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영감성 무오성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과 모세와 사무엘 등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셨다.
하나님이 보여 주심으로 드러난 것을 계시(revelation)라고 한다.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행위를 의미하며, 그런 행위 속에서 드러내지는 것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결국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자기 계시 행위이다.
계시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므로 계시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유를 충족하기 위하여 성경이 주어졌다.
성경이 기록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하여 영감(Inspiration)이란 단어가 사용된다.
성경의 영감이란 성경의 저자들이 계시를 정확히 기록할 수 있게 하고, 그 결과로서 그들이 기록한 것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의 저자들에게 미친 초자연적인 영향력을 의미한다. 계시가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영감은 그 진리의 정확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성경은 사람에 의해 기록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오류가 없다”라는 입장이다. 이것이 성경 무오설이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이 말은 신구약 성경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원천으로 하고 있다.
성경의 영감론에 대한 설명으로 두 가지를 예시한다.
(1)일반적인 4가지 분류방식
첫째, 신정통주의 이론(Neo-Orthdox Thery).
신정통주의는 20C초에 생겼으며, 부분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 신작 저작권을 무시하는데 대한 반향으로 일어난 것이다. 칼 바르트가 대표자이다. 신정통주의는 하나님이 완전히 초월적이라 생각한다.
즉 그분은 측량의 범위를 넘어서 계신 분이다. 우리는 그분이 자신을 계시하는 만큼만 알수 있다.
이 주장의 단점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부인한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최대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록했지만 역설이나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모든 성경의 증거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며 성경 자체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벧후 1:20-21).
둘째, 구술이론(Dictation Theory)
구술이론은 하나님이 인간 저자들에게 성경을 구술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어떤 개인을 택하여 말씀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정확한 단어들을 불러주셨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록하라고 주시는 것만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보수적인 기독교의 일부 분파에서 암묵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 주장의 단점은 성경의 증거를 어느 정도는 옳게 설명하지만 전체를 바르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에게 정확하게 단어의 메시지를 전해 주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렘 26:2; 계 2:1,8), 또 다른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저자들이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도록 허락하셨다(갈 1:6; 3:1; 빌 1:3,4,8).
셋째, 제한적 영감론(Limited Inspiration Theory).
제한적 영감론은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의 생각을 영감하셨으나 그들이 선택한 단어들을 반드시 영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저자들이 글을 쓰는 가운데 인도하셨으나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이러한 자유를 가졌기에 그들이 기록한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들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성경의 교리적 부분들만큼은 오류가 없게 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보장하셨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단점은 성경의 오류를 인정한 것이다.
성경은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세세한 일들에 대단한 역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로마서 5:12-21에서 바울의 주장은 아담이 역사상 존재했던 인물임을 믿을 것을 요구한다. 마태복음 12:41에서 예수님은 요나서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요나라는 이름을 가진 실존의 선지자가 실제로 니느웨에 복음을 전했다고 증거한다.
고고학적 발굴이 성경의 기록에 알려진 문제들을 종종 해결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더 많은 증거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며 성경 전체를 신뢰하는 것이 최선이다.
넷째, 완전축자 영감론(Plenary Verbal Inspiration Theory).
완전축자 영감론은 성령이 인간 저자들과 교감하여 성경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한다. 완전은 가득 또는 완성됨을 의미한다.
완전축자 영감은 하나님의 영감이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모든 성경에 미친다고 주장한다.
축자란 말은 성경의 단어들을 의미한다.
축자영감(verbal inspiration)은 하나님의 영감이 저자들이 선택한 모든 단어들까지 미쳤다는 것이다.
구술이론은 하나님이 단어들을 불러 주셨다는 것이다.
반면에 축자영감은 저자들이 다른 용어들을 선택할 수 있었고 하나님은 종종 그들에게 자신의 특성을 나타내도록 자유를 허락하셨으며, 성령께서 그 과정에 함께 하셔서 선택한 단어들이 정확히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의미를 전달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완전축자 영감론은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영감하셨다고 믿는 것이다.
