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요한복음 서론

열려라 에바다 2024. 4. 4. 08:12

요한복음 서론

'메릴 테니'(Merrill Tenney)는 요한복음을 이르러 '성경 4복음서 중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가장 가치 있는 복음'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과는 다른 독자적 노선을 가진 특징적 요소들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공관복음에서와는 좀 다른 서술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비유에 관한 기사들이 거의 없으며, 이적 기사도 몇몇 개만을 기록하고 있다. 또 공관복음서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을 주로 말하고 있는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의 의미와 예수와 특정한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기독론을 중심한 여러 신학적 주제들을 개념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흔히 제4복음서로 불리는 본서는 신약성경의 그 어떤 책보다도 초기 기독교 사상에 더욱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초대교회 교부들이 주장하듯이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그 사도적 권위를 부여받았고 어거스틴 이전까지는 초기 기독교의 신학의 중심이었다. 근대 이후로 들어오면서 이 복음서는 교의적 동기로 인해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주된 주제가 공관복음서와의 관계 문제였다. 왜냐하면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현저한 내용적 차이점들로 인하여 요한복음의 진정성이 의문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요한복음의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과 특징적인 주제들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학문적인 고찰은 어렵겠으나 그래도 독자들이 요한복음의 전체적 주제와 그 신학 등 중요한 얼개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제1부 역사적 배경들

 

   Ⅰ. 저자

 

     1. 전통적인 견해

 

요한복음의 저자 문제에 있어서 전통적인 견해는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요한이 그 저자라는 주장이다. '웨스트코트'(Westcott)라는 학자는 이에 대해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팔레스틴에 거하는 유대인인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직접 목격한 자로서 사도 가운데 하나인 요한'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해 밑받침되는데, 이에 대해서 '이레니우스'(Irenaeus)는 '그 후 예수의 품에 기댔던 주님의 제자 요한이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친히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전승은 저자를 '사랑하는 제자'와 동일시하여 저자가 셈족 언어와 팔레스틴 지리에 정통해 있고, 공관복음의 내용을 때때로 수정 보충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본서의 저자가 세베대의 아들이며, 예수의 제자인 요한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통적 견해는 성경 본문 자체의 내용에 의해서 더욱더 분명해진다. 첫째로 요한복음이 헬라어로 쓰여졌지만 저자는 히브리적 사고방식에 퍽이나 익숙해 있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본문에는 히브리어와 아람어 단어들이 꽤 많이 사용되었고, 아울러 그에 대한 약간의 설명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저자는 팔레스틴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 근교에 친척을 가지고 있었고,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영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참조, 요 1:44; 2:1; 4:5; 6:21). 셋째로 저자는 자신이 기록한 기사들의 목격자이라는 여러 증거가 있다. 그는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1:14),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19:35) 등의 구절에서 그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또 이밖에도 가나 혼인 잔치의 항아리 수, 예수의 재판에 대한 세부적 설명 등으로 우리는 저자가 직접 본 목격담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근거로 인해 전통적인 전승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의 초기 사역 때부터 함께 다니던 제자 요한이라고 추정한다.

 

   2. 진보적인 견해

 

18세까지만 해도 세베대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이 이 복음서의 저자라고 생각해왔으나, 최근에 들어오면서 여러 방면에서 많은 반론이 야기되어 왔다. 이들 대부분에 의하면 요한복음의 저자가 제자인 요한이 아니라, 무명의 한 기독교인이며, 또 요한복음이 한 개인의 저서가 아니라 어떤 그룹이나 신학적인 학파에 의해서 공동으로 저술된 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사랑하는 제자를 본서의 저자라고 언급한 요 21:24는 본래의 요한복음이 아니라 후대에 첨가한 내용이고 세배대의 아들 요한을 그 '사랑하는 제자'로 간주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시골의 어부 출신인 그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과 알고 있는 사이라는 사실이 의아하며, 사도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와 일찍 함께 순교했기 때문에 1세기 말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참조, 행 12:2).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요한복음은 '사랑하는 제자'의 기록과 구전을 기초로 작성되었고, 후대의 편집자가 여러 장을 보충하여 첨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는 약간의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신빈성과 타당성이 희박하다고 생각되어진다.

