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성도의 삶 / 데살로니가후서1:1-4 (권호만 목사)
오늘도 귀한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청년시절 고향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노회 안에 좋은 교회로 소문난 3교회가 있었습니다.(장로님들에게 들은 이야기)
고향교회도 그 중에 하나였는데, 얼마 전 고향교회를 방문하면서 이 3교회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3교회가 각각 노회를 달리하였는데, 제 생각에 의하면
두 교회는 지금도 좋은 교회로, 모범된 교회로 알려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한 교회는 예전의 그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몇 번에 걸쳐 교회가 분리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교인들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교회는 노회에서 문제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꾸준하게 좋은 교회로,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하고 소문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가정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던 집사님 내외분이 둘째 아들 결혼시킨다고 방문하였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집사님 내외분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고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함께 동행 한 막내아들이 참으로 잘 성장했습니다.
여자집사님이 그 아들을 가장 의지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자녀들이 믿음으로 성장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줄 압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부모들의 기쁨은 자녀들이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기쁨도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고 믿음가운데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도 자녀 된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실 크게 주목받을 만한 조건이 별로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일단 역사가 짧았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개척한 교회인데,
사도 바울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세안식일동안 복음을 전합니다.
성경주석가들은 세 안식일 동안 복음을 전했다고 해서 꼭 3주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 머물렀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정말 말씀에 굳게 선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3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세 안식일 동안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교회에 성도가 그렇게 많았겠습니까?
성도가 많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꼭 좋은 교회의 증거는 아닙니다.
많아도 좋지 않은 교회가 있고 적어도 좋은 교회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도가 많지 않았지만 좋은 교회였습니다.
-세 번째로 그 교회는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바울일행이 데살로니가 전도를 일찍 끝내고 베뢰아로 떠난 것도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베뢰아까지 가서 바울일행을 핍박할 정도로 독종이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 유대인들의 표적이 이제 막 믿기 시작한 교인들을 향했을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그런 핍박과 환난 속에서 성도들은 믿음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 번째 편지인 오늘 본문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000 교회가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생각하시면서 흐뭇해하시고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는,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받는 모습에서 바울 사도가 제일 먼저 언급하는 내용은 그들의 믿음이 더욱 자랐다는 것입니다.
3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했습니다.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어린 아이들이 자라면서 말문이 틔일 때 처음에는 ‘엄마 아빠’ 두 글자로 된 말을 제일 먼저 배웁니다.
그리고 세 글자로 된 할머니를 배우고 그 다음에 네 글자인 할아버지를 제일 나중에 배운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
그 모습을 본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일 오래 동안 기다렸던 할아버지가 제일 기뻐할 줄 압니다.
아이가 육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자라는 것도 이렇게 기쁘게 하는데
하물며 성도들이 믿음으로 자라게 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믿음은 각자에게 맞는 분량이 있습니다.
누구나 동일한 분량의 믿음을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갖지 못한 큰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시기 위해 그 집을 가실 때 백부장은
‘여기까지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낫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들으신 주님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반면에 바다위로 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걸어갔다가 사나워진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여 물에 빠졌던 베드로는 ‘적은 믿음’으로 책망 받았습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주변의 물결과 파도를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베드로의 믿음은 등락을 반복합니다.
계집 종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마지막 로마에서는 죽음이 두려워 로마를 빠져나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자진해서 로마에 들어가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사람마다 그 분량이 다릅니다.
믿음은 자랄 수 있는 속성이 있고 반대로 침체되거나 후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믿음에서 우리가 점점 더 자라가야 하는데 그 마지막은 죽음까지도 이기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신앙인들의 믿음을 보면 죽음 앞에서 믿음이 약해지고 후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믿음을 침체시키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죽음을 이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이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믿음이 생기고 자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영적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먹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젖을 먹고 밥을 먹어서 성장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영적인 양식인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고 그 말씀을 확실하게 믿을 때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속에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자라게 되는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함이 풍성해야 합니다.
3절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했습니다.
너희가 다 각기 사랑함이 풍성했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풍성할 때 그 교회가 좋은 교회요 훌륭한 교회입니다.
각각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일이 많아질 때 그 성도들이 좋은 성도입니다.
반대로 사랑이 없으면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신 주님처럼 그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십니다.
그러기에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사랑함이 더욱 풍성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이 풍성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9절 이하에 보면 그들은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서로 사랑할 뿐 아니라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했습니다.
말하자면 마게도냐의 형제들까지도 사랑하고 물질적으로 후원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입니다.
많은 핍박과 어려움에 처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다른 교회를 사랑으로 도와줍니다.
사도바울의 선교사역에 도움을 줍니다.
사랑이 풍성하다는 말은 양적으로 풍성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교회를 도와주는 것에서 여러 교회를 도와주는 것이 사랑의 풍성함입니다.
하나만 주었다면 이제 둘도 셋도 다섯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달에 10만원을 선교비로 지출했다면 이제 20만원을 지출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질적으로 풍성해야 합니다.
자기들끼리 사랑하던 모습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사랑하던 모습에서 전혀 나하고 상관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최고의 정점은 나를 핍박하고 죽이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스데반도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하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사울의 그 완악한 마음을 녹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할 뿐 아니라 그 원수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이번 다니엘 기도회에서 손양원 목사님이 양자 삼은 안재선 씨의 아들 안경선 목사의 간증을 잘 들었습니다.
늘 궁금했던 것이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이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가? 잘 알 수 없었는데 이번 간증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지나 손자 대에서 손양원 목사님의 뒤를 따라 부룬디의 한센병 환자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정점은 결코 헛되지 않는 줄 믿습니다.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의 삶이 풍성해지는 여러분들, 우리 000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박해와 고난 속에서 인내해야 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고 했습니다.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데살로니가 교회는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박해와 환난이 없어진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때문에 없던 환난이 더 생길 수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없던 박해가 더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박해와 환난이 생기는 신앙생활을 왜 해야 합니까?
박해와 환난이후에 있게 될 최고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최고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환난과 핍박을 참고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얻기 위해서 광야 40년의 생활을
참아야 했듯이 새 예루살렘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의 박해와 환난을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신앙 때문에 어떤 어려움과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기쁨으로 참으시고 즐거움으로 견디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가지시고, 약속하신 축복을 기다리면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딤후4:7-8)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내하지 않고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없고
인내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마칠 수 없고
인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인내하는 자만이 신앙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이제 두 주만 지나면 금년도 마감하게 됩니다.
12월 첫째 주부터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됩니다.
일 년을 마감하는 이 즈음에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일 년 동안 얼마나 성장하였습니까?
여러분의 사랑은 얼마나 풍성해졌습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인내하며 믿음의 경주를 잘 달려왔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을 바라보시는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신 것처럼 여러분들을 칭찬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절대 나는 나이가 들었다고 이제 성장하는 것은 틀렸다고 말하지 않기 바랍니다.
육적으로는 성장할 수 없지만 영적으로는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고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초점을 주님께 고정시킬 때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가운데 성장하게 될 줄 믿습니다.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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