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어린이 헌신 예배

열려라 에바다 2012. 1. 20. 16:50

어린이 헌신 예배

모세 같은 아이

히브리서 11:23-26

1. 아름다운 아이였습니다.

(출 2:2)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행 7: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모세는 탁월한 지혜와 아름다운 외관과 강력한 체격을 갖추어 매력적이고 에티오피아의 전쟁 때는 애굽 군의 사령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이런 아름다운 외적 모습보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종으로의 모습을 미리 보았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것은 본문에도 있듯이 믿음으로 본 모세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탄생에 대한 유대인들의 전설이 있는데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은 바로가 두려워 자식을 낳지 않기 위해 3개월 동안 아내와 동침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딸 미리암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아버지를 권하므로 아내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모세였습니다. 그들은 극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이 아들이 하나님이 주신 아들임을 믿고 석달을 숨겼습니다.

모세의 탄생에 대한 전설을 전적으로 부인한다고 해도 그 부모가 석달을 숨겨 모세를 길렀다는 것은 믿음의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히브리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탄생에 대한 유대인의 전설은 거의 기정화된 모세의 출생 역사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 자식의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다른 애들보다 더 똑똑하면 아름답고, 그렇지 못하면 아름답지 못하더라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아름다운 우리 아이임을 아십시오. 그렇게 아이를 보고 기르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식을 향한 절대자의 사랑의 섭리가 있음을 부모가 못 믿으면 세상에 누가 그런 믿음을 가져 아이를 기를 것입니까?

2. 임금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아이를 길렀습니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생명을 위협받는 일입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를 기른 것은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부모의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말씀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출 1:16]"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출 1:22]"

이런 엄한 명령에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와 자식의 생명을 함께 위험 속에 빠지게 하는 모험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믿음으로" 그 아이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부모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자식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인물이 되기 위해 생명을 바쳐 자식을 보호하고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믿음이 모세가 모세 되는 기초적인 교육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부모이면서 하나님의 종 모세를 하나님의 뜻대로 기르는 대부모 역할을 잘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지식을 사랑하실 때 여러분들의 자식으로만 사랑하시지 마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종을 사랑하는 대부모 역할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아이들이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물로 자랄 것입니다.

3. 그들은 믿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모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가장 잘 기를 수 있는 방법으로 최고의 지혜를 동원했습니다. 자식을, 핏덩이를 하나님을 믿고 바로의 공주에게 주었습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모세의 경우에 딱 알맞은 말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강에 버린 것입니다. 그냥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버린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에게 바친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일 모세의 부모가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 모세를 산 속에 피신 시켰다든지-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인간적인 방법으로, "우리 세끼! 내 세끼, 내가 보호 안하면 누가 지켜 줄 것인가"하였다면 모세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고, 아니면 아므람의 아들로서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세의 부모들도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사랑이고, 자식을 위한 헌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식을 위하여 헌신하고, 사랑하되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식을 위한다는 게 자식을 반병신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식을 위한다면서 극도의 이기주의자를 만들어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옹고집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 하다면서 무능력자, 정신적 자폐증 환자를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식을 죽으리만큼 사랑하면서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헌신을 합니까? 지나친 과보호, 지나친 간섭, 지나친 인정들이 자식을 기형화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험을 합니다. 하나님에게 마끼고 자식을 적지에 넣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에게 그 자식을 마끼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 댁에 마낍니다. 하나님을 믿고 분위기가 안 좋아도, 자식을 하나님에게 마낍니다.

사랑한다고 자기가 아이를 끼고 있어야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마끼는 아이.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고 잘 길러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아이들을 목사 집에 대려 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기도를 받게 하는 부모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은 모험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을 하나님에게 마끼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4.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이를 양육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나일강에 버린 그 모세를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자기들이 기르는 것보다 100배 안전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유모 아닌 유모가 되어 모세를 기름니다. 우리는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의 유모가 되었을 때, 모세가 젓을 뗄 때까지만 유모였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유모는 그 아이가 다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유모로 그 아이의 후견인이 되는 것을 봅니다.

모세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그나마 하나님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유모, 숨겨진 어머니의 힘이 크고, 감히 왕자에게 히브리인의 정신을 심어 준 요게벳의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애굽의 왕자에게 유대인 여자 유모가 왕자의 몸 속에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알리고 그 민족을 사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런 사실이 왕가에 알려 진다면 어떤 일이 있을지 뻔한 일이 아닙니까? 생명을 건 조심스러운 교육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쓸만한 인물이 생긴다는 것은 굉장한 생명의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100배를 더 생각할 줄 알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에게서 다른 사람보다 100배 뛰어난 인물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되는대로 밥이나 먹이는 것이 부모 노릇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무조건 나무란다고 해서 아이가 곧게 자라는 것이 아니오, 아이를 무조건 칭찬한다고 해서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를 위한 확실하고 분명한 교육 지침이 있어야 합니다. 자주 바뀌는 지침이 아니라 평생에 따를 지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상의 교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이를 위한 확실한 부모들의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인생을 사는 일에 갈팡질팡하면 아이들도 그 모양이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아이들도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인물이 됩니다.

술 많이 마시는 주정뱅이 아들은 술 먹는 아버지를 비판하고 싫어하면서 자기도 술꾼이 된다는 것을 아십시오. 돈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수전노 아들이 탄생하고, 음란한 사람의 지식이 음란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도적질하고 사기하는 부모에게서 그런 자식이 태여 납니다. 그러나 확고한 믿음을 가진 경건한 부모에게서 그런 믿음의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콩잎은 데서 콩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납니다.

공부만 잘한다고 잘 난 자식이 아닙니다. 재능만 뛰어 난다고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인격, 믿음, 이상과 꿈, 사랑,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열심, 선함, 지혜와 능력, 건강, 사회성, 신령한 생활, 그야말로 부모가 아니면 할 수 없고, 현명한 부모가 아니면 더 더욱 할 수 없는 생명의 희생과 노력이 있어야 한사람, 쓸만한 인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한 지혜와, 상식을 초월한 현명한 판단, 어떤 자식도 거역할 수 없는, 위엄 있는 부모가 되어 자식을 잘 기를 수 있겠습니까? 진실한 삶, 성령의 능력, 경건, 사랑의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주신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자식을 위해 부모가 얼마나 힘을 쓰는가? 어떻게 힘을 쓰는가? 어떤 방향을 잡았는가에 따라 자식의 평생이 좌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허공에 자식을 팽개치지 마십시오. 움직이는 표적은 표적일 수 없습니다. -끝-

'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년 헌신 예배  (0) 2012.01.20
신년 전 교인 헌신 예배  (0) 2012.01.20
여전도회 헌신 예배  (0) 2012.01.20
남전도회 헌신 예배  (0) 2012.01.20
제직 헌신 예배  (0) 201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