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없다
타협하고 양보할 수 없는 기도의 시간
아침이면 우리집은 전쟁터가 된다.
초등학생 남자아이 세 명과 씨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책가방 정리, 옷 입기, 방 정리,
아침 먹기 등 엄마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은 너무 크다.
내게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들이 늦게 잠이 든 다음 날 아침에는
가능한 한 많이 잘 수 있도록 시간을 좀 더 주면
좋을 것 같은데 무조건 일어나야 할 시간에
아이들을 기상시킨다.
아이들은 조금 더 자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렇게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은 아내가 그 부분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은 등교할 준비를 모두 마친 다음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큐티책을 가지고 큐티하고
기도를 한다.
학교 가기 전에 반드시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갖고,
그 이후에야 모든 활동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바쁜 아침이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시간을 절대 타협하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은 학교가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돌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우리를 세상에서 건져주는 구명조끼와도 같다.
마르틴 루터는 “내가 매일 새벽 두 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는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매일 세 시간 기도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가 없다”라고 할 만큼 기도의 가치를 알고 살아갔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돌보신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몰라도
기도의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기도는 삶을 소비하거나 삶을 탕진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저축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최고의 순간에
가장 귀한 순간으로 다시 돌려주신다.
이현우, <기도를 멈추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