 

   Ⅱ. 기록연대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의 기록 연대는 A.D. 40년에서부터 A.D. 140년대, 혹은 그 이후까지로 다양하게 추정되어 왔다. 어떤 학자는 요한복음에 영지주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 저작 시기를 영지주의가 한창 성행했던 2세기 중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 18:33-35, 37, 38의 파피루스가 이집트에서 발견됨으로 말미암아 저작 연대가 비교적 확실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파피루스의 기록 연대가 A.D. 115-125년경이므로 자연 요한복음 원본의 기록 연대는 그 이전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본문의 9:22; 12:42; 16:2 등에 나타난 기독교인들의 추방이 A.D. 90년경에 있었던 가말리엘 Ⅱ세의 조치임이 확인되어 결국 요한복음의 기록 시기는 A.D. 90년경에서 1세기 앞에 이른다고 생각된다. 큄멜(Kuemmel)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요한복음이 A.D. 1세기의 마지막 1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Ⅲ. 기록 목적

 

요한복음을 기록한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모든 사람은 오직 그를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신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복음서를 기록한 누가복음과는 대조적으로 불신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태가 유대인을 위하여서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는지를 기록하였고, 누가나 마가는 비유대계 기독교인을 의식하고 저술한 반면에 요한은 빛과 생명, 떡과 물, 진리와 비진리 등과 같은 보편적 개념들을 복음의 조명 아래에서 투영시킴으로써 주로 비신자들을 향하여 그의 복음서를 쓰고 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각 학자들은 설명한다.

 

   1. '판 운니크'(W. C. Van Unnik)의 견해

 

 '판 운니크'(Van Unnik)는 요한복음이 주로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을 위해서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팔레스틴 밖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인간을 구원하실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함으로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선교적 목적의 책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요한의 메시아관이 바울이나 아볼로 등 디아스포라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전도자들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한다(참조, 행 13:26; 17:2; 18:5, 25).

 

   2. '알란 리차드슨'(A. Richardson)의 견해

 

그는 요한복음의 저작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요한은 색다른 별개의 복음서를 의도하고 그의 복음서를 저술한 것이 아니라, 공관복음서를 보충하기 위해서 그의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상 어떤 의미에서는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전승을 근거로 한 오랜 숙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의 목적은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려는데 있지 않고, 그 증거가 배척되거나 불분명한 문제들을 명백히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리려고 썼다기보다는 독자들을 실질적인 신앙의 결단에 직면시키려는 의도에서 썼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신자가 아닌 세상 사람들이 복음과 삶의 문제를 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어떻게 실질적인 것과 연관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깊게 부각시킨다. 따라서 그는 그런 문제들을 강조하면서 세상에서 몸소 사셨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독생자 예수를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에서 이 책을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3. '오스카 쿨만'(O. Cullmann)의 견해

 

 '오스카 쿨만'(O. Cullmann)은 요한복음이 헬라문화의 영향을 입은 팔레스틴의 유대인을 위하여서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헬라파 기독교인과 요한복음의 내용이 공히 성전과 성전 예배에 관해 별로 열심히 없었다는 고찰에 근거한다(참조, 요 4:20-24행 7:48). 실제로 하나님의 성전에 임재하신 가시적 증거인 쉐키나(Shekinah)가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영광으로 되어진다(참조, 요 1:14; 17:1, 24). '쿨만'은 공관복음서는 히브리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반영하는 데 반해 요한복음에서는 헬라파 기독교인들이 품고 있던 생각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Ⅳ. 특징과 구조

 

     1. 특징

 

  1) 사랑의 복음

사랑은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대표적 주제다. 이는 사랑이란 용어의 사용된 빈도수가 다른 복음서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요한복음에 빈번하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특이한 사실은 성경 기록자들 중 유독 요한만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1:8)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같이 구체적인 기독교 윤리적 교훈이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 윤리의 근원적 규범이 되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 13:35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약간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사랑을 이토록 중요시하는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두 큰 계명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관복음에서는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눅 10:25)고 하였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이런 사랑의 능동적인 계명이 언급되지 않고 그 대신에 요한복음에서는 '새 계명'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참조, 요 13:34; 15:12, 17). 이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요한 기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교훈하는 큰 계명을 강조하는 대신에 '서로 사랑' 혹은 '형제 사랑'을 강조하는 새 계명을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의미로 생각해 볼 때 공관복음에서 말하는 큰 계명(The Great Commandment)이나,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새 계명(The New Commandment)은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계명은 서로 상이한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랑의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일부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요한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혹은 원수사랑 등 폭넓은 사랑 대신에 형제 사랑, 친구 사랑, 서로 사랑 등의 좁은 의미의 사랑을 말한다고 생각해 본다면 거기엔 분명히 요한이 몸담고 있었던 그 공동체의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요한이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서로 사랑, 형제 사랑, 친구 사랑 등을 강조하는 이유는 요한의 공동체가 종파적인 신앙 공동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이 종파적 공동체 내에 있는 성도들 간의 유기적인 결합과 결속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사랑을 강조한 것 같다. 또 어떤 면에서는 공관복음의 원리적 계명을 실천적, 실질적 계명으로 재 강조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2) 반 세례 요한적 경향

