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신약 성경에 나타난 구원

열려라 에바다 2024. 3. 20. 08:12

신약 성경에 나타난 구원

마태복음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예수님이 혈루증 앓는 여인에게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찿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난의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마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9: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10:22「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16: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찿으리라」

 

마19:24-26 ☞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마24:22「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구원의 진리!

마19:21「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 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재물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으려면 우리가 가난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부자 청년의 경우 에는 재물이 영생을 얻는데 걸림돌이 되기에, 그것을 극복하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다른 사람의 경우 엔 명예나 권세, 혹은 지식이나 평판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QA성경>.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청년에게 무엇을 지적하여 말씀하셨는가?

여전히 예수의 말씀에 대한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구원의 진리를 오해한 채 엉뚱한 대답만 연발하는 청년을 향하여 예수는 그의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하여 말씀하셨다. 사실 청년은 많은 재물을 소유한 부자였는데 계명을 지킨다는 소극적 선행을 하기에 급급했지 자기의 재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적극적 선행은 생각조차 못 해보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재물에 집착하여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려는 어리석은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마6:24). 모름지기 영생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신과 자신의 소유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 후 예수를 따라가야 한다(마16:24). <강병도성경연구>

 

버린 만큼 얻는 원리.

우리에게 천국 소망이 100이면 세상 소망은 전혀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 소망 전혀 없으면 천국 소망 이100이 됩니다. 결국 세상에서 버린 만큼 천국에서 큰 자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천국 소망 50이면 세상 소망도 50이 됩니다. 반대로 세상 소망이 절반 있으면 천국 소망도 절 반뿐입니다. 결국 천국과 세상을 걸치고 있으면 환난 날에 뽑히게 됩니다.

그러나 천국 소망이 하나도 없으면 땅의 소망은 100이 됩니다. 반대로 땅의 소망이 전부이니 천국 소 망은 전혀 없게 됩니다. 결국 이 사람은 부자 청년처럼 영생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상 원리는 심은 대로 거두고(갈6:7,8),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마16:27).

100배의 제자가 되려면 눅14:33절에서 모든 소유를 다 버리라! 그리고 마13:44절에서 모든 소유를 다 팔아라! 주님이 가신 길은(마8:20)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제자의 길(빌3:7,8)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 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해야 합니다.

적용 ☞ 우리 모두 보이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맙시다.

 

구원의 원리!

마19:25,26「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 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물질적 부요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겨졌던 시대에,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로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크게 놀랐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이 물음에 대해 예수님은 명쾌하게 답변하셨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는 구원의 교리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말로서, 구원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임을 선언하신 말씀이다. 요컨대 구원은 사람의 노력이나 선행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은 ‘선물’이고 따라서 구원에 관한 아무도 자신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QA성경>.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원리는 무엇인가?

예수의 제자들은 유대인의 통념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놀란 나머지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즉 만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부자가 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도대체 어느 누구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 라고 그들은 질문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라는 구원의 핵심적인 원리를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구원의 근거가 사람의 선행이나 믿음에 있지 않고 오직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있다는 의미이다(엡2:8-10). 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사람이 보기에 전혀 구원받기에 불가능한 자라도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유유히 통과하여 벗어나는 것처럼 기적적으로 구원 받게 되는 것이다(눅23:43).

<강병도성경연구>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자 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마20: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 씩 받은 지라」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 이는 소위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 받았다고 자처하던 유대인들의 교만을 일컫는 말로 이해 될 수 있다. 즉 그들이 ‘더 받을 줄’ 알았다는 말은 자신이 하나 님의 선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은 줄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영적 교만이자 지독한 오해였음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살펴 보았다(3:9). 어디까지나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 고자 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또한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만이 누릴 수 있 다(6:33). 그럼에도 우리 중에 내가 잘 나서, 아니면 내가 교회에 봉사를 많이 하니까 당연히 구원을 누 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없는가?(히13:2,3. 성도의 봉사와 상급). <주석성경>

 

마가복음

구원은 싹입니다. 싹이 이삭이 되고 열매가 됩니다. 열매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구원은 싹이다!

막4:26-29「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막16:15,16「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누가복음

사도 누가는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의 인용하여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다’라고 기록하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씨인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듣는 우리의 마음에서 마귀가 구원을 얻지 못하게 말씀을 빼앗는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회당 장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여행 중 구원 받는 자가 적음에 대하여 예수님께 묻는 자에게 구원을 얻기 위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리장 삭개오를 만나 삭개오의 집에 가셔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찿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며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뿔!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입니다.

눅1:67-72「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어떻게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나?

성령은, 예수님 승천 이후 오순절 때에 완전히 강림하셔서,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영원토록 내주하신다(행2:1-4). 그 이전의 성령의 감동이나 충만함은 필요한 순간에 특별한 자에게 일시적으로 임하신 성령으로서, 곧 성령이 그 사람의 전인격을 온전히 주장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성령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사가랴는 구원의 뿔 곧 메시야를 통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고, 메시야의 선구자가 되어 그의 길을 준비할 세례 요한에 대하여 예언했다. <QA성경>.

 

구원을 얻지 못하게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습니다.

눅8:12「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은 것이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구원을 얻으리라!

눅8:50「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구원을 얻기 위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눅13:23,24「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구원을 받는다.

눅19:9,10「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찿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구원에 관련하여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고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며, 예수님에게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다. 예수님이 구원의 문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고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

요3: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다!

요4: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요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표준새번역성경 :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 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

현대인의성경 :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 으므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간 것이다.’

공동번역성경 :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영생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구원을 얻기 위해 오직 예수만을 의지 할 때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그분께 속한 자들은 계속 살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생명은 결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QA성경>.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 : 예수께서 자신의 신성을 강조하시기 위해 19,24절에 이어 세 번째로 이 표현을 사용하심<호크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 :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청하는 자이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

1) 말씀 경청 ⇨ 2) 믿음 ⇨ 3) 영생이 된다 (롬10:13-17) <주석성경>

 

듣고 : 이 말은 귀로 듣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고, 마음으로 시인하고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마11:15. 요8:47. 행3:23) <한영해설성경>

 

영생을 얻었고 : 성자 되신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성부 하나님을 믿는 자는 결과적으로 얻 게 되는 것이 영생이다. 한편, 이어 나오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함과 생명으로의 옮김은 이 영생의 실질 적 내용에 대한 부가적 설명이다. 또한 본문에서 ‘얻었고’가 현재형으로 쓰인 것은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는 순간부터 영생을 얻게 됨을 보여준다 (요1:4. 3:15. 요일3:18) <큰성경>.

‘얻었고’라는 말(에케이)은 현재 시제이므로, ‘가지고 있으며’라고 번역해야 한다<주석성경>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예수께서는 구원을 시각적으로 정의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롬 7:24, 8:2절을 참조해 볼 때 더욱 분명해 진다. ‘옮겼느니라’(메타 베베캔)은 현재 완료 시제로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상태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영생 또는 구원은 단회적으로 받는 것이 지만 그 결과는 지속적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즉 한 번 구원을 받은 자는 그 구원을 상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주석성경>

 

옳겼느니라 : 외형적인 변화가 아닌 본질적인 변화<큰성경>.

(메타베베켄). ‘메타바이노’(옮기다. 건너가다)의 현재 완료 시제로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상태’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호크마>

 

예수님이 구원의 문입니다.

요10: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다!

요12;47「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사도행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행2:16「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 일렀으되」

행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화목 된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충실함으로 모든 사람을 죄에서 자유롭게 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믿음의 응답만 있으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구체화할 대사면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구원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넘어왔다. 믿음 그 자체에 무슨 큰 값어치나 공적이 있어서 믿음의 대가로 구원이 당연히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구원이 거저 주어짐을 강하게 암시한다 구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 인간은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 조차도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본 절에서 시사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며 그 주시는 것 외에 그 어떠한 것도 더할 수 없다. 마음으로 믿어 의를 이루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 또 이사야 선지자가 남은 자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으시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롬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게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공동번역성경 :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의!

‘의’는 조직 신학적으로 공유적 속성에 속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관련하여 언급한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의’를 ‘구원’과 항상 연관지어 이야기한다. 즉 ‘의’는 구원의 조건이 되며, 구원은 의롭게 됨으로써 가능하다. 의롭게 되는 방편으로 펠라기안주의자들은 도덕적 율법의 실천을 강조하고, 카톨릭 교회는 은혜를 따라 실천하는 행위를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사람에게 전가된다고 가르친다. 여기에는 사람의 어떤 행위도 배제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아야 구원 받은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언약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언약에 의해서였다<호크마>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본성으로 완전무결한 의이다. 그런데 이제 그 의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서 부패했던 인간을 새롭게 하는 힘으로 우리에게 작용한다. 따라서 이 귀 절은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 앞 귀 절에 대한 설명이며 확정이다. 한편 나타난다는 말은 곧 계시되었다는 말이다<주석성경>.

 

믿음으로 믿음에 : 이 귀 절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어 왔다. 그 중 복음을 받는 수동적 자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능동적 단계로 발전해 나간다고 하는 견해와 단순히 신앙을 갖는 단계에서 하나님께 실천적인 순종을 하게 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됨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어거스틴의 견해가 유력하다<주석성경>.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 혹자는 본 구절을 신앙의 성장 과정에 대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전후 문맥은 신앙의 성장과는 무관하다. 단지 믿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NIV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공동번역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라고 이를 옮겼다. 즉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드러나고 역사하게 된다<호크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본 구절은 합2:4을 인용한 것인데,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본문의 ‘믿음으로’가 하박국 2:4절의 마소라 본문(MT)에서는 ‘그의 믿음으로’라고 하여 ‘그의’라는 소유 대명사가 있다. 대부분의 번역본들이 이를 따라 번역하였다(이하 생략) <호크마>

합2:4절의 인용인데, 율법이나 선행, 재물이나 지식이 아니라 오직 믿음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큰성경>.

하박국 2:4절의 인용. 하나님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오직 의인만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의인은 곧 믿는 자요, 믿음 만으로만 사는 자이다. 또 믿음이 없는 삶은 영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무가치하고 덧 없는 것이다(전1:1,2). 따라서 이 말은 믿음이 없으면 참 생명이 불가능하다는 영적 진리를 배경에 깔고 있다<주석성경>.

 

복음의 주제를 간단하게 한 귀 절로 말하라!

복음의 주제는 본 절 하 반절에 나타나는 말씀, 즉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이 주제는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 이미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그는 합2:4절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였다. 이는 구원의 조건이 다름 아닌 ‘믿음’이라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다. 만약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면 본질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들은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3:2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강병도성경연구>

 

롬3:21-26 : 지나침과 탈선의 원천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힘은 구약성서(율법과 예언서)가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계획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와 충실함으로 모든 사람을 죄에서 자유롭게 하신다. 이는 하느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믿음의 응답만 있으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구체화할 대사면이다<공동번역성경>

 

롬3:21-31 : 바울이 말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란 하나님께서 화목 제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이다<빅파워성경>.

롬3: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 바울은 1:17절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암시적으로 말한 바 있다. 그는 이 ‘믿음’의 구체적인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한정시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편에서 시작한 믿음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영접하는 주관적인 고백에 의하여 믿는 자들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롭다’라고 선언하는 법정적 판결은 ‘믿음을 통하여’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며, 또한 신앙은 하나님의 사역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믿는 자들의 삶 속에서는 능동적인 순종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는 새로운 삶의 운동력이 되며 또한 새로운 삶을 주관하는 원리가 된다(이하생략) <호크마>

 

믿음으로 말미암아 : 여기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도구, 방법 등을 나타내는 ‘디아’라는 전치사이다. 따라서 믿음 그 자체에 무슨 큰 값어치나 공적이 있어서 믿음의 대가로 구원이 당연히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구원이 거저 주어짐을 강하게 암시한다<주석성경>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 본 절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가 미친다’라고 진술하지 않고 ‘믿는 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구절이 갈2:16절에도 나타나는데 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이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표현하였다(1:17).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부패한 인류는 스스로 믿음을 가질 만한 능력도 가지지 못했고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도 없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먼저 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 비로소 믿음을 얻게 된다. 인간은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 조차도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본 절에서 시사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며 그 주시는 것 외에 그 어떠한 것도 더할 수 없다. 특히 ‘믿는 자’를 현재 분사형으로 기록한 것은 현재적인 믿음의 구체적인 것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믿음은 과거의 것으로 유효한 것도 아니며 미래의 예정으로 유효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재 속에서 계속 믿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호크마>

 

바울의 인간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라!

