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남의 나날
토요일 심방 계획에 마음이 바빴다.
오랜만에 장로님을 앞세워 안수집사님 댁 추도 예배 위해 갔다.
김행순 집사님이 반갑게 맞았다.
장로님의 방한복 두 벌을 선물받은 아들이 미소를 지었다.
종종 다녀간 외손녀 때문인지 거실에 놓은 매트가 두꺼웠다.
다리가 불편한 두 분은 의자에 앉아 성경을 펼쳤다.
찬송과 기도 후 하늘에 쌓아둔 소망의 말씀을 드러냈다.
귀한 가정!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합당하게 행하여 든든히 세워지길 바랐다.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도록 권면했다.
식사 자리에서 천국 가신 모친의 삶을 나눴다.
‘옛날에 어머니가 속아 결혼했어요.
시집왔는데 다섯 살 먹은 장애아가 나타났데요.
본처가 낳아 버리고 떠난 아이!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맏아들처럼 키웠어요.
어머니는 7남매를 낳았어요.
젊었을 때 술 취한 아버지가 연탄 찍개로 머리를 때린 일도 몰랐어요.
그래 아버지 암 수술하고 항암 치료 중,
돌아가실 때까지 그 뒷바라지를 하셨어요.
나이 들어 우리 집 오셔서 머리 아프다는 통에 맞은 것 알았지요.
고생 많이 하다 세상 떠났네요.
나주 혁신도시 들어설 때 어머니 땅이 제일 많았어요.
토지 보상금에서 큰오빠 장애인 시설로 보내며 상당한 몫을 줬어요.
남은 재산은 아들들이 가졌지요.
어머니는 1백만 원 이상은 계산을 못했어요.
마지막 전세금까지 두 아들이 챙겼네요.
우리는 바라보기만 했지요.’
난 생전에 그분 아파트를 종종 방문했다.
정말 조용하고 순진한 어른이었다.
우리 어머니도 여수 딸이 보고 싶어 안달하셨다.
생신 때도 전화가 없어 궁금증을 더했다.
‘사위 간병으로 그러려니 하지만 여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정한 날, 순천 이모를 모시고 내려갔다.
쌍봉 노인복지관에서 미용 봉사하고 나온 누이를 만났다.
‘엄마! 집안에 아픈 사람 있으면 이렇게라도 해야 숨통이 터져요..
세상에 여기까지 찾아오셨네. 얼릉 식당으로 갑시다.’
맛집 식탁에 둘러앉아 기도를 드렸다.
‘네냐 내냐’ 음식을 떠 줬다.
밥값은 항상 누님 차지였다.
집으로 모실 수 없는 형편에 바닷가 카페로 나갔다.
‘스타 벅스 갈까? 아니, 너무 커피값이 비싸?’
항일암 근처 뷰 좋은 카페로 올라갔다.
넓은 홀에 햇살이 내려앉았다.
손 내밀면 바다가 닿을 정도였다.
찻값이 스벅보다 비쌌다.
모르고 들어왔지만 두 어른 섬김을 감사로 돌렸다.
두 분의 옛날이야기는 끝이 없어 누님이 일어섰다.
선물 상자 주문한 시장 앞에 차를 세웠다.
서대와 소고기의 후한 손이었다.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해서 마련했단다.
혹 떼어 주러 갔다가 혹 붙여 놓은 격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천사 같은 마음 써 준 누님이 고마워 눈물겹게 돌아섰다.
이틀 뒤 해남 로뎀나무교회 시찰 예배는 초행길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너도 그러냐’는 맘으로 갔다.
‘나는 너 때문에 산다//
밥을 먹어도/ 얼른 밥 먹고 너를 만나러/ 가야지/
그러고/ 잠을/ 자도/ 얼른 날이 새어 너를/ 만나러 가야지/ 그런다// ..
너도 나처럼 그러냐?’
흐린 날씨지만 익숙한 지역이라 쉽게 찾았다.
먼저 도착한 분들로 화기애애한 카페 분위기였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다.
지친 자들이 로뎀나무 아래 머물렀다.
숨, 쉼, 삶의 회복을 맛본 곳이었다.
흙 향이 묻은 고구마와 꽃향기 나는 차를 먹고 마셨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장로로 섬기다 목회 6년!
의외로 구원의 확신 없는 자에게 재 확신시키는 일을 해냈다.
잃어버린 영혼 만남을 사명으로 여겼다.
시무식 예배 선물로 떡살과 미역, 김을 받았다.
점심은 닭 요리 전문 식당에서 별미를 맛봤다.
정성 깃든 섬김의 은혜가 컸다.