세례 요한을 예수와 대조해 가면서 상대화시키려는 경향은 모든 복음서에 다 나타나지만 특히 요한복음에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요한복음서의 서론 부분(참조, 요1:1-18)에서 저자는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고 단지 빛을 증거하러 온 자이고 예수는 세례 요한보다 먼저 존재해 온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의 정체를 묻는 자들에게 세례 요한 본인의 입을 통해 자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예언자도 아니며, 그저 메시아에 대한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일뿐이라고 말한다(참조, 요 1:20, 21). 그는 단지 예수가 참 빛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자일뿐이다. 그래서 '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말하면서 자기는 예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자신을 낮춘다. 이러한 진술들은 모두 세례 요한을 예수와 비교하여 철저히 상대화시키려는 저자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특이한 사실은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았다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사건에 대한 기록은 잘못하면 세례 요한의 우위성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만약에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철두철미하게 세례 요한을 한 인간으로 상대화시키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면 요한복음의 저자가 세례 요한을 이토록 상대화하려고 노력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에 대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당시 세례 요한의 종파가 초대교회와 경쟁적인 관계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세례 요한을 상대화시키면서 예수를 참되고 위대한 메시아로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3) 성령의 복음서

요한복음은 특별히 '성령'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복음서 중 유독 요한복음서에서만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참조, 요 3:5). 그리고 요한복음서만이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드릴 똑바른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가르친다. 요한에게 있어서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었다. 그래서 요한복음만이 성령에게 '보혜사'(요 14:16), 혹은 '진리의 영'(요 14:17)이라는 특수한 명칭을 붙였으며, 요한만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성령에 대한 이러한 남다른 관심과 강조로 인해서 요한복음을 '성령의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요한이 성령을 중요시하게 여겨 강조한 까닭은 요한 공동체가 초대교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종파적 공동체였기 때문에 기성의 교회와는 달리 성령을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던 이유에서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요한은 성령이 제자들을 진리에의 길로 인도하며,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성령의 본질적 역할에 대한 요한의 견해는 열광적이고 기적 중심적인 성령 이해와는 다르게 건전한 말씀과 진리로 인도하는 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며, 또 이러한 성령 이해는 기독교의 신앙이 의식주의나 건조한 형식주의로 귀착하는 것을 막아 주는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4) 반 교회적인 경향성

신약의 다른 성경들과는 달리 요한복음에는 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교회라는 어휘자체도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 생활이나 교회의 조직에 대해서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렇다고 그런 내용이 전혀 부재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 간접적인 은유로 양과 목자, 혹은 포도나무와 가지 등의 관계를 통하여 교회를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런 개념은 교회의 제도나 교회의 조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개인적이고 긴밀한 인격적 관계를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아 요한복음은 제도적인 교회 문제보다는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개인적인 관계성을 중요시하고 있다고 사료되어진다.

그밖에도 요한은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건을 기록하지도 않고 마 28:19에서와 같이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라는 명령도 없다. 그리고 성만찬에 관한 이야기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학자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근거로 요한이 교회의 의식적인 성례전 제도에 대해 반대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시에 교회 내에서도 성례전을 구원의 중요한 수단으로 착각하는 형식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에 반발하기 위해서 외적인 의식보다는 내적인 신앙, 즉 성령의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요한복음에서 열두 제자의 명단이 소개되지 않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독 요한복음에서만이 열두 제자의 이름들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요한의 사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그로 인해서 요한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구체적 사건도 기록하지 않고 있으며, 또 그들을 특별히 불러서 세상에 파송하는 부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전체적인 경향은 열두 제자란 용어가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상당히 드물게 사용된다는 점과 소위 수제자인 베드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도 잘 나타난다. 오히려 요한복음에서는 '사랑하는 제자'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베드로는 거기서 소외되어진다. 이러한 두드러진 경향은 제도권 교회의 권위주의와 형식주의를 거부하는 요한의 사상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가장 두드러진 요한의 특징적 사상은 모든 사람이 성령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5) 계시의 복음인 요한복음

다른 복음서의 중심적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인데 반해 요한복음의 중심적 메시지는 '계시자', 혹은 '계시이신 예수'이다. 때문에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공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와 같으니'란 양식의 비유적 표현을 많이 쓰는 대신 '나는 …이다'라는 표현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을 밝히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공관복음서에서는 포도원, 목자, 양들의 낱말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포도나무, 목자, 양의 문 등의 표현으로 예수 자신의 정체와 예수와 성도들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이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볼 수 없는 '나는 …이다'라는 양식을 빌어 예수를 표현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참된 메시아성과 계시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6:35).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10:9).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15:1).

