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 (누가복음 23장 50~24장 8)

열려라 에바다 2024. 4. 1. 07:59

우리는 주일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장사(葬事)”라는 한자에서 “장(葬)”은 “장사지낼 장(葬)”입니다. “죽은 사람을 무덤에 놓는 일”을 “장사(葬事)”라고 합니다(룩 23:53). 예수님께서 장사되셨다는 말은 죽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놓이셨다는 말입니다.

루카복음에 몇 사람이 예수님의 장사 사건의 증인들로 기록되었는데, “요셉”이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1. 예수님께서 아무도 장사되지 않은 무덤에 놓였습니다.

 

루카복음 23장 50~54절에 “의회원인 이름에 요셉인 사람이 있으며. 이 사람은 아리마대에서부터며 그가 그 하나님의 그 왕국을 기다린지라. 이가 그 빌라도에게 접근하였으며 그가 그 예수님의 몸을 요구하였으며. 그가 그를 아직 아무도 놓이지 않은 바의 바위에 깎아낸 무덤 안에 놓고. 준비의 날이고 안식일이 날이 새었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고 있던 자로 묘사됩니다(룩 23:51).1)

요셉은 그 빌라도 총독에 접근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고, 빌라도는 예수님의 시체를 요셉에게 주도록 허락하였습니다(룩 23:52).

이것은 예수님이 물리적인 측면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2)

요셉은 예수님을 깎아낸 무덤 안에 놓았습니다(룩 23:53).3)

요셉은 예수님을 아직 아무도 장사한 일이 없는 무덤에다 놓았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죽으면 묻히려고 만든 새 무덤에다 예수님을 놓았습니다.

이날은 준비의 날이고, 안식일(安息日)이 날이 새었습니다(룩 23:54). 안식일이 거의 되었고(개역)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새 번역).

“안식일(安息日)”이라는 한자에서 “식(息)”은 “숨 쉴 식(息)” 자입니다. “편안하게 숨 쉬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6일 동안 만드셨으며 마지막 7일째는 쉬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중에 7일째에 편안하게 숨 쉬고 쉬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2. 여자들이 무덤에 예수님의 몸이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루카복음 23장 55~56절에 “갈릴리에서 함께 온 여자들이 뒤따랐고, 그 무덤과 그의 몸이 놓음을 받은 것과 같이(how) 바라보았으나. 돌아간 그녀들이 향기들과 향유들을 준비하고 그 안식일을 쉰지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갈릴리에서 그에게 함께 온 그 여자들이 뒤따랐으며 그 무덤과 어떻게(how) 그의 몸이 놓인 것을 바라보았습니다(룩 23:55). 여자들은 예수님의 몸이 어디에 어떻게 장사되는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 여자들이 뒤따랐고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곳을 확인하였습니다.4)

그녀들이 돌아가서 향기들과 향유들을 준비하였고 안식일을 쉬었는데 “안식일”은 “편안하게 숨 쉬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룩 23:56).

이 여인들은 안식일 전에 그것들을 준비하고 안식일을 쉬었습니다.5) 초기 크리스트교 공동체가 유대 율법에 충실한 사실이 언급됩니다.6)

루카복음 24장 1절에 “그러나 그 안식일들의 그 하나에, 깊은 새벽에, 무덤 근처에 그녀들이 준비한 바의 향기들을 가져온 그녀들이 왔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부활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 요소는 ‘빈 무덤’입니다.7)

“깊은 새벽”은 “이른 새벽”이나 “이른 아침”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데, 햇빛이 처음 비치는 시간을 뜻합니다.8)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기들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갑니다.9) 일요일 아침이 되자 여자들이 일찍 무덤을 찾아갔습니다(마 28:1).10)

루카복음에는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도착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여자들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운 깊은 새벽에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11)

그녀들이 무덤에서부터 굴림을 받은 돌을 발견하였습니다(룩 24:2).

그녀들은 “누가 그 돌을 그 무덤에서부터 굴릴 것인가?”라고 하였는데 그녀들은 그 무덤에서부터 굴림을 받은 그 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녀들이 들어간 때 주 예수의 몸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룩 24:3).

여자들은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12)

그리고 그것이 이것에 관하여 그녀들이 어쩔 줄 모르는 때에 되었으며 보라 빛나는 의복 안에 두 남자가 그녀들에게 곁에 섰습니다(룩 24:4).

