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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왕의 사역 : 갈릴리 바다를 잔잔하게 하심1(마8:23-27)

열려라 에바다 2024. 2. 19. 17:13

천국 왕의 사역 : 갈릴리 바다를 잔잔하게 하심1(마8:23-27)

천향추천 0조회 1124.02.19 11:20댓글

 

예수의 가르침과 이적은 종말의 천국과 천국 왕이 어떤 분인지를 말한다.

이러한 증거를 위하여 마태복음은

산상수훈과 제자를 파송하는 가르침 사이에 10개의 이적을 배열한다.

10개의 이적은 마태복음 이적의 절반을 차지한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이적이 배열된 순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하여 독특하게 배열한다.

마태복음을 생각해 보라.

예수께서는 천국을 설립하고 산에서 내려오셔서 유대인 문둥병자를 만지셔서 깨끗하게 하신다(마8:1-4).

또 이방인 백 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의 종을 치료하신다(마8:5-10).

이방인 백 부장의 종을 치료하신 후에는 가르침이 첨가된다.

그것은 나아온 이방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마8:11-12).

제자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수종을 받으신다(마8:14-15).

날이 저물었을 때는

사람들이 데리고 온 많은 귀신들린 자들과 병자들을 모두다 말씀으로 고치신다(마8:16).

이러한 치유 사역에 대하여 마태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

고 한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는 일이라고 해석한다(마8:17).

 

예수께서는 무리가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신다(마8:18).

이는 이때가 종말의 천국이 확장되는 시점임을 말한다.

이는 갈릴리에서 시작된 복음전파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확장되는 출발점을 가리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나아온 한 서기관과 제자들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거처가 있으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말씀하신다(마8:20).

이 말씀은 자신을 따르겠다는 서기관의 요청은 거절하고

제자에게는 자신을 따르라는 권고이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는 여호와의 종’이시며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이 없는 인자’이심을 강조한다.

이것이 마태복음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왜 예수께서 고난을 받는 여호와의 종이며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이 없는가?

종말에는 모세율법의 통치와는 다른 새로운 통치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들은 아래로부터 나지 아니하고 위로부터 난 천국 왕이기 때문이다.

종말의 천국은 율법의 나라인 다윗왕국과는 다른 존재 기반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집에서의 이적을 기록하고

예수께서는 귀신들도 알고 떠드는 하나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고난을 받는 여호와의 종이며 머리 둘 곳이 없는 인자라고 말한다.

누가복음에서 본문의 내용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언급된다.

이처럼 갈릴리 풍랑사건은 모든 공관복음에서 언급된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갈릴리 풍랑사건을

하나님 나라 가르침 다음에 배열하여 선교 상황에서 행하신 일임을 말한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는 하나님 아들과 그의 제자들을 공격하는 적대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서 잔잔하게 하여 제자들을 보살피싡다.

이러한 천국 왕의 권세를 본 제자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라고 놀랐다는 반응을 보인다(마8:27).

 

예수께서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신 상황도 공관복음서마다 다르게 기록한다.

마가복음은 물이 배에 가득한 위기상황에서

평안하신 예수와 원망하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대조한다(막4:36-41).

예수께서는 배의 고물에서 주무시고 있으며 제자들은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라고 부르짖는다.

이처럼 평안하게 주무시는 천국 왕과 믿음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대조한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행선 할 때

갑자기 돌풍이 호수를 내리쳤다고 말한다(눅8:22-25).

그러자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를 다급하게 깨우며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라고 부르짖는다.

이처럼 누가복음에서도 돌풍과 풍랑은 제자들을 공격하고 위협하는 적대세력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머리 둘 곳이 없는 인자를 제자들이 따르는 상황에서

풍랑을 만난 일을 말한다(마8:18-27).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갈릴리 풍랑사건을 도입하는 말이 보여준다.

갈릴리 풍랑사건을 도입하는 말은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니라 ...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이다(마8:18-20).