예수께서는 이런 표현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구하고 찾아야 할 내용이 바로 자신임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떡과 물이다. 예수께서 자기를 가리켜 생명의 떡, 생명의 물이라고 표현했을 때, 그는 자기가 하나님 나라의 생명에 필요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께서 설명한 '나는 …이다'라는 문장들은 모두 사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또 그것들은 생명과 구원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예수의 '나는 …이다'란 양식의 표현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질문을 위한 답변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답변의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참으로 추구해야 할 것들이 관념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계시해 주는 계시의 복음이다.

 

   2. 구조

 

 우리는 이미 공관복음서의 서론에서 각 복음서들이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구조를 보유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각 복음서들은 저자의 신학적인 성향과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서 그들이 서술해 가는 관점과 구조가 현격하게 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각 책의 독창적 구조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그 책의 근본적인 의도를 알아간다는 말과 같다.

요한복음도 다른 복음서들과 전혀 상이한 고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크게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요한복음은 전체적으로 전반과 후반으로 구분되어진다. 곧 전반은 예수의 이적들과 민중을 향한 설교로 구성되어 있고, 후반은 제자들에 대한 설교와 수난 기사로 편성되어 있다. 신약 신학자 '불트만'(R. Bultmann)은 요한복음의 이중적 구조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2-12장 : 세상을 향한 영광의 계시

13-20장 : 성도를 향한 영광의 계시

불트만이 이렇게 분류하면서 1장과 21장을 뺐는데 그에게 있어서 1장은 전체의 서론이고 21장은 첨가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기본적 구조와 비슷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점으로 나눈다면 '예수의 때가 이르기 전 단계와 예수의 때가 이른 후 단계'로도 나누어 볼 수 있다. 실제로 요한복음 본문에는 '때'에 관한 서술이 많이 있는데, 이 '때'는 예수께서 죽으실 때, 또는 죽음 이후에 영광 받으실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로 전반부에서는 '때가 이르지 않았음'의 논조이고 후반에서는 '때가 이르렀다'는 논조로 결국 요한복음은 예수의 때가 이르기 전과 이른 후로 양분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동안에는 대중 속에서 공생애를 사시다가 때가 이르자 제자들에게 고별을 고하는 설교를 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다음 부활하여 아버님께로 돌아가신다.

 

2) '노만 페린'(Norman Perrin)의 설

'노만 페린'(Norman Perrin)은 요한복음의 이중 구조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요한복음의 구조를 좀더 분명하게 5부문으로 구분한다. 이는 요한복음의 전체적인 얼개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 로고스 개념과 세례 요한에 대하여(1:1-1:51)

   ? 표적에 관한 글(2:1-12:50)

   ? 마지막 설교와 교회를 위한 간구(13:1-17:26)

   ? 수난 기사(18:1-20:30)

   ? 부활하신 후의 나타나심(21:1-25)

   여기서 만약 서론과 부록격인 1장과 21장을 제외시킨다면, 요한복음은 표적에 관한 글(2-12장), 마지막 설교와 교회를 위한 간구(13-17장), 수난 기사(18-20장)로 구분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구조를 중심으로 요한복음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아래 도표와 같다 (참조, 요한복음 도표1).

 

 제2부 요한복음의 특징적 주제들

 

Ⅰ. 요한복음의 성격적 문제

 

우리는 1부 역사적 배경에서 요한복음이 요한 공동체의 특수한 여러 가지 요구와 특별한 관련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요한은 올바르고 정당한 위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작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예수 전승을 착실히 진술했기에 그 전승의 바탕 위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의 참된 모습과 실체를 들고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아울러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요한이 그의 교회 내에 산재해 있던 특정 문제들에 대해 특히 민감했다는 것과 그가 자기 상황에서 그것을 해결하려는 강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저작을 기술해 나갔다는 것이다. 요한은 이러한 저술의 전체적 맥락에서 비록 신앙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정확한 기독론점에서 뿐만 아니라 선포적 차원에서 예수 그 자체를 중심점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음서의 기록자인 요한은 당연히 복음의 해석자인 요한으로 생각되어져야 한다. 그는 저자이며, 해석자이지 둘 중 어느 하나만은 아니다. 그는 복음서를 쓰는 저자의 입장에서 복음의 원천을 이루는 예수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해석해 나가기 위해서 회중들에게(독자들에게) 신앙의 토대를 이루는 역사적 증거를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그의 시도는 넓은 견지에서 바라볼 때 선포적인 성격을 띠어야 했으며, 독자들이 그가 제시하려는 함축적 진리들에 강하게 응답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을 해석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회중에게 그 복음을 소개하며 전개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요한의 긴 설교와 교훈과 이적 기사들은 그가 처한 공동체의 실존적 상황에서 유래하며, 그들의 실존적 요구와 필요불가결한 연계를 가지고 형성해져 갔다는 사실은 요한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한복음의 저자는 단순한 신학자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목회자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요한복음서가 복음 전도적 측면에서 강조되어지는 반면에 요한의 서신들은 상당히 목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요한복음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명에의 선포라고 한다면 요한의 서신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포된 성장에의 교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요한복음서의 저작 목적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요한복음의 성격도 단순한 복음 전파의 선상을 넘어선 목회적 목적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복음서가 쓰여진 근본 동기가 서신서들이 쓰여진 동기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양자에서 목회자인 한 저자의 의도와 목적이 동일하게 특징적으로 살아나고 있다.

