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겸손이란?

열려라 에바다 2024. 3. 19. 08:25

겸손이란?

『겸손(謙遜) :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취함』 <국어사전>

 

『겸손이란 남을 높이고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일. 성경에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자각하여 자긍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낮은 데 처하는 마음 가짐을 뜻한다(대하33:12. 34:27). 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자기 억제로 나타나는 겸손은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주요 덕목 중의 하나 다(잠22:4. 골3:12).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구체적으로 겸손의 본을 보여 주셨다(요13:4,5)』 <성경사전>

 

『자랑. 교만. 거만. 오만. 자고의 반대 개념. 겸손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사람이 홀로 있을 때의 자기 판단이 아니라 반드시 외부 사람들을 향한 행동에서 나타나는 태도를 의미한다. 겸손을 인내 또는 온유와 구별하기는 어렵다. 성경에 있어서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자각하여 자긍하는 마음을 버리고 낮은 데 처하는 마음 가짐을 말한다(대하33:12. 34:27). 자신을 낮추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비결이다(대상7:14). 헬라인에게 있어 겸손은 나약하고 비굴한 것이었으나, 예수께서는 겸손을 인격의 초석으로 삼으셨다(마5:3,5. 18:4). 예수께서는 그의 겸손을 통해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끄셨다(마11:28-30). 바울은 예수의 겸손을 강조했으며(빌2:1-11), 우리에게 피차 겸손하라고 권고했다(빌2:3,4). 베드로는 형제들과 하나님에 대하여 겸손할 것을 권면했다(벧전5:5,6)』 <기독교사전>

 

겸손한 자

마18:1-4「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 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제자들은 질문을 한 후 예수께서 자기들 중에 누구를 지명하여 큰 자로 세우실는지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 중 어느 누구도 지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마도 베드로의 아들인 듯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셨다(마17:25. 막9:33). 그런 후에 그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이, 즉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다. 더욱이 충격적인 것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3절).

이러한 예수의 말씀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야말로 천국의 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적임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시147:6. 149:4). <강병도성경연구>

어린아이들과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나 라에 합당하다는 말씀이다. 제자들은 그들 중에 누가 제일 높은지에 대해 항상 생각해 오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토론도 하였다(막 9:33. 눅 9:46).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충격적이고 역설 적인 내용이었다. 즉 어린 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오히려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겸손이란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주님께서 이미 겸손한 분이셨기에 우리가 겸손해야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겸손’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가장 아름다 운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FMA성경연구>.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과 같이 행동해야 하는가?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신앙은 어린 아이 의 특성과 같이 순수하고 겸손하며 잘 받아들이고 자만심에 빠지지 않는 신앙인 것이다. 천국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순수하게 선물로서 받아들이는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QA성경>.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 이와 같은 역설적 표현은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엄연한 사실 을 전제로 한다(롬3:10). 세상에서는 뻔뻔스럽게 완력으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정의의 천국에서는 이런 자들이 본래 죄인인 외에도 남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자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을 낮추는 자일수록 죄를 시인하는 것이 되는 바, 그런 자가 천국에 합당하니 남 보다 큰 사람으로 여김 받을 수 있다<주석성경>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겸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모델로 제시하시면서 진정한 겸손을 설명하셨는데 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보통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롬12:3). 그러나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하지도 않는다.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을 때 지나친 자기 비하로 하나님께 책망 받았다(출3:14). 어린아이는 위와 같은 두 가지 면을 잘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겸손의 모범이 될 만하다. <강병도성경연구>

 

 

겸손에 대한 올바른 이해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겸손할 것을 명령하신다(롬12:3,10. 빌2:3-5). 겸손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사람의 필요, 소원, 행복, 기쁨 및 평판이 그 자신의 것보다 더 중요하다. 주님은 자신을 비우시는 겸손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빌2:5-8). 겸손은 교회의 회중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이다. 왜냐하면 교만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1) 겸손의 추구

나는 과거에 교만으로 인한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 나는 당신도 역시 교만으로 인한 문제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겸손은 매우 포착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나는 겸손해’라고 말할 때, 당신은 교만해져 있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겸손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다하여 겸손을 추구한다.

 

2) 겸손의 이유

하나님이 당신만을 필요로 하셨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주님은 그가 원하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 구원하실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거지로서 왔다. 우리는 영적으로 파산했었다. 우리가 지금 어떤 것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획득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께 돌려드릴 것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구원의 선물과 성령을 통하여 나에게 주셨던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에 대해 무엇을 주장할 수가 없다.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한다. 나는 교만해 할 이유가 없다.

