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폴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상기하라!

열려라 에바다 2023. 9. 27. 11:02

주님의  명령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사셨던 분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믿는다면 그의 계명들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다시 말해 『어찌하여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라고 부르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들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고 말씀하신 바 그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구주로서 그분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그분이 명령하신 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실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구속주로 고백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마저도 예수님을 본받고 그분의 삶을 따르겠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그분이 명령하신 바를 무시하는 것보다 더 모순된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본문에서 여러 가지 것에 관해 주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살펴볼 것이다. 회개, 믿음, 새로운 출생 등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들은 당연히 명령형으로 주어져 있다. “우리 이것을 하도록 하자.”라든가 “너희는 이것을 해도 좋다.”라든가 그 밖의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이것을 하라.” 혹은 “이것을 하지 말라.”고 주어진 명령들이 이 과에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주님의 명령에는 순종을 요구하는 권위가 들어 있다.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권위를 미워하고 권위에 반역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신들이 되고 싶어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1. 회개하라. 

 

첫 번째로 회개에 대해 살펴보자.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한 번도 회개를 해보지 않았거나 회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4:17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6:33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누가복음 13장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눅 13:3)고 하셨다.

 

누가복음 13:24에서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회개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이다. 돼지우리에서 살게 된 탕자의 죄의 핵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것이요 그의 회개의 핵심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었다. 탕자는 일어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모두에게 회개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분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고 말씀하셨다.


2. 복음을 믿으라.

 

믿음에 관해서는 우리는 복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아버지를 믿어야 한다. 마가복음 1:15은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다름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셨다. 그분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명령하셨다. 만약 당신이 “나는 믿지 않겠다.”고 하면 당신은 그분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분을 ‘주여, 주여.’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는다면 ‘주여.’라고 부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도도 하고 주기도문을 반복해서 외우면서도 그분께서 하기를 원하시는 것에는 조금도 유의하지 않는다.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다! 당신은 이 명령에 순종했는가? 요한복음 14:1은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결정적인 명령이다. 당신은 이신론자나 유신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이신론자나 유신론자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되며 당신은 그분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3. 거듭나라.

 

요한복음 3:7은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출생에 관한 명령이다. 그분은 당신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그분은 당신이 이에 관해 뭐라고 생각하는가 혹은 당신의 친구가 이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가를 묻지 않으신다. 더 나아가 그분은 당신의 교회가 이에 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도 묻지 않으신다. 그분은 “너희가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 명령 그 어디에서도 “침례”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요한복음 6:29에서 주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즉 그분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어쩌면 “나는 모든 종교를 믿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그분을 믿으라는 명령을 하셨다. 당신은 그분을 믿었는가?

 

새로운 출생은 사람을 회심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신비로운 역사이다. 누가복음 10:20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를 위해서는 거듭나야 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12:33에서 예수님은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고 하든지, 나무도 나쁘고 열매도 나쁘다고 하든지 하라. 이는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가 되는 방법은 회심을 통해 거듭나는 것뿐이다. 주님은 당신에게 옛날 나무를 하얗게 칠하거나, 바로 세우거나, 가지를 치거나 혹은 새 가지를 접붙이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은 새로운 나무 즉 다른 나무가 되라는 것이다.


4.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는 것에 관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20:22에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씀(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으라.』 누가복음 24:49에서도 예수님은 『그러나 높은 곳으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도성에서 기다리라.』고 명령하셨다. 이 두 가지 역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구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일어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말씀을 하실 당시에는 성령께서 아직 공식적으로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시지 않았다.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그가 너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리라"(요 14:16,17). 새로운 한 세대의 시작을 의미한다(요 14:26).

 

5. 그리스도를 따르라.

 

그분을 따름에 관해서는 예수님께서 분명한 명령을 하셨으므로 믿는 자라면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따르는 것 이외의 다른 도리가 없다. 요한복음 12:26에서 주님은 『누구나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9:23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1:22에서도 『너는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5:27에서 마태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네가 원하면”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셨다. “나를 따라오라”는 죠지아 주 포트 베닝(Fort Benning)에 있는 보병학교의 모토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자기의 인생을 국가를 위해서는 바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6. 기도하라.

 

기도에 관해서도 예수님은 계명들을 주셨다. 만약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들을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기도로 특징지워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누가복음 21:36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고 누가복음 22:40에서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9:38에서는 『그러므로 추수의 주께 기도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누가복음 6:28에서는 『너희를 천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들 모두는 명령들이다.

 

주님은 당신의 의견을 묻지 않으셨으며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묻지 않으셨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명령에 당황하고 만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배교한 자들이며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한다. 이들 건전한 교리적 선언들은 너무도 건전하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딤전 6:3,4).


