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 16절-21절: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16절: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이 말씀을 보면 악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거다. 즉 하나님의 율례와 언약을 누가 말하는 거냐? 악인이 말하고 있다. 그러면 악인이 하나님의 언약과 율례를 말하고 있으니까 이걸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사람이 믿는 사람이냐, 안 믿는 사람이냐? 악인이라고 했으니까 안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율례와 언약을,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교회의 인도자요 지도자요,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가 분명하다.
생각을 해 봐라. 일반적인 악인이 강대상 앞에 서서 하나님의 율례를 말한다면 교인들이 그냥 두겠느냐? ‘저 놈 악한 자다. 끄집어 내려라’ 할 거다. 그런데 악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교인들이 그 앞에서 듣고 있다면 이건 일반적인 악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일 악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이 악인이 내뱉는 말이 선한 말이 되겠느냐, 악인 제 말이 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해도 악인 제 말이 되는 거다.
17절-21절: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악인이 이렇다는 건데, 어떻게 이런 자가 하나님을 인간 자기처럼 여기는 걸까? 하나님이 자기 눈앞에 계신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그런 거다.
세상에서 보면 가장이 식구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도 많고, 국가의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일도 많고, 법관이 법을 어기고 거짓말을 하는 일도 많고,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제대로 안 하고 돈을 탐내는 일이 많다.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함에도 없어야 할 이런 이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도 있었고, 성경을 가지고 살인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교회 인도자가 성경을 가지고 교인을 속이는 일도 있다. 또는 돈을 안 가져오면 말로 두들겨 팬다든지 미움을 주기도 하고, 교회 인도자가 성경을 가지고 교인을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안 믿는 세상은 그들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전부는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교회도 보면 자기는 옳다고 가르치고 주장을 하지만 영원 궁극적인 결과에 가서는 그것이 그만 거짓말이고 악한 것인데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옳다고 하는 자들도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몰라서 죄를 짓는 실수가 없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교회 안에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 거짓 교사, 거짓 종, 거짓 인도자, 적그리스도, 대적자, 미혹자, 유혹자, 이단자, 넓은 길 사망 길로 인도하는 자들, 세상과 세상 것을 가르치는 자들, 육적인 것을 가르치는 자들, 껍데기 운동을 하는 외식자들, 비진리를 가르치는 자들, 육의 생각을 쫓아가는 자들, 육의 것을 자랑하는 자들, 눈에 보이는 것을 자랑하는 자들, 세상의 풍속과 습관을 따라가는 자들 등등 비진리적이고, 육적이고, 죄악적이고, 불타질 것들이고, 임시적인 것들이고,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생명 길로 가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여 멸망을 당하도록 하는 자들이 많은데, 이것은 전부가 사단 마귀의 짓이요, 악령의 짓이요, 귀신의 짓이요, 악한 종들이다. 이런 것들이 다 죄인데 다만 하는 짓들이 각 분야에서 종별적으로 다르게 보이는 거다.
말세가 될수록 악한 자들이 교권을 잡고 성경을 가지고 자기가 진리인 것처럼 행세를 한다. 이들은 종교적인 행사를 가지고 연합을 부르짖는다.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을 부르짖는 게 아니라, 진리의 깃발을 드니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이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을 놓고 연합해서 그 일을 하자고 모이는 거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사단일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거다.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나가는 것은 하늘에 속한 사상이고, 종교적 세상적 눈에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은 땅의 사상이다. 그러니 이 두 사상은 서로 대립이 되는 거고,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공중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공중은 높고 잘 안 보이듯이 사람의 정신 사상의 싸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 높은 싸움이라는 것을 말하는 거다.
목사님들의 세계에서 이 공중싸움이 많다. 각 교단 교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님을 위해 뭔가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안 되고 대립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게 하나님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공중싸움이다. 정신싸움은 눈에 안 보인다.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아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안 되는 거냐?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거는 아무나 전할 수 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에게 “하루 일당을 줄 테니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고 전하라” 라고 해서 불신자가 전하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면서 전도하라’ 라고 하면 전도는 설교인데, 불신자가 전도를 하겠느냐? 안 되는 거다.
