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당당하게 살아봐요== 신명기31;1-13(240804)
PW : 믿음 BIW : 강하고 당당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드리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생사 갈림길에도 충만한 감사
아주 먼 옛날 로마제국 시대에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진 믿음이 좋은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항상 복음을 전하면서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사람이 살던 당시의 로마 황제는 절대로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공포하였습니다.
신앙이 좋은 그 사람은 이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체포당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하나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곳에 파송하였군요.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형 언도를 받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순교라고 하였는데, 저같은 미천하고 보잘없는 사람을 순교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이 할 일이 더 남아 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6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72가지의 필요한 생활 조건을 가졌고, 18가지의 절대 필요한 것을 갖고 살았는데, 지금은 500가지의 필요한 생활 조건이 있고 50가지의 절대 필요한 것이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항상 세 가지 감사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즉 일용할 양식과 건강한 몸,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감사 조건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보다는 원망, 불평, 의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들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봅시다.
하나를 감사하면 또 다른 감사의 조건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감사가 또 다른 감사를 불러오게 된답니다.
무엇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도, 동포들에게 40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으면서,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넘기면서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언제까지든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를 올려드리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반열에 굳게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P4
모세는 이제 120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된다.
모세는 애타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셔서 그렇게도 들어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모세가 온갖 역경과 시련과 백성들의 완악함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오직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열망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같은 구세대 인물들은 광야 생활까지라고 한정시키신다.
모세는 너무너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모세에게 “넌 여기까지가 네게 주어진 사명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은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새로운 세대들, 신세대들이 들어가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 나라를 건국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정복하여 차지하라는 커다란 사명을 주신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너무 두렵고 무섭고 걱정이 앞서서 근심 걱정 염려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처지가 된다.
특히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지켜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틈을 주어도 하나님을 떠나서 온갖 추악한 행위를 일삼는 백성들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패악한 백성들, 목이 곧은 백성들, 언제 어디서나 원망하고 불평하며 지도자인 모세를 대적하는 백성들임을 보고 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에게도 대항하면서 항상 분란을 일으킨 백성들인데 나에게는 얼마나 더 악랄하게 할까 생각하니 여호수아는 너무너무 두렵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말씀도 제대로 듣지 않는 백성들이라면 자신이 하는 말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지 않겠나.
지금까지야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없는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가야 하는 상황이다.
여호수아는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밤에 잠을 잘 수 없다.
여호수아는 늘 어떻게 해야 하나?
과연 내가 그 막중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야 모세라는 걸출한 나무 그늘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지만, 이제 조금 있으면 모세라는 커다란 바위가 사라지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든든한 바위와 같은 존재, 커다란 나무 그늘과 같은 존재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어찌 두렵지 않겠나?
어찌 염려와 근심이 없겠나?
어찌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지 않겠나?
차라리 나 말고 다른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나?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모세를 잘 보필하여 여기까지 온 것 만으로 만족한다.
다른 분을 세워서 그를 도와서 협력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당한 생각인 것 같다.
D4
① 모세를 대신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시려는 하나님.
2-3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를 비롯하여 모든 구세대 사람들은 요단강 대협곡 건너편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간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에는 새로운 신세대가 들어가서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새로운 세대에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새로운 하나님의 기업을 세워가고 싶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4-6절에서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지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먼저 요단강을 건너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헤스본과 바산 지역의 아모리 족속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강하고 패역하고 견고한 철옹성같아 보여도 결코 두러워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벌벌 떨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고하고 계신다.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과 먼저 싸워서 승리하신 후에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실 것이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먼저 겁을 먹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강하고 담대하게 가나안의 족속들을 맞서서 싸우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5:38에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세대에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인들에게도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나라와 민족에도, 사회에도, 삶의 터전에도, 기관에도 새로운 꿈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를 세워서 새로운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세워가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세워서 다음의 세대를 이어가고 싶어하신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새로운 리더쉽이 세워져서 새로운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② 여호수아에게 담대함을 불어넣어 주시는 하나님.
7-8절에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세워주신다.
