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깃도(아마겟돈 = Megiddo)
이스라엘의 가장 비옥한 이즈르엘(Jezreel)평야 중에서도 므깃도는 동서남북을 서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이에 가나안 땅 중에서도 이곳은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 지역을 행정적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923년 경 애굽의 시삭(Sisak)은 므깃도를 파괴하였고 그 후 아합왕 때 이곳은 다시 재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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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 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므깃도는 1925~39년에 시카고 대학의 동양 연구소(Oriental Institute)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곳에는 BC 3000년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을 건설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므깃도 발굴 당시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큰 장소를 발견하였는데,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로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이에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왕 때의 주거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인 아합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BC 869-850). 므깃도는 시삭에게 파괴되었다가 아합왕 때 복구되었는데, 아합왕은 이곳에 솔로몬 시대의 것과 비슷한 형태와 규모의 마병장을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므깃도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것은 당시의 발전된 공업 기술을 볼 수 있는 우수한 수로 장치이다.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와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어 도시 밖의 샘으로부터 도시 내부로 수로를 끌어들이도록 되어 있다. 샘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이는 3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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