바울은 본 절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밝히고 있다(갈3:22). 이와 같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의 장벽이 존재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장벽을 없애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은 바울의 기본적인 입장이며 복음주의 신학의 기본 원리이다(시53:3. 요일1:8). 그러나 이와 달리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다. 아직도 인간에게는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는 품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 선한 자질을 부단히 나타냄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만물이 아직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되는 자연 신학의 발상인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특별 계시에 모순되는 비 성경적인 이론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과소 평가하는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위험스러운 자유주의적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도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릇된 교리를 경계하며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고후11:4. 골2:8-23) <강병도성경연구>

 

롬3:24「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구속 : 노예 시장에서 노에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를 해방시킨다는 뜻이 들어있다<한영해설성경>

속전을 받고 해방시켜 줌. 놓아줌의 뜻.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를 해방시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으로 속죄, 화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큰성경>

’아포루트로시스’는 ‘루트론’, 즉 정당한 몸값을 치르고 노예를 자유인으로 풀어줄 때 사용된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구속은 분명 거저 얻은 것이지 자기가 무엇을 주고 획득한 것이 아니다<주석성경>

 

은혜로 값 없이 : ‘값 없이’는 선물의 의미이며, 선물은 ‘은혜’의 표시이다. 곧 불의한 자가 의롭게 됨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의함이다<호크마>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 헬라어(디카이우메노이)는 현재 분사 수동태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의롭게 되는 것의 수동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값없이’(도레안)라는 단어에 의하여 제한을 받고 있는 바,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한편 본 절의 분사적 의미는 22절에 기록된 분사 ‘투스 피스튜온타스’(믿는 자들을)와 연결되어 있다. 후자는 ‘믿는 자’라는 능동적 의미를 시사한 반면 전자는 ‘의롭다 함을 받은 자’라는 수동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바울은 수동형과 능동형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신의 어떠한 행위로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와, 그에 대한 인간의 제한적 의지를 대조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엡1:7) 구원의 영광을 부각시키고 있다<호크마>

 

롬3: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현대인의성경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으시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참으심으로 그냥 지나쳐왔던 과거의 모든 죄를,

 

화목 제물은 무엇인가?

예배자가 하나님과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드리는 구약 시대의 희생 제물을 말한다. 예배자는 이 화목제물을 통해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자신과 우리 죄인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는 한 화목 제물을 세우셨다. 그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의 피를 흘리셨을 때,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비로소 화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QA성경>.

 

화목제물이란 말을 구약의 제사와 관련시켜 설명하라!

화목제물로 번역된 헬라어(힐라스테리온)은 속죄소(출25;17-22. 히9:5) 또는 속죄물(요일2:2, 4:10)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삼으셨음을 말하고 있는 본 절에서 후자 곧 ‘속죄 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레16:14-16절에 보면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각각 속죄소의 주변과 그 위에 뿌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속하였다. 이와 같이 구약의 제사 의식에서 죄를 속하기 위해 동물의 피를 뿌렸듯이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사함 받기 위해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죄 물이 드려져야 했다(히9:13-2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바로 그 속죄 물이 되게 하셨다(빌2:8. 벧전2:21-25).

자신의 피로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께서는 구원 받은 우리를 향해 이제는 우리가 희생과 사랑을 보일 때 임을 깨우치신다(요일3:16-19).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자라면 그 요구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강병도성경연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물로 세우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죄인들을 즉시 징벌하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으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다(엡2:16. 골1:20).

이상에서 우리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과 의로우심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요일4:8) 우리 죄를 속하려 예수를 속죄 물로 삼으셨고, 동시에 의로우시기 때문에(1:17. 10:3)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허용하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매우 자주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 즉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징벌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 같은 속성을 올바로 이해하여 지나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죄를 정당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잠3:12. 히12:5,8) <강병도성경연구>

 

간과하심 : 원어 상으로 ‘죄에 대한 형벌의 면제’를 뜻함. 여기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호크마>

과거에 지은 죄와 허물을 못 본체 하여 정죄하지 않음<큰성경>

죄로 인한 형벌의 면제를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발견할 수 있다<주석성경>

 

(그의)피 :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레17:11).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피를 흘리심은 자기 생명을 속전으로 바쳐 희생시키셨음을 의미한다<호크마>

 

화목제물(和睦祭物) :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풀어드리는 희생을 가리킨다. 이러한 희생 없이는 누구나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빅파워성경>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힐라스테리온)는 이 단어의 번역에 따라 견해 차이가 생긴다. 1) 속제 제물을 의미한다는 견해. 2) 화목제물(상세내용 생략) <호크마>

헬라어의 ‘힐라스테리온’.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풀어드리는 희생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이러한 희생이 없이는 누구나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한영해설성경>

 

세우셨으니 : 앞에(프로)와 둔다(티테미)의 합성어로서 ‘계획을 세우다’. ‘공식적으로 표시하다’의 뜻.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을 위한 화목제물로 만천하에 드러내신 것을 의미함<호크마>

 

롬3:25-27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은 정의가 하나님의 넘쳐 흐르는 사랑에서 출발하였음을 감격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의 권위로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를 원하셔서 우리가 그 의를 얻을 수 있는 길까지 마련해 주셨다. 더우기 그 방법은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를 화목제물로 제공한 것이다. 구약에서 보면 화목제물은 인간이 준비해서 바치는 것이었으나 여기 예수라는 화목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당신과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무신 속전으로 사용하셨다<주석성경>

 

롬3:26「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동시에, 믿는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심<한영해설성경>

 

롬3: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표준새번역성경 : 그렇다면, 사람이 자랑 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어떠한 법으로 의롭게 됩니까? 행위의 법으로 됩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으로 됩니다.

현대인의성경 :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 율법이나 행위로 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그러니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되찿게 되었습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랑할 데가 어디뇨 :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다. 그러나 바울은 누구든 오직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큰성경>.

 

롬3:27-31 : 바울로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자부하는 자만심을 물리친다. 구원은 인간이 기울인 노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하여 실현된 하느님의 선물이다. 율법이 이제야 자기 참된 기능을 드러낸다. 즉 율법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그래서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무상의(공으로 받는)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공동번역성경>

 

롬3: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공동번역성경 :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 편에서의 칭의이고 이를 얻는 것은 인간 편에서의 득의이다. 의롭게 하심은 ‘의롭게 만’이 아니라 ‘의롭다고 간주해 주는 것’이다. 즉 칭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지위를 밝히는 것이다<주석성경>

 

의롭다 하심 : 인간은 원래 의롭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 이것을 신학에서 ‘칭의’라고 한다<큰성경>.

 

진노하심 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롬5:9,10「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 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새 생명(生命)

롬6;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표준새번역성경 :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힌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속성들이 집약된 말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따라 모든 일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근거가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은 1) 만세 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며, 2) 인류와의 참된 관계의 회복을 통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3)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성되었다<주석성경>

 

아버지의 영광을 부활과 관련시켜 설명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되어 진 일이다. 여기서 영광(독사)은 단순히 내적이고 잠정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타나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자 피조물을 완성시키는 하나님의 전능과 완전성(창18:1. 32:7. 19:26. 눅1;37)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영광은 종말론적인 견지에서 볼 때 만민을 부활시켜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예정이 성취됨으로써 밝히 드러나게 된다(요5:28,29. 행24:15. 계20:13).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광의 몸’(빌3:21)으로 변화되어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된다는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살전4:14. 벧전1:13) <강병도성경연구>

 

롬6:4,5 :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신 것처럼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5절. 고전15:22).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처럼 미래적인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은 현재의 삶에 있어서도 주님의 부활의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골3:1,3).

하지만 이 부활의 능력을 현재의 삶에서 발휘하지 못하고 사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다고 하지만 금요일과 부활한 날 사이에 머무르고 만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훌륭한 분이었지만 아깝게 고난을 당하다 목숨을 잃은 성인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영광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출애굽을 하여 자유를 얻었으나 약속의 땅이며 축복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다(민14:26-35) <강병도성경연구>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

롬8:24,25「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릴지니라」

 

남은 자만 구원을 얻는다

롬9:27「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인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롬10:9,10「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인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다

롬11;11-14「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 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 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롬11:25,27「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 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롬13: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갤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고린도서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신다.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알 수 없다. 말씀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환난 받는 것은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고전1:18-21「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

고전1: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구속(救贖) : 노예 시장에서 유래한 말로 누군가가 대신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해방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죄의 종 되었던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큰성경>

이 말은 원래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사서 그를 다시 풀어 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해방시켰다. <빅파워성경>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3: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다

고전5:5「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알 수 없다

고전7:16「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15:2「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다

고후1:6「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다

고후2:15「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6: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다

고후7:10「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에베소서

우리를 복 주시고 선택하신 하나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印)치심을 받았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를 복 주시고 선택하신 하나님.

엡1: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본 장 가운데 나오는 이 말은 성도들에게 일어난 모든 구원의 사건들이 그리스도가 원인이 되고 그 분으로 말미암는, 즉 그들에게 베프신 모든 ‘신령한 복’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다른 서신서에서 사용된 이 표현은 신자와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영적 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2:5. 롬6:3-6).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을 그의 서신서 전체에서 164회, 본서신서에서 30회 그리고 본 장3-11절 사이에서 무려 11회나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야말로 신앙 생활의 근간이며 핵심이라 볼 수 있다<강병도성경연구>

 

신령한 복이란 어떤 축복인가?

이 복은 세상적이거나 인간적인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적인 축복이다. 자칫 우리는 성경에 언급된 '신령하다’는 말에서 도교적인 신선(神仙)이나 기복적인 샤머니즘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본 절에 언급된 이 복은 인위적인 일시적인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베푸신 은혜로운 축복이며 영생을 약속하는 복이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는 물질적인 축복만을 그 전부로 알고 이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성경적인 참된 축복의 의미를 오해한 결과이다(시2:12. 133:3. 잠3:13. 8:13. 16:20. 약1:12. 벧전3:14. 4:14) <강병도성경연구>

 

엡1:3-14 : 바울은 믿는 자들의 모든 영적인 축복에 대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바울의 찬양은 성부의 예정, 성자의 구속, 성령의 보증의 순서로 되어 있다<빅파워성경>.

바울로는 구약성서에 흔히 나오는 바와 같이 ‘축복’의 형태로 찬미가를 펼친다. 찬미는 ‘구원 행위’ 또는 ‘신비의 계시’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창조 활동과 구원 활동의 주체이자 원천이시다.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과 세계 안에서 실현하는 모든 일을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다. 즉 선택하고 자유롭게 하고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결합시키고 약속한 유산을 넘겨 주고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공동번역성경>

 

엡1:4「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표준새번격성경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셨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축복을 주도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을 기술한다<주석성경>

예정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예정의 기초는 그리스도이며, 예정의 목적은 성도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며, 예정과 결과는 신자들의 양자 됨이다. 예정의 시기는 창세이전이며, 예정의 범위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우리 믿는 자들이다<빅파워성경>.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택하사’의 헬라어 ‘엨셀렠사토’는 ‘선택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클레고’의 단순과거 중간태이다. 이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택하셨음을 시사한다. 즉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택이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역이며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하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됨을 시사한다. 한편 창세 전에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영원 전에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공적이나 일시적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주권적 은혜임을 시사하며 동시에 ‘창세 전’에는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나타낸다(골1:15-17) <호크마>

 

창세(創世) : 세상을 맨 처음으로 만듬<빅파워. 한영해설성경>.