7.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의 성도가 위대하게 되는 것은 그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에 관해서도 명령하셨다. 마가복음 11:22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은 신앙 생활에 있어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사항이다. 요한복음 20:27에서도 예수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불신을 버리라. 당신은 믿으라고 명령을 받았다. 마태복음 14:27은 『기운을 내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8. 성경을 상고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성경을 상고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분명한 계명은 요한복음 5:39에 나와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20에서 『너희에게 일렀던 나의 말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공부해야 하고 성경을 암기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15에서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고 말하고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는가? 당신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주신 명령임을 알고 있는가? “나는 이 말씀이 좋더라.” “이 말씀은 이런 뜻일 거야.” “나는 이렇다고 생각해.” “당신 성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지?”와 같은 것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개의 성서들을 가지고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키고 혼란과 무정부 상태를 가져오는 그런 일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상고한다는 것은 당신이 배운 바가 과연 그러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찾아보는 그것을 말한다.


9. 빛을 비추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에 복종하려 한다면 자기의 빛을 날마다 밝히 비추어야만 한다. 마태복음 5:16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므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선행을 보게 하고...』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5:19에서 주님은 새로운 회심자에게 『집에 가서 네 친구들에게 주께서 너를 위하여 얼마나 큰 일들을 행하셨으며, 너를 얼마나 가엾게 여기셨는가를 말하라.』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이 계명들이다.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러니까 네가 집에 가서 그 사실을 말하기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집에 가서 친구들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당신도 가서 말하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직설적이고 권위있고, 교조적이고, 명령적인 명령을 싫어한다.

 

우리는 오늘날 “사도행전”의 시대가 아닌 “민수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우리 모두 일어나서 행동해야 할 때이다. 내가 행동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사도행전 2장에서처럼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당신은 개종한 유대인도 아니고 또한 유대인들의 명절인 오순절 날에 누군가가 일어나 신약성경도 없이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사람들처럼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뜻하는 바는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바 그것을 행하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말씀하신 바는 성경을 찾아 읽고 공부하라는 것이요 당신은 그것을 해야 한다. 당신은 그것을 행하고 있는가?


10. 하나님을 사랑하라.

 

각각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향해 최고의 사랑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마가복음 12:30은 『그러므로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고 말씀한다. 마태복음 4:10에서 주님께서는 마귀에게 이렇게 답변하셨다.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 당신은 이 모든 말씀들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노력하라.”든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라”든가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 안에서 빛나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신은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 그 어떤 제안을 받은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11. 권세있는 자에게 복종하라.

 

마가복음 12:17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하고 그 권위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과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로마서 13장을 보라.


12. 이웃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

 

우리는 또한 우리의 이웃에게 행할 의무를 갖고 있다. 마태복음 19:19에서 주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6:31에서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해주라.』고 말씀하신다.


13. 탐심을 조심하라.

 

주님은 탐심에 대해서도 몇 가지 구체적인 말씀을 하셨다. 우리의 삶은 하늘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땅에 중심을 두고 살아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 12:15에서 주 예수님은 『주의하고, 탐심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은 단순한 충고와 다르다. 이것은 경고이다. “주의하고... 조심하라.”

 

마태복음 6:19,20은 『너희 자신을 위하여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 오히려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고 말씀한다. 이 글을 읽고 계신 구원받은 여러분들은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었는가? 나는 지금 여러분이 심사숙고해서 대답해야 할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었는가? 당신은 하늘이 어디인지 아는가? 당신은 라디오와 TV 해설가들이 하늘과 천국과의 차이에 대해 지적했기 때문에 당신이 죽으면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믿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은가?

 

당신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 대해 읽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바울이 셋째 하늘에 끌려 올라갔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읽지 못했는가?(고후 12장) 당신이 그처럼 현명하다면, 당신이 하늘에다 쌓은 보물이 무엇인지 내게 좀 말해 달라.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라는 것은 명령이다. 너희의 보물을 땅에다 쌓지 말로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마 6:21).

 

당신은 당신이 키우는 개의 밥을 사는 데 들인 돈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급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썼는가? 당신은 당신의 모터보트에 들인 돈보다 성경 공부 사역에 더 많은 돈을 사용했는가? 당신이 보기에는 이런 것이 너무 무리한 요구처럼 보이는가?

 

그들은 아마 동정녀 탄생과 육체의 부활과 십자가의 죽음과 그 밖의 몇 가지 성경적 사실들을 믿으면서 자기는 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들을 지키리니』(요 14:23). 또한 주님께서는 『나의 계명들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4:21).


14. 위선자가 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위선에 대해서도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라』(눅 12:1). 마태복음 23:3에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한 모든 것을 지키고 행하라.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음이라.』


15. 온유하라.

 

온유함, 겸손함 그리고 자신을 낮춤에 있어 그리스도처럼 되라.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1:29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마가복음 10:44에서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7:10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우리는 무익한 종들이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말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자랑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헌신과 우리가 드린 것을 자랑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죄를 꾸짖고 강력하게 꾸짖어야 한다. 우리는 악에 대항하여 강력하고 담대하고 능력있게 말해야 한다. 이 사역에는 온유함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실 때는 온유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순종해야 한다.

 

“어떤 형제는 그의 목소리에 사랑이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 그는 충분한 사랑을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자들이었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자신들이 가르쳐 온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경우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고 자신들을 수정하지도 않는다. 그러고서도 사랑과 온유를 입만 열면 끄집어내다니... 이처럼 양의 옷을 입은 이리도 있고 이리의 옷을 입고 있는 양도 있는 법이다.