 

   Ⅱ. 복음서 저자로서의 요한

 

 요한 공동체의 성격이 분파적 성격을 띤다고 해서, 그리고 요한의 자료와 예수에 대한 해석이 특유한 것이라고 해서 요한이 성경 전체의 맥락과 전혀 상이한 복음서를 썼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요한은 복음서의 저자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의 저서는 신약성경 전체의 맥락과 일치한다. 그리고 복음서가 예수에 관한 초대교회의 선포를 글로 기록한 문서들이라고 생각할 때에 요한복음 기자는 다른 복음서들의 공통된 그리스도교 전승과 같은 맥을 이룬다. 따라서 그의 복음서의 해석은 공관복음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초대교회가 공유하고 있던 예수에 관한 근본적인 케리그마(Kerygma)에 기초하고 있다.

'다드'(C. H. Dodd)는 '디벨리우스'(M. Dibelius)의 견해를 좇아 신약성경의 저자들 모두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사도적 선포의 기본 전승에 의존하였다는 점을 강하게 역설하였다.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최초의 사도들은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거의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다드'는 행 2-4장까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케리그마를 하나의 모델로 제시한다. 그가 제시한 모델은 다음과 같다.

 

   ①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어지고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함(행 2:16-21).

   ② 이 예언의 성취는 독생자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졌다(행 2:22-32; 3:15).

   ③ 예수는 새 이스라엘의 메시아적 장자로 되셨다(행 2:33-36; 4:11).

   ④ 이러한 사실은 교회에 성령을 보내 주신 일에 의하여 확증되어졌다(행 2:17-21, 33, 38).

   ⑤ 예수께서는 다시 오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역사를 이루려 함이다(행 3:20, 21).

   ⑥ 그러므로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데, 그리하면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행 2:38-40; 3:19, 20).

 

 '다드'(C. H. Dodd)에 의하면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초대 사도의 설교적 전승이 대체로 신약성경 전체 구조에 걸쳐서 편만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뿐만 아니라 바울까지도 이러한 구조로 복음을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잘 살펴보면 바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 예수에 관해 전해들은 메시지를 요약하면서 쓴 내용이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케리그마 내용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성경의 예언이 예수의 생애와 죽음, 부활에서 본질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전반에 걸쳐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케리그마 전승을 주장한 다드(C. H. Dodd)의 논지는 몇 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 가장 대표적인 한 예로서 신약성경 내의 선포적 자료와 교훈적 자료 사이의 정확한 구분은 불가능한데, 이 둘은 여러 면에서 반드시 중복되기 때문이다. 이에 더 중점적으로 주목해 볼 만한 사실은 이 당시에 모든 기독교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완결된 사도적 교훈이 초대교회 안에서 존재했는가 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리그마의 핵심이 예수의 인격 및 사역에 관한 사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즉 구약의 모든 예언과 언약은 예수로 인해서 성취되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핵심으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선포 등이다. 이 모든 복음의 중심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이신 예수 안에서 말씀하셨다.

 

   Ⅲ. 요한의 케리그마

 

