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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정의

열려라 에바다 2023. 8. 16. 13:18

 미의 정의
1.
서양의 미의 의미 1 : 서양사상과 미론


개요
미라는 용어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여러 가지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고대부터 전해지
는 미의 개념을 살펴본다. 우리는 단순히 미의 의미를 아름다움에 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의 개념은 보다 광범위해서 아름다운 사물, 형태, 색채 소리 등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고, 관습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대부터 시작된 미의 본질과 용어를 그 시대의 모습과 함께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 미의 개념 변천
영어에서 미(beauty)라는 용어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여러 가지 말로 사용되었다. 희랍의
미의 개념은 우리의 미의 개념 보다 광범위해서 아름다운 사물, 형태, 색채 소리 등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고, 관습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플라톤은 그의 『大히피아스』에서 미의
예로서 아름다운 성격과 아름다운 법을 들었고 『향연』에서 그가 미의 이데아로서 언급하는것은 선의 이데아라고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은 이 원래의 미의 개념을 축소하여 단지 미를"시각이나 청각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한정했다. 이 정의에 대한 이점은 미의 개념을 선의 개념과 구별되어 미의 개념을 보다 잘 정의하게끔 한 것이다. 그 후 미의 정의는 스토아학파에 의해 진전되는데 "적당한 비례와 매혹적인 색채를가진 것"이라는 미의 개념은 소피스트의 정의만큼 좁았다. 반대로 플로티누스는 아름다운학문 및 아름다운 덕에 관하여 서술하면서 플라톤과 같은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였다. 고대에는 보다 광범위한 개념이 더 보편적이었고, 오늘날에는 보다 좁은 개념이 지배적이라는차이는 있으나 그 의미의 이중성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희랍인들은 미에 대한 다른 용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가시적인 미를 위해서는 심메트리아(균제)라는용어가, 가칭적인 미를 위해서는 하르모니아(조화)라는 용어가 있었다. 앞의 용어는 조각가나 건축가를 위한 표현이었을 것이고, 뒤의 것은 음악가를 위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다 좁은 개념으로 미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균제와 조화는 점차퇴색되어지게 된 것이다.
 
중세 및 근대 사상가들은 고대인들의 개념적, 용어적 장치들을 이어받아 자기 나름대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시각예술의 요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미의
개념을 좁게 보려는 경향으로 기울었다. 이런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의 이론들은 세
가지의 다른 개념들을 사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미는 희랍의
원래 미의 개념으로 미학뿐만 아니라 윤리학까지 포함한다. 둘째, 순전히 심미적 의미에서의
미는 심미적 경험을 환기시키는 것에 한해서 적용되지만 색채와 소리뿐 아니라 정신적 산물
등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포괄하는 것이다. 유럽문화의 기본적 미의 개념
이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셋째, 심미적 의미에서의 미이지만 시각적으로 파악되는 사물
에 한정되는 경우는 형태와 색만이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스토아학파가 부분적으로 이 미
의 개념을 채택하였는데 현대에는 일반 언어에만 사용된다.
 
2. 대이론(The great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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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정립된 미에 관한 일반적 이론은 미가 여러 부분들 간의 비례, 즉 여러 부분들의
비례와 배열, 부분들의 크기, 질, 수 및 그것들 간의 상호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언명했다. 이
이론은 건축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고 음악에서도 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적이라는 점만
이 다를 뿐, 마찬가지이다. 이 이론은 수 세기 동안 다양한 해석 차이를 보이면서 계속되었
다. 보다 좁은 해석은 미를 산출하는 부분들의 관계를 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층 더 좁게 해석하는 경우에는 여러 부분들이 1:1, 1:2, 2:3 등과 같이 작은 숫자들이 서로
서로 관계되어 있는 물체 속에서만 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대 이론은 피타고라스학파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미를 보다 좁게 해석하는 의미에서였다.
그 토대는 음들의 조화를 주목하는데 있었다. 현(弦)은 그것들의 길이가 간단한 숫자들과 관
계되어 있을 때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비슷한 형태로 급속히 시각예술
로 퍼져갔다. 하르모니아와 심메트리아는 이 이론이 각각 청각과 시각에 적용되는 것과 긴
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희랍의 고전기 때는 이 이론이 청각 및 시각의 양 영역 모두에서 지
배적이었다.
프로티누스에서 피치노에 이르는 이 미학자들은 대이론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
충하고 한계를 지은 것이다. 대이론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척도, 형체, 질
서라고 하는 미에 대한 괄목한 정립을 이루었다.
르네상스기의 미학 역시 미가 '여러 가지 요소들의 결합 속에 숨겨진 수단에 의해서 성취
된 조화armonia occultamente risultante della compositione di piu membri'라고 주장했다.
르네상스 초기에 알베르티는 미를 조화와 훌륭한 비례 즉, "부분들의 조화와 상호통합"이라
고 규정했다.
대이론은 르네상스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으며 18세기가 되어서야 경험론철학과 예술의 낭
만적 경향에 밀려났다. 18세기에는 미를 예술의 목적 즉, 예술들을 한데 결합시키고 규정짓
는 것으로 보기 시작한 때였다. 대이론은 BC 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군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22세기 동안 대이론에는 부가적인 명제들이 보충되고 조건이 가해지기도 했다.
 
