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십자가의 제단을 쌓아봐요 = 신명기27;1-8(240616)

열려라 에바다 2024. 6. 13. 11:30

십자가의 제단을 쌓아봐요 = 신명기27;1-8(240616)


한상원목사
추천 0조회 1124.06.13 06:28댓글

 


PW : 믿음           BIW : 돌들로 제단을 쌓으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제단을 쌓아서 예배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세계 유명 인사들의 재치 있는 이야기


*** 독일의 헬무트 총리
독일의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총리는 정원을 청소하다가 수류탄 세 개를 주웠습니다.
아내와 함께 그 수류탄을 경찰서로 가져가는데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보, 가는 도중에 수류탄 하나가 터지면 어떡하죠?”
그러자 콜 총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경찰에게 두 개를 주웠다고 말하면 되니까.”


*** 아인슈타인
기차 여행 중이던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기차표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 차장이 승객들의 승차권을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표를 검사하던 차장이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누구인지 잘 압니다. 틀림없이 표를 사셨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끄떡이며 고맙다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바닥에 엎드려 좌석 아래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차장은 박사님, 걱정하실 것 없다니까요. 전 선생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는 나도 알아요. 그런데 내가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요.”


*** 슈바이처의 유머 -
슈바이처 박사가 모금 운동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에 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중하러 역으로 나왔습니다.
그가 1등 칸이나 2등 칸에서 나오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슈바이처 박사는 3등 칸에서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왜 굳이 3등 칸을 타고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슈바이쳐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 열차엔 4등 칸이 없더군요.”


***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독일군의 포격으로 영국 버킹엄 궁이 무너지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독일의 포격 덕분에 그동안 왕실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
딱딱하게만 보이던 철의 여인대처가 600명의 지도자들이 모인 한 만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홰를 치며 우는 건 수탉일지 몰라도 알을 낳는 건 암탉입니다.”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대식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쇼펜하우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2인분의 식사를 혼자서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혼자서 2인분의 밥을 먹다니...”라며 비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상류 사회에서는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전 늘 2인분의 밥을 먹습니다.
1인분만 먹고 1인분의 생각만 하는 것보다 2인분을 먹고 2인분의 생각을 하는 게 더 나으니까요.”


우리들은 웃음으로 시작하여 웃음으로 끝내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P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차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치고 기업을 분배받으면서 정착하게 되면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신다.
우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커다랗게 큰 돌에 석회를 발라서 누구든지 잘 보이도록 만든다.
그 돌 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말씀, 율법, 규례, 법도를 기록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누구든지 쉽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율법, 말씀, 규례를 잘 읽고 지킬 수 있도록 하라고 하신다.
아울러 하나 더 말씀하신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묵상하려고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돌들을 에발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발라서 누구든지 잘 보일 수 있도록 하라고 하신다.
우리나라 전북 진안에 가면 말의 두 귀를 닮았다고 해서 마이산이라고 붙여진 산이 있듯이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세겜성에 가면 양쪽에 산이 하나씩 있다.
오른쪽으로 에발산에 있고, 왼쪽에 그리심산이 있다.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정복하면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있는 세겜으로 백성들을 모아서 에발산에 큰 돌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돌들을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골고루 발라서 잘 보일 수 있도록 만든 후에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하신다.
곧 하나님께 제사 드릴 수 있는 제단을 쌓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돌로 된 제단을 쌓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다.
이 돌로 된 제단은 성막의 제단과는 다른 제단이다.
성막에 있는 제단은 레위 지파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옮길 수 있는 아주 작은 제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에발산에 세워지는 제단은 사람들이 짊어지고 옮길 수 없는 커다란 돌로 세워서 큰 제단이다.


하나님께서는 돌들에 석회를 발라서 계명들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신다.
돌들에 석회를 발라서 계명들을 기록하라는 말씀은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실까?
에발산에 돌들로 제단을 쌓으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
에발산에 돌들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실까?


D4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2절에서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누구를 위해서 큰 돌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시는지 분명하게 해석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히브리원문직역성경에 보면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그 땅으로 들어가는 그날에 너는 너를 위하여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로 그것들을 발라야 한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곧 누구를 위해서 큰 돌을 쌓고 그 위에 석회를 발라야 하는가 하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큰 돌들을 세우고 그 돌들에 석회를 바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고 말씀하신다.
왜 석회를 바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석회는 비교적 하얀색을 띤다.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발라서 비교적 하얀색을 띠게 되면 그 위에 무언가를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다.