요한복음의 전승 자료를 독립적인 것으로 보아도 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여기서 요한의 독특한 케리그마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요한이 공관복음에 대해서 독립적이라는 사실은 그가 공관복음의 저자들에게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이 없이 자신의 작품을 저술했다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이 사실이 다른 복음서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리스도 전승의 영향권 밖에 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단 복음서를 쓰기 위하여서는 저자인 요한 자신이 예수에 관하여 깊은 이해가 있어야 했으며,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공통점이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비슷한 이유이며 요한이 마가, 혹은 누가의 전승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 우리는 요한이 자신이 입수한 전승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용하였음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만약 그의 기본적 전승이 실제로 다른 공관복음 기자들의 그것과 일치한다면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초기 전승을 이루며, 신약성격 전체의 토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케리그마의 전형을 발견하는 일이 용이할 것이다. 이제 이 주장의 허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적 설교의 중심에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결정적 개입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영원한 진리가 역사 속에 출현했으며, 급기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찾아오셨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형태의 케리그마를 발견할 수 있다. 요한은 그의 저서에서 '찾아오신다'<ejpiskevpiomai ; 에피스케피오마이>라는 어휘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방문 사상, 즉 육화 신학은 그의 저서에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그는 서론 부분에서부터 시작해서 시종 일관 육신이 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을 친밀하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쓰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이 분이 곧 하나님의 아들', 혹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라고 했다. 오로지 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를 발견할 수 있으며, 아들은 자기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하늘의 아버지를 증거한다. 그는 이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나가고 인간들 앞에서 아버지와 동등성(하나)을 주장하면서 공공연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또 예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요한은 사도행전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증거한다. 또 이와 동시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방문(역사 속에 육화)을 이해하지도 영접하지도 않았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의 실체를 보지 못했으며, 오히려 예수를 배척하고 도외시했다. 이러한 이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무런 수식어도 없이 '나는 …이다'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는 말이었다. 이런 말을 듣자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 한다. 독생자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요한의 묘사는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훨씬 근본적이다. 그의 복음서에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는데 비해 헬라인들은 오히려 그를 보기 원한다. 이스라엘로부터 이방 나라로의 복음 전파는 다른 사도와 거의 동일한 방향이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선교가 유대인을 넘어서 이방인을 지향한 것처럼 요한복음의 메시지는 무제한의 범위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요한은 두 개의 다른 배경 하에서 그의 교회에 속해 있는 히브리 성도들과 헬라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그의 저서를 집필하였다고 볼 수 있다.

 

   Ⅳ. 요한 공동체에 관한 고찰

 

     1. 요한 공동체의 기원

 

 '오스카 쿨만'(O. Cullmann)은 '요한 공동체'라는 저서에서 요한 공동체의 역사적 기원이 '비정통적 유대교'에서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쿨만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비정통적 유대교' 부류였고, 다른 하나는 '정통적 유대교' 부류였는데, 예수는 이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르침에 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쿨만은 '비정통적 유대교'를 예수 시대의 '정통적 유대교'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였지만, 이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문제성 있는 주장이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다 전쟁사'를 보면 A.D. 70년 이전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들이 모두 유대교의 종파들이었다. 따라서 A.D. 70년 이후에 바리새파가 정통성을 주장하고 주도권을 잡기 전까지는 기준이 될 만한 공통적 유대교가 없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요한 공동체의 기원이 되는 자들은 '비정통적 유대교인들'이 아니라 유대교 내에 있던 '그리스도교계 유대인들'의 소규모 그룹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우리는 요한의 공동체의 기원과 그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면서 요한 공동체가 사상적으로나 조직적인 면에서 통일성을 이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비록 같은 기원에서 함께 출발한 자들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부류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 공동체를 하나의 통일된 신앙적 공동체로 미리 산정하지 않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가면서 그 안에 존재했던 다양한 사상적 부류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 요한 공동체에 대해서 결론 내리고자 한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주장들을 하지만 지면상 본 서론에서는 대표적인 두 학자의 견해를 생각하고자 한다.

 

   (1) '마틴'(J. L. Martyn)의 견해

마틴은 요한 공동체를 연구하면서 공동체 형성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하였다.

첫째, 맨 처음 시기는 유대 전쟁 이전으로부터 A.D. 80년까지의 시기이다. 이 당시는 복음서가 완전히 형성되기 이전의 단계로서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던 시기이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예수의 이적 기사들도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자료로 사용되었다. 이 단계는 이들의 전도 활동이 전통적 율법의 타당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논쟁을 벌이지도 않았고 서로 배척하는 상태도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에 관한 설교를 듣는 자들도 유대인의 정신적 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의 요한 공동체는 유대인들의 회당 안에 별 무리 없이 머물러 있는 '기독교인 유대인'이었다.

둘째, 이 시기는 A.D. 80년 이후의 시기이다. 유대 회당 내에 있는 기독교인 유대인의 세력이 급속히 성장하자, 회당 내의 바리새파를 비롯한 당국자들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명확한 성경적 근거를 요구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회당 내에서는 이들을 찬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에 직면한 기독교인 유대인들은 회당에 남아 있으려는 자들과 아예 회당에서 분리되어서 기독교인 유대인으로서가 아니라 유대인 기독교인으로 되기를 원하는 자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회당 지도자들은 이들에 대해서 하나님 외에 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이라고 비난하면서 축출하고 박해하였다. 이제 완전히 분기점에서 확실한 결단을 요하는 시점에 서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나름대로의 새로운 기독론적 관점을 형성하게 되었다. 즉 이들은 여태까지 유대인들과의 관계에서 가졌던 사상의 연속성을 종식해 버리고 예수에 대해서 새로운 견해를 주장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예수는 '위로부터 오신 이'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로부터 배척받으시고 그를 믿은 사람조차도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은 것이다. 이로써 이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 '참 이스라엘'(1:47)인 것이다. 회당에서의 축출로 이들은 더 이상 모세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로 되었다.