3. 기타 이론들
대이론과 더불어 미에 대한 다른 이론들이 나타났으나 그 중 어느 것도 대이론을 대치하
지 못했으며 단지 보충하는 데에만 그쳤다. 그러한 이론들은 다음과 같다.
가: 미는 다양의 통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대이론에 가장 가까운 이론이었다. 그러나 통일
이 반드시 어떤 특정한 배열이나 비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과 다양이 일반적으로
희랍의 사고에서는 근본적 동기였으나 미학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 미는 완전성에 있다. '완전성 perfectio'은 미뿐만이 아니라 진 및 선과의 관계에 있어서
도 중세에 애호하던 개념들 중의 하나였다. 완전성의 이론이 독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다: 미는 사물의 목적과 그 사물간의 적합성에 있다. 이 이론은 대 이론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고전주의자들이 이것을 '적합성biens ance'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던 17세기
가 되어서야 하나의 독자적인 개념이 되었다.
라: 미는 원형(原型)의 개념, 영원한 모범, 최고의 완전성, 절대 등의 출현이다. 대이론을 대
신하기보다는 대이론을 보충,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 미는 영혼psyche, 내적 형식의 한 표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신만이 진정으로 아름
다운 것이고, 물질적인 것은 정신이 거기에 스며든 한에서만 아름답다고 했다.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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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용어는 세기까지 자리를 expression‎‎' 17 잡지 못했으며 감정의 표현으로서의 미의 개념은 18세기에 비로소 등장했다.
 
바: 미는 중용moderation에 있다. 이 개념을 미학적 의미로 사용한 것은 17세기의 혁신이
었으며 중용으로서의 미개념은 하나의 독자적인 개념이 아니고 대이론을 공식화한 경우였
다.
 
사: 미는 은유에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미는 은유 즉, '비유적 언어 parlar figurato'
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유의 종류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예술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독창적이었으며 다른 어떤 이론보다 대이론에 견줄만한 것이었다.
6. 18세기의 기타 이론들
미에 대한 개념사의 분단 과정은 고대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미 그 자체
와 목적을 위한 미를 구별지었다. 플라톤은 실재의 미와 추상적인 미를 구별지었으며 스토
아학파는 물질적이 미와 정신적인 미를, 키케로는 '디그니타스dignitas'와 '베누스타스
venustas'를 구별지었다.
17세기 말로 가면서 전개의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뻬로는 '임의적 미beaut
arbitraire'와 '확실한 미beaut convaincante'를 구분지었고, 이브 마리 앙드레는 보질적인 미와 자연적인 미 즉 '장엄le grand'과 '우아le gracieux'를 구분지었다. 18세기에 이루어졌던
구분들 중에는, 우아미ahnmutig, 괴려미pr chtig, 격렬미 feuerig에 대한 줄쩌의 분석이나 미를 소박한 것과 감상적인 것으로 구분하고자 했던 쉴러의 제의가 언급될 수 있다.
18세기에 제안되었던 미의 구분들에는 두 가지가 기본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는 기본적인 미와 상대적인 미를 나눈 허치슨의 구분이었다. 또 하나는 역시 영국엣 나온
것이지만 그 고전적 공식은 칸트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자유미(freie Sch nheit, pulchritudo
vaga)와 부용미(anh ngende Sch nheit, pulchritudo adhaerens)간의 구분이었다. 부용미는
대상이 무엇이어야 한다는 데 대한 어떤 개념을 상정하는 반면, 자유미는 그렇지 않다. 이
구분들은 미의 개념을 특수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18세기에는 두 가지 다른 가치들이 미와 경쟁하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은 '그림같이 생생한
것the picturesque'과 '숭고한 것the sublime'이었다. 후자는 18세기에 발견된 것은 아니나
18세기에야 비로소 미학적 사고에서 어떤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20세기는 미의 개념을 비판하는 한편 미의 개념을 전개시키고, 그 가변성을 감소시키며
보다 실용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미'라는 용어 및 그 개념은 일상의 구어
로 계속 사용되어 왔으며 이론적으로 보다는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유
럽의 문화 및 철학사의 중심 개념들 중 하나가 한낱 구어체의 지위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
고 유럽 미의 개념의 전개 방향은 넓은 의미의 미의 개념으로부터 순수하게 미학적인 개념
으로의 전이가 일어났다.
 