그러면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라고 말씀하면서 리더쉽을 이양해 주면서 격려해 주고 있다.
지도자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이끌어가야만 백성들이 지도자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지도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지도자가 흔들린다면 백성들은 지도자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고 오합지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위기 때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처럼 이제 모세가 하나님의 나라로 떠난 이후에 지난 40년 동안 자신들을 이끌던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은 백성들에게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여호수아가 담대하게 백성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쉽을 보여주어야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신뢰하고 여호수아를 따라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출애굽하여 지금까지 40년 동안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을 보필해 주었던 것처럼, 여전히 변치 않는 믿음으로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앞장서라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대명령을 주신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축복하시려고 대명령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마음가짐이 새로워져야 한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 약속을 바라보면서 백성들을 이끌고 가면 가나안 땅을 축복으로 주신다.
그 명령을 따라서 강하고 담대하게 백성들을 이끌고 가면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가나안 땅은 바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지가 되는 축복을 주신다.
이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족속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벌벌 떨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먼저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셔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멸망시켜 주신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멸망시키고 그들이 거처하던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다.
이미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땅을 빼앗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 것처럼 가나안의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다.
항상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동행하시면서 역사해 주신 것처럼 앞으로 여호수아, 바로 너와 함께하면서 역사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사실 가나안의 일곱 족속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고 두렵고 떨리고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헤스본 지역과 바산 지역을 점령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그 능력과 권세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아무리 견고하고 철병거를 가지고 있고, 철옹성과 같은 크고 높은 성벽을 쌓아올렸다고 하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더 이상 나약하게 만들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충천케 해 주신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가나안의 족속들을 맞서서 싸움터로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신다.
③ 언약서를 낭독하고 가르치고 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모세는 이제 토라, 모세5경을 다 기록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레위지파의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에게 넘겨준다.
모세는 토라를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넘겨주면서 10-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말씀하신 율례들, 계명들, 규례들, 명령들을 잘 읽고 듣고 배우고 가르치고 지키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살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서 정해진 토라의 분량을 낭독하면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올려드리고, 예배를 올려드린다.
토라를 해마다 반복하면서 낭독할 수 있도록 54개 부분으로 나눠서 매 안식일 마다 낭독한다.
회당에서는 안식일마다 회당 맨 앞쪽 벽장(Ark)에 보관되어 있는 토라를 꺼내어 3~5장씩 읽는데 이 분량을 Parsha라고 부른다.
창세기는 12Parsha이고, 출애굽기는 11Parsha, 레위기는 10Parsha, 민수기는 10Parsha, 신명기는 11Parsha로 모두 54개Parsha로 구성되어 있다.
초막절이 끝나는 다음 날에는 토라축제(심핫 토라, Simchat Torah)를 진행하면서 나머지 분량을 낭독한 후에 토라를 업거나 머리에 이거나 하면서 온 회당을 돌아다니면서 축제를 즐긴다.
유대인들은 토라축제를 즐기면서 다음 안식일부터 다시 토라를 잘 낭독하며 토라의 말씀을 따라서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L4 & B4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지나간 몇 개월 동안도 국내외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건들, 홍수를 비롯한 자연재해, 질병들 속에 살아왔던가?
매일매일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소식들도 많았지만, 좋지 않은 소식들이 더 많지 않았던가?
이러다가 정말 무슨 커다란 일이 터지고야 말 것 같은 일들이 끝없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끝까지 그 사건들 속에 던져놓지 않으시고 지켜주셨다.
그러니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 가운데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 가운데 살아왔기에 하늘 아버지를 향하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탱큐. 하나님. 고맙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축복하심,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리며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줄로 믿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시고 능력주시고 은혜 주실 것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감사드리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아울러 큰 소리로 소리 내어서 성경읽기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유대인들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구원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 모든 것들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토라 하나 때문에 온 백성들이 즐겁게 잔치하고 노래부르고 춤을 추면서 축제를 벌린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은 창조주 예수님,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구원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 모든 것들의 근원이신 예수님,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요 왕이요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즐거워하지 않는다.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춤을 추지 않는다. 축제가 없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뜨거운 열정과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제 우리들도 생명의 말씀이신 성경을 뜨겁게 사랑하고 읽으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축제를 열 수 있어야 한다.