해남 빵 명장에서 커피에 빵을 곁들며 삶을 들췄다.
할아버지와 아들과 손자 참석이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 셋을 불러 만날 때마다 가르친다.
‘목사님! 용돈 주세요?’
이제 부끄럼 없이 말함이 좀 당당해졌다.
만 원짜리 한 장씩 들고 호주머니에 넣은 기쁨이 얼마나 클까?
그들 아빠가 33억 건축비로 예배당을 지었다.
다음 달 입당 예배 앞둔 시점에 한 달 이자를 물었다.
2천만 원? 완공 허가 나면 좀 떨어질 거라고?
그 무거운 짐 지고 가족 여행하며 웃는 얼굴?
세대 차이인가? 믿음의 격차인가? 혼란스럽지만 축하하러 가련다.
그날 오후 일찍 서둘렀다.
교회 입구에 주문한 명절 선물이 쌓였다.
금값 사과 상자를 실어 어르신들 가정마다 배달을 나갔다.
전하는 기쁨이 컸다.
연말연초, 정성 담긴 후원의 손길로 마련했지만 사례는 한 몸에 받았다.
‘비싼 사과 두 배로 값지게 먹을게요,’
‘목사님 다녀가셨네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신 마음 간직하고 잘 먹겠습니다.’
심부름한 내 얼굴이 빛났다.
명절 때마다 거르지 않은 나눔이 은혜였다.
차가 막혀 가정마다 전달이 어렵지만 다음에 또 하려는 각오가 섰다.
이튿날, 작년 개척 예배드린 남해 화평교회로 지인들 보러 갔다.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 마실 틈이 났다.
격의 없어 입던 옷 그대로 갈 정도로 편한 자리였다.
‘깊은 의미/ 정성 담긴/ 사랑의 밥/ 먹고 싶다’
주문하고 럭셔리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파란 하늘에 잠긴 은점 마을 사택!
애틋한 시선으로 풍성한 교제를 일궜다.
텃밭 길 산책과 우산 없는 발걸음에 바람도 우리 모임도 좋았다.
가리비와 기막힌 굴 맛의 밥상으로 이른 저녁을 먹어 치웠다.
이 마음 저 맘 섞인 웃음꽃은 쉼의 삶으로 가는 회복이었다.
또 만나자! 손 흔듦에 행복을 봤다.
2024. 1. 20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
오랜만에 장로님을 앞세워 안수집사님 댁 추도 예배 위해 갔다.
김행순 집사님이 반갑게 맞았다.
장로님의 방한복 두 벌을 선물받은 아들이 미소를 지었다.
종종 다녀간 외손녀 때문인지 거실에 놓은 매트가 두꺼웠다.
다리가 불편한 두 분은 의자에 앉아 성경을 펼쳤다.
찬송과 기도 후 하늘에 쌓아둔 소망의 말씀을 드러냈다.
귀한 가정!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합당하게 행하여 든든히 세워지길 바랐다.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도록 권면했다.
식사 자리에서 천국 가신 모친의 삶을 나눴다.
‘옛날에 어머니가 속아 결혼했어요.
시집왔는데 다섯 살 먹은 장애아가 나타났데요.
본처가 낳아 버리고 떠난 아이!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맏아들처럼 키웠어요.
어머니는 7남매를 낳았어요.
젊었을 때 술 취한 아버지가 연탄 찍개로 머리를 때린 일도 몰랐어요.
그래 아버지 암 수술하고 항암 치료 중,
돌아가실 때까지 그 뒷바라지를 하셨어요.
나이 들어 우리 집 오셔서 머리 아프다는 통에 맞은 것 알았지요.
고생 많이 하다 세상 떠났네요.
나주 혁신도시 들어설 때 어머니 땅이 제일 많았어요.
토지 보상금에서 큰오빠 장애인 시설로 보내며 상당한 몫을 줬어요.
남은 재산은 아들들이 가졌지요.
어머니는 1백만 원 이상은 계산을 못했어요.
마지막 전세금까지 두 아들이 챙겼네요.
우리는 바라보기만 했지요.’
난 생전에 그분 아파트를 종종 방문했다.
정말 조용하고 순진한 어른이었다.
우리 어머니도 여수 딸이 보고 싶어 안달하셨다.
생신 때도 전화가 없어 궁금증을 더했다.
‘사위 간병으로 그러려니 하지만 여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정한 날, 순천 이모를 모시고 내려갔다.
쌍봉 노인복지관에서 미용 봉사하고 나온 누이를 만났다.
‘엄마! 집안에 아픈 사람 있으면 이렇게라도 해야 숨통이 터져요..