‘누구든지 복음을 전하게 해서 아무나 믿게 해서 지옥에 안 가고 많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하면 될 게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교회에서 전도한답시고 배우나 가수 등의 연예인을 불러다 공연을 하는 것이 이런 사고방식이다. 일반사람들이 들을 때는 타당한 말이지만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깜짝 놀라고 기겁을 할 일이다. 큰일 날 일이다.
‘아무나 복음을 전하게 해서 아무나 믿게 하면 좋은 게 아니냐?’ 라고 할 때 이 말에 허점이 없느냐? 이것은 성경을 모르는 소리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전하면 안 되는 것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누가 전하니까 안 된다고 하는 거냐? 악인이. 의인이 전해야 되겠는데 악인이 전하니까 안 된다고 하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나 전할 수 없는 거다. 악인이 전하면 악한 말이 돼버린다. 성경구절을 쓴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게 아니다. 그 구절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 있는 것이니 그 생각 하에서 성경구절을 쓰는 거다. 그러니까 악인은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율례와 언약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에 붙여서 성문적으로만 외치는 거다. 그러니 비록 성경구절을 말을 하지만 자기 생각은 따로 있는 거다. 그러면 악인이 성경을 들고 성문적인 말을 할 때 이 말을 듣고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도 하고 헌물도 드린다면 그 헌물을 누가 가져가겠느냐? 악인이 자기의 배를 채우는 데로 가져간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주어서 전하게도 하셨고, 또 사도들에게 말씀을 주어서 전하게도 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전하게 하시는 방법과 신약시대에 전하게 하시는 방법이 방편적으로 조금은 다르기도 하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 때 그때마다 선지자들에게 직접 말씀을 주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3년 동안 훈련을 시키고 보고 듣고 만지게 해서 사도로 보내시면서 성령을 입혀서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말씀을 전하게 했다.
이 외에도 구약시대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나 아브라함의 예처럼 한 개인의 삶을 신앙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도 있다. 즉 강도를 불러서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 라고 해서 전한다면 사람들이 그 말을 듣겠느냐? ‘저 놈은 강도다. 우리를 속여먹으려고 한다’ 그럴 거다. 그러나 노아나 아브라함처럼 신앙인의 삶을 살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되는 일도 있는 거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불러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 속화된 기독교 종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당신의 종으로 삼지 않았다. 성경은 이런 자들은 당신의 종으로 보내지 않으니 이런 자들을 조심하고 속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성문계시 완성 전에도 악한 자들을 불러 세워서 말씀 전달자로 등용하지 않으셨고, 성문계시 완성 이후에도 그런 자들을 말씀 전달자로 불러 세우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성경을 읽어라. 신학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으면 ‘목산가’ 하겠지만 아니다. 참 하나님의 종은 사역에서 찾지 말고 질에서 찾아라. 진짜를 덩어리에서 찾지 말고 질에서 찾아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악한 자들을 불러서 복음을 전하게 하지 않으실 거다. 그러니 이런 자들이 전하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진리의 종은 진리이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이 진리의 종 앞에서는 아무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거다. 성경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이 됐기 때문에 성경의 글자를 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은 아무나 전할 수 없는 거다. 그래서 교회에 인도자가 있는 거다. 그러면 아무나 인도자로 세우시느냐? 아니다.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종이라야 전하는 거다.