여기서 분명하게 직시해야 할 부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분이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고통과 신음을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10재앙을 내리고 이끌어내시면서 출애굽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신다.
홍해를 가르는 일도,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꿔주시는 것도,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도, 므리바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시는 것도, 매일 새벽마다 만나를 내려주시는 것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을 보내주시는 것도,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는 것들도 모두가 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역사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하여 역사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전폭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으로 삼아주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들에 관여하시고 역사해 주신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역사해 주신 하나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역사해 주시는 분이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직접 역사해 주신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와 나의 가족들, 우리 성도들, 우리나라와 한민족을 위해서 직접 찾아오시고 감동을 주시고 일을 만들어가신다.


 준비된 돌들에 말씀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3절에서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8절에서도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우고 하얗게 석회를 바른 큰 돌들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모든 말씀, 규례, 법도, 계명들을 기록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모든 계명들, 613개의 계명들을 돌들에 기록하여 모든 백성들이 보고 읽고 지킬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약속들을 이행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돌들에 말씀을 새겨놓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말씀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새겨놓을 것같았으면 굳이 석회를 발라서 하얗게 만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말씀을 기록하기 위하여 석회를 발라서 하얗게 만들어 놓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열정을 가지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말씀을 기록하는 것이다.
메모장이든, 수첩이든, 휴대폰이든, 카톡과 같은 SNS든지 성경을 읽으면서,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말씀을 기록하는 것이 좋다.
기록해 두면 다시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을 그 당시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다.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도 좋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저도 뜬금없이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말씀을 휴대폰 문자란에 기록해 둔다.
그러면 잊어버리지 않고 다시 그 말씀을 상기하면서 설교원고를 작성할 때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말씀을 기록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다.
말씀을 기록하는 것은 언제나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내 삶에 직접 적용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다.
말씀을 기록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하심, 하나님의 실존하심을 온 몸과 피부로 인지하고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는 힘을 준다.


 다듬지 않은 완전한 돌들로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5-6절에서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라고 말씀하신다.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계명들, 말씀들, 규례와 법도들을 기록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다듬지 않은 돌로 돌제단을 쌓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돌 제단을 쌓되 다듬지 않은 돌들로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다듬지 않은 돌들을 히브리어 직역성경에서는 완전한 돌들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5절에서는 돌단을 쌓되 쇠 연장을 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쇠는 철을 의미한다.
철강은 창, , 화살, 병거 같은 무기를 만들어서 전쟁하고, 사람을 죽이고, 평화를 깨뜨린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전쟁에도 철로 만든 무기를 사용한다.
철이 아니면 무기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각종 총알, 폭탄, 탱크, 전투기와 같은 무기의 기본은 철강을 사용하는 것이다.
철강산업이 발달하면 군사용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철기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사회에 전쟁이 끊어지지 않았다.
수없는 살인과 노략질과 피 흘리는 전쟁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철기 문명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 제단을 쌓으면서 전쟁과 살인과 노략질과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쇠 연장, 철 연장을 사용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샬롬, 평강, 평화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철로 만든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제단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도구이다.
제단에 제물이 되는 짐승을 죽여서 제사를 올려드림으로써 그 제사를 올려드리는 백성들을 살리는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제단을 쌓는 것인데,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철로 된 연장으로 돌을 다듬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철로 된 연장으로 돌들을 다듬게 되면 불완전한 돌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세우는 제단을 불완전한 돌들로 제단을 쌓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쌓는 돌들은 완전한 돌들로, 곧 철로 다듬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원석을 가지고 제단을 쌓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올려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서 큰 돌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시고, 제단을 쌓기 위하여 다듬지 않은 돌들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돌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돌들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돌은 쉽게 변하지 않고 불변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돌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은 바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성을 의미한다.
돌은 아무리 세월이 바뀌고, 역사가 바뀐다 해도 돌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돌은 아직도 그대로 돌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천재적인 사건들, 지각변동, 지질적인 변동으로 인해서 돌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깨지면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돌은 천년, 만년 있는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특색이다.
설악산에 가면 울산바위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물주가 금강산에 12000봉을 만들기 위하여 한반도에 있는 바위들에게 금강산으로 모이라고 하여 울산에 있던 큰 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너무 커서 너무 누리게 가다 보니 이미 금강산 12000봉이 만들어져서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하여 설악산에 머물렀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해도 울산에 있는 바위가 설악산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다.
본래 설악산이 만들어질 때부터 있었던 바위이다.
아무리 금강산에 12000봉이 있다고 해도 전국에 있는 바위가 금강산으로 옮겨져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반도를 만드실 때부터 금강산에는 12000봉이 있었다.
설악산에 있는 울산바위는 옮겨져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바위는 세월이 바뀌고, 역사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돌이다.
그래서 중동지역, 가나안 땅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신은 돌처럼 변화되지 않는 존재다. 불변하는 것이다. 변하는 것은 신이 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동지역에서는 돌을 불변하는 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각종 신들의 형상, 신전들은 돌로 만들었다.
바위 터 위에 신전을 세운다.
같은 중동지역, 가나안 지역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르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중동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변할 수 없는 분이다. 아침저녁으로 이랬다저랬다 뒤집어지고 바뀌는 것은 하나님이라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절대로 바뀔 수 없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들을 사용하여 변하지 않는 생명의 말씀을 기록하고, 다듬지 않은 완전한 돌들을 사용하여 돌 제단을 쌓아서 제사를 올려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사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다듬지 않은 완전한 돌로 제단을 쌓은 후에 그 제단 위에 6-7절에서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고통과 신음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제사를 올려드리는 민족으로 세우기 위해서이다.
다듬지 않은 완전한 돌들로 제단을 쌓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이다.
제사를 올려드릴 목적이 없다면 제단을 쌓아야 할 목적이 사라진다.
제단은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는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당을 세워서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교회당은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이다.
교회당에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은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돌들로 쌓은 제단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번제는 제물을 온전히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지만, 화목제는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올려드리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함께 나눠 먹으면서 잔치를 베풀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7절에서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면서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제사를 올려드린 후에 온 백성들이 함께 나눠 먹으면서 함께 즐거워하기를 원하신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단 위에서 제사를 드린 후에 함께 축복과 은혜의 잔치를 베풀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은 축복 중에 임재하시고, 축복 중에 역사하시고, 온 백성들, 가족들, 성도들 위에 축복으로 넘치게 부어주신다.
하나님께 예배드린 후에 성도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어 먹으면서 사랑의 교제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예배 드린 후에 같이 성도들이 함께 식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적은 반찬이지만 신앙인들이 함께 모여서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축복 중에 축복이요 은혜 중에 은혜이다.


