야 비로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위생병이 다시 그곳을 지나다가 아직 살아있는 그 장교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군목을 불러 그리스도인이 되려 했던 얘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무었이 전장에서 부상당하고 쓰러진 젊은이를 위생병이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겠습니까? 위생병들도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청년에게 손을 뻗치시고 다시 고쳐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기로 서약했던 그의 남은 삶에서 무슨 일이 나타났습니까? 그는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와 세 개의 종합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침례교회도 그의 헌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20여권의 저서를 내었고 수천명의 영혼을 구원시켰습니다. 그 청년이 곧 미국이 배출한 가장 기적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러셀 콘웰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셔뜨리고 나서 그에게 봉사하는 적절한 그릇으로 다시 고쳐 만드셨습니다.



투병 중에도 감사
'제2차 세계대전' '가장 긴 밤'등을 집필한 작가 코넬리어스 라이언은 5년간 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매일 아침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이언은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은 기도를 올렸다. 하루는 아내가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라이언이 대답했다.
"새날을 맞는 다섯 가지 기쁨이 있어요. 첫째,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족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셋째, 병들어 눕기 전에 작품을 탈고한 것이 감사하지요. 넷째, 병마와 싸울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님이 지금 저와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참 신앙은 죽음 앞에서 빛을 발한다. 평온할 때는 모두가 참 신앙인처럼 보인다.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비로소 신앙의 진위가 가려진다.
건강과 마음가짐
이 시대의 가장 극렬한 전쟁터는 인간의 마음세계이다. 미움, 시기, 원망, 불안, 초조, 근심, 걱정 열등감, 의욕상실, 패배감 등의 모든 심리적 갈등은 각종 질병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건강을 위해서는 단순한 마음가짐과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인간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번민의 상당 부분을 해소시킬 수도 있다. 감사는 삶을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갈 때만 가능하다.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원망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부정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명력 있는 삶을 누리게 되지만 부정적인 마음자세는 자신의 체질을 서서히 산성화시켜서 결국 병적 체질이 되고 만다. 이것을 심신상관의학이라 한다.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최고의 예의는 감사하는 마음가짐이다. 감사는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이웃을 얻게된다. 영육의 총체적인 건강을 누리려면 마땅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만병의 의사 예수
본문 : 마가복음 6장 53 절- 56 절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 음식 드실 겨를 도 없을 정도여서 한적한 곳을 찾아 배를 타고 가셨던 일, 그래서 날은 저물어 오는데 아무것도 먹을 것 없이 따라다니는 무리를 보실 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생각하시고 민망히 여겨 보리떡 다섯과 생선 두 마리로 5천 명도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이적을 행하신 일을 기억합니 다. 예수님의 일행이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는데, 예수님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특히 병든 자를 많이 침상채로 메고 나아왔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 지방에 들어가셨을 때도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는지 문 앞에라도 용신할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중풍병 환자를 메고 온 그의 친구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예수 계신 곳으로 환자를 내려보내 고침을 받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병 든 자를 보실 때 그를 불쌍히 여겨서 죄를 사하여 주실 뿐더러 고쳐주셨습니다. 그 후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기서 떠나서 지나가시다가 마태라고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서 세를 받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세리는 곧 자기가 하던 일을 그 만두고 일어나 예수님을 좇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 가서 음식까지 같이 나누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야기로 들을 때 별로 이상한 것이 조금도 없습 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야말로 참 이상한 일이었고 예수님을 모함하려는 모 든 사람들의 악선전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에는 유대 나라가 로마의 속국으로 있어서 그 당시의 세리들은 특히 유대 사람들의 피를 빨아 모아 정부에 바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정한 세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밖에 과중한 세를 매겨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남는 것은 자기 개인이 착복하여 치부하는, 말하 자면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들처럼, 유대 사람들에게는 적대시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보 통 몸을 팔아 사는 창녀와 세리를 같이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세리 는 물론 가산은 넉넉하지만 유대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토색하고 불의한 사람들이라고 빈축의 대상이 되는 사람 들이었습니다. 여기 마태도 본래 세리였습니다. 