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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1.

열려라 에바다 2024. 4. 4. 08:31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1(마11:1-19)


천향추천 0조회 224.04.04 07:12댓글


본문의 내용은 누가복음에서는 언급되나(눅7:18-35) 마가복음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내용의 대부분은 일치하나 차이점도 있다.
두 복음서에서 본 기사는 배열된 위치가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두 복음서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누가복음서에서는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고 치료하신 예수의 선지자적 사역을 강조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천국 왕으로서의 권세를 강조한다.
그래서 옥에 갇혀 있는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었다(마11:2-3).
세례 요한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다(마3:14).
요한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 하나님 아들로 안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하나님 아들로 소개하였다(마3:11).
이처럼 하나님 아들로 알고 소개하였던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라고 질문한 것이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질문은 두렵거나 믿지 못하여 한 질문이 아니다.
이는 예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흔들려서 하는 질문이다.
요한의 믿음과 확신이 흔들린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 내용이 세례 요한의 예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마11:13).
그는 모세율법 아래에서 사역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마11:11-12).
그래서 그는 예수를 다윗왕국을 재건할 하나님 아들로 기대하였다.
로마의 권세를 쫓아내고 율법의 나라를 재건할 메시야로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 내용은 모세율법과 달랐다.
당대에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성경이 말하는 바와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께 물은 것이다.


다윗왕국은 세상에 속한 하나님 나라이다.
죄가 지배하는 가나안땅에 세워져서 모세율법으로 경영된 하나님 나라이다.
따라서 율법의 나라인 다윗왕국은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참되고 온전한 뜻이 시행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세상의 질서를 따라 경영된 하나님 나라이다.
이러한 여호와의 옛 통치질서가 시행된 나라를 세례 요한은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사역은 모세율법과 달랐다.
모세율법으로 경영된 하나님 나라를 재건하는 일과는 달랐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를 예수께 보낸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고 말씀하신다(마11:5-6).
이러한 예수의 답변은 요한의 의문을 풀어주신 것이 아니다.
이는 예수 자신이 가르치고 행하시는 일을 반복한 말씀이다.
이는 자신의 증거를 확고히 하심으로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모세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긴 구약에 속한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도록 자신의 사역을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실족하지 않고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당시에 예수로 인하여 실족한 자가 누구인가?
율법 아래에서 크고 먼저 된 자들인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이 실족한 것은 예수의 사역이 모세율법과 달랐기 때문이다.
율법이 말하는 메시야 역할은 이방의 권세를 심판하고 다윗 왕조를 세상 나라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메시야의 나라는 모든 병자가 치유되고 희년이 선포되어서 지상낙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례 요한 자신은 옥에 갇혀 있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로마의 통치 아래에 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메시야라고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린 것이다.
이는 예수를 세상적인 메시야로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의 모습은 오늘날 삼박자 축복을 가르치는 자들과 같다.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의무화하고 십일조를 하면 구약성경이 약속한 복을 받는다는 가르침과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코 모세율법(구약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구약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가르쳤다면
모세율법(구약성경)과 다른 이단의 괴수로 정죄가 되어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마26:61-66).
이처럼 모세율법과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이 다르다.
이는 구약성경과 신약 성경 내용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러한 다름 때문에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까지라도 흔들린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옴으로 천국이 임하였으니 의심하지 말라고 권고하신다.
이처럼 구약에서 예언된 종말의 하나님 통치가 이미 자신을 통해서 시행되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따르는 무리에게
    “광야에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푼 요한은 선지자이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이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앞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다.”
라고 말씀하신다(마11:7-11).
예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말라기 3장 1절의 내용과 다르다.
말라기서는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다”
라고 기록한다(말3:1).
말라기서에서는 여호와께서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호칭 대신에 대치시켜서 말씀하신다.
이는 구약의 예언이 예수 자신에게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는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을 재해석하여 인용하신 내용이다.
이러한 인용 방식이 메시야 성취 인용이다.
이는 사도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개혁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은 성경의 완전 축자 영감을 말한다.
그들은 성경의 글자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영감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나 사도들은 구약성경을 액면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다.
예수나 사도들이 처한 역사적인 상황에 맞춰서 변형하여 인용한다.
이는 구약 선지자들과 예수나 사도들이 처한 구원 역사적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을 경영하는 상황에 맞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을 세우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의 완전 영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완성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성경에 대한 영감의 의미이다.
이처럼 구약에서의 모든 일과 약속은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
따라서 기록과 사실은 일치한다.


예수께서는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
라고 하신다(마11:11).
여기에서 크거나 작다는 말은 모세 언어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따라 규정하는 언약 언어이다.
율법 아래에서 크고 먼저 된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과 가까운 위치에 세워진 자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크고 먼저 된 자들이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이다.
그러나 율법 아래에서 작고 나중 된 자들은 여자와 어린아이, 세리와 창기와 같은 자들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상을 규정한 언어가 모세 언어이다.
이러한 모세 언어로 예수께서는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으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하신다.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생각 해보라.
구약의 선지자 가운데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본 자가 있던가?
세례 요한만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직접 보고 증거하였다.
그러나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큰 것은
세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종(머슴)이나
천국 백성은 모두가 하나님 아들(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들(자녀)과 종(머슴) 가운데 누가 크고 먼저 된 자이겠는가?
그래서 예수께서는 천국에서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구약에서 가장 큰 선지자이다.
그러나 그는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
이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 백성은 종(머슴)들이나 종말의 천국 백성은 하나님 아들(자녀)이다.
따라서 천국 백성은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크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이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라고 말씀하신다(마11:12-14).
이에 대하여 누가복음에서는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고 기록한다(눅7:29-30).
누가복음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백성들과 세리들은 하나님을 의롭다고 칭송하였다.
그들은 요한이 소개한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고 그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세례 요한을 부인하고
그가 증거한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지 아니함으로 천국을 빼앗겼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요한이 소개한 천국을 차지하라고 권고한다.
율법 아래에서 예수께 나아와서 천국을 차지하라는 것이다.
이는 모세의 말이 시행되던 율법 시대는 요한까지이기 때문이다.
율법의 통치에서는 침범할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
제사장이 들어가는 성전에는 백성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러한 율법 아래의 여러 장벽은 예수의 오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고 말씀하신다(마11:12).
이는 예수의 오심에서 율법 아래의 날과 땅, 사람에게 있던 여러 장벽이 사라지고,
종말의 하나님 나라는 침노를 당한다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예수께 나아오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머뭇거리지 말고 예수께 나아오라고 말씀하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천국을 침노하여 소유하라고 권면하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예수께 나아오라는 강권이다.
이는 예전처럼  구약성경이 말하는 바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나아오라는 강권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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