셋째, 맨 마지막 시기인 이 시대에 대해서 정확한 연대기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이 시기에 요한 공동체는 유대 회당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 공동체에 대해서도 독립적으로 자신의 성격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그들은 일차적으로 회당 내에 잔존하여 있는 기독교인들을 유대인으로 간주해 버렸고, 회당을 떠나 흩어져 있는 자들에게도 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자기네들의 공동체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제는 확연한 의식을 지닌 독자적 공동체로 만인 앞에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2) '리히터'(G. Richter)의 견해

리히터는 마틴과는 다른 입장에서 요한 문서 형성에 강하게 영향을 주었던 네 가지의 신학 사상에 대해서 피력함으로써 요한 공동체의 형성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 네 가지 사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요한 공동체 내에는 왕조인 다윗 계통의 메시아 사상을 거부하고 예수를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주장하는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북부 팔레스틴, 요단 동편의 유대 회당에서 축출당한 뒤 복음서의 기초 문서를 만들었다.

둘째, 축출된 유대인 중의 일부는 예수를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는 새로운 기독론을 주장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예언적 기독론과 충동하였는데, 이들은 자기네들의 기독론을 체계화시키기 위하여 복음서의 기초 문서를 재기록하였다. 리히터는 이들이 요한복음의 기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또 요한의 공동체 내에는 예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가현설 주장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신적인 측면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를 완전히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그의 지상 생활은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둘째 견해의 사람들과 분리되어 나갔지만 계속 포교 활동을 하면서 끝까지 문제를 일으켰다.

넷째, 이들은 가현설주의자들에 반대하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가 육신(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받아들이는 수정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특이한 것은 예언적 기독론과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의 사상을 적절하게 다 받아들여 중간적 입장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을 근거로 요한 공동체에 대해서 정리를 한다면 일단 요한의 공동체가 하나의 통일된 사상적 체계를 가진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가진 여러 그룹의 구성체였고, 이들은 상당 기간의 세월을 거쳐 발전적으로 형성되면서 요한복음을 저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공동체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있었던 유대 회당 내의 소그룹으로 시작하였는데, 이들은 점차 세력을 넓혀가다가 종국에는 회당에서 축출되어서 은밀한 기독교인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명확하게 자기 정체를 나타낸 유대 기독교인이 된 자들이었다. 유대 회당국의 출교가 오히려 이들의 견고한 결속을 강하게 부추겼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들의 사상적 발전 과정을 보자면 최초에는 선지자적 메시아주의를 주장하다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는 기독론을 받아들였는데, 공동체 내의 극단적인 자들이 예수의 신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그의 인간성과 육체를 부인하는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한다. 요한 공동체는 이러한 극단적인 이론에 반대하여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시며,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임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요한복음의 형성에 관해서 문서 비평가들은 첫 단계에서 사도 요한이나 '사랑하는 제자'의 설교나 교훈을 토대로 그 공동체 내의 어느 한 사람이 초안을 작성하고 가현설의 위험에 직면한 공동체가 다시 그 초안을 반가현설의 관점에서 새로운 자료를 첨가하여 편집하였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펴본 것을 근간으로 결론적으로 살펴볼 때 요한 공동체는 유대 회당이나 다른 초대 공동체와 분리되어 있다는 의식을 스스로 지닌 배타적 종파주의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2. 요한 공동체의 사상적 특징

 

 (1) 반유대주의적 경향(Anti-Judaism)

일찍이 유대인들은 예수를 향하여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고 귀신들린 자이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거짓되고 망령된 자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며, 마귀의 자손이라고 반론하였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고 죽이려 했다고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분명히 예수와 요한 공동체의 적대자임을 역설하였다(참조, 요 5:18, 37, 45; 7:1, 19; 8:22-24,  37-59; 19:7). 요한복음 8:17에 보면 예수께서 유대인에게 '너희의 율법' 혹은 '그들의 율법'(요 15:25)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유대교로부터 출교당한 자들의 표현 방식이다.

