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십자가의 도 예화

열려라 에바다 2024. 2. 22. 09:24

십자가의 도 예화

 

공부를 잘하는 아들과 공부를 못하는 아들 중에 누가 더 가치가 있는가? 똑같다. 공부 잘하는 아들이 더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은 진짜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다. 돈을 잘버는 남편과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남편 중에 누가 더 가치가 있는가? 똑같다. 돈 잘 버는 남편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사랑을 상실한 사람이다. 악을 행하는 사람과 선을 행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가치가 있는가? 똑같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측면에서 가치차이는 없다. 도둑을 죽여도 살인죄이고, 성자를 죽여도 살인죄이다. 인간의 가치는 동일하다. 무저항주의란 무엇인가? 악인의 가치는 인정해 주나, 그의 행동은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악인의 행동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성도들이 무참히 고문 당했다. 그때 성도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 할 일을 해라. 그러나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폭력은 무서운 것이다. 원치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들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게 만든다. 그러나 무저항주의는 폭력 앞에서 당하기만 하고, 반응하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저항이다.

 

 

많은 사람은 신앙이란 하나님이 공급하는 능력으로 더 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힘으로 나오면, 하나님의 힘으로 더 강력하게 무너뜨려버리는 것을 신앙으로 생각한다. 신앙의 전부를 설명할 수 있는 정의가 아니다.

 

세상은 힘으로 변화되지 않고, 십자가로 변화된다. 지금은 고문 당하는 것과 같은 폭력은 없다. 그러면 성도의 십자가의 삶은 무엇인가? 세상의 힘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정과 욕심을 못박아서, 세상의 유혹과 압박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힘을 잃는다. 세상은 변화된다. 사실 세상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십자가의 삶이다.

박수를 너무 좋아한다. 격려와 칭찬과 인정이 없으면 일을 못한다. 너무 세상 의존적이다. 좀 박수 없이 일할 수는 없는가. 격려와 칭찬이 없고, 비난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도를 걸을 수는 없는가. 십자가 상의 예수님 앞에서 사람들이 조롱한다. “저가 남은 구원하고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내려와봐. 내려와봐.” 나같으면 이렇게 하고 싶다. “그래 내려왔다.” 그리고 피범벅을 만들어 버린다. 함부로 입 놀리지 말아라고 외치면서 다시 십자가에 올라간다. 그리고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자존심도 살고, 십자가도 지는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십자가의 길이 아니다. 세상은 무력해 보이지만 말없이 죽을 때 변화한다. 세상의 자극 앞에 반응하지 않는 모습, 주만 바라보는 모습 속에서 세상은 무릎을 꿇는다.

출처/ 삼일교회 청년부 주보 yes31에서

 

 

영국의 전도자이며 설교자였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십자가의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휫 필드가 미국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목사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하였습니다. 이 때 상황을 에드워즈 목사의 부인이 동생 제임스에게 보낸 내용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그 날을 새로운 생각, 새로운 소원, 새로운 목적,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날로 여겼었다고 적은 것입니다.

 

 

맥컬록(McCulloch)은 조지 휫필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말씀의 능력 아래 들어온 사람들은 저주와 욕설과 술 취함을 포기했다. 불의한 행동을 뉘우치게 했고, 복수심에 가득 찬 사람은 용서를 베풀게 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생으로 만들었고, 천국에서 아버지와 교제하려는 생각을 가지려 노력하게 만들었다."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만드는 통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1.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라는 말씀을 매우 가혹한 말씀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는 마지막 말씀이 듣기에 훨씬 더 가혹하다.

지금 십자가의 말씀을 듣고 잘 따르는 자는 영원한 죽음의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시112:7).

주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 이 십자가의 표가 하늘에 나타날 것이다. 그때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와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십자가를 따르는 모든 종들은 심판주이신 그리스도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게 되리라.

 

2. 그런데 그대는 자신을 하늘나라에 인도하는 십자가 지는 것을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가?

십자가에는 구원이 있고 십자가에는 생명이 있고, 십자가에는 원수를 막아주는 힘이 있고, 십자가에는 하늘나라의 행복이 있고, 십자가에는 마음의 힘이 있고, 십자가에는 영혼의 즐거움이 있고, 십자가에는 덕의 극치가 포함되어 있고, 십자가에는 거룩함의 완성이 있다. 십자가가 아니면 어떤 영혼도 구하지 못하고 영생의 희망도 없다.

그러므로 그대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27). 그러면 영생으로 들어갈 것이다. 예수님은 몸소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대보다 앞서 가셔서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는 곳에 나가시니 -요19:17). 그 십자가 위에서 그대를 위하여 돌아 가셨다. 그대도 역시 자기의 십자가을 지고 그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자 소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그분과 더불어 죽으면 그분과 더불어 살 것이요, 그분과 더불어 고난을 당하면 역시 그분과 더불어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이다(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1:5).

 

3. 보라! 모든 것이 십자가에 있고 모든 것이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는 데에 있다는 것을, 신성한 십자가의 길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극기의 길 이외에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 없고 참다운 내적 평화의 길이 없다.

그대의 뜻대로 가 보고,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해 보라. 그러나 거룩한 십자가의 길보다도 더 높고 더 안전한 길은 찾아내지 못하리라.

그대의 뜻과 판단에 따라 모든 일을 배치하고 정돈한다해도 , 그대의 뜻에 맞든 맞지 않든 간에 필경에는 참고 견디어야 할 뭔가를 찾아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언제나 십자가를 찾아 내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대는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정신적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4. 만약에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진다면, 마침내 그 십자가가 그대를 지고 그대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 줄 것이다. 비록 이 세상은 아닐지라도, 이른바 고통이 끝나는 그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만약 그대가 마지못해서 십자가를 진다면, 자기 스스로 새삼스럽게 무거운 짐을 만드는 것이 되고 한결 더 짐을 무겁게 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짐을 지고 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대가 한 십자가를 팽개친다면 , 틀림없이 또 다른 십자가를 만나게 될 것이요, 그것은 한층 더 무거운 십자가일 것이다.

 

5.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을 그대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의 어떤 성인이 십자가의 고난과 시련을 당하지 않았던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 단 한 시간이라도 괴로움 없이 지내신 적이 없다. 그분은 "그리스도가 괴로움을 받고 죽은 자 중에서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에 들어가셔야 할 것이다"(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24:26)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거룩한 십자가의 길인, 이 길 외에 다른 길을 찾고 있는가?

 

 

십자가의 행군

 

 

미국의 스무 살 청년이 길이 3미터의 십자가를 지고 2,240km를 행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의대를 다니던 가르시아는 세상에 빠져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교회생활은 오래토록 하고 있지만 주님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미국 사람들에게도 다시 한 번 주님의 십자가를 전하기 위해서 3m의 십자가에 간이 바퀴를 매달고 텍사스 주 포트워스 북쪽부터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까지 총 2240km를 행군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대단한 결심이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겉보기만 그럴싸한 쇼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군을 통해 다시 한 번 신앙을 점검하게 된 많은 사람들 역시 있었으며, 그가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슈가 된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 많은 언론사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를 통해 행군의 목적이 예수님의 십자가임을 고백하며 복음을 떠난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종용했습니다.

방법은 다르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위해 세상 속에서 분명한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복음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성도가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삶의 모습을 통해 조금이라도 주님을 나타내게 하소서!

어떤 방법으로 주님을 나타낼지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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