이 주장은 모든 성경의 증거들을 가장 잘 아우르는 견해이다.
이 이론은 성경에 나타나는 인간적인 요소들을 인정하는 동시에 각자 다른 저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기록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성령이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이심을 인정한다.
완전축자 영감론이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의미이다.
첫째, 완전축자 영감론은 성경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에 대한 많은 통찰력을 제공하며 또한 세상과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기술하고 있다.
둘째, 완전축자 영감론은 성경이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하나님의 권위로 말씀하는 것이다.
영감의 성질
1. 기계적 영감설
성경기자의 정신활동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에서 수동적 자세로 성령께서 받아쓰도록 불러주시는 것만 기계적으로 받아 썼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필사자로써 통로에 불과했다는 견해다. 그러나 성경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각 권의 기자에 따라 독특한 문체 및 개인적인 다양한 경험들이 나타난다. 극단적 견해로 수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2. 역동적 영감설
하나님께서 성경기자에게 영감을 불어 주기는 했으나 그것은 심적, 영적 활동에 대한 고무(힘을 내도록 격려하여 용기를 북돋우는)에 불과할 뿐 성경 기록과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주장은 하나님의 영에 고무된 성경 기자들이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기존의 다양한 자료들을 배경으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성경은 어느 정도 권위는 있으나 반드시 정확 무오하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따라서 이 주장은 성경의 오류 발생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성경기록에 대한 특별영감의 영역을 인정치 않으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3. 유기적 영감설
성령께서 성경 기자들을 감동시켜 그들 각 개인의 성격, 재능, 은사, 교양, 문체 등을 유기적으로 사용하여 성경 기록에 조화를 이루게 하셨다는 주장이다. 성경 기록 당시 성령께서는 성경기자를 감동시켜 그들의 자질이 죄의 영향하에 들지 않도록 주권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조명하셨고, 기억을 새롭게 하셨으며, 심지어 용어 하나의 선택에 이르기까지도 지도하시고 간섭하셨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각 기자 개인의 문체적, 시대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것들이 모두 성령의 감독하에 유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오류에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견해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유기적 영감론을 성경 영감의 성질에 대한 정설로 삼고 있다.
영감의 범위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유기적으로 기록되었다면 다음 문제는 성령의 영감은 성경의 어느 범위까지 미치느냐 하는 문제이다.
1. 사상 영감설
목적 영감설과 일맥상토통하는 견해로 성경은 그 사상이나 목적에 있어서는 충분히 영감되었으나 구체적 용어라든가 역사적 사실의 기술 등에 있어서는 인간 기자의 선택을 따랐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이 무오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성경의 사상이나 기록 목적에만 국한되며 성경의 용어나 역사적 기술의 사실성과 정확성까지는 의미하지 않는다. 이 견해는 오류처럼 보이는 성경상의 난제를 해결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일부 보수주의 학자들도 찬동하고 있는 견해이나 결국 이 견해는 하나님의 구원 진리가 상당한 오류가 내포된 기록물을 통하여 무오하게 계시되었다는 비논리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언어는 사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사상과 불과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언어와 분리된 사상만의 영감은 있을 수 없으며 아울러 용어나 역사 서술에 있어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그것에 근거하고 있는 기독교 교리 체계의 그 완전성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겠는가!
2. 부분 영감설
성경 가운데 교리적인 부분, 도덕적인 부분, 신약적인 부분 등과 같이 어떤 부분들은 영감된 반면 역사적인 부분, 과학적인 부분 등은 영감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 기록들은 상호간 유기적으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므로 전체 중 부분만이 영감되었다는 이 주장은 성경의 영감성을 근본적으로 모두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견해이다.