낭독은 큰소리로 소리 내서 자기 귀에 들릴 정도로 하는 것이다.
다 죽어가는 개미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큰 소리로 자기가 들을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도 들을 수 있도록 읽어야 한다.
성경은 소리 내어서 읽을 때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반복적으로 계속 큰 소리로 소리내면서 읽을 때 나타난다.
초대교회에서는 설교가 따로 있지 않았다.
그저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들려줄 때 은혜와 능력이 임했다.
지금 북한 지하교회에서는 성경을 큰소리로 읽지 못한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은 온 몸으로 성경을 읽는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유롭게 성경을 큰 소리로 읽을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올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소리내어 성경읽기에 도전해 보자.
시간이 있건 없건 수시로 성경을 읽고 또 읽자.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들에게 능력이 되어 찾아온다.
은혜와 축복으로 찾아온다.
하나님의 강력한 권세로 찾아온다.
능력있는 성도, 힘있는 성도, 용기와 소망과 꿈과 비전이 넘치는 성도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고,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구원이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심정이고, 하나님의 모든 것, 하나님의 ALL-Eveything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큰 소리로 낭독할 때, 신앙인들은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성령의 충만으로 기름부으심을 입게 되고,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다.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받게 되고, 주님의 구원의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주님의 회복과 치유의 십자가를 만나게 되고, 주님의 복음을 만나게 된다.
성경을 큰 소리로 소리내어 낭독할 때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너무 좋아서 하늘에 쌓아놓은 축복의 보따리를 풀어서 내려주신다.
우리가 뜨거운 열망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며 낭독하면서 듣고 배울 때,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영의 세계가 활짝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를 체험하는 신앙인으로 세움을 입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강하고 당당해지고 담대하여 세상의 온갖 죄악들과 어둠의 세력들과 맞서서 싸워서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가르치고 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이 없는 떳떳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꾼으로 세움을 입을 수 있는 축복이 임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TS : 믿음이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드리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생사 갈림길에도 충만한 감사
아주 먼 옛날 로마제국 시대에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진 믿음이 좋은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항상 복음을 전하면서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사람이 살던 당시의 로마 황제는 절대로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공포하였습니다.
신앙이 좋은 그 사람은 이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체포당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하나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곳에 파송하였군요.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형 언도를 받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순교라고 하였는데, 저같은 미천하고 보잘없는 사람을 순교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이 할 일이 더 남아 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6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72가지의 필요한 생활 조건을 가졌고, 18가지의 절대 필요한 것을 갖고 살았는데, 지금은 500가지의 필요한 생활 조건이 있고 50가지의 절대 필요한 것이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항상 세 가지 감사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즉 일용할 양식과 건강한 몸,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감사 조건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보다는 원망, 불평, 의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들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봅시다.
하나를 감사하면 또 다른 감사의 조건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감사가 또 다른 감사를 불러오게 된답니다.
무엇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도, 동포들에게 40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으면서,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넘기면서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언제까지든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를 올려드리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반열에 굳게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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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제 120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된다.
모세는 애타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셔서 그렇게도 들어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모세가 온갖 역경과 시련과 백성들의 완악함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오직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열망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같은 구세대 인물들은 광야 생활까지라고 한정시키신다.
모세는 너무너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모세에게 “넌 여기까지가 네게 주어진 사명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은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새로운 세대들, 신세대들이 들어가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 나라를 건국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정복하여 차지하라는 커다란 사명을 주신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너무 두렵고 무섭고 걱정이 앞서서 근심 걱정 염려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처지가 된다.
특히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지켜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틈을 주어도 하나님을 떠나서 온갖 추악한 행위를 일삼는 백성들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패악한 백성들, 목이 곧은 백성들, 언제 어디서나 원망하고 불평하며 지도자인 모세를 대적하는 백성들임을 보고 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에게도 대항하면서 항상 분란을 일으킨 백성들인데 나에게는 얼마나 더 악랄하게 할까 생각하니 여호수아는 너무너무 두렵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말씀도 제대로 듣지 않는 백성들이라면 자신이 하는 말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지 않겠나.