세상에 여기까지 찾아오셨네. 얼릉 식당으로 갑시다.’
맛집 식탁에 둘러앉아 기도를 드렸다.
‘네냐 내냐’ 음식을 떠 줬다.
밥값은 항상 누님 차지였다.
집으로 모실 수 없는 형편에 바닷가 카페로 나갔다.
‘스타 벅스 갈까? 아니, 너무 커피값이 비싸?’
항일암 근처 뷰 좋은 카페로 올라갔다.
넓은 홀에 햇살이 내려앉았다.
손 내밀면 바다가 닿을 정도였다.
찻값이 스벅보다 비쌌다.
모르고 들어왔지만 두 어른 섬김을 감사로 돌렸다.
두 분의 옛날이야기는 끝이 없어 누님이 일어섰다.
선물 상자 주문한 시장 앞에 차를 세웠다.
서대와 소고기의 후한 손이었다.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해서 마련했단다.
혹 떼어 주러 갔다가 혹 붙여 놓은 격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천사 같은 마음 써 준 누님이 고마워 눈물겹게 돌아섰다.
이틀 뒤 해남 로뎀나무교회 시찰 예배는 초행길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너도 그러냐’는 맘으로 갔다.
‘나는 너 때문에 산다//
밥을 먹어도/ 얼른 밥 먹고 너를 만나러/ 가야지/
그러고/ 잠을/ 자도/ 얼른 날이 새어 너를/ 만나러 가야지/ 그런다// ..
너도 나처럼 그러냐?’
흐린 날씨지만 익숙한 지역이라 쉽게 찾았다.
먼저 도착한 분들로 화기애애한 카페 분위기였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다.
지친 자들이 로뎀나무 아래 머물렀다.
숨, 쉼, 삶의 회복을 맛본 곳이었다.
흙 향이 묻은 고구마와 꽃향기 나는 차를 먹고 마셨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장로로 섬기다 목회 6년!
의외로 구원의 확신 없는 자에게 재 확신시키는 일을 해냈다.
잃어버린 영혼 만남을 사명으로 여겼다.
시무식 예배 선물로 떡살과 미역, 김을 받았다.
점심은 닭 요리 전문 식당에서 별미를 맛봤다.
정성 깃든 섬김의 은혜가 컸다.
해남 빵 명장에서 커피에 빵을 곁들며 삶을 들췄다.
할아버지와 아들과 손자 참석이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 셋을 불러 만날 때마다 가르친다.
‘목사님! 용돈 주세요?’
이제 부끄럼 없이 말함이 좀 당당해졌다.
만 원짜리 한 장씩 들고 호주머니에 넣은 기쁨이 얼마나 클까?
그들 아빠가 33억 건축비로 예배당을 지었다.
다음 달 입당 예배 앞둔 시점에 한 달 이자를 물었다.
2천만 원? 완공 허가 나면 좀 떨어질 거라고?
그 무거운 짐 지고 가족 여행하며 웃는 얼굴?
세대 차이인가? 믿음의 격차인가? 혼란스럽지만 축하하러 가련다.
그날 오후 일찍 서둘렀다.
교회 입구에 주문한 명절 선물이 쌓였다.
금값 사과 상자를 실어 어르신들 가정마다 배달을 나갔다.
전하는 기쁨이 컸다.
연말연초, 정성 담긴 후원의 손길로 마련했지만 사례는 한 몸에 받았다.
‘비싼 사과 두 배로 값지게 먹을게요,’
‘목사님 다녀가셨네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신 마음 간직하고 잘 먹겠습니다.’
심부름한 내 얼굴이 빛났다.
명절 때마다 거르지 않은 나눔이 은혜였다.
차가 막혀 가정마다 전달이 어렵지만 다음에 또 하려는 각오가 섰다.
이튿날, 작년 개척 예배드린 남해 화평교회로 지인들 보러 갔다.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 마실 틈이 났다.
격의 없어 입던 옷 그대로 갈 정도로 편한 자리였다.
‘깊은 의미/ 정성 담긴/ 사랑의 밥/ 먹고 싶다’
주문하고 럭셔리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파란 하늘에 잠긴 은점 마을 사택!
애틋한 시선으로 풍성한 교제를 일궜다.
텃밭 길 산책과 우산 없는 발걸음에 바람도 우리 모임도 좋았다.
가리비와 기막힌 굴 맛의 밥상으로 이른 저녁을 먹어 치웠다.
이 마음 저 맘 섞인 웃음꽃은 쉼의 삶으로 가는 회복이었다.
또 만나자! 손 흔듦에 행복을 봤다.
2024. 1. 20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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