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특성
성경의 특성은 16세기의 종교개혁가들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이라는 슬로건을 강조하면서 신학과 교회를 세롭게 정립하면서 성경의 특징을 정립하였다.
1. 귄위성
로마 가톨릭교회는 자신들의 교회의 권위가 성경보다 더 위에 있다(ecclesia supra verbum Dei)고 주장한다. 로마교회는 교회가 성경을 산출했으니 성경의 존재와 권위는 자신들의 교회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은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어떤 사람이나 조직이나 회의에 의해 그 권위가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Ecclesia nata est ex Dei verbo).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이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지 교회가 성경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보다 위에 있다(Verbum supra ecclesiam). 개혁자들은 이런 주장들을 가지고 유형 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보다 성경의 우선권을 확신하였다. 특히 로마교회가 사도적 권자로부터(ex cathedra) 교황의 결정을 무오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최종 결정을 성경의 권위와 동등하게 두는 잘못된 실수이다.
2. 필요성
로마 가톨릭은 교회가 성경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를 필요로 한다고 잘못 주장한다. 교회가 없다면 성경도 없다는 것이다. 몬타누스파, 재세례파 그리고 제네바의 방임파는 성경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신자의 마음속에서 말하는 성령의 말씀인 내적 광명을 더 권위 있게 여긴다. 예수께서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 18)고 말씀하신 것은 성경 자체의 존재와 권위의 유일성을 드러낸다.
3. 명료성
로마 가톨릭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애매 모호성을 말한다. 로마교회의 입장을 대변한 에라스무스는 루터와 자유의지에 관해 논쟁하면서 성경은 어두움의 책이라고 했다. 성경의 전문 학자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로마 가톨릭교회는 난해성을 강조하고 트렌트 회의에서 평신도의 성경 해석을 금하였다. 그러나 구원에 필요한 내용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이해가 가능하다. 비록 성경 가운데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진실하게 구원을 갈망하는 자에게 필요한 구원의 지식은 ‘명료(明瞭)’하게 드러나 있다. 성령님의 조명을 통하여 성경을 성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나 사제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누구든지 용이하게(facilitas) 구원의 도리를 알 수 있다(시 19: 7). 칼빈은 성경을 간결하고 용이하게(brevitas et facilitas) 해석하는 방법을 주장한다. 명료성은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성경 해석학의 근원이다. 성경은 구원을 위해서는 분명하다.
4. 충족성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충분한 계시이다. 다른 인간적 문헌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성경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지 못한다. 가톨릭이 유전(전통), 교회의 선언문 그리고 기도문을 주장하고, 재세례파가 내적 조명의 필요성을 주장하나 성경은 그 자체로 개인의 구원과 교회의 영적·도덕적 욕구를 위해 아주 ‘충족’하다(시 119: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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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위 ***
성경에서 사용하는 권위라는 말은 보통 자기가 맡고 있는 지위나 직책 때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 말은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정당함과 공정함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 또 모든 권위의 근원이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천사나 인간이 가진 권위들은 모두 하느님께 종속된 것들이다. 하느님의 권위는 온 세상을 변함없이, 영원히 다스리시는 그분 통치의 한 측면이다. 창조주이시며 심판관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최고의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계시며 그러한 권위를 바탕으로 권능을 행사하신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권위가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통해 실질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와 사제와 임금들에게 부여하신 권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삶 안에서 당신의 권위를 행사하신다. 하느님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각각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하느님의 법을 가르치며 그 법에 따라 통치해야만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권위와 본질적으로 같은 권위를 갖고 계신다.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그분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약 성경에서는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자신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권위가 당신 자신에게 기초를 두고 있는 궁극적인 권위임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심판을 하시며 자연을 지배하시고 죽음을 다스리시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분의 자격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침과 기적을 통해 드러내 보이신 그분의 권위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도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셨다.