 

3) 겸손의 중요성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적이고 겸손하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경은 겸손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0:38,39절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을 높이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라. 교회의 회중이 지위를 갖고 싸운다면, 그들은 12제자들이 누가 제일 크냐고 다툴 때와 똑같은 혼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마20:20,21. 막9:33-35. 눅22:24).

 

4) 겸손에 대한 올바른 이해

올바른 자아관

우리는 겸손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겸손은 다른 사람을 당신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구속 받고 성화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치가 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한다.

 

올바른 타인관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태복음19:19절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당신의 이웃의 필요를 채우는데 헌신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교회의 회중들이 겸손한 태도를 갖기를 원한다. 겸손한 태도를 갖고 있다면,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 주어지고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나보다 중요하다. 겸손이란 상대방의 필요가 확실하게 채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의 우선 순위의 얼마를 옆에 제껴 놓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양심을 상하게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롬14:13-15). 겸손은 상대방에게 걸림돌이 되는 어떤 것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나는 내 자유를 유보할 것이다. 나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해야 한다. 상대방이 양떼로부터 멀어지면, 그를 쫓아가 되돌아오게 하야만 한다(마18:15-17). 우리가 지녀야 하는 세 번째 태도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겸손과 교만

렘43:2.“호시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 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아사랴, 요하난, 교만한 자들은 모두 유다인들로써 ‘불에 거슬린 나무’(슥3:2)와 같은 자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전쟁의 쓰라림을 맛본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한 원인은 그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결심을 하나님의 뜻보다 우위에 두는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은 피조물 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겸손한 것을 큰 미덕으로 평가한 반면, 교만은 마귀로부터 기원하며(딤전3:6) 장차 멸망에 이르게 하는 악덕으로 소개한다. 따라서 성경은 적극적인 어조로 겸손을 명령하며(미6:8. 눅14:10. 22:26롬12:3. 약4:10. 벧전5:5), 겸손에는 현세와 내세에 축복이 보장됨을 선언한다(잠16:19. 22:4. 사57:15. 마18:4).

한편 성경은 여러 겸손한 자의 사례(야곱-창32:10. 사울-삼상9:21. 다윗-삼하7:18. 솔로몬-왕상3:7. 세례 요한-마3:14. 백부장-마8:8. 수보로나게 여인-마15:27. 바울-딤전1:15)을 보여 주고 있으니 그 전형은 역시 그리스도에게서 찿을 수 있다(슥9:9. 마11:29. 요13:5. 빌2:8).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었으나 인간의 형상을 취하사 이 땅에 오셨으며(사53:2), 세상의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사53:3), 명성을 버리시며(마2:23), 부귀(마8:29)와 지위(마13:56)을 버리시되 왕권까지 포기하셨다(요13:5).

이와 같은 그리스도를 모델로 하여 성도들은 겸손할 수 있으나(마11:29) 대부분 고난을 겪고(신8:3) 환난을 목도하며(대하12:5-12) 부단한 순종의 연습(눅10:39)를 통하여 겸손에 이른다. 이런 자는 자신의 죄(눅18:13,14)와 허물(눅15:17-21)을 깨달으며, 인간의 한계를 알고(왕상9:6-14), 여호와의 의와 거룩함을 깨닫게 된다(사6:1-8. 빌3:4-7).

그러나 교만한 자(바로-출5:2. 나아만-왕하5:11. 웃시아야-대하26:16. 히스기아-대하32:25. 하만-에3:5. 느부갓네살-단4:30. 벨사살-단5:23)는 하나님의 경고(시10:2. 23:6. 잠11:2. 16:18. 21:4. 28:25. 요일2:16)를 무시한다. 이러한 교만은 마귀로부터 시작되었으나(딤전3:6), 인간의 욕망(단5:20-23), 악한 생각(마7:21,22), 세상(요일2:10), 자기 기만(눅18:11,12), 권력(겔16:49,56) 등을 매개로 한다.

한편 교만한 자는 다툼의 원인이 되며(잠13:10). 마음이 높아지며(단5:20), 영적 타락을 유발하며(호7:.9.10), 발전이 없으며(잠26:12), 자기에게 도취되어(렘43:2), 하나님을 부인한다(시10:4), 마침내 멸망하고 만다(잠16:18).