택하사(엨셀렠사토) : 선택의 주체는 성부이시며, 그 대상은 예정된 무리들로서 그리스도께서 그 기초가 되신다. 그리고 그 성격은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뽑아낸다는 것이며 그 시기는 영원 전이다. 이러한 선택은 우리의 구원이 우연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참된 겸손과 나 같은 자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깨닫고 거룩한 삶의 동기를 마련할 수 있다(벧전1:19,20. 요6:39. 17:2) <주석성경>

‘에클레고’(선택하다)의 제1과거 중간태로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스스로를 위하여 인간들을 영원히 택하셨음을 가리킨다<호크마>

이는 하나님의 선택 목적이 스스로를 위함에 있음을 강조한다<주석성경>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선택 받은 자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본 절의 ‘흠이 없게’라는 말은 구약의 성도들이 성전에서 바치던 희생 제물과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짐승 가운데는 어디 한 군데라도 결점이 발견될 경우 그 짐승은 제물로서의 가치가 상실되고 말았다(레22:20. 민6:14. 신15:21).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선택 받은 성도들이 온전한 제물처럼 부정과 불법에서 떠나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모든 언어와 생활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수 있는 거룩한 것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빌4:18.히9:23)<강병도성경연구>

 

엡1:4,5 :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선택하셨다면,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선택과 예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고 있다는 진리를 가르친다(롬9:154,16. 엡2:8). 반면, 회개와 믿음은 사람 편에서 응답해야 할 우리들의 일이다. 하나님은 크신 은혜와 긍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 응답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이른바 ‘자유 의지’로서 복음의 초대에 응하거나 혹은 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롬10:1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절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초대에 믿음으로 응할 일이다<QA성경>.

 

엡1: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현대인의성경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자기 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

공동번역성경 :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나?

바울 시대의 로마에서는 노예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어떤 노예사 주인의 은총을 받아 주인의 가족으로 입양되면, 그 노예는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처럼 본래 사탄의 노예였던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QA성경>.

 

뜻(델레마토스) : 문자적으로 ‘옳고, 의롭고, 거룩하며,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함. 곧 독생자를 보내시어 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킨다<호크마>

 

예정(豫定) : 앞으로 할 일 따위를 미리 정함<빅파워성경>.

예정하사 : ‘프로오리사스’의 문자적 의미는 ‘앞서서 표시했다’, ‘미리 정했다’이다. 앞 절에서 언급된 ‘엨셀렠사토’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소수를 선택했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에 본 단어는 ‘프로’(…앞에)라는 전치사가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세 전에’라는 시간의 개념이 강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직접 시작하셨고, 선택한 자들을 아들로 삼으려고 결정하셨음을 강조한다<호크마>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성부의 사역을 보여 주는 이 양자 됨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롬8:15. 갈4:5).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 받는 것(롬8:17).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장 받는 것(롬8:29)이다<주석성경>

 

예정이란 말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예정하다’(프로오리조)는 말에는 ‘미리 표시하다’ 혹은 ‘미리 결정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것은 전체 중에서 일부분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뽑으셨다는 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자의 수효를 제한하셨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한편 하나님이 미리 정하심은 구원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개개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예정되어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예정의 결과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기계적이거나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성도들은 많은 사람 가운데 보잘 것 없는 ‘나’를 택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4:1. 빌2:27. 골1:10. 살전2:12. 살후1:11) <강병도성경연구>

 

엡1: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현대인의성경 : 이것은 우리가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라는 표현(12절과 14절)은 인생의 최종 의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찬양하는 것은 의식적인 행위다. 즉 인간이 하느님을 유일한 절대자로 선언하면서 모든 피조물이 상대적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찬양을 받으실 수 있다<공동번역성경>

 

엡1:6,12 : 예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몇몇을 뽑아 우리들을 당신의 백성의 반열에 두신 것은 그의 은총과 사랑을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특별히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게 할 목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시100:3. 113:3. 사43:21). 더욱이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는 그 보좌 앞에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찬양하도록 되어 있다(계5:12,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우리를 나태하게 만들기 보다는 우리의 구원을 더욱 값지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당신의 목적에 합한 삶을 살게 한다<강병도성경연구>

 

엡1: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표준새번격성경 :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서, 그분의 피로 구속 곧 죄의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속죄 사역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의 밀접한 관계는 계속 유지되지만 이곳에서는 그 강조점이 하늘에서 땅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성부에서 성자로 바뀐다<주석성경>

 

구속(救贖) : 원 뜻은 ‘값을 치름으로써 구원함’. 특히 노예를 해방할 때 사용되었던 용어로 예수님께서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해방하였음을 의미한다<큰성경>.

원래 속전을 지불함으로써 노예를 해방시킴을 의미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됨. 곧 구원을 가리킨다<빅파워. 한영해설성경>.

몸값을 지불한 결과로서의 구원을 의미한다. 이 구속으로 우리는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고(요8:30. 롬7:14. 고전7:23. 갈3:13), 참된 자유를 회복한다(요8:36. 갈5:1). 이러한 사실은 피 흘리신 주님의 사역의 유효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보다 능력 있는 성도의 삶을 위해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벧전1:15-19) <주석성경>

 

구속의 구약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구약의 모세 율법에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 되었던 토지나 사람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조항이 규정되어 있었다(레25:25-27. 47-49. 민18:15). 그런데 그 토지나 사람을 상환(償還)받으려면 속전(贖錢)이라 부르는 일정한 금액을 소유주에게 지불해야 했다(출30:16. 민3:48,49. 35:31).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죄의 노예였던 우리들을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써 그 값을 지불하여 원래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돌려 주는 일을 시행하셨다(딛2:14. 히2:17. 9:7,22. 벧전1:18,19. 계1:5).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서 지금도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히13:8) <강병도성경연구>

 

엡1: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표준새번격성경 :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현대인의성경 :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가 기뻐하시는 뜻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계획하신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는데.

공동번역성경 :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그 뜻의 비밀 : 신약 성경 중의 비밀이란 말은 현대의 불가사의, 그리고 신비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발견할 수 없지만 그것은 지금 하나님의 계시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금 계시된 하나님의 신비이다<IVF주석>.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 이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것은 그의 사역을 통하여 실현될 것을 뜻한다<IVF주석>.

 

때가 찬 경륜 : 문자적으로 “예정된 때의 섭리(목적)”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이 역사 속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큰성경>.

 

경륜(經綸) : ‘집안 살림’이라는 뜻을 지니며, 공동 번역에는 ‘계획’으로 나옴<큰성경>.

국가를 통치하는 일, 또는 그 방책<빅파워. 한영해설성경>.

직역하면 ‘집 관리’이다. 여기 주제의 내용으로 볼 때, 때가 차서 곧 복음시대가 되어서 아버지의 목적을 아들이 실현할 것을 가리키고 있다<IVF주석>.

 

엡1:9,10 : ’신비’는 하느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결합시킴으로써 역사를 온전하게 실현해 가시는 계획이다<공동번역성경>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의 경륜(계획)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의 경륜은 모든 피조물을 당신의 목적 아래로 통일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통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역사의 때에 맞춰 이루어질 것이다. 한편 본 절에 언급된 ‘통일되게 하다’라는 말은 본래 세로 덧셈하듯이 맨 아래 숫자부터 계산해 올라가면 마지막 꼭대기에 가서 총계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는 뜻을 지닌다. 이와 같이 역사의 종국에 가서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대결산을 하실 것이다(눅19:15. 롬14:12. 벧전4:4,5). 그러므로 성도들이 주 앞에 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이 지상에서 살 동안 더욱 경성하여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마25:21. 눅16:10) <강병도성경연구>

 

엡1: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현대인의성경 : 그것은 때가 되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은 1) 생존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 2) 천사들을 포함하며 3) 또한 주께서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포함한다(히1:2,3). 따라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교회 뿐 아니라 모든 우주 내의 새로운 개혁을 가져온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벧후3:13. 계21:1) <주석성경>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 : 생존해 있는 성도들, 죽은 성도들, 천사들, 주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히1:2,3)을 가리킨다<큰성경>.

 

통일되게 : ‘요약하다’. ‘모으다’. 지도자 아래 강한 연대성을 가지고 연합하는 것<큰성경>.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구원받고, 만물은 창조 때처럼 아름답고 완전한 통일로 회복되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복종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큰성경>.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단순히 교회만이 아니고 우주의 통일을 가리키고 있다(골1:18). 이 궁극적인 통일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그 아래에 모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감추어진 진리요 신비인데, 그것이 지금 계시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지상의 불일치와 혼란이 그 마지막을 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성취되는 것이다. 이 진리는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와 골1:16,17“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를 서로 관련시켜서 생각할 진리이다. 깨어진 것의 일치는 최후에 회복되는데 그 회복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다. 그렇다면 그는 유대인이 기대한 단지 국가적 메시야 보다 도 무엇인가 뛰어난 분이 아닌가! <IVF주석>.

 

진리의 말씀이 곧 구원의 복음이다

엡1: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표준새번격성경 :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약속하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공동번역성경 :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속 사역을 실제로 우리들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부록교리. 성령과 구원론) <주석성경>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 ‘너희는’ 앞 절에서 ‘유대인’을 지칭한 ‘우리’와 대조되는 인칭대명사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복음이 전하여졌다. ‘복음’은 다른 곳에서 ‘주의 말씀’(고전14:36. 살전2:13), ‘하나님의 말씀’(고전14:36. 살전2:13), ‘그리스도의 말씀’(골3:16), ‘생명의 말씀’(빌2:16), ‘화해의 말씀’(고후5:19)이라고도 불리어진다. 이런 ‘구원의 복음’과 동일시되는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계시하는 사도의 복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원 계획을 사도들은 이방인에게까지 전파하였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호크마>.

 

엡1:14「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현대인의성경 :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아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십니다.

공동번역성경 :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企業) : 선조로부터 주어진 몫,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하였음을 가리킴<큰성경>.

부모나 근친에게 물려 받은 재산(토지) <한영해설성경>

 

보증(保證) : ’알라본’. 상업 용어로서 물품에 대한 금전 관계를 이행하겠다는 표시로 지불하던 선금(보증금)인데 이는 곧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한 것이다<호크마>

상업 용어로 물건 값을 모두 지불할 때까지 맡기는 담보물을 말한다. 이는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장차 미래에 받을 기업의 보증이라는 뜻이다<큰성경>.

 

그 얻으신 것 : 예정하시고 인치심으로 그의 소유된 백성을 가리킴<한영해설성경>

 

엡1:15「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엡1:15-23 : 그리스도 신자들은 믿음을 통하여 온갖 다른 인식을 뛰어넘는 지혜를 얻게 된다. 즉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어, 지금까지 생명을 손에 쥐고 있던 사악한 모든 세력을 무너드리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여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해 주심을 알게 된다. 이 편지에서 이상적인 교회는 실천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와 하나로 보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역사적 구체성을 넘어서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본 교회는 우리가 지향하면서 걸어가는 목표다. 바울로는 거룩한 교회를 언급하고 있다. 이 이상적인 교회의 모형은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교회의 끊임없는 회개를 요구하는 모형이다<공동번역성경>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겸손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통찰력을 가지고 참된 소망과 영원한 기업,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심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실 뿐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는 머리가 되신다<빅파워성경>.

앞에서 웅대한 구속의 도리를 설명한 바울은 이 도리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촉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한편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하나님의 주권 의지와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인 응답 행위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의 노력을 무시하는 운명론적 신앙의 맹점과 하나님의 뜻에 부응하기 위해 기도와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참 신앙의 면모를 발견한다<주석성경>

 

엡1:18「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표준새번격성경 :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소망의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현대인의성경 :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의 희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축복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게 해 주시고.

공동번역성경 : 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또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 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엡1:18,19 :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부르심’은 ‘선택’과 ‘예정’(4,5,11절)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며, 그 부르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온전하게 하시는 소망을 갖게 된다.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완성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될 것에 대한 바램을 의미한다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 ‘그 기업’의 헬라어 ‘테스클레로노미아스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의 기업’으로서 14절에서 언급한 ‘우리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켰다(신4:20. 9:26,29. 삼하21:3. 왕상8:51. 왕하21:14 등). 그러나 본 절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유대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성도 안에’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업은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엡1:20「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하늘 보좌의 우편에 앉히셨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왕의 오른 편에 앉는다면, 사람들은 그가 왕의 권위와 권세를 나눠가진 자라는 것을 즉시 알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오른편에 앉힘으로써, 그에게 위엄과 존귀 및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하셨다<QA성경>.