지금까지야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없는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가야 하는 상황이다.
여호수아는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밤에 잠을 잘 수 없다.
여호수아는 늘 어떻게 해야 하나?
과연 내가 그 막중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야 모세라는 걸출한 나무 그늘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지만, 이제 조금 있으면 모세라는 커다란 바위가 사라지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든든한 바위와 같은 존재, 커다란 나무 그늘과 같은 존재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어찌 두렵지 않겠나?
어찌 염려와 근심이 없겠나?
어찌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지 않겠나?
차라리 나 말고 다른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나?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모세를 잘 보필하여 여기까지 온 것 만으로 만족한다.
다른 분을 세워서 그를 도와서 협력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당한 생각인 것 같다.
D4
① 모세를 대신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시려는 하나님.
2-3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를 비롯하여 모든 구세대 사람들은 요단강 대협곡 건너편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간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에는 새로운 신세대가 들어가서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새로운 세대에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새로운 하나님의 기업을 세워가고 싶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4-6절에서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지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먼저 요단강을 건너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헤스본과 바산 지역의 아모리 족속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강하고 패역하고 견고한 철옹성같아 보여도 결코 두러워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벌벌 떨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고하고 계신다.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과 먼저 싸워서 승리하신 후에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실 것이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먼저 겁을 먹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강하고 담대하게 가나안의 족속들을 맞서서 싸우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5:38에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세대에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인들에게도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나라와 민족에도, 사회에도, 삶의 터전에도, 기관에도 새로운 꿈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를 세워서 새로운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세워가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세워서 다음의 세대를 이어가고 싶어하신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새로운 리더쉽이 세워져서 새로운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② 여호수아에게 담대함을 불어넣어 주시는 하나님.
7-8절에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세워주신다.
그러면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라고 말씀하면서 리더쉽을 이양해 주면서 격려해 주고 있다.
지도자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이끌어가야만 백성들이 지도자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지도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지도자가 흔들린다면 백성들은 지도자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고 오합지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위기 때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처럼 이제 모세가 하나님의 나라로 떠난 이후에 지난 40년 동안 자신들을 이끌던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은 백성들에게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여호수아가 담대하게 백성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쉽을 보여주어야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신뢰하고 여호수아를 따라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출애굽하여 지금까지 40년 동안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을 보필해 주었던 것처럼, 여전히 변치 않는 믿음으로 엘샤다이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앞장서라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대명령을 주신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축복하시려고 대명령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마음가짐이 새로워져야 한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 약속을 바라보면서 백성들을 이끌고 가면 가나안 땅을 축복으로 주신다.
그 명령을 따라서 강하고 담대하게 백성들을 이끌고 가면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가나안 땅은 바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지가 되는 축복을 주신다.
이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족속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벌벌 떨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먼저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셔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멸망시켜 주신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멸망시키고 그들이 거처하던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다.
이미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땅을 빼앗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 것처럼 가나안의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다.
항상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동행하시면서 역사해 주신 것처럼 앞으로 여호수아, 바로 너와 함께하면서 역사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사실 가나안의 일곱 족속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고 두렵고 떨리고 무서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헤스본 지역과 바산 지역을 점령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그 능력과 권세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아무리 견고하고 철병거를 가지고 있고, 철옹성과 같은 크고 높은 성벽을 쌓아올렸다고 하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더 이상 나약하게 만들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충천케 해 주신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가나안의 족속들을 맞서서 싸움터로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신다.
③ 언약서를 낭독하고 가르치고 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모세는 이제 토라, 모세5경을 다 기록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레위지파의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에게 넘겨준다.
모세는 토라를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넘겨주면서 10-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말씀하신 율례들, 계명들, 규례들, 명령들을 잘 읽고 듣고 배우고 가르치고 지키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살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서 정해진 토라의 분량을 낭독하면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올려드리고, 예배를 올려드린다.