3. 완전 영감설(축자 영감설) - 기계적 영감설과 구분
성경 자체의 증거에 따라(수1:1, 4:1, 6:2, 렘1:9, 고전2:13) 성경 전체가 완전히 영감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견해는 영감이 성경에 사용된 모든 낱말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을 축자적으로 영감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축자적 영감이 기계적 영감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완전 영감설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바울의 메세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을 구약의 문서들과 동일한 위치에 두었다.(벧후3:16) 뿐만아니라 성령께서는 성경의 용어, 문체, 표현에 대해서도 영감하셨으므로 성경 어느 부분, 어떤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증거하셨다.(마22:43, 요10:35, 갈3:16)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일점 일획이라도 폐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이 사실을 강조하셨다.(마5:18) 따라서 우리는 이 완전 영감설을 영감의 범위에 대한 정설로 받아들인다.
구약성경의 영감
1. 성경의 독특한 영감성에 대한 증거
첫째로 구약성경 39권의 밑바닥에 흐르는 의미깊은 통일성이 있다.그것은 구약이 편집되기까지 수세기가 지났지만 유기적인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것이다.그것은 하나의 마음,저자가 되시는 하나님 자신의 마음이 나타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자연 스럽다.
둘째로 세계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오직 히브리 종교와 기독교만이 논리적으로 옹호할수 있는 인식론(종교지식의 학문)을 제공한다. 성경을 떠난 4천년 동안의 인간 연구와 철학적 탐구의 결과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수 있고 우리의 생애를 위한 그의 뜻을 알수 있는가? 오직 그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할때 뿐이다. 그분 자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대답을 결코 할수가 없다. 성경이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로 우리에게 그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는 이 중요한 사실을 관찰하여야 한다. 성경은 스스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특별 계시임을 증거한다. 그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왔다는 주장을 우리에게 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만약 한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우리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그가 이 지식을 우리에게 확실히 부여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 원문의 무오성
다음으로 우리가 물어야할 질문은 이 책은 어떤 종류의 기록인가?
그것은 여러 종류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이 기록된 계시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의 고유한 목적인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신빙성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할수 없을 것이다. 만약 성경이 진리와 오류를 섞어둔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것은 다른 책인 코란,베다,우파니샤드,아나덱트,일리아드,오딧세이 등과도 겉은 것이다. 인간이 성경의 진리에 타당한 판단을 내리려면 그는 하나님과 영혼의 영적 가치들에 대해 성경이 아는 것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에 전적으로 의존하여야 한다. 만약 그 계시가 쓸모있고 신빙성 있는 것이 되려면 그것은 인간의 오류있는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오한 것이어야 한다.
3. 사본의 전승이 무오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오류에서 벗어났다는 무오성은 성경책들의 원본에 해당된다.그것들은 모든 실수와 무관하다.하나님께서 성경의 인간 저자들로 하여금 오류나 거짓을 쓰게 하실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성경의 텍스트는 어떠한가?
그것 역시 모든 종류의 오류에서 벗어난 것이어야 하는가?
원본을 처음 복사할때 펜을 약간 잘못돌린 것과 사본을 사본하면서 전수되어 가는 중에 더 많은 실수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경우는 거의 피할수가 없는 일이었다. 원본을 무오하게 복사를 할수 있다고 보증하는 것은 기적과 다름이 없다. 오늘날 원문 비평가들은 구약 성경의 초기 사본들에서 많은 종류의 사본상 실수를 발견하였다. 이것들은 메시지 자체를 왜곡시키며 그 참뜻을 전달할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심각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수가 없다. 그 분은 자신의 계시를 전달할수 없기 때문에 후세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올바로 이해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분이 성경의 표준판과 권위있는 사본들을 복사하는 서기관들에게 어떤 억제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메시지를 왜곡시켰을 것이다. 만약 그 메시지가 오도되면 기록된 계시를 주신 그 전체적 목적이 무효로 돌아가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왜곡된 성경은 진리와 오류의 잡탕이므오 인간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기 보다는 인간의 판단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구약성경이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이전 시대의 모든 문학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어 성경의 전수에 있어서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없었다면 똑같은 모순과변화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사야서 두 권이 사해 근처의 쿰란 동굴 1에서 1947년에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이전에 알려진 가장 고대의 사본(A.D.980)보다 약 1000년 이전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 표준판과 비교해볼때 95%이상의 단어에 일치한다. 나머지 5%의 차이는 펜을 잘못돌렸는지 스펠링을 다르게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4. 영감 교리에 대한 성경의 자체 증거
성경은 스스로 그 무오성을 주장하고 있는가?종종 성경은 그 무오성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성경을 깊이 연구할수록 성경은 그 스스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르짖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요 10:3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벧후 3:16).