 

오른편 : 성부 하나님과 나란히 앉은 동등한 위치를 나타냄으로써 지극히 높은 영예와 권위를 상징한다<한영해설성경>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언급함으로써 성도들에게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옛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그의 성도들이 신앙 안에서 용기와 소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오른편에 않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곧 미래에 성도들에게 있을 영광된 모습의 상징이기 때문이다(고전15:20,23. 고후1: 22. 히7:22).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멍에 아래 몸부림치며 악전 고투하고 있지만 그리스도로 인하여 미래에 있을 부활의 아침을 기대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이 우리가 될 것이다(고전15:17,19). 그렇지만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함으로써(히3:1) 이 모든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있다<강병도성경연구>

 

엡1: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의 몸 ; 머리가 몸의 모든 움직임을 지배하듯이 머리 되신 그리스도는 그의 몸 된 교회에 대하여 그와 같은 권한을 가지신다<한영해설성경>

 

충만케 : 질과 양에 있어서 자신의 욕구를 모자람 없이 채운다는 뜻<큰성경>.

 

교회의 보편성과 그 사명(엡2:1-3:21)

구원은 인간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그 구원은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에게도 주어진 것이므로 교회는 보편성을 가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엡2: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4,5 : 여기서부터는 앞 절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사역이 언급된다. 긍휼, 사랑, 은혜는 이 구속 사역의 기초이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은혜는 죄를 사해 주시는 것으로 이해되나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하나님의 본능적인 성품이며(요일4:8. 고후 서론. 은혜란 무엇인가?) 긍휼과 은혜는 죄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따라서 긍휼과 은혜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므로 우리의 구속은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실현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사랑은 말에 있지 않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주석성경>

 

엡2: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허물 : ‘정도에서 떨어지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가장 큰 허물임을 보여준다<큰성경>.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주님의 부활, 승천, 영광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러한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큰성경>.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본문의 괄호는 이 부분이 헬라어 본문에 있어서 부가적인 설명임을 나타낸다. 상 반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 생명을 소유하였음을 언급한 바울은 본문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부언한다. 즉 죄로 인해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에 대한 구원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인 은혜로 된 것임을 밝힌다<호크마>

 

엡2:5,6 : 본문에는 ‘쉰’(…함께)로 시작하는 세 개의 단어가 나타난다. 그것은 ‘함께 살리셨고’와 ‘함께 일으키사’ 그리고 ‘함께 앉히시니’이다. 이 단어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낸다. 또한 이 세 단어는 모두가 부정 과거로서 ‘살리심’과 ‘일으키심’ 그리고 ‘하늘에 앉히심’이 이미 실현된 것임을 나타낸다. 다른 서신에서 바울은 미래적인 면을 강조하는 반면에 본문에서는 현재 이미 실현된 면을 강조하고 있다<호크마>

’살리셨고, 일으키사, 앉히시니’는 주님의 부활, 승천, 심판을 암시하는 말로서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관계로 말미암아 이러한 경험들을 할 수 있다(눅9:28-36. 예수 생애의 5대사건) <주석성경>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과정을 통해 구원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먼저 ‘살리셨고’ ‘일으키사’ 그리고 ‘앉으시니’라는 과정을 거쳐 구원하셨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죽어 있는 시체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다시 소생시킨 후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귀한 자리로 앉히는 광경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을 얻는 구원이 일련의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를 보장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임을 확신할 수 있다(빌1:6) <강병도성경연구>

 

엡2:5,8 :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엡2:7,8 : 은혜, 믿음, 구원은 각각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은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의 표시이며,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통로이고, 구원은 은혜가 원인이 되고 믿음이 그 수단이 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만 믿음은 인간의 산물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란 결코 인간에 의해 자생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 나타난다고 교훈하고 있다(고전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믿음만큼은 인간의 공로로 돌리려는 사람의 여하한 착각에도 쐐기를 박으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여 하나님의 값 없는 은총의 아주 작은 일부나마 그 공로를 사람에게 돌리려 한다면 그는 참으로 배은망덕한 성도일 것이다<강병도성경연구>

 

엡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표준새번역성경 :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현대인의성경 :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지 않았는가?

그것은 성경의 신비이다. 여기서는 다만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에 기초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을 가르칠 뿐이다<QA성경>.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본 절은 5절에서 언급한 것을 반복한 것이지만 5절과 두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1) 5절의 은혜에는 관사가 없으나 본 절에서는 관사 ‘테’가 있다. 이것은 앞절에서(7절) 언급한 은혜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 2) 5절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없으나 본 절에서는 나타난다. 믿음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 구원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호크마>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다<큰성경>.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이것’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2) 혹자는 구원의 과정 전체라고 주장한다.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는 중성으로 믿음의 성인 여성과 맞지 않으며, 문맥상 본 절의 내용이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호크마>

 

선물 ; 이는 구원의 은혜를 말함<호크마>

 

엡2: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표준새번역성경 :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 그것은 우리의 선행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자랑 할 수 없습니다.

공동번역성경 :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엨스 에르곤’에서 ‘엨스’는 기원이나 원인 혹은 근거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원이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롬3:20,28. 4:1-5. 갈2:16. 딛3:5). 바울은 이 행위를 율법과 관련시켜서 언급하지 않는다. 본 절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행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자랑할 수 없다(롬3:27. 4:2) <호크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한영해설성경>

 

엡2: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표준새번역성경 :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창조함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셔서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은 공적(功績)에 의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재창조의 사역이기 때문이다(이하 생략)<호크마>

 

선한 일을 위하여 :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결코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후에, 우리는 삶 속에서 반드시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딛2;14) <한영해설성경>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을 보여주는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단순한 용서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선을 행할 수 있는 부활과 새 창조의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씀은 1절의 ‘허물과 죄’라는 말과 대조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성도들의 참된 삶은 의와 진리와 거룩(4:24)을 실천함으로써 날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새 창조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주석성경>

 

지으심 ; ‘주조하다. 창조하다’란 뜻. 천지 창조와 같은 자연계의 만물 창조에 원래 사용되었으나 영적인 중생에 응용되어 거룩한 신생을 가리킨다<호크마>

 

행위는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행위가 구원의 원인은 아니지만 구원의 결과로서 나타나야 한다(약2:14-26). 즉 행위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줄 수 없다 하여 구원받은 인간이 선행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한 행위는 구원의 실재(實在)를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약2:18). 그러므로 선한 행위가 구원을 가져올 수 없다 해서 선행을 무시하거나 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 지음 받은 피조물로서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기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5:1,9. 갈5:22,23. 벧전2:21) <강병도성경연구>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엡6: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표준새번역성경 :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현대인의성경 :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님의 칼을 가지십시오.

공동번역역성경 :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구원의 투구 : ‘투구’는 다른 곳에서 ‘구원의 소망’으로 나타나나(살전5:8) 본 절에서의 투구는 이미 실현된 구원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구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2:5).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은 악한 세력과의 전투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는 전신 갑주 중 하나이다<호크마>

 

성령의 검 : 성도의 유일한 공격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히4:12).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심을 나타낸다. 또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도 이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다(마4:4-10. 눅4:1-13) <큰성경>.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전신 갑주 중에서 유일한 무기는 ‘성령의 검’이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는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다(3:5. 딤후3:16. 히3:7. 9:8. 10:15. 벧전1:11. 벧후1:21). 본 절의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는 ‘복음’을 가리킨다(1:13. 5:26. 6:15. 롬10:18. 벧전1:25) <호크마>

 

빌립보서

우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함으로써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일을 함이다.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이며,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떨림으로써 구원을 이루라!

빌1:19「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 바울이 말하고 있는 구원은 단순히 그의 석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현재 당하는 투옥이 심판 날에 증거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요21:19). <주석성경>

 

구원 :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그의 석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구원과 성결의 생활을 의미한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지식과 빌립보 교인들의 기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자신이 구원에 이르렀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큰성경>.

 

구속해 주신 목적 계속 추구!

빌3: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구원에는 소명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가 있으므로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모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특별히 이 부분을 언급하게 된 것은 아마도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행위와 의식을 주장하는 유대주의에 반발하여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극단적인 완전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목적을 계속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자각시키고 있다. <주석성경>

본 절은 바울이 이미 도달한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 도달하여야 할 목표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났던 것을 암시한다. 그는 그곳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 회심하게 되었다. 그의 회심은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 그가 열망하는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믿음의 경주 곧 영적 성장을 향해 계속해서 달음질해야 한다. 여기서 ‘좇아가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디오크’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본 절에서 ‘디오크’는 좀 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강한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바울의 진지한 노력을 시사한다. 바울은 본 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목적을 계속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자각시키고 있다. <호크마>

 

구원 받은 성도들은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이 바라던 모든 것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열망하던 완전함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바울이 이와 같은 고백을 하게 된 것은 본서신의 수신자인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에 행위와 의식을 주장하는 유대교인들을 반대하여 이미 받은 영적 은사와 축복만을 강조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있었음을 반영한다. 즉 그들은 자기가 받은 영적인 은혜가 전부인 양 생각하며 일종의 완전주의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라고 말함으로써 그와 같은 완전주의적인 생각이 그릇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성도들은 과거에 받은 은혜에 집착하여 자기의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현재까지 이루어 놓은 일들을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달성했다는 교만한 생각을 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성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성장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강병도성경연구>

 

골로새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

 

골1: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표준새번역성경 :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현대인의성경 :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공동번역성경 :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흑암의 권세는 무엇인가?

세상에 대해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탄의 파괴적인 힘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탄의 권세는 ‘빛’되신 그리스도의 권세로 말미암아 무력화되었다. 따라서 빛의 자녀 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탄의 세력을 이길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QA성경>.

 

흑암(黑暗) : 몹시 어두움. ‘사단의 비밀’을 비유한 말이다<한영해설성경>.

사랑의 아들 :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란 뜻이다<주석성경>

나라 : 지역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의미한 것이다<큰성경>.

’바실레이아’. 여기서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왕의 주권과 통치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악의 권세 아래 있지 않고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음을 가리킨다<호크마>

여기서는 종말론적이나 영토적인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 나라는 골로새 교인들의 마음 속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며(요3:3-5)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를 의미하는 나라이다. <주석성경>

 

골1:13,14 : 찬미가의 서두에서는 죄악이 어떻게 피조물에 개입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업이 새로운 창조를 통하여 구원 사업이 되었는가를 보여 준다<공동번역성경>

 

골1:13-20 : 바울로는 골로사이인들이 믿음 안에 굳게 머물도록 영감을 불어 넣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찬미가를 인용한다. 이 찬미가는 아마 세례 예식에서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기리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 바울로는 이 찬미가를 이용하여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중개자가 필요한 것처럼 가르치는 교설을 비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시다. 그분만이 십자가를 통하여 죄에 매여있는 피조물을 하느님과 화해시킬 수 있으시다<공동번역성경>

 

골1: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표준새번역성경 :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현대인의성경 : 우리는 이 아들의 피 흘린 대가로 자유를 얻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공동번역성경 :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 받고 속박에서 풀려 났습니다.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구속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뤼트로신’은 ‘값을 지불하고 어떤 대상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 매여 종 노릇하던 우리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취하였음을 말해준다(롬3:24, 25. 엡1:7. 히9:14, 15).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와 공로를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호크마>

 

구속이란 말의 의미를 논하라!

구속(아포르뤼트로신)이란 말은 노에나 전쟁 포로가 응분의 값을 치루고 풀려날 때 사용되던 용어였다. 바울은 본 절에서 구속을 ‘죄 사함’이라고 정의 했다. 이 말은 헬라어 ‘아페시스’의 번역인데 문자적으로 ‘놓아 보냄’을 뜻한다. 본래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롬3:23) 그로 인해 사망의 포로가 되었었다(롬5:12).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상황을 ‘죄 아래 팔렸다’는 말로 묘사했다(롬7:14). 죄 아래 팔린 인간이 구속 곧 자유 함을 받으려면 그에 상당하는 속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속량할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속전으로 지불하셨다(요3:16). 사도들은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풀어주는 유일무이한 속전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엡1:7. 벧전1:18,19) <강병도성경연구>

 

데살로니가서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한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다.

살전5:8-10「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섭리로써 멸망에서 구원해 내시기로 작정되었으므로, 이를 생각하여 주의 재림을 대망하며 또한, 주를 영접하는데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 <구로자끼>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 이 구절에는 기독교의 구원론이 요약되어 있다. ‘세우심’은 구원이 인간의 선행에 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편에서 먼저 행하신 것이다. <한영해설성경>

하나님이 신자들을 구원해 놓으신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구원해 놓으셨다. <이병규강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 ‘세우심’의 헬라어 ‘에데토’는 롬8:19절의 ‘예정’같이 확실한 말은 아니지만,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주는 말이다. <호크마>

 

노하심 : 하나님의 마지막 날의 심판(진노) <한영해설성경>

’노하심’(오르겐)은 ‘파루시아’ 직전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가리킨다<호크마>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 : 하나님의 마지막 날에 심판에 이르게 하심. <빅파워성경>.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 성도가 시험에 빠져 범죄하면 하나님이 노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려고 하심이 아니요 기쁘시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이병규강해>

 

구원(폐리포이에선) : 두 가지 의미로 이해 할 수 있다.