선악과 따먹고 영이 죽어있는 일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다. 그 다음에 일반적인 악인은 더 말할 게 없다. 그 다음에 영적 신앙 면에서 보는 악인도 전할 수 없다. 즉 앞에서도 말했지만 교회 안의 거짓 종들, 이단자들, 세상을 자랑하는 자들, 율법주의자들, 세상을 추구하는 자들, 종교 사역자들, 성경을 가지고 성도의 이룰구원을 방해하고 손해를 주는 모든 악한 사역자들은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이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성도들을 몇 배의 지옥자식으로 만들어 놓는다. 어떤 면으로 건, 어떤 모양으로 건, 활동으로 건 설교로 건 성도의 이룰구원에 방해를 주고 손해를 주는 것은 악한 자들이다. 이 악한 자들의 지식은 선악과 따먹은 지식으로 되어있다. 그러면서 종교행동 활동은 예수이름으로 한다.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누구보고 하는 말이냐? 악한 자에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법도도 있고, 율법도 있고, 계명도 있고, 율례도 있고, 규례도 있다.
‘법도’는 밥 먹을 때 기도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의 가정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지키는 성경적인 풍습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가정에서만 있는 특유한 것들인데, 생활의 예법이나 예의범절이 있고, 의식주에 관한 습관들, 아침 저녁으로 온 가족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 등등이 있다. ‘규례’는 다 같이 지키기로 정한 규칙인데, 신약성경에 ‘예수님께서 안식일 날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라고 했듯이 주일에는 모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 등 성도들 간에 어떤 규정을 정해서 지키는 거다.
‘율례’는 일상생활에 관한 도덕성과 의무와 책임, 그리고 이에 관한 형벌이 있다. 십계명은 기독교 종교인으로서 도덕상 마땅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명령에 대해 ‘안 하겠다. 싫다’ 이게 아니라 십계명처럼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명령이라고 하는 거다.
‘율법’은 종교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매우 광범위한 규범들이다. 그러니까 한 개인이던, 한 가정이던, 전체적이던, 사회적이던 성도라면 모두가 연관 관계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다. 예를 들면 자기 집안에서 하는 버릇을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하면 되느냐? 혼자 있을 때, 많은 사람이 있을 때, 또는 단체적으로 있을 때 전체가 각각 해야 할 규모가 있는 거다. 옳은 일일 때는 교인들이 같이 해야 한다. 구약의 예를 들면 이스라엘 청년이 이방적군과 싸우러 갈 때는 모든 청년이 모여서 무장을 하고 싸우러 가야 한다. 이 때 자기 개인의 의사는 있을 수 없는 거다.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매사에 신앙의 규모를 잘 알아서 처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원칙으로 하고 세상에 살면서도 처신을 해야 하겠는데, 만일 나라에 전쟁이 나서 젊은이들을 군대로 내보내는데 자기는 개인사정이 있다고 하면서 뒤로 빠지면 어떻게 되느냐? ‘나는 군대 안 가겠소’ 하며 양심선언? 어림없는 소리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법보다 더 큰 것이 가정의 법이고, 가정의 법보다 더 큰 것이 사회의 법이요, 이것보다 더 큰 것이 국가의 법이다. 더 큰 법을 따르는 것이 국민의 도리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우상을 세워놓고 온 국민을 이 우상 앞에 다 모이게 해서 절을 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국가의 법보다 더 큰 하나님의 법이 우상을 섬기거나 절하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우상에게 절을 할 수 없는 거다. 제사 같은 것에 참석할 수도 없고 절을 할 수도 없는 거다.
창:에서부서 모세오경까지를 보면 여러 가지 신앙적인 규범들이 있는데, 그 외형이 아닌 그 정신이 현재 자기 속에 딱딱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그러냐? 그저 예수 믿고 마음대로 살고 있지 않느냐? 성경을 보고 말씀의 규범대로 살면 자기의 생각이 건전해지고 반듯한 사람이 되는 거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유자가 된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면 인간 자기가 죽을 자유를 가지고 죽을 짓을 하며 살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데는 대신관계가 있고, 대사관계가 있고, 대물관계가 있고, 대인관계가 있고, 자아관계가 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것들을 지킬 의무성과 책임성이 있고, 어길 경우에는 형벌이다. 모두 자유롭게 산다고 하겠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자기의 자유행동 뒤에는 반드시 책임도 따르고 형벌도 따른다. 이건 절대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에게 향한 언약이 들어있다. 이 말씀에 순종을 하면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는 성화구원의 약속이 있고, 영적 기능과 지능 면으로 영능의 실력적으로 신령천국에서 존영으로 누리는 신령한 축복이 가득 들어있다. 나중에 죽어서 그곳에 가서 이렇게 되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재 이 세상에서 그 성품으로 만들어지면 현세에서도 사람 앞과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는 자가 된다.