16. 형제들을 사랑하라.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 요한복음 15:12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계명은 이것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10에서는 『너희는 이런 어린아이들 중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5:24에서는 『네 형제와 먼저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7:4에서는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너에게 죄를 짓고, 또 하루에 일곱 번이나 너에게 돌아와서 ‘내가 회개한다.’고 말하면 그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6:37은 『판단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도 용서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따랐던 바울도 『너희는... 서로 용서하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고 말했다(엡 4:32). 이 모두는 제안이 아니라 계명들(명령)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당신은 이 계명들에 순종하고 있는가?


17. 온전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매우 높은 수준을 설정하셨다. 마태복음 5:48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고 누가복음 6:36에서는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우라.』고 말씀하셨다. 이 기준은 낮추어져서는 안 되며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18. 복음을 전파하고 성도들을 섬기라.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복음을 전파할 것을 가르치셨다. 마가복음 16:15에서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 24:47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 가운데 그의 이름으로 회개와 죄사함이 선포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 『내 양들을 치라.』, 『내 양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서로 말씀으로 섬겨야 한다. 요한복음 13장에는 이에 대해 위대한 예표가 제시되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을 통하여 깨끗해졌느니라』(요 15:3). 요한복음 13장에서 세워진 이 위대한 예표는 실제로 발을 씻어 주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시몬 베드로의 발을 씻기 위해서 오셨을 때 그는 베드로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네가 지금은 몰라도 이후에는 알게 되리라.』(요 13:7)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발을 씻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한 것을(what) 너희도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족식을 거행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대로(as)” 즉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을 섬긴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서로에게 말씀으로 섬기라고 하신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5:26,27에서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가 교회를 말씀에 의한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고 깨끗케 하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서 점이나 주름진 것이나 또는 그러한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19.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재림에 관해서도 계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오리라』(눅 12:4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 어느 때에 이루어질지라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명령은 분명한 어조로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준비하고 있으라.』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죽기까지 신실해야 한다. 마태복음 24:13은 환란 시대를 당한 성도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환란 시기에 살게 될 사람들은 “끝까지 견뎌야만”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또 오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버릴 수 없지만(롬 8:38,39)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바울은 자기가 믿는 자들의 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자비를 입은 것은 이 때문이니, 곧 먼저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셔서 후에 그를 믿고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 1:16).

 

그렇다면 그 본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디모데후서 4:7,8에 나와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들에 대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들을 지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요 14:23).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변개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참다운 시금석이다. 우리는 이 계명들(명령들)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점검해 보는 데 사용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들을 지키라』(요 14:15).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에 복종해야 한다.

 

이들 계명들 중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특정한 것들은 물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도록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들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딤후 2:15). 즉 어떤 계명들이 우리에게 해당되며 어떤 것들이 해당되지 않는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계명들이 환란 시대의 성도들(예를 들면 마 24,25장)에게 해당된다면 우리는 그 말씀들을 올바로 나누어서 구분해야 한다. 어떤 계명들은 교회 밖에 있는 이방인 이교도들에게 주어진 것들이고, 어떤 것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교회 즉 유대인과 이방인들 중 거듭난 사람에게 주어진 것들이며 어떤 것들은 육체적인 혈통이 유대인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들이다.

 

성경은 이 세 부류의 사람들, 즉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를 구분하고 있고 이들 세 그룹을 대상으로 해서 쓰여졌다(고전 10:32). 그리스도의 몸 안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에 대한 계명들과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계명들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지켜야 하며 이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다.


당신은 구약의 십계명들이 요한복음 13:34과 15:12에 나오는 두 개의 새 계명들로 대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 말하는 돌판 위에 쓰여진 율법은 거듭남 안에서는 없어져 버렸다. 그리스도인은 로마서 6:14 말씀 대로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 우리는 로마서 13:9에 따라 이 율법 중 도덕적인 명령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적어도 그리스도인과 주님과의 교제에 관해서는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한다(이 도덕적 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님을 잊지 말라).

 

물론 우리는 의식법으로서의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표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반면 다른 도덕법들은 표적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기 때문에(고전 1:22)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표적이다. 유대 민족은 출애굽기 4장부터 표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이 표적으로 주어져서 유대인들로 그분이 그들을 거룩하게 하신 분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느 9:14, 겔 20:20, 출 31:13을 읽어 볼 것). 안식일은 결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명령들과 계명들을 다룰 때에는 어떤 계명이 언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것인지 아니면 어떤 계명이 언제 주어진 것이 아닌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계명들을 가져올 필요가 없으며, 우리에게 주어지지도 않은 계명들을 우리의 것인 체해서도 안 된다.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들을 거역하면서 마치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들이 아닌 것처럼 행동해서도 안 된다.

 

마태복음 4:4은 이렇게 말씀한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당신이 음식을 섭취하고 소화해 내는 것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소화하고 적용하는 데 부지런하면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을 분명히 이해할 것이다.

 

필자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시간을 투자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것들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대하고 계신 것들과, 그분의 가르침과 부활 후 사도 바울에게 주신 가르침들에 따라 당신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들을 배우기를 권면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