소극적 의미-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출 받음.

적극적 의미 –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위해 베푸신 신령한 복들을 누리는 것. <호크마>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를 구원해 주신 또 한 가지 목적은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자기(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살게 하려 함이다. <이병규강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 이 말은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통하여 여기에 단 한번 언급되었다.

바울이 본 서신을 쓰고 있을 때 그는 고린도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관해 증거하고 있었다(고전2:1-10. 15:3-19)(이하생략). <호크마>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아 구원함을 얻지 못한다.

살후2: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다.

살후2:13「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디모데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네 자신과 가르침을 계속하여 구원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딤전1:15,16「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미쁘다’라는 말은 신임할만하다는 뜻이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슬데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의인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마9:13). 바울은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고 현재사로 말한 것은 과거에 죄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현재에도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이다(이하생략). <이병규강해>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 4:9절과 함께 복음전파의 대상이 일부에만 국한 된지 않고 전인류에 미치는 보편적인 것임을 가리킨다<주석성경>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 기독교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이 말 속에 압축되어 있다. 여기서 ‘구원’이란 말은 죄와 사망의 상태에서 구출되는 것뿐만 아니라 의와 자유, 축복 등으로 인도되는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엡1:17. 갈5:1). <주석성경>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딤전2: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구원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비되었다는 점에서는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갈 서론. 이신득의 이해)에서는 선택적이며 조건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전파되어야 하며 구원은 회개와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요3:16. 고후5:14,15). <주석성경>

모든 사람이란 인류 전체를 의미하지 않고 택함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마가1:5절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라고 했고, 요한12:19절에 ‘온 세상이 저를 좇는 도다’라고 했으나 그 때 한국 사람까지 가서 죄를 자복하고 예수님을 좇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란 전 세계 중에 택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택한 자만 예수를 믿게 되고 불택자는 믿지 못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살전1:4. 롬8:30. 행13:48).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 택한 백성은 곡식이고 불택자는 가라지이다(마13:38). 가라지는 아무리 잘 가꾸어도 곡식이 될 수 없다. 또 택한 백성은 양이고 불택자는 염소라고 했다(마25:32,33). 염소가 양 되기를 아무리 원한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가라지가 곡식 되기 원하였을리가 없고 염소가 양 되기를 원하였을리가 없다. <이병규강해>

 

만일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왜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는가?

어떤 이들은,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지만(요3:16), 창세전의 선택과 예정에 따라 그 중 어떤 자들만을 부르셨다고 말한다(엡1:4,5. 롬9:15,16). 또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계획(복음)은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지만, 그것에 대해 사람들의 믿음을 요구한다고 말한다(요1:11,12). <QA성경>.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성도가 진리를 많이 아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진리를 많이 알고 깊이 알아야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회개도 못하고 행할 수도 없고, 자기를 만들어 나갈 수도 없다. 건축법과 건축재료와 그 용도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훌륭한 건물을 건축할 수 있겠는가?. <이병규강해>

진리에 대한 지식은 구원의 뿌리요, 열매이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의 자의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획득된다(마16:17. 딤후2:25).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겔33:11)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호크마>

 

성경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 인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딤전2:15「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4:16「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후1: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2:10「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딤후3: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인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그 분의 말씀으로 새롭게, 영적으로 양육된다.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고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딤후1: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거룩하게 하신 것은(믿는 자는 거룩한 자이다)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뜻을 따라 그의 긍휼과 사랑으로 된 것이다. <이병규강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본 절에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진 용어가 두 가지 나오는데 그것은 ‘구원’과 ‘거룩하신 부르심’이다. 그런데 여기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만인을 위해 준비된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거룩하신 부르심’은 구원을 주시기 위해 개인적으로 부르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미리부터 계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것을 단번에 이루셨다. 그리고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부르시는 것이다(엡1;3-9). 이 부르심은 다시금 그를 버리지 않으시는 확실하고 완전한 부르심이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거룩하게’하시기 위함이다. 여기서 ‘거룩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하기오스)는 구별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과 구별된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우리의 구원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구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살전4:7).

<강병도성경연구>

 

우리의 구원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한 것이다. 이에 관한 내용은 바울의 서신들,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거듭 강조되어 있는 사상이다(롬11:17. 3:20-24. 10:5-13. 11:6. 갈2:16. 3:6-14,15. 엡2:9. 딛3:5). 즉 구원은 우리의 율법적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그의 지혜롭고 확고한 계획에 근거한 것이다(롬8:28. 엡1:11). 다음으로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런데 은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위에 의한 구원의 가능성을 본질적으로 배제해버린다.

첫째은혜는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어떤 것이지 우리가 노력함으로 획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엡2;8,9).

둘째은혜는 우리의 행위에 선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창세 전에 그 은혜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딛1:2). 우리에서 우리는 구원이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 전에 벌써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이 큰 사랑의 섭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롬11:6. 갈3;6). <강병도성경연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 ‘거룩하신 부르심’(클레세이 하기아)의 ‘거룩하신’(하기아)이 여격으로 수단이나 방편보다는 목적을 나타내므로 부르심의 이유와 목적이 바로 ‘거룩함’을 나타낸다(살전4:7).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다’는 의미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소속되어서 세상과 구별된 자임을 시사한다. <호크마>

 

디도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디도서 전체를 통해서 장로와 회중 모두가 일상 생활 가운데서 구원에 합당한 행실을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영생(永生)과 구원(救援)은 다르다. 영생은 믿음의 열매로 가야 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딛2:11「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표준새번역성경 :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현대인의성경 : 이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사람을 불러서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여기 모든 사람은 모든 택한 사람을 가리킨다. 롬8:30절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라고 했고, 행13:48절에는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다<이병규강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의 속죄의 죽음으로써 만인에게 구원을 얻게 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표현이며, 이것이 그리스천의 생활의 원동력이 된다<구로자끼>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는가?

하나님의 은혜는 지위나 성별, 나이나 빈부, 나라와 민족에 상관없이 다양한 계층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새롭고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QA성경>.

 

모든 사람에게 : 만인을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당초의 계획이었다(딤전2:4. 벧후3:9) <구로자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 신자의 구원은 주님의 은혜에 따라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영원한 형벌(계20:15)에서의 해방이다(요5:24). 그러므로 놀라운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히 사는 것은 성도들의 당연한 임무이다(엡2:8-10)<주석성경>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 ‘하나님의 은혜가’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에 연결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에게 값 없이 주어지는 일방적인 호의로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의미한다(14절. 롬3:24) <호크마>

 

딛2:11-14 : 시제로 본 구원

과거 :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됨 - 딤후1:9.

현재 : 예수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음 - 엡2:8.

미래 : 주의 재림으로 영육이 천국에 들어가 온전케 됨 - 롬8:23.<큰성경>

 

딛2:11-3:11 : 선행을 유지해야 할 기독자의 책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야말로 합당한 선행이나 그것을 믿는 기독자의 행동(2:5,10)에 의하여

명확하게 되며 사람들이 그것에 마음이 끌리도록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이하생략) <IVF>

 

딛2: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심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표준새번역성경 : 그 은총은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건함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현대인의성경 : 그 은혜는 우리에게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적인 정욕을 버리고 이 세상에서 절제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공동번역성경 : 그 은총은 우리를 훈련해서 우리로 하여금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줍니다.

 

본 절과 다음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이병규강해>

 

우리를 양육하시되 : 우리를 구원하신 첫째 목적은 구원받은 성도를 양육하여 하나님의 대상자(그리스도의 신부)로 삼기 위함이다. 처음 믿을 때는 신자의 영이 어린 영이지만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된다(이하 생략) <이병규강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자녀들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영생의 소망을 이루는 날까지 바르게 살아가도록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훈련시키고 가르치신다. 이 훈련과 가르침은 성도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계속된다(엡4:13,15) <호크마>

 

양육(養育) : 부양하여 기름<빅파워, 한영해설성경>.

경건치 않은 것 :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것들이다<이병규강해>

세상 정욕 :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말한다(요일2:15-17). 이 정욕이 영혼을 거스려 싸우기 때문에 정욕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다. 벧후1:4절에 정욕을 위해서 사는 것은 썩어진 생활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는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아야 한다<이병규강해>

 

정욕(情慾) : 도덕적으로 금지된 일에 대한 욕구<빅파워, 한영해설성경>.

버리고 : 단번에 모든 악한 행위를 벗어 버리는 것을 의미함. 곧 신자는 수세 시에 모든 죄로부터 해방되었음을 가리킨다<호크마>

 

근신 : 방탕과 반대되는 것으로 극기(克己)의 생활이다<이병규강해>

의로움 : 옳게 사는 생활<이병규강해>

경건 : 세속에 물들지 않고 바로 사는 것. 의로움과 경건은 성도가 항상 깨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말씀을 항상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이다(시1:1-3). 이러한 성도의 영은 시냇물 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무럭 무럭 자라나고 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난다<이병규강해>

 

딛2: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표준새번역성경 : 또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복된 소망을 갖게 합니다. 또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합니다.

현대인의성경 : 그리고 위대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성경 : 그리고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해 줍니다.

 

본 절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기다리는 것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는, 복스러운 소망, 영생에 대한 소망(골1:8)이다. 둘째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실 것, 즉 주의 재림이다(행1: 11. 히9:28). 이와 같은 성도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므로(히6:17-19) 지복성(계21:4.23)과 영원성을 갖는다(벧전1:4).

한편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본문을 두 위격으로 보고 ‘크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 2) 본문을 한 위격으로 보고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이하생략) <호크마>

은혜의 또 다른 역할은 내세의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소망은 천국의 지복성(至福性. 계21:4,23)및 영원성(벧전1:4) 때문에 참으로 복된 것이다(막1:15. 하나님 나라의 개념) <주석성경>

우리를 구원하신 세 째 목적은 복스러운 소망을 바라보고 많은 환난 가운데 연단을 받아 마침내 그 소망에 도달케 하려는 것이다(롬5:3,4). 성도의 소망은 1) 하늘나라이다. 2)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갈4:19). 3)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그 영광에 참예하는 것이다(요일3:2,3) <이병규강해>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게 된 것은 아래의 세 가지 점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친다. 곧 1) 과거 우리에게 붙어 있던 불경건 곧 불신앙과 하나님을 거스르는, 현세적인 여러 가지의 요구를 거부할 것, 2) 자제(自制)하고 스스로 근신하며, 정의를 행하고, 불의를 미워하며, 경건한 믿음으로써 이 세대에 생활 할 것, 3) 크신 하나님이요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남 곧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에 따르는 행복한 소망을 대망하는 것이다. 첫째는 과거에 관해 무엇을 버릴 것인가, 둘째는 현세에 있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셋째는 미래에 대하여 무엇을 희구할 것인가의 문제로서, 이 셋은 각각 바른 해결을 얻음으로써 크리스천은 그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구로자끼>

 

복스러운 소망 :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소망<빅파워성경>.

영광이 나타나심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실 때의 영광스런 모습을 말한다<빅파워성경>.