오늘날 성도들은 앞서간 그리스도와 신앙의 선진들의 본을 받아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위의 것을 바라보는 원대한 신앙을 소유함으로 세상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겸손과 그것에 뒤이어 오는 참다운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주석성경>

 

겸손과 봉사

마23: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 지리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교만에 대한 경고와 겸손에 대한 축복을 동시에 담고 있는 구절, 성경은 높아짐과 관련하여 잠16: 18에서 경고하고 있다<큰성경>.

 

우리는 어떻게 함으로써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될 수 있는가?

여기서 자기를 낮춘다고 하는 것 그리고 남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겸손과 봉사를 의미하는 것이지 겸손과 혼동된 바보스러움과 노예적인 봉사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참된 겸손과 봉사의 가장 위대한 모범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발견 할 수 있다(마20:26-28).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놀라운 겸손과 타인에 대한 봉사는 굴욕적이고 노예적인 봉사 행위에 의하여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가 행사하는 최고의 권위와 완벽히 조화되었다. 즉 예수께서는 최고의 겸손과 봉사를 실천하신 후 그 누구보다도 높아 지셨던 것이다(빌2:6-11. 히12:2). 우리는 우리 주 예수를 본 받음으로써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될 수 있다. <강병도성경연구>

 

겸손과 용서에 대한 교훈!

주님은 겸손과 용서에 대한 교훈을 통해서 천국 시민의 자질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것은 크게 보아서 산상 수훈의 실천적 규례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주님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앞으로 남겨질 제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제자도(弟子道)를 재 무장시키기 위해서 이 같은 말씀을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처럼 서로의 권위를 인정하고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푸는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상호 결속을 다지고 나아가 주변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일에 솔선수범해야 했다<빅파워성경>.

 

본 장에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머무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제자들 간의 도덕적인 품성 함양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본 장의 주제는 겸손과 용서이다. 우리는 본 장을 통해서 천국에 합당한 자의 성품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푼 용서를 봄으로서, 우리가 이웃에게 베풀어야 할 용서가 어떤 것인지를 배울 수 있다<FMA성경연구>.

 

주님은 겸손과 용서에 대한 교훈을 통해서 천국 시민의 자질에 대해 말씀하셨다. 주님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남겨질 제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제자도를 재 무장시키기 위해서 이 같은 말 씀을 주셨다. 주님의 말씀처럼 서로의 권위를 인정하고 무조건적 관용을 베푸는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상호 결속을 다지고 나아가 주변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일에 솔선수범해야 한다<한영해설성경>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의 뜻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

욥22:29「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 개역성경은 본 문구의 주어를 욥으로 보고 간단하게 번역 했다. 그러나 원문상으로 ‘낮춤을 받거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휘스필’이 3인칭 복수라는 점과 전후 문맥의 연결이 다소 부자연스럽다는 점 때문에 번역상의 난점이 많은 문구이다(이하생략). <호크마>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해진 은혜로 겸손해진 까닭에 낮춤을 받드라도 하나님께서는 곧 욥을 높이실 것이라고 하였다.

 

시10:17「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겸손한(아나윔) : ‘고통을 당하다’는 뜻의 분사형으로서, 여기선 주변 환경에 의한 정신적 혹은 육체적 피압박 상태를 말한다<주석성경>

 

겸손한 자(아나임) : ‘자신을 복종시키다’의 명사형.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쳐서 복종시키는 자를 의미(창16:9) <큰성경>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다

시22:26「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찿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신다

시147:6「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드리시는 도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

시149:4「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잠3:34「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다

잠11:2「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교만한 자에게 결국 찿아 오는 것은 무엇인가?

교만한 자, 즉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 과신에 빠져 있는 자에게는 결국 치욕이 찿아 오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보다는 가식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도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말하였다. <강병도성경연구>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다

잠15:3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

잠16:19「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겸손과 하나님을 경외함

잠22: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가난하고 건강하지 못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를 통해, 하나님의 큰일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요9:1-3).

2)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서이다(신8:2).

3)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더욱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고후12:7-10).

