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신앙의 답답함을 느끼십니까?(합1:1-4)

열려라 에바다 2023. 10. 14. 12:46

신앙의 답답함을 느끼십니까?(합1:1-4)

 

권호만barnabak추천 0조회 2723.10.14 11:08댓글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박국 1:1~4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거룩한 주의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간절한 기도제목, 간절한 만큼 오래 동안 기도하는 제목이 가족구원인 줄 압니다.

예전에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보면 남편이 나오지 않는 권사님들이 기가 죽어있는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남편이 안 나오니 무슨 일을 해도 자신이 없습니다.

남편도 인도 못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기가 죽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권사님들의 간절한 소원은 남편 구원입니다.

남편이 교회에만 나오면 아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늘 울면서 기도합니다.

기가 죽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 남편이나 가족이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늘 기도하지만 또한 이것같이 응답이 잘 안 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회 때마다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교회에 나가자고 사정도 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습니다.

당신 교회 나가는 것은 반대하지 않을 테니까 나보고 나가자고 하지는 말아. 당신이나 잘 믿어.’

이러면 정말 하나님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저는 하루가 급한데 왜 이렇게 지체를 하십니까?’ 답답함을 하소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답답함을 느끼는 또 한 명의 사람이 나오는데 하박국 선지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으로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또한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는 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지자입니다.

이런 선지자의 입에서 하나님께 향한 답답함이 토로되는 이유가 오늘 본문 1장에 나옵니다.

남 왕국 유다에서 마지막으로 선한 왕이 요시야입니다.

그런데 요시야는 애굽과의 전쟁에서 죽게 되고 뒤를 이어 여호아하스가 3개월 왕 노릇을 하다가 애굽에 끌려갑니다.

그 뒤를 이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왕이 되어 11년을 통치하는데 이 왕이 대단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 죽인 왕이었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것을 바룩이 기록하였는데

그 책을 칼로 잘라서 불에 던져 태워버린 왕입니다.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가 비판한 내용이 예레미야 22장에 나오는데요,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 였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을 칠하였던 사람입니다.

네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었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이런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백성들이 슬퍼하지 아니하고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선포합니다.(22:13-19)

예레미야가 이렇게 기록할 정도로 여호야김 왕은 악한 왕이었습니다.

애굽 왕의 환심을 사고 사치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과 노동력을 착취한 왕이었습니다.

 

이런 왕을 보는 하박국 선지자는 정말 답답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런 하나님이 왜 이렇게 악한 왕을 내버려 두십니까?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런 강포와 죄악과 패역과 겁탈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저 악한 왕을 제거하여 주시어서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율법을 행하고 공의를 행하겠습니까?

더욱 불의와 부정이 난무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하박국의 질문에 응답하십니다.

내가 북쪽의 바벨론을 통하여 여호야김과 이 나라를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응답을 들은 하박국은 시원한 것이 아니라 또 답답합니다.

여호야김을 심판하시는 것은 좋은데 왜 하필이면 바벨론입니까?

바벨론은 우리보다 더 악한 나라가 아닙니까?

더 악한 나라를 통하여 덜 악한 나라를 심판하시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13)

하박국은 이런 이해되지 않는 마음과 답답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작정합니다.

2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이 바로 하박국의 기도하는 모습과 하나님의 응답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이 세상을 살다보면 하박국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하여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정말 다스리시고 계시는가?

그렇다면 왜 세상이 이렇게 부정하고 불의하고 모순된 모습을 보이는가?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렇게 아픔과 슬픔이 넘치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왜 남편이나 가족들의 구원을 위한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가?

기도 응답을 경험하지 못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먼저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사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공의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하면서

왜 세상에 불의가 만연하고 의인보다 악인이 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최근에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일단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민간인을 학살하고 인질로 잡아 전쟁 방패로 삼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처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230만의 사람들이 사는 가자 지구를 통제하여 전기와 물과 구호물자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매일과 같이 폭격을 해대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삽니까?

특히 살아갈 힘이 없는 어린이들과 여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전쟁에서 가족들을 잃고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이시여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슬피 부르짖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왜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는지?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안요한 목사 가정이 이북에서 월남하여 어려운 살림을 살아가고 있을 때

젊은 학생이었던 안 요한은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이렇게 우리가정을 어렵게 만드는 하나님을 왜 섬기느냐고 떠나자고 울부짖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달래면서 이렇게 어려운 데 하나님마저 떠나면

우리 힘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섬길 것을 다짐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문제를 하나님을 떠나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안에서도 살아가기 어렵다고 하면 하나님 없이는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해가 안 되고 문제가 여전히 있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해결해야 하고 하나님 안에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마귀의 유혹입니다.

마귀는 욥을 시험하면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마귀의 목적은 주님을 욕하고 주님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나는 것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박국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욥도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온 맘 다해 복음성가에 나오는 대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감사하며 날마다 순종하며 주님만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자세인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박국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 기도하면서 기다리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래서 2 1절 이하에 보면 파수하는 곳에 올라가 여호와께서 무엇을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겠다고 작정합니다.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하고 힘들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까이 해야 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은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8:17)

하나님은 간절히 찾고 기도하는 자에게 분명하게 응답하시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이런 하박국의 모습에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그가 한 질문에 응답하십니다.(2:3)

-먼저, 정한 때가 있는데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분명 정한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우리에게는 오랜 시간 같고 그 때를 알지 못해서 답답할 때가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분명히 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또 하나의 응답은, 이 말씀은 결코 거짓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시간에 맞춰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하지 않으면 틀렸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내 시간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고 분명히 이루어지는 정확무오한 말씀임을 믿어야 합니다.

-세 번째 응답은, 너는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더딘 것이지 하나님에게는 결코 더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하고 비록 더디다고 느낄 때에라도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세상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 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나중에 사도 바울이 인용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신칭의의 진리를 증거 하는 귀한 말씀으로 사용됩니다.(1:17)

그리고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의 모토로 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하박국이야 말로 최고의 선지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세상이 어떻게 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져갈 때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모습은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적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갑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또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면서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면서 주님 뜻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이런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고 구원받고 축복받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러한 응답을 통하여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1장에서 어찌하여 하나님이 잠잠하시고 구원하지 아니하시고 어찌하여 죄악을 보게 하십니까? 절규하며 부르짖던 하박국은

마지막 3장에 와서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구원과 역사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그의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여러분의 삶이 헝클어지는 것 같고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린 것 같이

생각되어질 때도 여러분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보며 사람을 볼 때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 그 분을 볼 때만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 솔직하게 나아가 더 기도하시고 더 물어보시고 더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더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202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