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구조
창세기2:7, 살전 5:23
오늘 우리가 배울 내용은 인간의 구조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인간의 구조는 영과 육으로 된 이분설입니다. 그러나 혹 삼분설로 영,혼,육을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삼분설은 그리스도의 ‘이성일인격’ 즉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인격체라는 예수님의 독특한 성품에 해를 가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장로교의 정통적인 교리를 중심으로 한 이분설인 영과 육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공부할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2: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 흙으로 몸(육)을 만드시고 생기(영)를 불러넣으셔서 생령(생명있는 존재)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생령이란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생명 있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아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롬8:4-17).
이때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이 불어 넣어 주신 영(생기)과 흙(육신)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 후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하여 타락하였습니다.
그 결과 죽음이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창2:17참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영생해야 할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을 죽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의 죽음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영과 육으로 지었기에 영이 죽으므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분리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할 수 없습니다. 영은 죽어 육신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인간은 이제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할 수도 감각할 수도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영은 죽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고 흙으로 돌아갈 육신만 남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에게 영과 육이 회복되려면 어떻일이 있어야합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의 죄가 해결되고 새생명을 얻어야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영과 육이 함께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5:2절에는 성도에게는 영과 혼과 몸이 나옵니다.
이는 거듭난 신자의 현재 상태를 말합니다. 영과 몸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나 여기 혼이라는 단어는 무엇인지 의아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혼’은 범죄후 영이 죽음으로 인해 육의 기능인 혼이 남아 생물학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자 다시 설명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영과 혼과 육은 거듭난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며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들에게는 영은 없고 혼과 육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의 말하는 영과 혼과 육입니다.
성경에는 짐승들에게도 혼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혼은 감정과 의지를 말합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기능적인 것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본능적인 활동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개들이 주인을 보면 알아보고 반가워하고, 그 꼬리를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합니다. 또 새들도 제 세끼를 보호하며 모성애를 발휘하여 지킵니다. 이것은 혼의 반응으로 좋은 감정과 싫은 감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에게는 이런 혼이 없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지 못합니다. 오직 육체를 가진 동물들만 자신을 움직이려고 할 때에 힘과 판단력으로 하는 겁니다.
이것이 지,정,의라는 요소가 동원이 되어 활동을 한 것인데 바로 혼의 기능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두 분류로 나눌 수가 있는데 타락으로 영이 죽었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셔서 영이 살아난 사람, 즉 거듭난 사람으로 새사람을 말합니다(고후5:17).
또 다른 한 분류는 아직도 타락한 상태로 영은 죽어 없고 육신만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영이 살아난 자를 신자, 거듭난 자라하고 영이 죽어 없고 육신만 있는 자를 불신자, 혹 자연인이라고 합니다.
이 자연인들은 영이 없어서 영적인 것을 알지 못하며, 영의 필요도 모르며, 영의 감각도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은 영이 무엇인지 영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상태에서 오직 먹고 자고 소유하는 세상 일에만 전념이며 집착하고 삽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다릅니다. 영이 살아난 존재들이므로 영에 대한 감각이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고 순종하며 그분을 두려워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주일날 예배를 못 드리면 불안하고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고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영이 살아났다는 증거입니다.
불신자들은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며 우는 것을 미친 짓이라고 놀려대는데 이는 그들의 영이 죽어있기 때문에 전혀 죄에 대한 회개의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자신들에게 영이 죽어 없는데도 그걸 모르고 영적으로 죽은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육의 기능인 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공부하고 느끼고 감정이 생기고 활동하는 육과 그 기능인 혼이 있어서 영의 필요를 모르고 사는 겁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 생물학적인 죽음인 육신이 죽으면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압니다.
그때까지는 영이 없는데도 열심히 삽니다. 돈과 권력, 지식과 욕망을 좇아서 열심히 삽니다. 그리고 육신이 죽음이 왔을 때에 허망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며 뭔가를 찾지만 죽은 영은 대답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신앙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 하지만 육신으로는 육신의 법인 세상 것을 좇으려 합니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영이 얼마나 자라 성장했느냐? 하는 것인데 만약에 영이 어린 신자라면 그는 아직도 사는 모습이 옛날 예수 믿기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육신의 것들을 끊고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것인 혼의 활동으로 새로운 영과 빚어지는 갈등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속 마음(혼)에서 나오는 것을 예수님은 악한 생각(막7:20-23)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야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며, 하나님으로 근거가 되는 삶의 목표가 설정되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삶의 영양분을 하나님께로 부터 공급받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흘리신 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지었던 모든 죄를 대신 처리하시고, 우리에게는 죄 없다고 하시고 이제는 하나님의 생명을 허락하셔서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출발선에 선 것이고 시작입니다. 이는 아는 것이 믿음생활의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질문의 시간
1, 인간의 본질이 무엇으로 되어 있나요?
2, 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없나요?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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