토라를 해마다 반복하면서 낭독할 수 있도록 54개 부분으로 나눠서 매 안식일 마다 낭독한다.
회당에서는 안식일마다 회당 맨 앞쪽 벽장(Ark)에 보관되어 있는 토라를 꺼내어 3~5장씩 읽는데 이 분량을 Parsha라고 부른다.
창세기는 12Parsha이고, 출애굽기는 11Parsha, 레위기는 10Parsha, 민수기는 10Parsha, 신명기는 11Parsha로 모두 54개Parsha로 구성되어 있다.
초막절이 끝나는 다음 날에는 토라축제(심핫 토라, Simchat Torah)를 진행하면서 나머지 분량을 낭독한 후에 토라를 업거나 머리에 이거나 하면서 온 회당을 돌아다니면서 축제를 즐긴다.
유대인들은 토라축제를 즐기면서 다음 안식일부터 다시 토라를 잘 낭독하며 토라의 말씀을 따라서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L4 & B4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지나간 몇 개월 동안도 국내외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건들, 홍수를 비롯한 자연재해, 질병들 속에 살아왔던가?
매일매일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소식들도 많았지만, 좋지 않은 소식들이 더 많지 않았던가?
이러다가 정말 무슨 커다란 일이 터지고야 말 것 같은 일들이 끝없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끝까지 그 사건들 속에 던져놓지 않으시고 지켜주셨다.
그러니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 가운데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 가운데 살아왔기에 하늘 아버지를 향하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탱큐. 하나님. 고맙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축복하심,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리며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줄로 믿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시고 능력주시고 은혜 주실 것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감사드리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아울러 큰 소리로 소리 내어서 성경읽기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유대인들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구원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 모든 것들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토라 하나 때문에 온 백성들이 즐겁게 잔치하고 노래부르고 춤을 추면서 축제를 벌린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은 창조주 예수님,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구원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 모든 것들의 근원이신 예수님,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요 왕이요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즐거워하지 않는다.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춤을 추지 않는다. 축제가 없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뜨거운 열정과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제 우리들도 생명의 말씀이신 성경을 뜨겁게 사랑하고 읽으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축제를 열 수 있어야 한다.
낭독은 큰소리로 소리 내서 자기 귀에 들릴 정도로 하는 것이다.
다 죽어가는 개미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큰 소리로 자기가 들을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도 들을 수 있도록 읽어야 한다.
성경은 소리 내어서 읽을 때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반복적으로 계속 큰 소리로 소리내면서 읽을 때 나타난다.
초대교회에서는 설교가 따로 있지 않았다.
그저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들려줄 때 은혜와 능력이 임했다.
지금 북한 지하교회에서는 성경을 큰소리로 읽지 못한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은 온 몸으로 성경을 읽는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유롭게 성경을 큰 소리로 읽을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올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소리내어 성경읽기에 도전해 보자.
시간이 있건 없건 수시로 성경을 읽고 또 읽자.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들에게 능력이 되어 찾아온다.
은혜와 축복으로 찾아온다.
하나님의 강력한 권세로 찾아온다.
능력있는 성도, 힘있는 성도, 용기와 소망과 꿈과 비전이 넘치는 성도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고,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구원이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심정이고, 하나님의 모든 것, 하나님의 ALL-Eveything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큰 소리로 낭독할 때, 신앙인들은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성령의 충만으로 기름부으심을 입게 되고,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다.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받게 되고, 주님의 구원의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주님의 회복과 치유의 십자가를 만나게 되고, 주님의 복음을 만나게 된다.
성경을 큰 소리로 소리내어 낭독할 때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너무 좋아서 하늘에 쌓아놓은 축복의 보따리를 풀어서 내려주신다.
우리가 뜨거운 열망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며 낭독하면서 듣고 배울 때,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영의 세계가 활짝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를 체험하는 신앙인으로 세움을 입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강하고 당당해지고 담대하여 세상의 온갖 죄악들과 어둠의 세력들과 맞서서 싸워서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가르치고 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이 없는 떳떳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꾼으로 세움을 입을 수 있는 축복이 임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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