요한복음에서 반유대적 표현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고난 기사에서이다. 예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항상 주도권을 잡았다. 잡히시던 마지막 날 밤 유대인들(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죽일 권한이 없는 줄 알면서도 예수를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끌고 갔다. 그리고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의 무죄를 말하면서 예수를 석방하려고 노력했으나(참조, 요 18:38; 19:6). 그들은 끝까지 예수는 죽어 마땅한 자이기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아우성이었다. 로마의 법은 예수를 무죄로 석방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가 여러 가지의 악행을 범했다고 모함하여 죽이기 위하여 하나님을 모독하고 가이사가 자기들의 왕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유대인들이 요한 공동체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요한복음의 이러한 반유대적 성향은 예수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기인하기보다는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하던 1세기 말경의 정황, 즉 요한 공동체가 처해있는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요한 공동체가 반 유대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고 말하는 학자들은 '바이재커'(Weizsacher), '슈나켄버그'(R. Schnachenburg), '마틴'(L. Martyn). '그래써'(E. Grasser) 등이 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강하게 대두되는 반유대적 성향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기독교가 유대교적 사회 상황과 종교적 배경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발전하고 형성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유대교 회당에서의 출교 까지 당한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에 대한 공격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은 요한 공동체의 유대교에 대한 맹공격은 요한 공동체가 원래부터 정통적 유대교와는 좀 성격이 다른 주변적 유대교 집단으로부터 태동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신학자 '오드버그'(H. Odeberg)는 유대주의를 연구하면서 요한복음을 '비주류적 유대교'와 관련시키고 있으며, '무디 스미스'(D. Moody Smith)는 요한 공동체의 문서가 '이단적 유대교'로 치우치는 선명한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피력하였다. 또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이에 대하여 '이단적 유대교' 혹은 '주변적 유대교'(marginal Judaism)라고 칭한다. 그리고 서술한 문학적 양식에 있어서도 요한복음의 여러 곳에서 유대인들을 원수로 말하고 있는 말투가 비주류의 유대교도들이 정통적 유대교들을 향해 사용하던 것과 거의 유사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요한복음의 반유대적 성향은 그들 자신이 유대교로부터 출교당한 종파였었고, 그 유대교조차도 비주류적인 종파적 형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2) 반교회적 성향

요한복음의 두드러진 특징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다른 복음서나 바울 서신에서 보여주는 교회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요한복음에는 교회 공동체 생활의 기본적 요소들, 즉 예배와 성례, 그리고 각 직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불트만'은 요한복음에서는 '특별한 교회적 관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교회의 제도나 기구에 대한 관심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고, 또 '슈바이처'(Schweizer)는 '요한복음에서는 교회의 직분이나 여러 가지 은사들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요한이 만약 교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이 있었다면 교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리가 없고 바울같이 '그리스도의 몸'이나 교회의 직분에 대해서도 기록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이런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요한은 교회나 교회 제도에 대해서 무관심했거나 별로 큰 중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요한이 교회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교회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학자는 '캐제만'(E. Kaesemann)인데, 그에 의하면 요한복음은 교회 안에서 보여지고 있는 극도로 세분되고 조직화된 제도를 향한 움직임에 대해 거부하는 반격의 책이라는 것이다. 한편 '브라운'(R. E. Brown) 같은 학자는 요한이 교회에 대해 무관심하다든지 반대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발하였다. 그에 의하면 요한이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있는 문제를 가지고 그의 입장이 이렇다 저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학자들은 요한이 교회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더 나아가서는 아예 조직화된 교회를 거부하는 입장을 시종 지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캐제만과 쿨만(O. Cullmann) 같은 사람들은 요한이 교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쿨만은 말하기를 '어떤 학자들은 요한이 교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섣불리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실제상 교회에 대한 관심은 요한이 다른 복음서 저자보다 강하다'고 했다. 이러한 견해를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요한이 반대한 것은 본질적인 교회로 교회 자체가 아니라, 조직화되고 체계화되는 교회였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요한에 있어서 교회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 '말씀 안에 있는 공동체'이었다. 따라서 요한에게 있어서 교회는 제도나 기구, 조직이나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믿는 자 개개인의 문제이며, 때문에 조직적 제도보다는 사람 안에서 실질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의지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요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심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자 개인 간의 관계였다. 신학자 '모울'(Moule)은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신약성경의 문서 중 가장 개인주의적인 특징이 강한 문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였다. 요한이 주장하는 교회론의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도 본질적인 중심점을 예수와 각 신자간의 개인적 관계(결합)이다. 그런데 여기서 각 지체의 결합을 말하는 바울의 관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도 그 강조점은 목자와 그의 양들 간의 개인적 관계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제도주의에 반대하는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요한에게 나타나는 반제도적인 태도는 그의 성령 강조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슈바이처는 '요한복음에는 어떤 특별한 사건이 없으며 단지 개인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한 하나님과 개인간의 결합만이 있을 뿐이다. 요한의 지대한 관심은 예수가 성령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각 개인 안에 임하는 것이고, 각 개인이 성령의 활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성령 외에는 어떤 사람(존재)도 신자를 가르치지도 인도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성령만이 각 신자를 진리로 인도할 뿐이다. 따라서 교회의 조직이나 제도적 기구가 불필요한 것이었다. 이 모든 논의를 결론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개인적인 관계의 강조는 요한 공동체가 제도화된 당시의 교회로부터 소외된 종파적 공동체였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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