멸시받고 죄인시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청해서 식탁을 같이 하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 식탁에는 본래 마태의 친구들이었던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추궁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의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오? 사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직접 공격을 하고 싶었지만 그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도 좀 들으라고 큰 소리로 추궁한 모양입니다. 이 말을 옆에서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대 신하여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 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 실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합니 다. 가끔 병원에 가보면 중한 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를 붙들고 간청하는 광경을 봅니다. 의사 선생님, 어떻게 하든지 저를 살려 주십시오. 이 병을 고쳐주세요.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며 애원 합니다.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병든 사람으로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 자신을 병든 자를 고치는 의사라고 말씀하 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통 우리들이 보는 눈과는 전혀 다릅니다. 흔히 우리는 죄수를 범법자 로 봅니다. 그래서 의례히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을 대 할 때는 찬 눈으로, 멸시의 눈으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와는 달리 일반인이 그렇 게 보는 죄인들을 병든 사람, 앓는 사람, 환자로 보셨습니다. 죄를 한 심령의 병으로 보셨습니 다. 그러므로 죄인들을 대할 때에 멸시와 냉대와 증오로 대하지 아니하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 합니다. 우리가 다 이와 같이 예수님처럼 죄인들을 환자로 대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많이 달라질 줄 압니다. 사실 문화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죄인의 심리를 연구하게 되고, 그렇게 할수록 예수님의 이 태도가 얼마나 옳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세상이 사실은 병원입니다. 그런데 이 병원에 참 의사가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 다. 우리가 병원에 가보면 병도 여러 가지입니다. 문자 그대로 만병입니다. 만 가지입니다. 우 리의 죄도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 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 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는데, 이런 것들은 사실 대표적인 것들이고 구약 율법대로만 보아도 6백 가지가 넘는 죄를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도 통용되는 육법이 있는데 여기에 하나라도 저촉이 되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목이 성립됩니다. 하물며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죄로 되는 것을 꼽는다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면 우리 지체 가운데 병 나지 않는 지체가 별로 없습니다. 사지백체, 오장육 부가 다 병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육체로 안 짓는 죄가 없습니다. 눈으로 정욕, 입으로 궤휼, 손으로 악한 일, 마음으로 시기와 질투, 배로 욕심을 행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은 여러 가지인데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선 병나면 아프다는 것입니다. 눈병도 아프고 귓병도 아프고, 치통으로 잠을 못 자고, 소화가 안되어 괴롭고, 무슨 병이든지 작고 큰 것을 막론하고 병나면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도 여러 가지이지만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은 고통입니다. 죄를 범하게 되면 신음 합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가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시 32: 3∼4) 하였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마음이 평안할 리가 없습니다. 육신의 병이 생기면, 가령 손끝이 곪으면 그 전에는 몰랐는데 아플 땐 왜 그렇게 그것을 쓸 일이 많은지 또 많이 다치게 되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그 부분을 전보다 더 쓰는 것도 아니고 다치는 것도 아닌데 아프니까 다치게 되고, 다치니까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무슨 죄를 지으면, 그것을 마 음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 자꾸만 우리를 괴롭힙니다. 남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깜짝깜짝 놀랍니 다. 고통입니다. 그리고 병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나 그 결과는 똑같습니다. 병의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작은 병이라도 오래 가면, 심해지면 죽습니다. 눈병도 심해지면 죽습니다. 손가락 하나가 병들어도 그것이 심해지면 그것 때문에 죽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감기도 심해지면 그것이 폐렴이 되고, 더 심해지면 죽습니다. 사실 병치고 죽지 않는 병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아무리 작아도 장성하면 사망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큰 바위만 물에 던져서 가라앉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돌을 물에 던져도 가라앉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더구나 병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누구나 병에는 약합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믿음이 튼튼하다고 범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경고합니다. 조심하지 아니하면 누구나 다 죄를 짓습니다. 옛날 구약에 나오는 많은 위인들 가운데 누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성경의 기록대로 보면 사무엘, 요셉 이외에는 모두가 다 죄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삼손도, 다윗도,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이것이 인간 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병에 대하여 약한 것처럼 영은 죄에 대하여 약합니다. 