“…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의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히 1:1-2)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0-1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5. 하등적 영감관
성경의 영감에 대하여 신 정통주의적 접근을 하는 자들은 성경에 있는 교리적 진실과 오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소위 그리스도의 마음을 제시한다. 진리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선언들 중 많은 것이 소위 “그리스도의 마음”과 너무나 크게 충돌하고 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등
그의 진술 중 기록된 몇가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가 어떠했겠다는 철학적인 개념을 세우고 동일한 자료에 기록된 다른 진술들의 신빙성에 대하여는 그것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그 진정성을 부인해 버리는 것은 전혀 일관성이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억지로 집어넣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중 인간의 마음이 승인해 주는 것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이 참된 종교적 지식을 얻는데 있어서 부적당하고 신빙성이 없는 도구임을 보았었다. 성경이 인간을 판단해야 한다. 인간은 결코 성경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전형적인 신정통주의적 성경관은 성경을 단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정도로만 보는 것이다. 성경의 텍스트가 인간 저자에 의해 쓰여졌으며 모든 인간들은 죄에 빠졌고 오류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성경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이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성경관은 모든 종류의 과학적 역사적 오류들을 향해 문호를 개방하며 모세, 이사야, 다니엘과 나머지 글들의 진정성에 대해 합리주의자들이 고등비평을 하는 것을 용인하게 돤다. 성경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 모든 실수와 오류가 있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진다. 신정통주의의 신학자들은 성경 기록의 진실성에 대한 합리주의적 고등비평의 공격을 옆으로 돌리고 초자연에 대한 과학적 반박앞에서 기독교 메시지의 의의를 살리려고 노력하다가 계시 자체의 성격에 대해 역설적인 견해로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성격 자체에 있어서 성경화 될수 없다는 견지를 지지한다.
6. 성경의 난제를 다루는 법
사실 우리에게 전수된 성경의 텍스트는 성경 무오의 교리에 도전을 하는 듯이 보이는 난제들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어려움들중 어떤 것들은 본문 비평학을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해결이 된다. 이런 문제를 다룰때 두가지의 가능한 방법이 있다.
첫째는 그 개개의 난제가 풀릴때까지 성경 자체가 주장하는 무오성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가 생길때마다 그것이 만족스럽게 해결될때까지 성경은 의심받는 위치로 강등이 된다. 이러는 동안 신자는 성경에 대한 의심이 풀릴때까지 영혼의 고통과 힘든 의심의 고리에 묶여 있게 된다.
둘째는 명백한 불일치 앞에서도 성경 기록의 무오성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굳게 잡고 후일의 연구가 답을 확실하게 제시할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다.오직 성경의 신적인 기원이 성경 현상을 설명해 준다고 믿으며 나사렛 예수와 함께 기록된 하나님 말씀의 무오성을 붙잡고서 제기된 모든 문제가 결국 해결될때까지 믿고 바라보는 것이다.
성경의 신적 권위를 확신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그 무오성에 대한 의심이 풀려 질때까지 기다리는 자가 어리석고 합당치 않게 보인다.그것은 종종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절차를 밟는 다기보다는 우유 부단한 자세로서 하나의 전제에서 다른 것으로 논리성이 없이 왔다 갔다 하게 된다.명백하고 분명한 상이점이 성경에 있다면(특히 원본에서 확증될 수 있는 것이라면)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신앙을 버려도 좋은 이유가 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것이 증명될때까지 혹은 이와같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역사나 과학에서 오류가 있는 것이 법률적 증거의 법칙에 따라 확증이 될때까지 성경을 믿는 자는 그것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란 전제를 잊어서는 안된다.그동안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와같은 오류는 법정에서 만족할 정도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신약성경의 영감
구약의 영감은 구약자체의 증거와 예수님의 구약의 인용으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신약의 형성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구약과 신약사이에 서 계신다. 그는 구약의 영감에 대한 신적 증거를 하신 것과 같이 신약의 영감의 보증으로 성령을 약속하였다. 그 성령은 구약을 영감하신 동일한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의 영감은 구약의 영감만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 구약을 소급하여 인정하는 사람은 신약을 조망하여 인정하는 사람이다(1).