그러나 그녀들이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 얼굴들을 그 땅 안으로 숙였고 그들이 말하였기를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들과 함께 찾느냐?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아니하나 일으킴을 받으셨노라, 그가 갈릴리에서 계시던 그때 너희에게 이야기하신 것과 같이 기억하라. 인자가 십자가에 달리고 셋째 날에 일어나리라라고 말씀하셨노라”라고 하였습니다(룩 24:5~7).

두 남자로 나타난 두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왜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들과 함께 찾느냐?”라고 묻습니다(룩 24:5).

여자들은 생명에 속한 것을 죽음에 속한 곳에서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찾으라”라는 말씀을 붙들고서 헛된 것들을 찾습니다(룩 11:9). 찾으면 발견한다고 말씀하셨지만 헛된 곳에서 찾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을 죽은 자들과 함께 찾기를 기대하여서는 안 되는데 많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화려한 교회당에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강남의 3천억짜리 예배당에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모임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무덤처럼 생명 없는 건물에서 예수님을 찾으려는 노력은 헛된 일입니다.

존 록펠러의 형식주의적 십일조에서는 참 생명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참 크리스트교는 형식이 아니라 영(spirit)입니다.

성령(Spirit)으로 영(spirit)이 거듭난 자만이 생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죽은 형식에서 생명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좋은 돌과 봉헌물로 꾸민 건물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물을 교회로 생각하고 건물에 정신을 쏟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예수님이 거주하실 아름다운 성전으로 잘 가꾸어야 합니다.

보이는 건물을 만든 것을 업적으로 생각하고 자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든 것을 헛된 “우상”이라고 하십니다. 보이는 형상을 만드는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0:4).

건물 만드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헛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정신 팔릴 때 영(spirit)의 문제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 우리에게 참된 예배를 할 수 있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산 안에 아니고 예루살렘 안에 아니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는 것을 믿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4:21).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할 때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배하는 자가 아버지께 영(spirit)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지금 왔는데 아버지께 영(spirit)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바른 예배입니다(요 4:23).

(spirit)으로” 예배하는 것은 성령으로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13) 사람의 영(spirit) 안에 성령(Spirit)께서 예배할 수 있게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물이 아니라, 영(spirit)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영(spirit)으로 예배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14) 나이를 먹을수록 사나워지지 아니하고 낮은 영(spirit)이 되어야 합니다.

이 여자들은 무덤에 가서 예수님을 찾으면서 발견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들은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없는 것은, 그런 기도에 응답 약속이 없기 때문입니다.15)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들과 함께 찾을 때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기도에 죽은 것들을 찾는다면 응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 안에 있지 않고, 일으킴을 받으셨습니다(룩 24:6). 무덤처럼 죽은 심령은 예수님께서 그 안에 계시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 죽은 세상 정신, 바벨론 제국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안에는 예수님이 거처할 여지(餘地)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 사람의 마음 문 근처에 서서 두드리시는 것이지 이미 그 사람에게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계 3:20).

우리의 마음이 죽은 이 세상의 정신을 품은 무덤과 같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age)에 같은 모양이 되지 않도록 하나, 그 정신(mind)에 새롭게 함에 의해 변형시킴을 받아야 합니다(롬 12:2).

바벨론 정신, 세상의 정신은 높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 일에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하늘까지 닿는 건물을 지어 자기 이름을 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포장합니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찬란하게 지은 건물은 성전이 아니라 무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무덤 안에 머물러 계실 수 없으십니다.

성령님께서 떠나신 곳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떠나게 되고 건물만 남고, 이런 휘황찬란한 건물들은 팔려서 술 마시고 춤추는 술집으로 쓰입니다. 이러한 건물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모두가 불타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휘황찬란한 건물을 짓는 일에 열을 올리지 아니하고, 아직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예수님이 거할 성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보다는 보이지 아니하는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이 세상 바벨론 정신에 물들어서 돌이키지 못하게 되기 전에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거주하는 무덤에서 머무르면 안 됩니다. 우리가 무덤에 거하며 예수님을 찾는다면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비싼 향기들과 향유들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섬길 때 절대 합당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준비하여 드려도, ‘합당하지 않은 섬김’이 있습니다.16) 죽은 건물을 위한 값비싼 봉헌물과 헌금들은 합당하지 않은 섬김입니다.