4) 우리의 인격이 더욱 성숙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약1:2-4). <QA성경>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은 서로 동격의 관계가 있다. 즉 ‘겸손’은 참된 생활을 가능케 하는데, 그 종교 생활은 곧 ‘여호와를 경외함’이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함’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함, 의지와 복종, 죄의 확신 등 겸손과 관련된 모든 결과들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겸손하다고 하면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자도 진정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아니다. <강병도성경연구>

 

겸손(아나와) : ‘낮아지게 하다’, ‘누르다’에서 유래. 교만한 생각을 억제하며 스스로 낮추려는 모습을 의미한다<큰성경>

 

보응 : 선악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길흉화목의 갚음<빅파워성경>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는다

잠29:23「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게 되는 이유는 교만한 마음은 그를 패망의 길로 인도하지만 겸손은 그를 존귀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15:33. 16:18. 약4:6).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보다 자기를 지으셨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자라는 사실을 알고 겸손히 살아가야 한다. <강병도성경연구>

 

정직으로 겸손한 자를 판단

사11:4,5「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 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 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겸손한 자가 하나님을 인하여 기쁨이 더하리라

사29:19「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

사57:15「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미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미가 선지자가 살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이 같은 행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재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미가 선지자는 여러 반어적인 질문을 통해, 그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비난하면서 위선적이고 공허한 종교 의식은 하나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경고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각종 회생 동물이나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곧 여호와 신앙에 근거한 도덕적이고 청렴한 삶이라고 일깨워주었다(미6:8). <QA성경>

 

겸손한 자들아 하나님을 찿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습2:3「여호와의 규레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찿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그리스도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시다

슥9: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다

마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나의 멍에를 메고 : 수많은 사람들이 육신생활에 탐닉하기 위해 핑계를 대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오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양심에 참혹한 수고를 가진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평화 로운 기쁨을 약속하실 때에 그들이 자기 멍에를 메는 조건 밑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구조자가 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이렇다. 그리스도가 죄를 면죄해 준 것은 하나님을 모신 자들이 거리낌 없이 범죄하도록 한 목적이 아니라, 그의 은혜로 일으키신바 되었으니, 이제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성령 안에서 자유로운 그 만큼 육신의 방종을 제어하게 할 목적이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가 말씀 하신 ‘쉼’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다. ‘쉼을 얻으리니’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평탄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십자가 아래서 싸울 것을 면제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단이라는 의무 아래서 그들을 훈련시키며 그들을 멍에 아래 두신다는 의미이다<칼빈주석>.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 유대인 사회에서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훈육 관계를 가리킬 때 이 표 현을 관용적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예수는 우리에게 참 구원을 주지 못하는 세상 멍에(율법 멍에)를 내 어 버리라고 하시는데 이는 곧 예수 자신의 선하고 즐거운 멍에로 대치시켜 주시기 위함이다. 한편 당시 팔레스틴의 멍에는 혼자 메는 것이 아니라 꼭 짝이 되어 두 사람이 함께 메었는 바 예수께서 주신 멍에를 멘다는 것은 곧 예수와 함께 메는 것이 된다<주석성경>

 

내게 배우라 : 전능하신 분과의 교제에는 두려움이 있는 법이므로 자신이 가지신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제자들이 자기에게서 떠날까 봐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관대함을 증거하고 계신다 생각하는 자 들은 잘못이라고 본다. 오히려 주님은 우리가 자신을 모방하도록 하고 계신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고집 으로 어떤 어렵고 곤란한 그의 멍에로부터 도망하려 하기 때문이다. 조금 후에 주님은 자기의 멍에가 쉽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온유한 마음을 덧입고 그리스도를 닮지 않고야 어떻게 자진하여 말 없이 이 멍에에 순응할 수 있겠는가? 이 말씀의 의미는 분명 이렇다. 제자들이 각자의 십자가를 지도록 격려하시고 나서 그리스도께서는 어려움이 그들을 두렵게 할 경우에는 “내게 배우라”고 계속 말씀하시 고 계신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온유와 겸손에 익숙하게 된 자에게는 멍에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칼빈주석>.

 

쉼을 얻으리니 : 여기서의 쉼은 만족, 평안, 휴식, 즐거움을 총칭 하는 것으로서 이미 천국이 건설 중에 있으나(약4:26-29), 종말에 가서야 완성될 것이듯이 성도의 영혼의 쉼도 점점 확산되어 가는 전진적 쉼이다<주석성경>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이 말씀 역시 동일한 내용을 의미하고 있다. 육신이 불온한 경우 우리는 소란을 일으킨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거절하고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힘은 빠지고 이무성 과도 없이 지쳐버릴 것이다. 우리는 교황 숭배자들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순응하는 대신에 비참하게 스 스로를 괴롭히고 그 사나운 포학을 말없이 견디며 그 밑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칼빈 주석>.