도덕적인 미까지를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은 플라톤적인 시류 속에서 고대 말까지 이어져왔다. 그러나 소피스트들,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스토아학파에게 있어
서 미란 거의 절대적으로 심미적인 미로 되었다. 미의 개념을 협소화시키는 작업의 마지막
장은 18세기에 미에서부터 숭고를 분리시킨 일이었다. 말하자면 심미적인 것과는 다른 미를
가진 것은 모두다 숭고라는 개념으로 포섭된 것이다.
보편적 미의 개념으로부터 고전적 미의 개념에로의 변화가 심미적인 영역에로 좁혀지긴
했으나 미의 개념은 여전히 넓은 개념이었다. 거기에는 고전적 예술의 미 및 다른 모든 종
류의 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미의 대이론은 고전적 예술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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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이 결국은 대이론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이론은 추구하지 않
았다 그러나 세기에는 사정이 . 18 바뀌어 로코코의 장식들은 형용사 '우아한graceful'에 더 잘
맞으며, 낭만주의 이전의 풍경들은 형용사 '숭고한sublime'에 더 잘 맞는다.
고대 희랍인들에게는 미가 자연세계의 한 속성이었다. 그들은 자연세계의 완전함과 미에
대한 경탄으로 충만해 있었다. 세계가 아름다우므로 인간의 제작물도 아름다울 것이며,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미에 대한 확신은 초기 희랍인들뿐만 아니라 후기 희랍인들과 로마인들까지도 언급되어 졌다. 세상이 가장 아름답다는 견해는 중세 때도 계속되는데 아우구스티누스의 믿음이 그 표현을 대변한다. 세계의 미는 동방의 교부들 특히 바질과 카롤링 왕조의 학자들 그리고 12세기의 성 빅토르파와 13세기의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해서도찬양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미학적 연구들에서도 아름다운 예술보다는 아름다운 자연에관해서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 근대에 와서는 예술미의 지위가 점차 강해졌다. 19세기 전형적인 관점들 중의 하나는 자연미와 예술미의 이원적인 미가 존재하며 이 둘은 서로 다른근원과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에는 더 진보하여 미는 예술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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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술과 미의 정의
 
Ⅰ. 예술과 미의 정의
 
엘리아데의 예술과 미의 견해는 서구 근대미학 이후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가 예술과 미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성적인 논리보다는 비이성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며, 철학보다는 종교적인 데에 기인한 것이다.
 
1. 예술의 정의
 
그의 예술의 관점은 예술의 행위는 신의 창조 행위를 모방한다는 서구의 고대 미학의 관점을 수용하고 있다.
 
인간의 예술의 행위는 神의 예술활동의 모방이다.(2)
 
예술의 행위가 神의 활동을 모방한다는 그의 모방의 개념은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고, 그 형태를 재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즉, 자연의 창조물을 모방하고 그 형태를 재현하는 모방의 개념과는 달리 인도의 예술가처럼 자연의 '몸짓', 우주 만물의 창조적인 동작을 모방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신이 우주를 창조하는 행위를 이해하는 것이며, 시간의 구속을 벗어난 존재임을 자각하는 행위인 것이다.
 
예술가들이 일상적인 언어행위를 재창조하려는 시도는 낙원적이고 원초적인 상황의 재발견으로 향한다. 그것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언어행위를 대체하기 때문에 시간의 폐지를 함축한다.(3)
 
예술의 본질은 헤겔이 말하는 우리가 역사적 존재, 궁극적 실재를 자각하기 위한 것이 아닌 우주생성때의 존재, 무한의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창조의 순간은 그에 의하면, 예술가는 영감에 사로잡히며 始原의 지식이 가득찬 므네모시네(Mnemosyne, 기억이 의인화된 여신)의 문을 여는 것이다.
 