우리의 봉헌물과 헌금은 무덤을 꾸미는 일에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봉헌물과 헌금은 영혼들은 살리는 일에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눈에 욕망 바벨탑을 쌓는 일에 얼마나 많은 돈을 바쳐 왔는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무덤을 꾸미는 일에 돈을 낭비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 계시지 아니하나, 일으킴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아니하는 빈 무덤에다가 돈을 바치는 것은 낭비입니다.

사람들은 빈 무덤을 위해 돈을 바치면서 교회를 위한다고 착각합니다. 우리의 봉헌물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위해 사용되어야 가치 있습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쌓는 일을 위해 살면 그는 육의 사람입니다. 영의 사람은 보이는 업적을 쌓고서 자랑하는 일에 몰두하지 아니합니다.

바벨탑처럼 좋은 건물을 짓고 자랑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육의 사람의 관심사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과 자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 일을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섬김으로 착각합니다. 사람의 손으로는 천하로도 부족한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지 못합니다.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세상으로 좇아 온 것입니다(요일 2:16). 이런 목적인데도 교회를 위한다고 착각하면서 스스로 속으면 안 됩니다. 육체의 정욕을 위한 일을 교회를 위한다고 착각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의 죽은 몸을 위해 봉헌하고 섬김에 열정을 가졌는데, 우리는 이런 죽은 것을 위해 섬기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면 안 됩니다.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고집스러워질 때 육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 영(the Spirit)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입니다(갈 5:22).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늘 분주하고 쉬지 못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요 14:27).

바벨론 정신으로 지은 화려한 건물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다락방 안에 함께 계십니다.

여자들이 준비한 향기들과 향유들은 ‘합당하지 않은 섬김’이었습니다. 죽은 몸을 위한 비싼 봉헌물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섬김이 ‘합당하지 않은 섬김’은 아닌지 잘 살펴야 하며, 이런 일로 주위를 피곤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필요하지 않은 물품들을 바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열심일 뿐, 예수님께는 ‘합당하지 않은 섬김’인 것입니다.

그 무덤으로 온 여자 중에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을 향하여 달려갔고 그 나머지의 남아 있던 여자들에게는 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룩 24:4). 그리고 두 천사가 그녀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룩 24:5~7).

마리아는 죽은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 좋은 일로 생각하였습니다.17) 그러나 살아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욱더 좋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의 몸에 향유를 못 바름을 슬퍼할 이유가 없으니 조만간에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18)

첫째 날은 금요일이고 둘째 날은 토요일이고 셋째 날은 일요일입니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는데 만 삼 일이 지난 것이 아니고 죽은 날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을 뜻합니다. 만으로는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2일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향기들과 향유들은 필요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째 된 때에 그의 몸은 썩어서 나쁜 냄새가 났지만, 예수님의 몸은 썩지 않고 부활하여서 나쁜 냄새가 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이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릴 신자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1) Darrell L. Bock, 『BECNT 누가복음 2』, BECNT 성경주석, 신지철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1335.

2) Bock, 『BECNT 누가복음 2』, 1336.

3) Bock, 『BECNT 누가복음 2』, 1337.

4) Bock, 『BECNT 누가복음 2』, 1339.

5) Bock, 『BECNT 누가복음 2』, 1341.

6) John Nolland, 『누가복음 18:35-24:53』, WBC 성경주석 35하, 김경진 옮김 (서울: 솔로몬, 2005), 532.

7) Bock, 『BECNT 누가복음 2』, 1345.

8) Nolland, 『누가복음 18:35-24:53』, WBC 성경주석, 568.

9) Bock, 『BECNT 누가복음 2』, 1351.

10) James R. Edwards, 『PNTC 누가복음』, PNTC 주석, 강대훈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920.

11) Edwards, 『PNTC 누가복음』, 922.

12) Edwards, 『PNTC 누가복음』, 923.

13) Gary M. Burge, 『요한복음』, NIV 적용주석, 김병국 옮김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10), 190.

14) James Boice, 『요한복음 강해 Ⅰ』, 서문강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0), 465.

15) C. H. Spurgeon, 『부활절 메시지』, 이중재 옮김 (서울: CLC, 2017), 163.

16) C. H. Spurgeon, 『누가복음Ⅱ』, 스펄전 설교전집, 고성대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13), 929.

17) Spurgeon, 『부활절 메시지』, 164.

18) Spurgeon, 『부활절 메시지』, 165.

 

 

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