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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열려라 에바다 2024. 2. 16. 12:56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태복음 5:38)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Eye for eye, and tooth for tooth.'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출애굽기 21:23~25)

But if there is serious injury, you are to take life for life,

eye for eye, tooth for tooth, hand for hand, foot for foot,

burn for burn, wound for wound, bruise for bruise.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레위기 24:19~20)

If anyone injures his neighbor, whatever he has done must be done to him:

fracture for fracture, eye for eye, tooth for tooth. As he has injured the other, so he is to be injured.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신명기 19:21)

Show no pity: life for life, eye for eye, tooth for tooth, hand for hand, foot for foot.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은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만든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에 실려있는 글귀로서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lex talionis)의 문장이다. 즉, 동일한 형태로 복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은 가해자에게 가하는 벌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한참 약화시켜서 사회 질서를 지키는 규칙이었다. 결국 이 유명한 문구는 보복을 권장하는 말도 아니고, 엄벌주의적 격언도 아닌, 현대의 여느 법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가해자를 과도한 사적 제재로부터 지키는 법규였다는 것이다. 단지 시대적 차이로 인해 '과잉 보복'의 기준이 현대와는 달랐을 뿐이다.

이 원칙은 ‘지나친 정의감’ 즉, 복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다.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하려는 사태를 막기 위한 법이다. 받은 대로만 돌려주어야지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서의 원뜻은 정의 실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보복과 전쟁을 부추기는 잔인한 의미로 변했다.

그리고 이 말은 일반인에 적용되기 보다는 재판관에게 적용되는 용어다. 재판 때 피해를 받은 만큼만 처벌하도록 판결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태복음 5:38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회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라는 말이 돌아다닌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런 표현을 빌렸지만 이런 방식으로 대응하라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4~48)

결국 하나님처럼 온전하라는 주문을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온전'이란 '사랑의 온전'이다. '온전'(tevleios", 텔레이오스)이라는 구약성경의 '탐밈'(온전한, tamim)이라는 말을 반영하고 있다. 이 '탐밈'이라는 말은 희생 동물이 흠이 없는 것, 즉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말하기도 하고(출 12:5)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 곧 의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6:9; 신 18:13; 삼하 22:26). 즉, 완벽함이 아닌 순수함을 의미한다.

이 온전함이란 예수님을 제외하면 성경에서는 노아(창 6:9)와 욥(욥 1:8)에게만 온전하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선민으로서 모든 불의한 것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이 그들의 독특한 표시였던 것처럼(레 11:44, 45; 19:2; 20:7, 26) 메시야 공동체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진정한 곳으로서 이 같은 특징(벧전 1:16)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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