 

마11:29,30 : 어째서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인가?

농부들은 두 마리의 소를 한데 엮어 일을 시키려고 멍에를 사용했다. 예수님의 멍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지워 주신 멍에로서, 또한 예수님과 함께 메는 멍에이다. 율법의 멍에는 우리에게 죄의식의 짐을 지워 주기 때문에 무거운 멍에가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는 복음의 멍에로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에 그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다. <QA성경>.

 

예수님의 겸손함

마21: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 끼를 탓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이사야62:11절과 스가랴9:9절의 합친 것으로 주로 70인 역에 의한다<IVF주석>.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생활을 위한 미덕인 겸손

행20: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엡4: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본 절은 부르심을 입은 성도가 지녀야 할 구체적인 덕목들을 제시한다.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상세내용 생략) <호크마>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덕목들이다. ‘온유, 오래 참음’(상세내용 생략) <주석성경>

 

온유(溫柔) :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움<빅파워성경>.

하나님에 대해서는 기쁘게 순복하며 사람에 대해서는 남의 약점까지도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호크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생활을 위한 첫 번째 미덕인 겸손에 대해 설명하라!

겸손(타페이노프로수네)은 자신의 부족과 무가치함을 알고 자신을 작고 낮게 여기는 마음자세로서 기독교 신앙의 모든 미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런데 고대 헬라 사회에서 겸손이란 남 앞에서 굽실굽실 하거나 노예 같고 비열한 마음 자세를 가리키는 저속한 용어와 함께 상용되어 기독교적인 사고처럼 권장할 만한 고상한 미덕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낮아지신 모범을 통해 이 용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독특하고 장려할 만한 미덕으로 전환되었다(마20:26-28. 빌2:5-8). 겸손은 자기 극대화, 자기 합리하, 자기애라는 안경을 벗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바라볼 때 가능하다<강병도성경연구>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김

빌2: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허영(虛榮) : ’케노돜시안’. 문자적으로 ‘알맹이 없는 자랑’을 의미하며, 공허하고, 세상적인 마음을 표시한다<호크마>

‘헛된 영광’, ‘자기 기만’, 자랑하는 욕망으로 남을 속이려 하는 공허한 모습<큰성경>.

 

과장된 겸손함

골2:18「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천사 숭배(함) : 하나님께 대한 천사들의 숭배를 흉내 내고자 했음을 의미한다<빅파워성경>.

골로새 교회 내에 침입한 이단 중의 한 무리이다. 이들은 사람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직접 경배 드리는 것은 교만하므로 그보다 못한 천사에게 경배해야 하며, 그것이 곧 겸손의 행위라고 주장하였다<호크마>

 

골2:18,19 : 골로새 교회 내에 침입한 이단 중에 천사 숭배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람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직접 경배 드리는 것은 교만하므로 그보다 못한 천사에게 경배해야 하며 그것이 곧 겸손의 행위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복음과는 상치되는 것이다<주석성경>

거짓 교사들은 인간들이 직접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교만한 일이므로, 그리스도의 중보자 역할을 부인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얻으며 성장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빅파워성경>

 

위선적인 겸손

골2:23「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자의적 숭배’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생각대로 섬기는 것을 가리키고, ‘겸손’은 위선적인 겸손을 가리키며, ‘몸을 괴롭게 하는데’는 금욕주의를 의미한다(이하 생략) <호크마>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겸손 하라

골3:12-14「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 처럼 :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는 새 사람으로 생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새 생활은 용서와 사랑과 감사와 찬양으로 이루어진다<한영해설성경>

’하나님의 택하신 자’와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는 동격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롬16:13. 고전1:26,26. 벧전1;1),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을 지칭한다(시33:12)(이하생략) <호크마>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약4: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은혜(恩惠) : 영적인 것은 물론 삶에 소용이 되는 것도 포함된다<주석성경>

 

약4:6-10 : 인생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치료법이 상술되어 있다. 그것은 겸손해 지는 것. 마귀를 대적하는 것.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앞에서 언급된 지혜로운 자가 취하는 행동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점은 인간적인 지혜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지혜의 부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주석성경>

 

참된 겸손

약4: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주석성경>

 

