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7편 7절에 “너희는 야훼께 감사 안에 대답하라(Sing).”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나라에 예상 밖에 최빈국 방글라데시가 뽑히게 되었는데,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2백 달러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생활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만족한 생활을 합니다. 선진국의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불행을 더 심하게 느낍니다.1)
나는 아반떼를 타고 다니고 있는데 아반떼 타면 못 가는 데가 없는데, 옆집에 사는 사람이 벤츠를 운전하고 다니니까 그 사람하고 비교합니다. 그리고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니까 저 사람은 잘사는데 나는 못 산다고 느끼고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불행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행복 지수가 더 높습니다.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니까 행복해집니다. 감사는 분명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2)
매일 같은 평범(平凡)한 날들이 소중합니다.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을 지루하고 지겹다고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매일의 일상이 너무나 단조로워 지겨운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범한 일상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문제가 생겨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때 이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매일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깨달을 것입니다. 평범한 삶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릴 최고의 감사기도입니다.3)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 제목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음을 알게 됩니다.4) 조금 전에 불렀던 찬송가 429장의 가사처럼, 받은 복을 세어보면 주의 크신 복을 내가 알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가족들이 구원영생을 얻게 될 것을 믿고서 감사합시다! 약속 믿고 아들들 꼭 교회에 나오게 될 것 믿고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감격을 미리 느껴 보면서 하나님께 100만 번의 감사를 드립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100만 번의 감사로도 부족한 것입니다.5)
텍사스에 술과 여자에 빠진 채로 폐인이 되어서 죽음 직전까지 갔는데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100만 번 기록하여 출판하려고 하였습니다. 어떤 출판사도 출판하겠다고 하지 않아서 책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6)
만일 구원으로 가슴 설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껴 본 사람이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100만 번도 더 쓸 수 있을 것입니다.7)
감사에 눈뜨면 감사의 조건은 먼 데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습니다.8)
벨기에의 문학자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라고 하는 희곡의 줄거리는 나무꾼의 두 어린 남매가 꿈에 할머니가 파랑새를 찾아 달라고 말하여서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여행의 길을 떠났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새장 안에서 파랑새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찾으러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까이에 행복이 있고 우리의 가까이에 감사 제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감사 조건을 멀리서 찾다가 못 찾아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있고 부모님이 있고 직장이 있고 매일 음식이 있고 옷이 있고, 붉은색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하나님께 예배할 교회가 있고, 이 모든 것이 감사의 이유입니다.
코로나 시절에 비대면 예배로 모이기를 금지한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찬송하여도 시끄러우니까 부르지 말라는 사람 없잖습니까? 감사해야죠. ‘큰 예배당 주실 때 감사하겠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박해 없이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특별히 내가 구원받은 사실은 가장 큰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9)
우리가 받은 구원영생을 생각하면 우리가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시험조차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나에게 유익한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10)
사도 파울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롬 8:28). 1번 고난은 슬픈 일입니다. 2번도 슬픈 일입니다. 3번도 슬픈 일입니다. 4번째 고난도 슬픈 일입니다. 나에게는 슬픈 일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돌아보니 1번 2번 3번 4번 다 합쳐서 10번이 되었는데, 그 고난이 다 합해진 결과 나에게 좋은 일이 되고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인생이 고난과 슬픔의 연속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고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고난조차도, 고통조차도 감사하는 삶을 삶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면서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주십니다. 그런데 그 포장지만 보고 싫다고 던질 때 그 속의 선물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난을 주실 때 고난의 포장지만 보고 던지지 말고 ‘이 고난의 포장지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은혜가 들어 있구나’ 하고 그 고난을 감사하며 받을 때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고통 속에 보배를 숨겨 놓으시기 때문입니다.11)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포장지 속에 아주 귀한 보배를 넣어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겪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3장 17~18절에 “무화과나무가 싹 트지 아니하고 그 포도나무들에 산물이 없어지며 올리브나무의 제작품이 실패하였으며 밭에 양식이 없고 우리에서 양 떼를 끊어버렸고 외양간 안에 소가 없고. 나는 야훼 안에 기뻐할 것이며, 나는 나의 구조의 하나님 안에 즐거워할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박국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올리브나무의 열매들이 없어졌어도, 양 떼와 소가 없어졌어도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 다 없어졌어도, 그는 자기 구조의 하나님 안에 그의 소망을 두고 기뻐하겠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없어도 그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이 없어도 그를 구조하시는 하나님을 그는 즐거워하였던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구조의 하나님으로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합 3:18).
우리의 주변에 도사린 감사의 삶을 방해하는 적들이 있습니다.12)
감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13)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처음에는 ‘나에게 1억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1억 있을 때 만족합니까? ‘1억 가져 보니 1억으로 안 되겠습니다. 10억은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 돈 벌어 10억 생겼습니다. 10억 있으니 감사할 것입니까? ‘10억을 가져 보니 10억으로 부족하네요, 100억은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100억 있으면 어떻습니까? ‘100억 있어도 부족하고, 1000억은 있어야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욕심 때문에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독일계 미국인 기업인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인데 세계 부자 순위권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 억만장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인데 감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죠!