믿는 우리는 눈치도 빠르고 명철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미련하고 둔탁하면 안 된다. 사람 가운데 살면서 믿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구원에 도움을 주고 갈까?’ 하면서 늘 다른 사람을 살펴야 한다. 일반적으로도 누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 뒤에서 따라가며 가만 보고 있느냐? ‘어디까지 가십니까? 같이 들고 가시지요’ 라고 하는 게 사람이 사는 거다. 우리의 신앙은 모든 생활에 미치는 거다.
믿음의 사람이 주위를 눈치 있게 잘 살피면서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뿌리고 선을 뿌린다면 얼마나 좋으냐?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순종을 할 수 없고, 영능의 실력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없다. 생각이 그렇게 안 미친다 그 말이다. 남 생각을 못하고 자기만 안다 그 말이다. 결국은 심판거리만 장만하게 되더라.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교회 안에서 악한 인도자는 성경을 들고 무엇을 가르치겠느냐? 성경구절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겠느냐? 육신의 것, 육의 것, 세상살이 어려운 일을 해결해달라고 부르짖으라고 하고, 하는 사업을 만사형통케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할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며 종교적인 사업을 크게 벌려놓고 이 일을 위해 돈을 내라고 할 것이고, 이러면 교인들은 그것이 진리이치에 맞는 말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축복을 받겠다고 ‘아멘 아멘’ 하며 따라간다.
그리고 누가 무슨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 그 쪽으로 몰리고, 누가 무슨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 그 쪽으로 몰리고, 누가 안수 전문특허를 받았다고 하면 또 그 쪽으로 몰리고, 어느 유명한 목사가 머리를 면도칼로 박박 밀었다고 하면 그 쪽으로 몰리고, 어느 목사가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닌다고 하면 그 쪽으로 몰리고, 어느 목사가 무슨 옷을 입었다고 하면 그 쪽으로 몰리고, ‘어느 교회에 가면 차비도 주고 먹고 마실 것을 주는데 다 공짜다’ 라고 하면 그 쪽으로 몰린다.
거짓 종들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세상바람을 집어넣는데 교인들은 이게 악령의 장난인 줄도 모른 채 이 사람을 막 따르니 이 자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서 자기 그룹을 만든다. 이런 거짓 종들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종교적인 사역에 붙이고 눈에 보이는 일을 하는 것에 붙인다. 이것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세상 길, 넓은 길, 사망 길로 가게 해서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는 거다. 그러니 이것은 마4:에서 성경구절을 들고 예수님에게 세상에 속한 일을 해서 세상에서 영웅이 되라고 했던 마귀의 꾀임에 빠진 거다.
신약성경에 보면 마귀가 헤롯을 붙들고 46년간 성전을 지었다. 그러면 헤롯은 성령의 감화로 성전을 지은 거냐? 악령의 감화다. 정치목적으로 지은 거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예언대로 그 후에 디도장군을 통해 이 성전을 다 허물어 버렸다. 그러면 오늘날 사역위주의 신앙을 가진 교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46년 동안 성전을 지은 헤롯이 하나님의 종으로 보이겠느냐, 성전을 헐어버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종으로 보이겠느냐? 헤롯이 하나님의 종으로 보이는 거다.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의 신앙정신을 허물어야 한다. 건물성전은 지어놔 봐야 언젠가는 허물어진다. 우리는 사람성전을 바로 지어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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