한편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해 주고 질병을 고쳐 주며 마귀를 쫓아내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권한을 주시는 모습을 묘사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가르치고 병자를 고쳐 주며 악령을 쫓아내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통해서인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 밖에도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의해 위임된 다른 형태의 권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즉 그것들은 교회의 기초를 놓고 교회를 건설하며 돌보는 사도들의 권위,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 국가의 권위,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 등인데, 이것들은 모두 하느님 뜻 안에서 합당하게 행사되어야만 하는 권위로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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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
성경에서는 주님이라는 호칭을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다 적용하고 있다. 주님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Adonai), 그리스어로 ‘키리오스’(Kyrios)인데, 여기에는 주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처음에 이 말은 임금이나 이교도 신들, 남편 또는 노예의 소유주 등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구약 시대에 주님이라는 호칭은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기들의 입술 위에 올려놓을 수가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을 부르던 완곡한 대체어였다. 이렇게 구약의 백성들은 하느님을 주님이라 불렀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와 세상 안에서 예수님께서 차지하고 계시는 자리와 그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주님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본질을 설명해 준다.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분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지배자요 통치자이심을 뜻한다. 하느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온 세상에 권능을 미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권위를 가지신 주님이시다. 신약 성경에서도 세상의 창조주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을 주님이라 불렀다.
주님은 예수님을 지칭해 사용하던 호칭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인간과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그분의 권능이다. 주님이라는 호칭과 관련하여 하느님께 사용되었던 구약 성경의 구절이나 개념들이 예수님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 모든 만물이 예수님께 복종하며 예수님께서는 주님들의 주님으로 불리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의 주님이시고 주님의 날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에 적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하느님을 주님이라 칭한 구약 성경의 구절들이 예수님께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묘사하고 있는 신약 성경의 내용들이 하느님을 주님으로 묘사한 구약 성경의 내용들과 동일하다.
즉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와 관련되어 계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권위를 공유하고 계시는 주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 붙여진 주님이라는 명칭은 그분께서 임금으로서의 권위를 갖고 계신다는 메시아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주님이라는 용어는 서로 맞바꾸어 쓸 수 있는 호칭이다.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은 특히 그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 결정적으로 분명해졌다. 주님이라는 호칭은 그분의 부활에 의해 그분의 신성을 더 뚜렷이 드러내 주는 것이 되었다.
초대 교회의 복음 선포 내용 안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던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고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믿음의 표현임과 동시에 핵심이었고 교회의 구성원임을 확인시켜 주는 출발점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불린 사람들이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알아보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분의 모범을 따르고 선을 실천해야 할 책임을 갖게 된다. 사도들의 사명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선포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선포해야 할 메시지의 요약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헤릿도우, Reading The Bible, 1645, 성경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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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 ****
구약 성경에서 두려움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악이나 위험 또는 재난 앞에서 느끼는 공포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자주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그 용어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문맥 안에서 사용될 때에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때의 두려움은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위엄과 권능, 존엄하심과 거룩하심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은 그분께 대한 인식과 그분께 대한 순종에서 솟구쳐 나오는 경건함과 경외심을 의미한다.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지닌 뚜렷한 특성들 가운데 하나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두려우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구약 성경의 많은 내용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 주고 있고 더 나아가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그분의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깊은 경외심과 온 정성으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믿음의 표현이며 그 자체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께 의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잠언의 저자는 하느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이 믿음과 행동 양식의 근거가 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모든 인간의 의무요 인생의 모든 것이다.
그것은 또 장차 오실 메시아가 지닐 거룩한 덕성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경외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올바르고 참다운 믿음을 지닌 사람을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죄와 악을 피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과 구원을 받는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두려워함에 대해서 구약 성경에서만큼 그렇게 자주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예수님께서는 그에 관해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하고 경외함은 신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행동인 동시에 삶의 동기와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을 진실로 두려워하고 있음을 자신들의 삶 안에서 사랑과 선행과 거룩한 생활로 항상 표현해야만 한다.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는 하느님을 두려워함이 사도직의 기초였다.
성경에서는 또 하느님의 현현이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기적, 천사의 출현이나 환시 앞에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때의 두려움도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연관되어 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권고의 말씀은 주님을 믿고 그분께 의탁하라는 초대였던 것이다.
한편 성경에서는 인간이 악이나 위험 또는 죽음 앞에서 엄청난 공포심을 갖게 될 때, 하느님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써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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