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는가?

온 세상은 예수께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적대세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을 고집하는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이다.

그들은 죄 아래에 있는 창조세계의 바람과 풍랑이다.

그러나 마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예수와 동행하라고 말한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서 잠잠하게 하신 일에서 보여준다.

이처럼 인자는 세상에서 머리 둘 곳 없다.

그를 따르는 천국의 제자는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

그러나 천국 왕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서 제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본문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인자는 세상에서 머리 둘 곳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고난과 핍박을 당하여 결국에는 십자가 죽음을 죽게 된다.

이러한 인자의 고난에 천국 백성은 믿음으로 동행하라는 것이다.

갈릴리 풍랑사건을 살펴보라.

마태복음은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라고 기록한다(마8:24-25).

이처럼 마태복음은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서 배를 덮치는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서 뱃전에서 주무시는 예수를 대조한다.

여기에 죽을까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더하여진다.

이처럼 머리 둘 곳이 없는 인자와

그를 따르는 천국 제자를 대적하는 적대세력이 등장한다.

제자들을 두렵게 하는 적대세력은 갈릴리 바다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바람과 풍랑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를 동행하신다.

천국 왕과 천국의 제자는 한배를 탄 공동 운명체이다.

천국 왕께서는 세상에서 머리 둘 곳이 없는 인자이다.

따라서 천국의 제자는 인자의 고난에 함께 하는 공동 운명체이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잠에서 깨어나신 후에

먼저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먼저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후에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신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돋보이도록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의 믿음이 없음은 대적을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종말의 천국을 봉사하는 자들은 모든 고난 중에서도 대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천국 왕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갈릴리 풍랑사건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의 반응은

    “두려워하고 놀라며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그 제자들이 기이히 여겨 이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라고 말한다(마8:27).

이처럼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사람이심에 강조하여 인자라고 말한다.

인자는 하나님 아들이시다.

그는 사람이 되셔서 고난을 받으시는 여호와의 종이다.

인자는 세상에서 머리 둘 곳이 없다.

이는 옛사람과 세상은 여호와의 종을 대적하는 적대세력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고집한 예루살렘의 제사장,

율법 사회의 관료인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들을 따르는 유대 백성들 모두가 인자를 대적하는 적대세력이다.

이방인 거라사인과 바람과 바다도 인자를 대적한다.

제자들은

    “이 이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라고 놀랐다.

그러나 인자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다.

그는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며 영광의 광채이시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다.

그는 세상을 구속하시려고 자기 백성처럼 인자(사람)가 되셨으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자기 형상으로 온전케 하신다.

우리는 인자의 상에 앉아서 그의 살과 피로 양육을 받는 지체와 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은 새 백성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구약시대는 죄와 사망의 권세가 절대군주처럼 군림하던 시대이다.

따라서 구약에서의 믿음은 휘장으로 가린 여호와를 알고 섬긴 믿음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모세율법은 옛 세상을 비춘 유일한 계시의 빛이다.

그러나 율법의 빛은 참되고 온전한 하늘의 빛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게 하는 참된 계시가 아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죄와 사망 아래에 매여서 반복적인 짐승 제사하며,

율법으로는 없애지 못하는 죄와 죽음 아래에 매인 자들이다.

이는 옛적에서는 참되고 온전한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지 않았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통치질서는 모세율법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모세율법을 가까이하고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런데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직접 오심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모세율법의 통치는 종결되고 새로운 통치질서가 시행된다.

따라서 마태는 이제는 모세율법을 따르지 말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말한다.

이제는 모세율법(구약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복음(신약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라고 말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종말에는 모세율법과는 다른 하나님의 새로운 뜻과 경륜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인자의 머리 둘 곳이 없다.

이는 율법을 고집하는 자들의 방해와 대적함이 있으며,

바람과 파도 같은 자연세력의 도전과 적대가 있다.

무엇보다도 천국 왕의 존재 기반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게 된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