예수님은 진리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이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셨다 :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요16:12). 예수님께서는 성경(정경)이 그의 죽음의 시간까지도 마감되지 않았음을 아셨다. 그는 성령의 사역에 의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고 그 성령께서 오셔서 계시를 완성하셨다.
스코필드(C.I. Scofield)는 신약에 대한 그리스도의 예증(pre-authertication)을 아래 네 가지로 언급하였다.
1. 그가 드러내지 않은 많은 것을 남기셨다(요 15:12)
2. 이 계시가 성령이 오신 후에 마칠 것이며 그런 부가된 계시가 새 예언에 포함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요 16:12, 13)
3. 그가 이런 부가된 계시들을 받고 그들에게 그의 증인들이 될 어떤 사람들을 택하셨다(마 28:19; 요
15:27; 16:13; 행 1:8; 9:15-17)
4. 그가 성령으로 그를 위해 말할 때 그들의 말에 그 자신의 것과 똑같은 권위를 주셨다(마 10:14 15; 눅
10:16; 요 13:20; 17:20; 고전 14:37, 그리고 영감, 출 4:15; 계 22:19)(2).
예수님께서 신약영감의 사역에서 성령의 사역을 약속하신 구절이 요한복음 14:26에도 나온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또 요한복음 15:26,27에서는 오실 보혜사가 그리스도를 증거하실 것이며 제자들도 증거할 것이라 하셨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와 성령을 남기셨는데 이 성령과 제자가 바로 신약의 저자였다.
역시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이해를 위해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도 약속하셨다. 또한 제자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눅 22:44).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신약의 저자였던 제자들에게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지도해 주셨고 기록된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독자들을 조명해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런 약속에 대해서는 신약의 저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인도받았음을 증거하고 있다(고전 2:9-12; 7:24; 벧후 3:1-2; 계 1:1-2). 신약의 저자들은 그들 자신의 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글들을 위해서도 권위를 주장하였다(딤전 5:18; 벧후 3:16).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다같이 성령의 영감으로 된 책으로 성경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하다. 거기에 어떤 구별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누가와 함께 신명기를 성경으로 인용하였다(딤전 5:18). 베드로는 바울의 글을 성경으로 불렀다(벧후 3:16).
디이슨(Henry C. Thiessen)은 그의 조직신학 강의에서 신약의 신뢰성이 아래 네 가지 사실에서 확증된다고 하였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약의 저자들은 충분한 자격자들이었다.
마태, 요한 그리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제자요 그의 사역과 교훈의 증인이었다. 마가는 베드로의 해설자요 교훈에 대해 그가 기억한 것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누가는 바울의 친구였으며 그가 전한 복음을 책에 기록하였다. 바울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에 의해 부름받고 임명되었으며 그는 그의 복음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였다(갈 1:11-17). 야고보와 유다는 그리스도의 형제였고 그들의 메시지는 그 배경에서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들이 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기록하였다.
2. 신약의 저자들은 정직하였다
그들의 글의 도덕적인 기풍이 진리에 대한 그들의 증거이며 그들의 설명의 상세함은 그들이 거짓을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들임을 지적한다. 동시에 그들의 증언은 그들의 세상의 유익 예컨대 그들의 사회적 신분, 그들의 물질적 번영, 심지어 그들의 삶까지 위태롭게 하였다. 그런 위험을 자초하면서 거짓말을 꾸며 쓰거나 그것을 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3. 그들의 기록들이 서로 조화된다
공관복음서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서로 보충한다. 요한복음은 그 자세한 부분에까지 공관복음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사도행전은 바울의 10서신을 위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해 준다. 그 밖의 모든 서신과 요한계시록까지 그 내용들이 제1세기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없다. 특별히 신약의 27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대한 하나의 잘 어울리는 그림을 소개해 준다.
