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장 1-9절
요한복음 5장 38-41
우리가 인생을 바르게 살려면 세상을 보는 눈이 정확해야 한다.
"나는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가졌는가?"
눈의 시력이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인간들의 상태가 어떻데 되었는가에 대하여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장 12절-
인간들은 이미 균형 감각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바로 생각과 자기 주관이 옳다고 주장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을 알 때에 비로소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편견 된 지식, 즉 헛된 이념이나 사상에 붙들려 살다가 죽을 것이다.
이런 불행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의 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성경의 맥락을 정확히 잘 알아야 하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44절-
"나의 종 모세가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 여호수아 1장 7절-
사람들이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서 기인하는가!
무지에서 출발한다. 무지는 죄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다. 성경을 모르는 것이 죄다.
인간들은 무지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것이 옳은 건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악습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세상의 종교나 이단을 좊아가는 사람들도 그렇다.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기는커녕 "하나님이 어디 있냐?"라고 하며 무신론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심지어는 물질을 신처럼 숭상하는 자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것을 물신주의(物神主義, fetishism)라고 한다.
현재 세계는 물질만능시대로 치닫고 있다. 바로 인간의 죄악의 눈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돈! 돈! 돈!'하면서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다.
우리도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고 산다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악신이나 돈, 쾌락의 노예가 되어 정신없이 좇아가다가 결국 허망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 창조의 시각으로 보라. 창조적 지성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분이다. 우주는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드셨다.
죄악에 빠진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고 살거나 또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끝까지 외면해 버린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우리가 창조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안다면 먼저, 하나님의 창조 솜씨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이사야 40장 26절-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는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인간은 상상조차도 못한 일을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이다.
우주 만물이 제 위치에서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돌며 질서와 조화, 균형을 유지하며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지만 사고 나지 않고 하나님이 내신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팽창을 거듭하며 움직이고 있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 성경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 4절-
화가가 자기 작품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만드실 때마다 퍼펙트(Perfec) 그 자체였다.
마지막 인간을 만드셨을 때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장 31절-
우리가 이 창조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 눈과 마음의 기준과 균형이 바르게 잡히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과학자라고 떠드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지 않고 엉뚱한 가설에 빠져서 그것을 따라간다면 '어리석은 자', 즉 '무지의 종'으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과학자, 문학가, 예술가라면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에 놀라서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고 또 그 마음에 '창조적 지성'이 작동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창조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주 그 자체는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정말 아름답다.
이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우리로 감상하게 하셨고 또 관리하게 하셨고 나아가서 연구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그분을 찬송하며 경배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2. 인간과 세상사를 바라보는 눈
우리는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바르게 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은 국가의 헌법에서 나오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동물이나 식물은 우리 인간이 그것들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고사는 '먹거리'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인간이 이상한 그림을 그려놓고 원시 동물에서부터 진화한 것이 인간인처럼 속임수를 써서 가르치는 지경에까지 빠졌다.
이런 가설(假說)은 거짓일 뿐이다. 가정(假定)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다른 동물처럼 만들지 않으셨다. 따로 '특별한 창조',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영혼 있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성경을 알게 되면 "아, 맞아! 바로 이거야!"라며 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인간의 존엄'을 알고 '인권 존중'과 '인류애'를 바르게 말할 수 있다.
나라와 민족들 간에 서로 싸우고 죽일 일이 아니다. 인류는 서로 평화하고 사랑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삶을 논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을 참되게 논할 수 있는 것도 성경 진리가 그 바탕이어야 한다.
'성경을 통한 인생 철학!'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 인간은 원래 '영생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그러니까 '육체의 죽음'을 뛰어넘어 '내세', 즉 '불멸의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대답해 주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나의 인생 교과서'이다.
또한 인류 역사는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 역사의 주인공이며 키를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성경을 잘 보여준다.
각 나라마다 신화들이 있지만 모두 다 허무맹랑할 수밖에 없다. 거짓으로 꾸몄으니까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나님은 원래 인간을 한 조상에서부터 출발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인류는 하나이고 평화해야 할 근거가 분명해진다.
역사는 얼핏 보면 인간이 주도하는 역사 같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라는 통치권을 가지신 분이 있다.
이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독재, 인권 탄압, 전쟁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 역사 속에 치욕적인 오명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죄인 된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B.C와 A.D의 역사로 갈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류를 평화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셨다.
바로 교회를 통해서 인류를 하나로 묶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에베소서 1장 22절-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장 6절-
그러니까 우리는 경제 일변도로 흘러가는 세상에 같이 휩쓸려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의 삶 속에서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3. 미래를 보는 눈
이것 역시도 성경을 통해서이다. 개인으로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미래가 밝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례와 법도'를 제시하고 있다.
미래가 장구하고 튼튼하려면 우리가 그의 법도에 따라야만 한다.
요행은 없다. 우리 민족의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장구하리라." -신명기 32장 47절-
우리는 개인의 미래뿐만 아니라 개인의 미래, 가문의 미래, 국가 미래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미래는 어떤가! 사람들은 멀리 보지 못하고 코앞에 있는 현실만 보다가 지구를 병들게 만들었다.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살인과 악행을 서슴치 않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라.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를 보라.
경제 경제만 노래하다가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처해져 있다.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윤리 도덕을 무시하고 자기 안일 또는 쾌락을 추구한다. 그렇게 하면 일시적으로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파 망한다.
바로 이런 것을 정확히 제시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이다.
얼마나 고마운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는 우리로 죄의 올무를 씌워서 고통스럽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우리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속히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우리 손에 하나님 말씀이 들려져 있다는 건 인생의 방향을 바르게 제시해 주는 나침반이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성경 진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하신다.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산다면 우리에게는 오늘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희망이 있다.
사람들은 성경이 없기 때문에 망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흥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를 보여주고 항상 분별력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게 만들어 준다.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또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다.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하늘나라가 있음을 알고 현실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현실의 사사로운 이익 추구에만 몰입해서는 안 된다.
주님을 대망하라. 그 눈이 있어야 똑바로 살 수 있다.
예수님이 오셔야 한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장 20절-
우리는 성경 전체의 문맥을 한눈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기를 요망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각자의 삶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주(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잘 배워서 예수님을 닮는다면 세상을 보는 눈도 세계화되고 정확한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이시고 우리의 참 소망이라는 것을 깊이 새기고 날마다 그분을 바라봐야 한다.
이렇게 살 때에 똑바로 살 수가 있다.
안 그러면 이 세상의 죄악의 물결에 휩쓸려서 떠내려가다가 영원한 멸망의 구렁텅이에 쳐박히게 될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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