뮤즈는 원시부터 시작한 것, 세계의 출현, 신들의 발생, 인류의 탄생을 노래한다. 그것에 복귀하는 경우, 회상은 사건을 시간의 구조 속에 위치지우는 것이 아니고 존재의 깊이에 이르게 하고 우주를 생성하고 전체로서의 생성의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본래의 원천의 실상을 발견하게 한다.(4)
 
창조의 행위는 그에게 과학적인 행위와는 분리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우주와 인간의 근원적 본질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논리와 상상력은 엘리아데에게 있어서 중요한 만남의 계기를 가진 범주로 간주된다. 즉, 과학적 논리에 의해 제시되는 새로운 공리가 이전에는 알려져 있지 않던 실재의 구조를 드러내주는 것은 바로 상상력에 토대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문학 혹은 예술적 상상력에 의한 창작 활동 역시 새로운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드러내 보여준다. 달리 말하자면 상상력의 요소는 학문에 있어서 결코 배제시킬 수 없는 위상을 가지며, 또한 시적 상상력 역시 그 자체로서 지식의 수단이 될 수 있다.(5)
 
그의 시적인 창조 행위는 지식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창조의 순간은 그에게 자기 중심의 사유에서 벗어나 전체를 보는 것이며, 비판적인 사유를 지니고 의식을 일깨우는 원동력이 되기에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해주는 통로인 것이다. "상상력을 가진다는 것은 세계를 그 전체성 속에서 바라본다는 뜻이다. 개념에 저항하는 모든 것을 지시해주는 것이 이미지의 힘이자 사명이다. 상상력의 결여는 인생과 자신의 영혼의 심오한 현실과의 단절된 것이다." (6)
 
입체파라든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무조음악, '구상음악' 등에 의하여, 그리고 조이스나 베케트, 이오네스코와 같은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예술 언어의 파괴나, 또는 입체파에서 점묘파(點描派,tachisme)에 이르기까지의 현대 미술사에서도 우리는 사물의 '표면'을 벗어나 그 궁극적인 구조를 남김없이 표현하기 위해 물질로 침투해 들어가려는 미술가들의 끊임없는 시도. 그와 같은 물질의 근원적 양식에 대한 추구는 죽은 형식의 무게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과 그를 통해 장밋빛 세계에 침작하고자 하는 향수를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7)
 
예술 작품은 Eliade에게 헤겔이 주장한 것처럼 이념과 감정에 좌우되어 고대 동방의 상징적 예술 형식(건축)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적 예술 형식'(조각)에서 정점에 이르고, 다시 낭만적 예술 형식(회화·음악·시)으로 하강하는 웅대한 활모양의 형태로 표현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예술 작품은 그에게 전통적인 미학 세계를 파괴하고, 원초적이고 태아적이며, 유충적인 '형식'들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작품은 이전의 형식을 파괴하며, 근원적인 것의 추구를 통한 새로운 형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브르통의 시와 시론 등에서 '원초적 총체성'에 대한 향수라든가 역의 합일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희망에서 전통적인 미학 세계를 파괴하고, 원초적이고 태아적이며, 유충적인 '형식'들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8)
 
그의 저서『신성, 상징, 예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술 작품은 이념과 감정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 실체를 표현하고자 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즉, 건축은 영혼이 거주하는 사원이 될 수 있고, 조각 작품은 브랑쿠시가 보여준 것처럼 망아적 체험의 표현이며, 쉬바 신상 처럼 영혼의 상승을 통해서 도달되는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회화는 샤갈이 표현한 것처럼 동물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의사 소통을 하는 시원적인 모태를 드러내는 것이며, 음악은 Carmen의 노래처럼 신성을 불러오기 위한 하나의 주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그에게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종교자료와 마찬가지로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9) 첫째, 예술작품은 '종교 자료'와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고유한 존재양식을 지닌다. 둘째, 예술 작품은 그것이 놓여 있는 특수한 세계에서 그 자신의 준거 지평 위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그것을 실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셋째 하나의 예술작품은 자율성을 지닌 것이기에,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나 또는 정치적인 메시지나 사회학 혹은 민족학 등을 위한 자료로 환원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그가 정의하는 예술작품이 자율성을 지닌 것이라 하여도 역사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의식의 역사적인 내적 경험과 조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는 가다머가 주장하듯이 예술작품과의 대화, 즉 유희를 통해 주관자의 본질을 자각시킬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인식이 변화되고 전환되는 것은 예술의 창조의 행위를 통해 우리의 인식은 전환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이 제반 학문과의 환원을 통해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면, 엘리아데가 말하는 예술의 행위는 우리의 삶과는 분리된 예술을 위한 예술인가? 삶과 예술의 행위는 그에게 분리된 것인지 그의 미에 대한 정의를 통해 조명해 보기로 하자.
 