L4 & B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발라서 하얗게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들, 말씀들을 기록하라고 하시는 말씀이나 다듬지 않은 완전한 돌들로 제단을 쌓아서 제사를 올려드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짊어지시고 걸어가신 십자가의 보혈을 의미한다.
돌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바위, 돌을 기록할 때 꼭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하여 돌을 사용하신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돌을 가지고 설명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수님 자신도 돌에 비유한다.
고린도전서10;4에서는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을 반석이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 전서2;4-5에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비유한다.
요한계시록 2:17에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을 흰 돌이라고 말씀하신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도 돌 위에 세운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성전산, 곧 모리아산, 아라우나 타작마당은 바위들로 만들어져 있다.
유대인들은 회당도 돌로 세웠다.
교회도 돌 위에 세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18에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과 터키에 성지순례를 가보면 교회당들을 돌로 세워지기도 했고, 돌산 위에 교회당을 세운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돌 위에 주님의 몸된 교회들을 세우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구원의 길은 오직 십자가 보혈로 쌓은 제단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들이 구원받아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성도가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께서 친히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죽은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베풀어주시는 제단이다.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축복의 제단이다.
십자가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시고 구원의 자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로 삼으시는 축복의 제단이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세월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민족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다 해도 주님의 십자가는 바뀌지 않는다.
사탄의 조종을 받는 각종 이단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변질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해도 결코 주님의 십자가는 바뀌지도 않고 변질되지도 않는다.
아무리 사탄이 교회를 협박하고 조롱하고 시험해 온다 해도 주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 능력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 축복의 십자가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길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활짝 열어주시는 축복의 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언제나 주님만을 위해서 십자가의 제단을 쌓아야 한다.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의 제단을 쌓을 때 축복의 길이 열리고, 구원의 길이 열리고, 은혜의 길이 열린다.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의 제단을 쌓게 되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축복의 잔치에 동참하게 된다.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어 영원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답게, 제사를 올려드리는 신앙인, 예배를 올려드리는 신앙인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는 축복 중에 축복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 제단을 쌓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로 예배드리는 그 자체가 축복 중에 축복이요 은혜 중에 은혜이다.
우리 모두 주님의 십자가 제단을 쌓아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