세상 정욕 : 요일2:16,17.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대립되는 존재로 생각되고 있다. ‘이 세상에 산다’ 이 세상이라 함은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그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가리킨다(이하 생략) .<구로자끼>

 

딛2:14「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표준새번역성경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은 모든 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열심히 선한 일을 하는 그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바치셔서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건져 내시고 깨끗이 씻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백성으로서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구속해 주신 넷째 목적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에 강권하심을 받아 죄에서 떠나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려 하는 일은 억지가 아니고 단 마음로 하는 것이다<이병규강해>

 

앞 절 끝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설명이요, 동시에 인류 구제의 목적을 보여 준다. 곧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시어(갈1:4. 딤전2:6)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다.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지불하는 희생의 댓가로 대속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속죄로 우리는 모든 불법과 죄에서 구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처럼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한 특선(特選)의 백성(보석처럼 존중되는 백성, 속어로 ‘맡아둔 백성’이 가장 원어에 가깝다) 곧 선행을 열심히 행하고자 하는 백성을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남(13절)도 요컨대 이 백성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마24:31절 전후) <구로자끼>

바울은 본 절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현현을 고대하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호크마>

 

구속(救贖) : 그리스도가 죄악에서 인류를 건져냄<빅파워성경>.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깨끗하게 하사’라는 말에는 전에 인간에게는 ‘더러움’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깨끗하게 하사’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엡5:26. 히9:14. 요일1:7.9)(이하생략)<호크마>

 

깨끗하게 하사(카다리세) : ‘깨끗하다. 자유케 하다’는 뜻. 육체뿐 아니라 죄에서의 자유, 즉 영적 정결을 내포하고 있다<주석성경>

‘깨끗케 하다. 자유케 하다’란 뜻. 이는 육체뿐 아니라 영혼의 죄에서의 자유, 즉 영적 성결을 의미함<호크마>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마지막 목적은 특별히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러한 신분에 따라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겔37:23)<주석성경>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하셨다

딛3:1-7「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의인이 되었다. 또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영적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었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다. <이병규강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가 의로와,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실현되어 그의 후사가 되기 위함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의 상태에서(3절)구원을 얻어 그의 후사가 되었으므로, 이를 생각함으로, 1,2절과 같은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로자끼>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 ‘의롭다 하심을 얻어’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되다’ 즉 ‘칭의’를 의미한다. 칭의는 인간의 공적이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성결된 삶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롬5:20. 벧전1:15). <호크마>

 

후사 : ‘제비 뽑기에 이긴 자’에서 유래. 법적으로 ‘기업을 무를 자’. 재산 상속자를 말한다. 여기서는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을 가리킨다. 원리적인 면에서 볼 때, 성도들은 영생을 지금 소유한 자들이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상속받은 것이 아니므로 기업을 얻을 소망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빅파워성경>.

‘세습, 획득’과 ‘법규, 율법’의 합성어. 무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자를 가리킴. <주석성경>

후사는 하나님의 것을 물려 받을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그 나라와 그 모든 것을 유업으로 물려 주기를 원하신다(마25: 34). <이병규강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하심이라) : 이것은 구원의 본질이자 의롭다 함을 얻은 결과이다. 여기서 우리는 –

1) 신자는 세상에서의 궁핍 중에서도 기뻐해야 하며(벧전1:6)

2) 세상의 썩어질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됨을 깨닫게 된다(엡4:22). <주석성경>

본문은 구원의 본질이자 의롭다 함을 얻은 결과를 진술한다. ‘후사’가 되게’는 ‘히나’와 연결된다. 이는 ‘후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됨을 나타낸다(갈4:4-7). 후사된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린다(롬8:17). 그러나 상속자로서 미래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고난에 동참해야만 한다(롬8:36,37). <호크마>

 

히브리서

모든 천사는 구원 얻을 우리를 위하여 섬기라고 있다. 구원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실 하나님께 심한 고통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경외하심으로 구원을 얻으시고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예수님이 항상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으로 그를 믿고 나아가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이 구원을 받았다.

 

모든 천사는 구원을 얻을 우리들을 섬기라고 보내심이다

히1:14「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우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천사는 예수님이 부리는 영으로써 구원받은 예수님의 백성들을 섬기라고 즉 환상, 예언, 방언, 통변, 병 고치는 것 등으로 하나님을 찿아 가는 일에 섬겨주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노아목사>.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그리스도와 달리,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곧 섬기는 영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어 완전한 구원을 받을 성도들을 섬기도록 하나님에 의해 파견된 사자들이다(왕하6:15-17. 시91:11. 눅2:13,24. 24:4-. 행1:10,11, 마4:11). <최세창 목사>.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다.

히2:3「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예수님은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히5:7-10「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한다.

히6: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다.

히7: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9: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다.

히11: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이 없다. 하나님은 입법자와 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며,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이키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고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

약1: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2: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4:12「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약5: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약5:20「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베드로서

피로 구원을 얻은 자!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 보지도 못한 예수를 믿고 기뻐함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 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을 믿어라.

 

피로 구원을 얻은 자!

벧전1: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이 짧은 한 절에는 삼위일체, 예정, 성결, 구속 등 기독교의 근본 교리가 성도의 구원과 관련되어 나타나 있다. 성도는 성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을 받아, 성령님을 통해 거룩해지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본 절에 나타난 전치사들을 중심으로 이 사실을 살펴보면 그 뜻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영화로우신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는가? 그리고 이 구원의 계획을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산 소망을 기업으로 얻었으며, 세상의 환난 조차도 우리를 연단하는 것으로 사용되어 믿음의 결국을 보게 된다는 격려 또한 얼마나 힘이 되는가? <FMA연구>.

 

하나님 아버지의 : 삼위일체의 신비와 우리를 구원하시는 계획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 사실은 이것이 이 서신의 요약을 이루고 있다(아버지에 관해서는 5:3, 15, 17, 23절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는5:3, 7,11, 13,19,. 2:3절에서, 또 성령에 관해서는 5:11,12, 22절에 나타나있다) <총회신학>

 

미리 아심 : 성도는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선택된 자들임을 시사해 준다(롬8:29) <주석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 피 뿌림은 구약의 제사법에서 빌려온 표현이다. 즉 구약의 백성들이 희생제물의 피 뿌림으로 사죄를 얻었던 것처럼, 신약의 백성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 뿌림으로 죄를 용서 받은 것을 가리킨다. 또 다른 표현으로 ‘새 언약의 피’로도 쓴다<큰성경>.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새로운 계약의 설정과 그리스도의 피에 의하여 그의 승인을 가리킨다. 이것은 출24장에 있는 계약의 희생을 언급하였다<IVF>

 

피 뿌림 : 그리스도의 피는 ‘새 언약의 피’(마26:28)이다. 새 언약의 피는 단 한 번 그리고 영원히 십자가 위에 뿌려졌다<한영해설성경>

순종하는 자는 죄 사함 받게 하는 피 뿌림을 받는다(요일1:7참조). 여기서 피 뿌림은 수동형인데, 피 뿌림이 순종함으로 받게 됨을 의미한다. 순종함에 대해서는 14절을 보라. 피 뿌림과 피에 관해서는 19절을 보라<총회신학>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 :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의 비밀에 속한 것이어서 성령의 특별한 계시가 없이는 알려질 수 없는데 이것이 어찌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아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게 되므로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관하여서는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우리 형제들의 선택에 관하여 지나치게 캐고 들어서는 안되고, 그들은 오히려 부르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진 자들은 다 선택을 받은 자들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나는 대답하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의 남은 사람들로부터 구별하신 것이 바로 구원의 증표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겉으로만 선택 받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에 대한 반론이 되지 못한다(생략)<칼빈주석>

 

벧전1:3「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표준새번역성경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소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현대인의성경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그분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살 희망을 갖게 하셨으며,

 

‘산 소망’은 무엇인가?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이며,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으로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생의 소망을 가리킨다<QA성경>.

 

그 많으신 긍휼대로 : 사도께서는 모든 축복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축복은 그들에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에 근거하여 주어진 것임을(엡2:4-6 애3:22) 유의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중생(요3:3-8)이란 위대한 구원과 동반하여 거기에 기인하는 모든 축복에 주어지는 명칭이다. 우리들은 새로 거듭나서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즉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산 소망을 받은 것이다. 이 산 소망을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점을 항상 주의해서 보도록 하자. 베드로 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베드로는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의 때에 그를 전혀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던 절망으로부터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고 산 소망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구원은 복음에 있어서 불가결과 본질적 요소이다. 그 중요성은 고전15장에 강조되어 있다. 거기서 가르치고 있듯이 부활은 그것 없이 거듭날 수 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의 구원하심의 필수부분이다.

새로 거듭나는 자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산 소망’에 더욱 세 가지 큰 축복을 받는다. 그것은 기업과 능력으로 보호하심, 구원의 완성(5-9절)이다. 유업(상속의 기업)은 구약시대의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축복의 비상한 중요 요소였다(신15:4. 19:10, 34). 4절에서 베드로는 옛 유업은 영토를 탈취한 침략자에 의하여 파괴되는 일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썩지 않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1:18, 23. 3:4. 5:4). 눅12:33). 그것은 더럽지 않고 유대인의 지상의 유업은 이스라엘의 죄로 말미암아 자주자주 더럽혀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업은 더럽히는 자가 들어 올 수 없는 하늘에 간직한 것이었다(계21:27) <IVF>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 신자의 구원은 하나님 편에서 사랑을 베프셔야만 가능하며,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구원할 수 없음을 시사해준다(엡2:1-6. 딛3:5) <주석성경>

 

산 소망 : 우리의 부활. 곧 이 땅에서는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누리며, 장래에는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소망을 말한다<빅파워성경>.

이 소망은 천상의 기업이며(4절), (오히려 소망 자체는 마음에 있다) 살아있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솟아나오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자주 사용하는 말은 살아있는(2:4)과 산 소망(1:13, 21. 3:5, 15)이다. 다음 절에 이 단어들이 나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그는 소망을 믿음과 또 사랑과 연결시킨다(1:8, 21,22) <총회신학>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이는 신자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벧전1;23)을 통해 주어졌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어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주석성경>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 산 소망의 구체적인 언급이며, 신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상속 받은 기업의 성격을 보장해 보여 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어지며 빼앗길 수 없고 변질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이 소망에 온전히 사로잡힐 때에만 세상의 정욕을 피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주석성경>

 

벹전1:3-5 : 이어서 베드로는 중생, 산 소망, 하늘의 기업, 말세의 구원, 하나님의 보호를 언급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빅파워성경>.

세례를 받아 새롭게 태어나면 부활하신 예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이 새로운 태어남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남이고, 새로운 역사를 위한 태어남이다. 이 태어남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다른 모든 인간적 이상보다 비길 수 없게 위에 있는 희망을 안겨 준다. 하느님은 구약의 백성에게 땅 위에서 받을 유산을 허락하셨다. 이제 새로운 계약의 백성도 하느님의 생명을 유산으로 받는다. 그리스도 신자는 끊임없이 드러나는 과정에 있는 충만한 생명을 향하여 재촉과 충동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공동번역성경>

 

벧전1:3-9 : 성도의 소망.

첫째, 성도의 소망은 허락된 기업(基業)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누리게 되는 상속권이며 썩거나 더럽거나 결코 쇠하지 않는 것이다(롬8:16,17. 입1:11-14).

둘째, 성도의 소망은 ‘주님의 보호하심’에 관한 것이다. 성도의 영원한 안전이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다.

셋째, 성도의 소망은 세상의 시련조차도 장차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도록 해주는 계기가 된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성도는 이러한 소망을 이미 얻은 사람이지, 결코 이 소망을 얻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소망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많은 긍휼’로 거듭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망이 ‘산 소망’이라고 불리워지는 이유는 이것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므로 결코 취소되거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FMA연구>.

 

벧전1:3-12 : 위대하신 구원.

사도께서 위로의 편지를 찬송으로 시작하신다. ‘간직한 것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군사 용어로서(수비. 방어의 파생어)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기업은 지상의 권력으로는 빼앗을 수도 해를 가할 수도 없다. 이는 하늘의 창고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업은 상속자를 위하여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속자 자신이 그 기업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박해자의 힘과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보호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신앙을 통하여 신자의 경험 속에 역사하는 것이다. ‘받음이라’ 는 획득하여 자기의 것으로 하였다는 말씀이다.

 

예언자들 :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대하여 저들에게 주신바 약속이 성취되는 날을 대망하고 있었다. 즉 메시아가 와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IVF>

 

벧전1:3-25 :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은 성도는 어떤 류(類)의 삶을 살아야 하나?

첫째는,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이다. 둘째는, 거룩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다. 셋째는, 사랑으로 생활하는 것이다<FMA연구>.

 

벧전1: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있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 기업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 나눈 것(수14:1,2)을 일컫는 말로, 이는 성도들이 장차 들어가게 될 ‘천국’을 말한다<큰성경>.