2. 미의 정의
 
예술의 행위을 통해서 느끼는 미는 Eliade에게 인간의 경험을 벗어나는 역의 합일의 미이다. 이러한 미적인 감정은 우주와 삶을 초월한 조건지워지지 않은 절대적인 자유와 미이며, 최고의 善인 것이다. 이러한 미적 본질의 세계는 현상의 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닌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이며, 플로티누스의 일자(一者)의 세계이다. 즉, 그 세계는 성과 속, 음/양, 순수정신/물질 등의 이원적인 대립을 벗어나 extacy를 통해 경험되는 세계이다. (10)
 
브랑쿠시는 물질의 근원적 형태를 사용함으로써 내면화를 통해 <우주공간의 새>에서 비상하고자 하는 충동을 표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비상은 일상적인 경험을 벗어난 초월과 자유를 획득했음을 의미하며, 물질의 변형을 통해 존재론적으로 변형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역의 합일을 이루어 낸 것이다.(11)
 
미적인 감정은 그에게 칸트 이후 서구 근대 미학에서 의미하는 주관자가 대상이나 형태에서 느끼는 우아함이나 숭고함을 통해 일어나는 이성과 감성이 분리된 지각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유의 상태를 벗어나 느껴지는 경험인 것이다. 즉, 그것은 브랑쿠시가 초월과 자유의 획득을 작품에 표현하기까지의 내면화의 여행, 즉 고대부터 전해지는 주관자의 入門(initiation)을 통해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경험인 것이다.
 
미오리차가 아무리 완벽하다 할지라도 시적 영감을 낳지는 못한다. 이처럼 민간 시가와 시각 예술, 안무 및 건축을 낳은 원천은 무엇인가 ? 그것은 바로 대중 생활에 의해 살찌어 온 '환상적 실재', 곧 비합리적인 경험이다.(12)
 
비합리적인 경험은 우리에게 원형적인 존재로 향하게 하는 원천인 것이다. 즉 그것은 창조적인 상상력의 과정으로서 그에게 종교의 행위에서 일어나는 좌선을 통해 의식의 상태와 무의식의 상태를 통합하여 초의식적인 상태로 나아가고 하는 禪적인 행위와 같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기법은 요가나 선불교의 관행(깨어있는 상태와 잠들어 있는 상태에 모두 참여하는 '존재양식'을 얻으려는 노력, 또는 '의식과 무의식의 공존'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야기시킴으로써 원초적이고 태아적인 '형식', 즉 인간이 '맨 처음' 세계를 보았을 당시의 여명의 순간을 통합하고자 한다. 그의 인식 경험은 우리의 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식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인식은 시간적인 흐름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각인 것이다. "발견된 실재는 발견 이전 부터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인데, 단지 우리가 그 실재를 보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거나 또는 그 사용 방법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13)
 
Matei Calinescu는 이러한 그의 미적인 태도에 심미적인 존재론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그의 미적인 태도는 발견이다. 예를 들어 그가 어떤 나무들을 볼 때 그는 그 나무들을 우주적인 리듬을 지닌 신비한 표현으로써 볼 것이다. 이것이 엘리아데의 실존적인 차원을 지닌 종교에 관한 미적인 비젼이다. 즉, 그에 의하면, 엘리아데의 미는 일종의 심미적인 존재론이다."(14)
 
Eliade의 미적인 감정은 심미적인 존재론에 머무르는 것인가? 그에게 있어서 미적인 감정은 주관자의 내재적인 의식에 머무르는 만이 아닌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미적인 감정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性적인 욕망을 벗어남으로써 오는 순수한 상태의 감정, 즉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한 감정은 자연과의 조화감, 자연이 만들어 낸 무수한 창조물과의 완전한 일치감, 그리고 자연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한 감정인 것이다. 자연은 샤르트르가 보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과 분리된 실존으로써 구토의 대상이 아니며, 원초적이며, 모태적인 것이며, 신앙적인 것이다. 타락 이전에 인간이 동물과 평화롭게 살았으며,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신화적이며, 성스러운 세계이다.(15)
 
그의 미의 본질은 역의 합일의 미이며, 미적인 원천은 이성적인 것이 아닌 extase를 통한 비합리적인 경험인 것이다. 그가 정의하는 미는 본질적인 미에 대한 자각을 통한 것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엘리아데는 브랑쿠시, 샤갈, 이오네스크 등과 더불어 본질적인 의미, 순수한 아름다움과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던 사상가 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전시대에서 처럼 그것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해답으로 강요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단호한 거부의 몸짓을 표명했다."

 

봉서방추천 1조회 2223.08.16 02:17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