건강한 사람이라 도 위생을 잘 지키지 아니하면 병이 납니다. 안양에 가면 은퇴하신 교역자님들이 계시는 원로원이 있습니다. 거기 가면 가장 젊었다고 할까, 춘추가 적으신 분이 75세요, 대개는 그 이상이신 분도 계십니다. 대개 그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평생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비교적 건강한 분도 계십니다. 그 러나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영적으로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 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병든 사람, 이 많은 환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두면 그 병으로 말미암 아 결국 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병들면 절망입니까? 범죄하면 희망이 없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 마가복음 6장 53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고 내리실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온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병든 자를 침상에 메고 나왔습니다. 먼저는 내가 건강해야겠습니다. 모든 죄의 병에서 고침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런데 병원 하면 병 고치는 데 약 값이 있어야 하고 치료비가 있어야 합니다. 제일 큰 문제는 돈입니다. 병들어 도 돈 없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을 고치지 못하고 희생되는 경우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 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나아와 병고침을 받는 데는 돈이 필요없습니다. 오직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먼저 내가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댄 사람들이 그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주님 앞에, 의사 앞에 나오지 못하는 심령의 환자들을 메고 인도 해 나와야 합니다. 인간 의사는 실수할 때도 있지만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님은 실수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못 고치시는 병이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예수님이 장례식 주례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고침을 얻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으십시오! 우리 이웃을 주님께 데리고 나오십시오!


은퇴와 질병
일반적인 통설에 의하면 정년 퇴직한 후의 중년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30개월에 불과하다. 또한 일터를 떠난 직후의 사람들에게는 육체적인 질병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례보고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순다섯이라는 나이에 도달하여 별안간 나타나는 생리적인 과정의 결과가 아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견해에 의하면,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자신이 모든 삶의 중심부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스스로 의식한 결과라는 것이다. 골프를 치고 정원을 가꾸는 일 정도로는 도저히 자신의 소속 의식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제는 더 이상 쓸모 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늙어 버렸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질병의 대부분은 이러한 의식과 더불어 발생한다. 스스로가 자신을 늙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늙게 하는 것이다.

노동은 질병의 약
브람웰 부드는 1926년 가을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교한 이름 높은 종교가였다. 당시 그는 눈보다 흰 백발의 노인이었다. 그런 그도 청소년 시절에는 매우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14세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마도 17세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17세까지 간신히 살아 남았고 건강도 조금 좋아졌으나 의사는 내게 희망을 품지 않았고, 21세 정도까지 살 것으로 단정했다. 계속 병상에 누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2, 3년 간은 누구의 도움 없이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이처럼 병약했던 그가 어떻게 73세의 장수를 누릴 수 있었고, 세계 6대주를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그는 건강 회복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그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동한 것이 나로 하여금 병을 이겨 내게 했습니다."
병약자를 구하는 것도 노동이며, 폐인이 될 사람을 구출하는 것도 노동이다. 또한 튼튼한 자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것도 노동이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


교회와 질병
홉킨스 대학의 보건학과 공중위생학 교수인 죠지 컴스톡 박사가 병과 사회 경제적 요인과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워싱톤 주의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규칙적으로 교회를 나가고, 술 담배를 하지 않고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심장질환, 간경변, 결핵, 목암(후두암), 고질적인 기관지염,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와 자살 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정규적으로 교회를 나가는 사람은 동맥경화증세의 심장질환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중 그런 병으로서의 사망률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10만 명 중 900명이 넘었으나,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10만 명 중 50명이 되지 않았다.
기관지염에 걸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찬송가가 기관지를 깨끗하게 해주는 것 같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