4. 그들의 기록은 역사와 경험에 일치한다.
신약에는 많은 당대 역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예컨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었을 때 호적한 것(눅 2:2) 대 헤롯의 행적(마 2:16-18) 헤롯 아그립바의 행적(마 14:1-12) 아그립바의 행적(행 12:1) 갈리오의 행적(행 18:12-17) 아그립바 2세의 행적(행 21:13-26:32) 등등이다.
이런 사건의 기록은 모두 믿을 수 있는 원천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 밖에 여러 가지 기적들이 기록됐는데 이런 것들은 처음 기록됐을 때 그것들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하였다.
이상의 여러 가지 증거들은 신약이 바로 구약과 같이 성령의 지도와 증명 그리고 영감하여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한다(3).
성경영감의 결과
성경의 영감의 결과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확신하게 한다.
1. 성경의 무오함
성경의 영감과 무오는 동의어다. 이 말이 성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여질 때 우리는 성경이 전적으로 오류나 착오에서 자유하며 그러므로 결함없는 권위를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4). 그러나 두 말은 구분이 가능한데 무오(Infallible)란 말은 오도하지 않는 질을 함축한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의 주장은 믿을 수 있으며 전적으로 신뢰할 가치가 있으므로 인간의 거짓된 말이나 언급과 대조되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자증이기 때문에 잘못 인도하지 않는다. 성경의 무오성은 전체로서 그것의 메시지를 가리킨다. 이 말은 어떤 구절이나 본문이 무오하다는 말이 아니다. 정경의 전체 문맥 안에 특수한 언급이나 부분이 다 무오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야고보의 질문, 믿음이 그를 구원하겠느냐? (약 2:4)를 그 대답이 아니라는 말과 떼어서 인용했다고 하자. 그때 우리는 야고보서에 있는 하나님의 무오한 진리를 놓치고 만다. 이 경우에 우리는 야고보서 전체의 윤곽 안에서 읽어야 하며 성경의 다른 부분의 보충적인 교훈 특별히 바울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곁에 두고 읽어야 한다(5).
완전영감은 무오와 함께 쓰이지만 오류가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만일 성경이 진리의 하나님에 의해 그 낱말까지 감동되어 내려왔다면 성경은 오류에서 자유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신앙(교리) 혹은 삶의 모형(윤리) 혹은 실제적 사건을 기록한 내용임을 기술할 때 그것이 진리를 말씀하는 것이다(6).
이렇게 성경의 영감의 결과는 성경의 무오함과 성경의 정확한 안내를 보장한다.
2. 진실성과 참됨(genuineness)
성경의 영감은 그것의 기원이 신적임을 드러낸다. 특별히 구약에 대한 예수님의 증거나 근대에 와서 각광을 받고 있는 성서고고학이 역사적 자료들을 발굴해냄으로 그 진정성을 밝혀가고 있다. 신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서 인용한 디이슨의 네 가지 사실을 참고하기 바란다.
3. 성경의 권위와 신뢰성
성경의 영감은 그 책이 하나님의 저작의 권위와 그 신뢰성을 갖게 해 준다. 그래서 루터(M.Luther)는 비록 그것들이 인간에 의해 쓰여졌으나 인간의 것이나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였다(7). 또 하나님의 말과 인간의 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인간의 말은 작은 소리로 공중으로 날아가면 곧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과 땅보다 더 위대하며 죽음과 지옥보다 더 위대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의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영원토록 존속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8).
개혁자 칼빈( Calvin)은 우리는 성경에 대해 그것의 유일한 출처가 그 안에 있고 인간의 출처가 그것과 혼합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존경을 성경에도 드려야 된다고 하였다(9). 역시 요한 웨슬레는 성경은 그 자체로 충분한 규범이며 하나님의 영감된 사람들에 의해 즉시 세상에 전해진 것이라 하였다(10).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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