 

쇠하지 아니하는 : 가나안은 때때로 곰팡이 때문에 고생했고 또한 가뭄과 메두기의 재앙을 실어 나르는 뜨거운 동풍을 받아왔다(대하6:28. 신28:22-24. 왕상8:37. 암4:9. 학2:17).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업은 결코 변할 수가 없다<IVF>

 

기업(클레로노미아) : ‘유산’을 뜻한다. 한편 자격도 없던 성도들이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주석성경>

거듭난 아들들은 상속인이다. 이 기업에 관해서는 3:7, 9절을 참조<총회신학>

 

썩지 않고 : 신적인 상속이기 때문이다<총회신학>

더럽히지 않고 : 왜냐하면 아무리 친밀하게 관계를 가졌어도 더러운 사람은 공동 상속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총회신학>

 

쇠하지 아니하는 : 상속인 자신들이 썩지 않고 절대 죽지 않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즐겨 동의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1:7,8,19. 5:10)<총회신학>

 

간직하신 : 처음부터(10절참조). 같은 말이 요18:12절에 나온다. 요2:10도 참조하라<총회신학>

하늘에 : 하나님의 능력으로<총회신학>

너희를 위하여 : 그래서 지금 살게 되었다<총회신학>

간직(看直) : 잘 보관하여 둠<빅파워, 한영해설성경>.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벧전1:5「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표준새번역성경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분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현대인의성경 :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도록 예비된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성경 :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힘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십니다.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 성도들은 현세에서 이미 구원을 얻었으나 그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완전히 실현된다<큰성경>.

구원은 사죄, 정의 그밖에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시는 현재의 축복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닮아지고 완성되어 흠이 없는 자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거리낌없이 서게 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 완전한 의미로서의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부여해 주었는데 ‘말세에’(요일2:18. 요6:40)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편지의 종말론적 성격에 비추어 보면 이 어구는 ‘만물의 마지막 때’(4:7)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여기서부터 사도께서는 그들을 에워싸는 시련으로 말씀을 옮긴다. 이러한 시련의 박해 속에 있을 지라도 저들이 구원을 확신하는 것을 기뻐한다. 만일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이 산 소망이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과 완성된 구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저들의 고난은 잠깐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의 것인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은 여러 가지의 혹독하고 끊임없는 시련 때문에 근심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시련에는 목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신앙이란 고난에 의하여 시험되지 않으면 진위를 알 수가 없다<IVF>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완전한 구원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역사하시고 계심을 보여 준다(롬8:30) <주석성경>

 

믿음으로 말미암아 : 구원은 믿음으로 얻게 되고 또한 믿음으로 지켜지게 된다<총회신학>

말세에 : 베드로는 신약시대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말세로 보고, 구약시대와 비교 해볼 때 짧은 시간으로 보았다.(그러나 마지막은 분명히 마지막 날을 말한다)<총회신학>

 

벧전1:5-16 : 어떻게 시험을 이기는가?

마지막 때에 구원을 위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구원은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얻을 수 있다. 말세에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환난이, 시험이 지나가야 한다. 여러 가지 시험이 있는데 이는 마지막 때 시험이다. 마지막 때 환난 가운데, 연단가운데 믿음으로 구원 얻는 자는 금보다 더 귀하다. 이긴 자는 영광에 부활에 참예하게 하려 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하심으로 마지막은 불 같은 시험이다.

 

벧전1: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표준새번역성경 : 그러므로 지금 잠시 동안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슬픔에 빠져 있더라도, 이것을 기뻐하십시오.

공동번역성경 :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 밖에 없겠지만,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의 구원”을 확실하게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련을 통해 성숙한 믿음을 갖게 되고, 장차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므로 기뻐하게 된다(롬5:3,4. 8:18. 약1:4)<빅파워성경>.

 

벧전1:6,7 : 하나님께서 신자를 영광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도록 준비시키심을 가리킨다. 믿음의 시련은 죄와 더불어 싸우는 영적 시험인 동시에 육신적으로 다가오는 경제, 질병의 문제로 인한 시험을 포함한다. 시험을 통하여 성도의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롬5:3,4). 두려워할 대상만은 아니다(창22:1. 시험이란?)<주석성경>

 

벧전1:6-9 : 믿음은 죽기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끊임없는 몸바침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고통과 박해와 죽음을 거친 다음에 부활의 영광에 다다르셨다. 그리스도 신자란 예수께서 걸어가신 것과 똑 같은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이다. 시련 가운데서 생활과 실천의 증거를 통하여 그리스도 신자 안에 조금씩 부활의 기쁨을 주시는 그리스도 자신이 드러나신다<공동번역성경>

 

벧전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왜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 연단 받도록 허락하시는가?

연단 받은 믿음은 마침내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연단을 받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함을 깨닫는 반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QA성경>.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 : dokimion(도키미온) 이란 헬라어를 ‘홀트’는 말하기를 여러분의 신앙 안에서 ‘진정한 것으로 인정된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이 말은 정련 되여 져서 불순물이 제거된 후에 남는 것을 가르친다. 금이 불에 정련되는 것과 같이 신앙도 연단 되여 진다. 그 시련에 견디는 자 만이 최상의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정련된 금이라도 역시 썩는 것은 세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난에 의하여 시련된 신앙은 썩지 않는 것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정련되어 썩어지는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정련의 도구로 필요하였던 시련과 고난은 모두 상급의 조건이 된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본다<IVF>

 

믿음의 시련 : 시험을 통하여 참된 것으로 증명된 믿음을 가리킨다. 믿음을 통해 오는 시험(히11:24)은 모세의 고백같이 시험은 우리를 온전케 만들어준다<큰성경>.

시련 : 이 말은 ‘테스트를 통해 인정 받는다’는 뜻이다. 곧 환난을 통해서 인정된 신실한 신앙을 가리킨다<한영해설성경>

도키미온. ‘시험, 증거, 신임’의 뜻. 믿음의 연단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으로, 성도를 향한 그의 신임이 전제됨<주석성경>

즉 너의 믿음이 연단 받으면. 금으로 비교되고 있다<총회신학>

 

벧전1: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확신은 실증적 확인에 있지 않으며, 다만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소유케 됨을 잘 알 수 있다(요20:29. 롬10:17) <주석성경>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유사하다(요20:29)<빅파워성경>.

 

벧전1:8-12 : 베드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는 예언자들의 관심과 연구, 성령의 역사에 의해 미리 계시된 것이며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소망을 인하여 기뻐해야 함을 증거해 준다<주석성경>

 

믿음의 결국 곧 영혼 구원!

벧전1: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표준새번역성경 : 이것은 여러분이 믿음의 결과인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성경 :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결국 영혼을 구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 생각이 바뀌어지고 행동이 바뀌어지면 육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땅의 법을 좇게 되면 영원한 법을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영원한 길을 잊어버린다.

 

믿음의 결국 : 저들의 신뢰의 완성과 면류관을 가리킨다. 저들은 일찍이 이후에 즐거워할 완성된 바 구원을 먼저 맛본 것이다. 이 구원의 위대함과 영광은 두 가지 사실에 의하여 지지된다. 하나는 구약성서의 저자들이 그것을 예시한 일과 또 다른 하나는 천사들도 흠모한다는 일이다<IVF>

 

영혼 : 특히 영혼이 구원받았고 육체는 부활 때에 구원을 받을 것임<총회신학>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신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고 또한 그 구원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본문은 구원받은 신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해야 하며(눅10: 20) 또한 그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나갈 책임이 있음을 교훈하고 있다<주석성경>

 

구원을 받음이라 : 성도들은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미래에 완성될 궁극적인 구원을 바라보고 현실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큰성경>.

 

받음이라 : 지금 현재 받고 있음<총회신학>

 

벧전1;10「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표준새번역성경 : 예언자들이 이 구원을 추구하고 연구하였으며, 그들은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예언하였습니다.

현대인의성경 : 이 구원은 여러분에게 내려 주실 은혜에 대하여 말한 예언자들이 열심히 찿고 깊이 연구하던 것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이 구원은 여러분에게 내릴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열심히 찿고 연구하던 것입니다.

 

이 구원 : 말세의 구원.

이 구원에 대하여는 : 선지자들의 예언과 부지런함이 진리를 위한 강한 논점이 된다<총회신학>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 구약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는 기계적 도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미래에 오실 메시야에 대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세로서 부단히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였다(눅10:24).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나타내셨으며(갈8:17. 렘29:13) 성령께서 그들의 입을 통하여 메시야를 증거케 하셨다(막13:3,4. 행1:16). 그러나 그들도 메시야께서 언제, 어떠한 환경 가운데 오실지는 알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예언의 은사는 점술과는 전적으로 다르며(렘14:14. 겔13:3. 고전12:10),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 연구로 통해 더욱 분명해지며,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알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주석성경>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 ‘홀트’는 행11:23절을 인용하여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참가하게 되는 은혜를 입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와 같이 제한시킬 이유는 없다. 이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경험 전체에 부어주시는 은혜요, 앞서 말한 것도 그 한 예에 불과하다<IVF>

 

너희에게 : 이 시대에 살고 있는<총회신학>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 이 두 개의 복합어에 큰 강조점이 있다<총회신학>

임할 은혜 : 마지막 때 주시는 은혜.

은혜 : 새로운 약속의 은혜. 13절, 참된 은혜. 5:12(요1:17과 비교) <총회신학>

예언(豫言) :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나타날 일을 말함<한영해설성경>.

예언하던 선지자 : 시대별로 예언하던 참된 종.

연구(硏究) :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하여 조사하고 생각함<영한해설성경>.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 신약시대에 완전히 계시될 구원에 대하여 선지자들이 깊은 관심으로 연구했음을 말한다<큰성경>.

부지런히 살펴서 : 게으르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찿고 준비한 자.

 

벧전1:10,11 :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얼마나 알았나?

비록 구약의 선지자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에 관해 미리 증언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메시야에 관한 많은 부분들이 그들에게 신비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더 많이 알기를 원했지만, 계시의 한계로 더 많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메시야가 직접 오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이전의 구약의 선지자들이 알았던 것보다 메시야에 관해 훨씬 많이, 또 뚜렷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QA성경>.

 

벧전1:10-12 : 예언자들과 천사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던 것이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계시되었다. 하느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증거의 절정을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구원 계획을 실천하셨다. 이 사실은 성령의 충동을 받아 복음을 설파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선포된 커다란 신비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계획을 깨닫게 해 주는 식별력(가려내는 능력)을 주신다<공동번역성경>

 

벧전1: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벧전1:13-21 : 왜 성도가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는가?

첫째 동기는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과 성도가 허락 받은 ‘복된 소망’ 때문이다. (요일3:1-3).

둘째 동기는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자녀는 곧 아버지의 성품(특성)을 닮는 법이다.

셋째는 거룩한 생활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레11:44. 19:2. 20: 7).

넷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시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지불하신 값’을 생각해 보면 거룩과 경건에 열심히 생긴다는 교훈이다.

오늘날처럼 혼탁한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별되게 드려진’(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FMA연구>.

 

이 본문(벧전1:13-21)은 거룩한 생활에 대한 그리스도교 법을 제시한다. 그리스도 신자는 회개와 세례를 통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새로운 생활은, 일련의 동기로 말미암아, 즉 자기를 믿음으로 불러 주신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야 하고, 각 사람이 자기 행실대로 심판을 받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귀중한 속량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거룩해지려는 끊임 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분위기는 끊임 없는 회개로서 제시되고 있다. 즉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상과 욕정의 노예살이로 부터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함께 모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 인간 차별과 무시와 천대와 심지어 박해까지 당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새로운 가족은 그들이 집안에 있음을 느끼고 적의에 찬 분위기에 맞설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공동번역성경>

 

벧전1:13-2:10 :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산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산 소망에 합당한 생활을 권면하고 있다<빅파워성경>.

성결에의 권면.

1) 구속 받으신 자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1:13-21)

베드로는 여기까지 가르쳐온 바를 실제적 의미로 화제를 바꾼다. 전술한 바를 고려하면서 ‘그러므로’ 저들에게 깨끗한 생활을 하도록 권면한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부과 받은 책무이다. 속죄의 최고의 목적은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데 있다.

