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거짓, 허영, 권력 예화] 가짜 이강석

열려라 에바다 2024. 5. 3. 08:27
 
[거짓, 허영, 권력 예화] 가짜 이강석 


때는 1957년, 태풍 아그네스가 영남 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8월이었지. 태풍 피해를 수습하느라 군·관·민이 안간힘을 쓰던 8월30일 경주경찰서 서장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그리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젊은 목소리의 한마디에 서장은 그만 혼이 빠지고 말았어. “아, 나 이강석인데···.”


이강석이라면, 이승만의 후계자로 승승장구하던 이기붕의 아들이었다. 이기붕은 자신의 아들을 자식 없는 이승만의 양자로 들였지. 아버지는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 아들은 대통령의 호적상 아들이니 이승만이 흡사 제왕처럼 군림하던 시절에 이기붕·이강석 부자의 권세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가히 짐작이 갈 거야.


경찰서장은 득달같이 지프를 대령해 젊은이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다방으로 달려간다. 그 다방에는 잔뜩 멋을 낸 청년 하나가 우아하게 앉아 있었지. 경찰서장의 코는 즉시 땅에 닿았어. “하아 어찌 귀하신 몸께서 홀로 오셨나이까.” 청년의 대답은 근엄했어. “하계휴가차 진해에 계시는 아버님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소. 암행시찰이니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오. 아버님께서 누설자는 엄중히 다스린다고 말씀하셨소. 수재민에게 나누어줄 쌀과 돈을 준비해야 하오.”




‘귀하신 몸’ 이강석은 ‘애국지사의 아들’이라 하여 서울대 법대에 특례로 입학했으나 서울 법대생들의 동맹휴학에 부딪혀 좌절된 바 있었어. 그는 이후 육군사관학교로 방향을 틀었다. 육사 16기로 입교했지만 관절염을 핑계로 그만두고 속성 장교 육성 코스였던 갑종 장교로 빠르게 소위 계급장을 달았어. 그 뒤 동기들이 아직 육사 3학년일 때 육군본부로 와서는 자그마치 육사 12기들과 함께 소위 생활을 한 파격의 주인공이었단다. 이런 ‘귀하신 몸’이 별안간 홀로 경주에 뜬 거야.


“내가 악질범이면 아첨한 군수는 간신도배”


땅에 닿았던 코를 겨우 거둬들인 경찰서장은 즉시 ‘귀하신 몸’을 경주 최고의 호텔로 모셨고 다음 날 모든 일정을 작파하고 그의 경주 나들이에 동참한다. 경주에서 질탕하게 놀고 경찰서장과 기념사진까지 찍은 뒤 영천으로 옮겨간 이강석은 또다시 그곳 경찰서장의 뜨거운 영접을 받은 후 경무과장이 지휘하는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동으로 행차했지. 안동에는 소식을 듣고 온 지역 유지들이 운집해 있었다. 귀하신 몸이 풍수해를 살피러 왔다는 말이 전해지자 수십만 환이 넘는 거액도 삽시간에 마련됐지. 이강석이 지나갔다는 말을 들은 인근 부대 36사단 사단장은 “여기까지 와서 나를 안 보고 가면 쓰나”라며 꽁지가 빠져라 지프차를 몰아 이강석의 뒤를 따라잡았어.
 
‘가짜 이강석’ 행세를 하던 강성병의 재판 모습.
공석인 중앙부처의 기관장 자리를 은근히 청탁하는 이도 있었고, “이번 민의원 선거에서는 이 한 몸 초개와 같이 바쳐” 자유당 당선에 힘쓰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이도 있었지. 충성을 주체할 수 없었던 어떤 이는 이강석의 방 앞에서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 귀하신 몸의 ‘고귀함’은 대구에 이르러 도지사 관저에 여장을 풀었을 때 산산조각 나고 만다. 이강석의 얼굴을 아는 데다 아들이 이강석의 동기동창이었던 도지사 이근식에 의해 정체가 탄로 난 것이지. 도지사는 눈이 휘둥그레져 이렇게 물었을 것 같구나. “누구냐 넌?”


‘귀하신 몸’의 정체는 이강석과 생김새가 제법 비슷한 강성병이라는 청년이었어. 대학 입시에 떨어진 후 무위도식하던 그가 이강석 행세를 하고 다녔고 대여섯 고을의 경찰서장과 시장·군수·유지들이 죄다 속아넘어간 거야. 강성병의 재판 날, 법원에는 일대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방청객이 무려 1000명이나 몰려든 가운데 판사가 출입하는 문 앞까지 인파가 들어차 입장하는 판사의 법복이 찢어지는 소동이 벌어졌으니까. 나이 스물둘의 청년 강성병은 거침없는 항변으로 법정을 주도한다. “이번 체험을 통해 권력의 힘이 위대한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 내가 시국적 악질범이면 나에게 아첨한 서장·군수 등은 시국적 간신도배입니다. 언젠가 서울에서 이강석이 헌병의 뺨을 치고 행패를 부리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을 보고 한번 흉내 내본 겁니다.”


강성병은 이런 말을 해서 방청객들을 빵 터지게 하기도 했다. “내가 할리우드에 태어났으면 상을 받는 건데 한국에 태어나서 벌을 받네요(〈경향신문〉 1957년 10월17일).” 신성한 법정이 폭소의 도가니가 되자 당황한 법정 경위가 이렇게 부르짖었다. “여긴 극장이 아니오.” 법정 경위의 속은 타들어갔겠으나 그의 부정은 되레 강한 긍정으로 남는다. 한 청년의 ‘페이스 피싱’에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낚여 헛춤을 추는 장관을 세상 어느 극장에서 재연할 수 있었겠니.


대통령의 양자로 세상에 거칠 것 없던 진짜 ‘귀하신 몸’의 명은 길지 못했다. 4·19 혁명 후 이강석은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뒤 자살하고 말았지. 3년 뒤인 1963년 가짜 귀하신 몸 강성병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세상사 뜻대로 안 된다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았다니 염세(厭世) 자살로 보인다. 그는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부모 형제를 등치며 살았다고 해. 어디까지나 그의 책임이다만, 강성병이 세상과 불화한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발가벗은 욕망과 위선의 끝판을 봤던 이로서 세상이 얼마나우스워 보였을까. 저승에서 만났을 엇비슷한 나이의 두 청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자못 궁금하구나.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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