주 앞에서 낮추라 :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교만한 야망을 포기한다는 판단을 내리실 때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서 우리를 일으킬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가 시기, 질투하는 것은 우리가 높아지고자 하며 강한 사람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또 있을 수 없다. 낮은 자들, 특별히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들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은 하나님만의 뜻이다. 너무 높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을 통감하고 스스로 겸손해질 정도로 비천하게 되어야 마땅하다. 여기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나무는 그 뿌리를 깊게 벋어야 높게 자랄 수 있듯이 겸손에 영혼의 뿌리를 뻗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높음이 자신의 패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좋은 말을 남겼다<칼빈주석>.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라

벧전3: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3:8-17 : 이 세상에서 성도는 형제와 박해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첫째, 성도들끼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성도의 표지(標識)이며 성도의 생활 원리인 것이다(요13:34,35. 고전12:31-14:1).

둘째, 반대자와 박해자에 대해서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원수를 위해서 ‘도리어 복을 빌라’는 것이다(마6:43-48. 롬12:14-21). 사랑과 인내는 반대자에 대한 최선의 대처 방법이다.

셋째, 자기 스스로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넷째, 어느 때,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께서 살펴보고 계심을 기억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고난을 이미 다 알고 계시며, 의인의 간구에 응답하시고 악인에 대하여는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다섯째,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참으로 복된 일임을 기억하는 것이다(마5:10). 그러면 고난을 인해 결코 두려워하거나 소동치 않을 수 있게 된다.

여섯째, 고난 당할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主)로 모셔서 거룩함(구별된)을 나타내는 일이다.

일곱째, 고난을 당하면서도 선한 양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비방하는 불신자들의 입을 막게 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FMA연구>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 그리스도인들은 상대방의 악한 행위를 되받거나 저주해서는 안되며, 도리어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회개의 선물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마5:44. 롬12:12:17). 여기서 우리는 원수에 대한 축복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자만이 행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주석성경>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 이것은 벧전2:21절의 반복된 구절로서, 거기에서는 불공평한 대우에 대하여 순복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데 반해, 본 절에서는 악을 선으로 갚는 능동적인 행동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을 주신 것같이 성도들도 우리에게 범죄한 자들에게 선으로 갚아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를 부르심의 본질인 것이다<큰성경>.

 

벧전5:5-7 : 겸손과 신뢰에의 권면.

다음에 베드로는 젊은 자들에게 말씀한다. 연령으로 젊은 자만 아니고 신앙과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이 젊다는 것을 가리킨다. <IVF>

 

젊은 자들에게 주는 교훈.

‘젊은 자’들이란 글자 그대로 교회의 젊은이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영적 지도자를 따르는 교회의 모든 성도를 뜻할 수도 있다(히13: 17).

교훈의 첫째는, ‘순복 하라’는 것이다. 신앙은 곧 순종인 것이며, 성도의 생활이란 ‘순종을 배워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겸손 하라’는 것이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표현은 모든 행동이 겸손한 정신으로 철저하게 조절되는 것을 가리킨다. ‘순복하고 겸손 하라’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그를 높이신다는 사실로 더욱 무게 있게 강조되고 있다.

셋째는 순종과 겸손한 생활 가운데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권고(돌보심)하시기 때문이다<FMA연구>

 

벧전5:5-11 : 이상과 같은 몇 가지 권고(겸손, 검소함, 자발성)를 다시 준 다음, 베드로는 악(악마)에 맞서 싸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악마는 온갖 수단을 다 써 믿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믿음을 꺾어 버리려고 애쓴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공동체들과의 연대는 믿음이 한결같도록 해주는 뒷받침과 자극이 된다<공동번역성경>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 하라 : 우리는 항상 베드로가 명한 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이 겸손을 요구하는 한 우리의 형제에게 보다 관대하고 친절하게 대함으로써 그들에게 복종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사람들에게 오만하고 반항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모든 경건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권면한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더욱 두려움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종종 ‘손’이라는 말이 하나님께 적용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귀 절의 전후 관계에서 이 뜻을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공통적으로 우리의 겸손함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나의 겸손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더욱 거만해지려고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여기에 대비해서 베드로는 모든 겸손한 자들이 훨씬 탁월한 것을 약속하고 그들의 교만을 겸손으로 대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칼빈주석>

 

겸손 하라 : 겸손 하라는 말은 단순히 ‘자기를 낮추는 일뿐 만 아니고 ‘자기를 사람들로부터 미움 받는 그대로 놔두라’는 굴종을 감수하라는 것도 된다<IVF>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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