사도께서 기록하여 보내는 것은 저들이 이해하며, 이해를 동반하는 신앙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다(고전14:20. 엡1:18). 순례자의 기질은 근신이다(4:7. 5:8). 확실히 술은 저들에게 있어서 강한 유혹이었으나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라는 권면은 금주 이상의 것, ‘마음의 생각과 행동의 성실함과 조심을 의미한다,

선한 일에 가납되는 자제심을 발동하여 균형이 잡힌 견실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도중에 곤란에 부딪혔을 때 순례자의 힘은 ‘바랄지어다’이다. 베드로는 이전에 일한 산 소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부여 해 주신 은혜를 바라고 기대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2) 영적 성장의 필요(1:22-2:3)

3) 신령한 집으로써의 교회(2:4-10) <IVF>

 

벧전1: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1:15,16 : 어떻게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가?

‘거룩’의 기본 개념은 ‘분리’이다. 모든 죄 된 것들로부터 ‘분리’된 상태가 곧 거룩이다. 하나님은 이 같은 상태에 계시므로, 그분은 온전히 거룩하시다. 또한 오늘날 우리들이 ‘거룩한 무리’ 곧 ‘성도’인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분리시켜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도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온전한 거룩함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최대한 거룩해져야 한다. 타락한 세상과 불신자들의 죄 된 상태로부터 최대한 분리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거룩해질 수 있다<QA성경>.

 

벧전1:16「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진리의 말씀 받은 자는 거룩하게 생활하라. 깨어있는 자라고하면서 벧전1;14절 말씀을 따라가면 사망에 길로 간다. 행실로 죽은 자를 알 수 있다. 선지자 자손이라 하면서 믿음의 후손을 만들지 않고 있다. 마지막 때가 닥치는데 생명을 물려주는 자 하나님이 큰 자라고 한다.

 

벧전1: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망령된(마티이오스) : 어떤 생각이나 목적 없이 행함으로 헛된 것에 마음을 쏟는 것을 말함. ‘무익한’. ‘쓸모 없는’의 뜻이다. 어떤 생각이나 목적 없이 행함으로 헛된 것에 마음을 쏟는 것을 말함이다<큰성경>.

인생의 헛된 과정은 시간이 다 흘러 갔을 때 열매도 남기지 아니한다<총회신학>

 

망령된 행실 : 공허한 습관에 밀려서 목적도 방향도 없는 생활을 말한다<IVF>

구속(救贖) : 여기서 구속의 의미는 첫째,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이요, 둘째는 죄의 댓가를 지불했다는 뜻이다. 구속의 결과는 “죄에 대한 용서”(골1:4)와 “칭의”(롬3:24)이다<한영해설성경>.

구속된(뤼트로오) : ‘속전하다’. ‘해방시키다’의 뜻. 노비나 노예의 일정한 몸값을 지불하여 자유를 허락함을 의미한다<큰성경>.

 

벧전1:20「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표준새번역성경 : 이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예정되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현대인의성경 :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미리 그리스도를 선택하시고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공동번역성경 : 하느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그분을 세상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니 : 속죄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일부였다. 때가 차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를 없이 하시려고 현현하셨다. 다른 번역에는 ‘너희를 위하여’라고 한 점에 주의하라.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저자는 하나님의 속죄의 계획의 초점을 독자에게 맞추었다’ <IVF>

 

이 말세 :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이 말세이다(행2:17. 약5:3. 벧후3:3)<빅파워성경>.

 

벧전1:21「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그를 인하여 : 즉 그리스도를 인하여. 그의 부활은 믿음과 소망의 근거와 능력이 된다<총회신학>

믿는 : 그 나타나심의 능력으로<총회신학>

믿음(피스티스) : ‘진실한’. ‘믿을 만한’의 뜻. 타인에 대해서나 약속에 대해 오래도록 꾸준하게 충실함. 특히 신의 성실을 말함<큰성경>.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나타내신 목적이다. 이 편지에서 신앙과 소망이 얼마나 밀접한 것인가를 주의하라<IVF>

믿음과 소망이 : 이 두 가지는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나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적 관점에서는 다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생겨지나 소망은 그의 영광 받으심에서 생겨난다) <총회신학>

하나님께 : 그분에게만(3:5절 참조).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시고 우리를 위한 닻을 예비해 주셨다(히6:19. 롬8:34). 반면에, 그리스도 밖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텐데 우리는 지금 분명히 믿고 바라게 됐다<총회신학>

 

벧전1: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케 하여 : 주석자 가운데는 이 곳을 세례의 가르침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새로운 회심자는 복음 진리에 따라 세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여 진다고 하지만 이 편지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부활절에 읽기 위하여 기록된 세례 설교로서의 성격을 가졌다고 하면 거기서 그러한 언급이 있는지도 모른다(3:21). 그러나 진리라는 말씀은 그것을 믿고 거기에 대하여 순종할 때에 영혼을 거룩하게 하는 복음 전체의 동의어로도 받아진다. 이 거룩은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22)로 나타난다. 거룩한 생활과 이 진리에 대한 순종을 실제로 행동하는 때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된다(요4:7. 11:20). 이렇게 말하는 사랑은 뜨거운 사랑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헬라어 원문은 ‘전력을 기울인다. 닻을 바다 밑에 깊숙히 뻗히듯이 형제에게 손을 뻗힌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또한 ‘청결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마음이 청결하고서야 비로소 동기도 깨끗할 수 있기 때문이다<IVF>

 

진리를 :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임<총회신학>

성령을 통하여 : (개역성경은 생략). 성령은 순종과 깨끗함을 주신다(1:2절과 비교) 개역성경은 생략)

순종함으로 : 이것은 사랑이 결합되어 있는 믿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깨끗함을 믿음의 결과로 돌리기 때문이다(행15:9절과 비교) <총회신학>

거짓이 없이 : 진리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2:1,2절과 비교<총회신학>

깨끗하게 하여 : 구약에서 주로 제사장과 백성의 결례에 사용되던 말로(민8:21. 대상15:12) 여기서는 성도의 성결한 삶을 가리킨다. (은밀한 권면의 말임. 그것들을 깨끗하게 한다. 사실로 가장하고 있다) <총회신학>

 

벧전1:22-2:3 : 영적 성장의 필요

23절에서 베드로는 재차 ‘거듭난 것’에 돌아간다. 신자들을 초자연적으로 ‘새로 거듭난 자’로 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것은 사용되는 동안 없어지거나 썩어져 없어지는 도구이거나 의식적 상징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 원리를 따라 사는 것이며 그런 까닭에 썩지 않는 것이다.

1:24,25절에는 사40:6,8절을 인용하였는데 이것은 인간이 제아무리 하려 해도 무상한 인간의 목숨이고 일절 인간적인 사물이며, 영원히 살며 영원히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과를 대비시키고 있다.

사도께서는 다시 거룩한 생활의 특색을 나타내어 그 중에 네 가지 비유를 들어서 그리스도인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갓난아이들과 같이 신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시고 은혜 가운데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저들은 하늘나라 집의 ‘산돌’이며, 그리스도는 그 집의 ‘모퉁이 돌’인 것이다. 저는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신령한 제사장’인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 곧 구약에 있어서 이스라엘에게 부여하였던 여러 가지 영예로운 칭호를 이제는 받은바 된 참된 이스라엘인 것이다.

‘그러므로’란 말로 저자는 이전에 ‘새로 거듭난 자’들의 특권과 소유물에 관하여 말씀한 일에 대하여 생각나게 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들의 지위와 저들이 시작하는 생활에 관하여 몇 가지 실제적인 면을 나타내고 있다. 저들은 모든 ‘악의’ 이교 세계의 일절 악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말, ‘모든 궤휼’(거짓), ‘외식’(예를 들면 정치적인 동기로 교회에 가입하려는 유혹), ‘시기’(사도 사이에서도 있었던 종교적 사업의 해독. 눅22:24이하). 시기로 결실하는 ‘모든 비방하는 일’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은 모두 다 영의 죄이므로 성결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악한 일’이란 헬라어에서 명예훼손이 되는 비난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공공연한 입의 악독보다 오히려 습관적 중상으로 비난되는 말이었다. 옷을 벗어버리듯이 이러한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엡4:22. 골3:9. 고후4:2).

버린다는 말은 초대교회 생활과 교훈 중에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 이러한 장애가 제거될 때 성장이 당연히 기대된다. 저들은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였으므로 베드로는 저들에게 영적 성장을 위하여 필요한 영적 양식을 젖 먹는 아이처럼 사모하여 구할 것을 권면하였다. 영적 영양을 ‘사모하라’는 헬라어는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순전한 젖을 말하고 있다<IVF>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새로운 삶이 솟아나는 샘이다. 이 말씀은 예수 안에서 절정에 다다른 구약의 계시와 그 계시 전체를 종합하는 복음의 선포를 아우른다. 복음의 핵심은 아버지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당신 아들 예수의 생명을 온통 내어 줌으로써 드러내 보이시는 사랑의 계시이다. 이 사랑 앞에서 거룩해진다는 것은 서로 사랑의 체험에 온통 자기 자신을 넘겨주는 것을 뜻한다<공동번역성경>

 

벧전1:23「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표준새번역성경 :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가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 여러분이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이며 영원히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공동번역성경 : 여러분은 새로 난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썩어 없어질 씨앗에서 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앗 곧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났습니다.

 

썩어질 씨’와 ‘썩지 아니할 씨’는 각각 무얼 의미하는가?

썩지 아니할 씨는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한 것이다. 그 말씀이 사람의 영혼에 심겨질 때, 그는 영원히 죽지 않을 거듭나는 영적 출생 곧 중생(重生)을 경험하는 것이다. 반면, ‘썩어질 씨’는 ‘육적 출생’에 대한 비유이다. 모태에서 태어나는 육신은 잠시 후면 썩어 흙으로 돌아갈 운명인 것이다<QA성경>.

 

너희가 거듭난 것 : 그리스도인의 중생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으로 이루어진다(요3:5. 딛3:5)<빅파워성경>.

 

거듭난 것이 : 이렇게 해서 형제가 되는 것이다. 씨. 하나님의 말씀이 그 씨앗이고 말씀 선포는 씨 뿌리는 것임<총회신학>

 

썩지 아니할 씨 : 항상 살아 있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큰성경>.

살아있고 항상 있는 : 말씀과 연결됨. 25절 참조. 칼빈 등이 해석하듯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말씀과 연결된다. 복음은 썩지 않을 열매를 맺으므로 죽은 일이 아니다. 복음 그 자체가 썩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말씀은 능력으로 가득 차 있다<총회신학>

 

벧전1:23-25 : 성도는 무엇으로 거듭났는가?

‘썩지 아니할 씨’ 곧 하나님의 ‘살아’있고 ‘영원히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25절에서는 바로 이것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말한다. 한편 성도의 거듭남에 대해 위와 같은 용어들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성도들이 누리는 ‘거듭남의 삶’의 확실성과 영원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확실하고 영원한 중생의 삶을 허락하셨고 또한 보장하고 게시니 더 이상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거듭난 자’답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FMA연구>.

 

벧전1: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모든 육체는 : 사40:6, 89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육체는 즉 옛 조상으로부터 받은 인간성을 지칭한다<총회신학>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 시간의 파괴력 앞에는 항거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렇지만 살아 있으면서 목숨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자로 말미암아 저들에게 전해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의 성업에 따른 복음 때문이다<IVF>

 

영광이 : 인간의 지혜, 능력, 부, 의를 말한다<총회신학>

마르고 : 뿌리로부터<총회신학>

풀은 : 즉, 육체는<총회신학>

꽃은 : 즉, 그 영광은<총회신학>

 

벧전1: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다

벧전2:2「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3: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정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후3: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유다서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유1:20-23「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요한 계시록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

계7:10「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19:1「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구원받은 자는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가 비(非) 진리(眞理)로 가면 버림을 받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가롯 유다와 같이 믿지 않으면 버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역사 하시는 것을 보고 믿으면 표적(은사)이 따릅니다. 구원은 육신의 생명이 있을 때 평생에 한번 밖에 없습니다. 구원은 일생에 단 한번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됩니다. 평생에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구원은 두 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단회적입니다. 일생에 단 한번뿐입니다. 구원은 먼저 육신이 있어야 합니다. 육이 있는 동안에 마음으로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믿다가 안 믿는 자가 곧 탕자(蕩子)입니다. 그렇다고 다시 믿는 다고 해서 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탕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 즉 한번 구원을 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을 말합니다. 하루를 하나님을 떠나 살면 하루의 탕자가 됩니다. 자녀가 되었으면 말씀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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