그런데 빌 게이츠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였고 백신 개발에 관심을 두고 이것을 지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힐 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백신을 맞혀서 먹거리를 없애고 있습니다. 소들이 백신 맞고 유산하고, 백신 맞은 소의 고기와 유제품들로 사람들이 병들게 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비교 때문입니다.14)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는 아반떼 모는데 저 사람은 벤츠 몰고 다니므로 비교하니까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세 번째 이유는 걱정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걱정 가운데 10%만 현재에 부딪힌 문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과거의 일이나 미래의 일 때문이라고 합니다.15)
전에 ‘이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해야 했는데’라고 말은 의미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타임머신 타고 과거를 바꿀 것입니까? 바꿀 수 없는 이미 지난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미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왜 앞당겨서 걱정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6장 34절에 “그러므로 내일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일(tomorrow)이 그것 자신의(for itself) 걱정할(care) 것임이라, 그날에 그것의 나쁨(trouble)이 충분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미래의 일을 앞당겨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6) 오늘은 오늘 고생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17)
미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 “Thank you”라고 합니다.18)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You thank.”랍니다. “너 대신 내가 감사해 줄게”, 그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19)
감사는 여름철 태양 빛 가운데 부는 시원한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20)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가사의 내용을 볼 때, “길가의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의 눈에는 장미꽃 가시만 보입니다.21)
우리는 장미꽃에 감사하고 장미꽃 가시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불평하면 주변 사람들도 불행하고, 감사하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합니다.
감사가 행복해지는 연습이라면,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하나님께서도 불평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22)
민수기 14장 27절에 “언제까지 나에 대하여 불평하는 이 나쁜 회중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불평들을 내가 들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얼마나 힘들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셨는데, 그들은 감사하지 않고 불평한 것입니다.
‘모세, 너는 왜 우리를 황야 안으로 이끌어 우리가 목마르게 하느냐?’, ‘여기 황야에 먹을 것이라고는 아침마다 떨어지는 하얀 가루밖에 없네!’, ‘이집트 안에 살던 때는 고깃국과 부추와 오이와 수박을 먹고 살았는데’, 이렇게 불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목말라 죽겠네, 배고파 죽겠네’라고 하였고, 이 사람들은 죽겠다고 말한 자기들 말대로 모두가 황야에서 죽었습니다. 이 불평하던 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자녀들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평하는 사람들을 “나쁜 회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중은 언제까지나 불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참음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 대하여 불평(不平)하는 그들의 불평들을 들으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들을 듣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황야 안에 내내 불평 거리를 늘어놓았습니다.23)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 반대로 불평은 악마를 기쁘게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고 불평은 악마의 뜻입니다.24)
청교도들은 모든 위험을 불사하고 배를 타고 미국을 향하여 떠났는데, 사람들은 파도의 위험뿐 아니라 매우 심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다음 해 봄이 되기도 전에 그들 중에 44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25)
더군다나 미국의 기후 조건을 잘 알지 못한 채 보리와 밀을 가지고 와 토양이 다른 낯선 땅에다 심어 농사에서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렸고 추위에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 하였습니다.26)
그때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그들을 도왔는데, 추장이 몇 종류의 씨앗을 가져다주었으며 재배 기술도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은 옥수수, 호박, 감자 등의 곡물을 추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27)
이에 청교도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인디언들과 잔치를 열었는데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먹고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이 된 것입니다.28)
3년 후 매사추세츠주의 주지사 윌리엄 브래드퍼드는 감사절을 만들어 모든 청교도가 감사절을 지킬 것을 공포했습니다.29)
이렇게 추수감사절은 매사추세츠주와 코네티컷주의 연례행사가 되고, 점차 미국 전 지역으로 퍼지었습니다. 1789년 첫 번째 대통령 워싱턴이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온 국민이 이날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30)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 영국의 지배 아래에 있던 기간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중지시켰습니다. 그러다가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행사를 국가적인 국경일로 선포하였으므로 50년 이상 중단된 ‘추수감사절’이 다시 소생하게 되었습니다.31)
그 후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에 ‘감사 메시지’를 말하게 된 것입니다.32)
청교도들은 풍요로운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하지 아니하였으며 옥수수와 감자 몇 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였던 때에 감사하였습니다.33)
이렇게 감사는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기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청교도들은 봄이 되기 전에 44명이, 가족이 죽고 가진 것도 없었는데 그 적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작은 것을 주실 때에 그것을 감사하고 ‘하나님 왜 안 주십니까’라고 따지지 말고 ‘하나님 꼭 주실 줄 믿습니다’, ‘아들들을 교회로 인도하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라고 미리 감사합시다!
‘저 지금 건강이 안 좋습니다. 고치시면 꼭 감사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앞으로 고쳐 주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라고 미리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그런 복된 구원영생교회 성도들이 다 됩시다!
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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